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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마디같이 차갑고 무감각한" 시

  • 등록일
    2008/10/30 15:41
  • 수정일
    2008/10/30 15:41

그런 한 편의 시. 나도 그런 시를 원했고, 지금도 그렇다. 섬뜩하고, 너무나 냉엄하여 세상의 더러운 것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만한 그런 시, 글. 쉬운 일이 아니다. 선승의 '할!' 소리와 도 같고, 노동현장의 쇳조각 저미는 소리와도 같고, 또 그러므로 세상의 가장 낮은 것들에게 위안을 주는, 글, 시.

 

독서 이력을 훑어 보다 보면 그런 류, 생면부지지만 글을 보면 연애라고나 할만한 그런 감정이 솟구치는 비슷한 유전자들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내 기억에 그 두근거림은 열 여섯이 되던 해 겨울에 보았던 로트레아몽이 처음이었고, 랭보와 블레이크가 다음이다. 지겹기만 했던 수업시간에 교과서을 가리고 보았던 프로이트도 그 중 하나였지 싶다. 대학을 와서는 두근거림을 넘어 본격적으로 연애모드로 들어 가서는 폐인이 되었는데, 여기 가장 기여를 한 시인은 단연 기형도다. 희안하게도 김수영보다는 기형도가 좋았고, 당시에 선배들이 즐겨 권하던 박노해와 김남주는 가슴 벅차게 열정을 충동질하기는 했지만 남는 서정이 부족했다(여기서부터 먹물이었던 거다. 나는).

 

언젠가 아는 선생님이 술자리에서 그러시더라. "자네는 실존적 인간형인가? 사회적 인간형인가?" 옆에 앉아 같이 술잔을 기울이던 다른 선배는 선뜻 "실존적입니다"라고 답하고는 머쓱해 했지만 난 대답을 찾기가 매우 곤란했다. 그건 아마 외로 남은 내 '혁명적 낭만주의' 쯤 되는 자존심 때문이었으리라. 끝내 먹물이 먹물이길 거부하는 건 이런 자존심이 남아 있기 때문인 게다. 참, 불행한 의식이다.

 

하여간 이번에 새로 시집을 낸 허연 시인도 내겐 가슴 두근거리는, 아니 폐인모드에 한 후원한 글쟁이에 속한다. 제목에 쓴 말은 이 시인이 최근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첫번째 시집([불온한 검은 피])를 읽었을 때, 단박에 알아 챈 건 이 시인이 가지는 그런 실존적인 엄정함이었다. 정말 무시무시할 정도로 스스로를 해부하는 그것. 후설(Husserl)이 현상을 기술하는 데 철학적 엄밀함이란 무기를 들었다면, 허연은 자신의 페시미즘과 허무주의를 낱낱이 해부하기 위해 문학적 엄밀함이라는 매스를 휘두른다. 그거 참, 맞는 말이다. '휘두른다'는 거. 어찌나 휘둘러 대는지 한 세상 전체가 호러무비 세트장이다.

 

그런 그가 두 번째 시집을 냈다. 한 8년 만인 것 같다. 생겨 먹은 뽄새는 아래와 같다.

 

 

풍기는 가오(?)가 ... 글과 마찬가지로 좋은 편은 아니다. 그리고 말하는 뽄새도 나긋나긋하지 않다. 첫번째 시집을 '세상의 옆구리에 칼을 질러 넣는 기분'으로 썼고, 이번 시집은 '내 옆구리에 칼을 질러 넣는 기분'으로 썼다고 한다. 새로 나온 시집은 위와 같다. 여러 말 할 필요 있나. 저 무시무시한 얼골에 퍼진 언어들을 직접 대면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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