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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17
    백양사, 마음을 놓다(5)
    redbrigade

백양사, 마음을 놓다

  • 등록일
    2009/04/17 15:17
  • 수정일
    2009/04/17 15:17

저번 주에 전화 통화로 이번엔 나들이나 가자고  했었다. 예전에 광주에서 한 6개월 정도 야인생활(아무 것도 없이 무작정 그녀가 거기서 산다는 사실 하나만 붙잡고 전남대 앞 고시원에 터를 잡았었다)을 할 때 주말에는 광주 근교 사찰들을 쏘다녔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이 백양사다. 그때는 눈 덮힌 겨울이었고 지금은 꽃들 지천에 흐드러진 봄날이다.

 

광천터미널에서 오후 한 시 경에 시외버스를  타고 백양사로 향했다. 장성을 거쳐 가는 길, 남도의 너른 들이 창 밖으로 펼쳐진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난 고향인 경상도 쪽 보다, 전라도 쪽 풍경이 더 마음에 들고 친숙하다. 경상도는 온통 빌딩 숲이고, 산과 들이 있어도 내겐 늘 걍팍해 보였다. 거긴 사찰들도 소박하지 않고, 으시댄다. 경상도 쪽 사찰도 많이 돌아 다녀 봤지만, 맘에 오롯이 들어 왔던 곳은 단 하나, 부산 범어사 뿐이다.

 

백양사로 들어 가는 길. 이 길은 오른 쪽으로는 내장산 자락이 치마를 펼치면서, 행인들을 받아 주고, 왼쪽은 계곡이 흐른다. 거기다 애기 단풍 나무들이 길 가로 죽 늘어 서 있다. 간간히 갈참나무도 보인다. 겨울에 왔을 때는 이 나무들에 온통 흰 눈꽃들이 피더니, 이번에는 파란 새순들이 까르르 웃는다.  가을에 온다면 이 길 어귀가 온통 붉게 넘실거릴 것이다.

 

일주문을 지나, 구름다리를 건너서 사천왕상 앞에 선다. 여러 사찰을 돌아 다니면서 느낀 것이지만 남도 사찰들을 지키는 사천왕들은 어떻게 된 게 무섭지가 않고, 친근하다. 표정들이 전혀 위압적이지 않은 게다. 이쪽 사람들 민심을 닮은 모양새라 생각한다. 산세 보다 들녘에 친근한 사람들은 다른 곳보다는 넉넉하고 낙관적인 심성이리라.

 

약수를 한 잔씩 떠 먹고, 대웅전으로 가 참배부터 한다. 석가모니불이 하품중생의 수인을 하고 있다. 양 옆으로는 연꽃을  든 문수보살이 있다. 대웅전안으로 들어 설때 부터 천정 쪽에 좀 부산스런 움직임이 느껴진다 했는데, 놀랍게도 알록달록한 산새 한 마리가 단청 사이로 포르륵 거리며 날아 다닌다.  내가 신기한 듯 작게 소리를 내자 금새 옆 문을 통해 날아 가 버린다.

 

참선 30분.  그리고서 그녀와 나는 대웅전 안 쪽 왼편으로 앉아 있는 나한상들을 하나 하나 살펴 본다. 부처의 등위에도 보살의 수행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내공이 수승한 승려들, 어찌보면 이들이 부처나 보살보다 더 인간 세상에 가깝다. 그래서 그런지 표정들이 각양각색이고, 어떤 나한 스님은 장난스럽게 웃는 낯모양이 승려 같지 않고, 옆집 할아버지 같다. 그녀와 둘,  엄숙한 경내에서 잠깐 낄낄거린다. 저기 옆에서는 아주머니 한 분이 무슨 경을 외우시는데, 가만히 들어 보니 [금강경]이다. 육조 혜능이 한 번 듣고 단번에 깨쳤다는  그 경전, 원효가 애지중지하고, 중생들에게 널리 읽히려고 했던 경전, 그 도저한 경전의 깊이에 난 언제 가 닿을 수 있을까? 그러나 그  길이 내게 열린다고 해서 쉬이 갈 수 있을 것인가? 그럴 것 같지 않다. 나야 한낱 중생이고, 속세를 도량 삼아 한 세상 오순도순, 알콩달콩 살다 평범한 세수를 누리다 가는 것이 더 복될 것이다. 그것에 고마워할 뿐인 게다.

 

대웅전을 나와 칠성각을 잠시 보고, 명부전을 들른다. 나한상 다음으로 그녀가 좋아하는 곳. 이곳 저승 사자들도 익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머리가 몸보다 더 커"라며 그녀가 또 웃는다. 나도 따라 낄낄댄다. 내가 그런다. "얼굴이 커야지 위협적이지 않겠어요?" 그냥 해 본 소린데 그럴 듯 하다. 

 

명부전을 돌아 나오는 길 그녀는 새로 향을 한 통 샀고, 난 아이들 가르칠 때 쓸 '사랑의 매'(?)를 튼실한 놈으로 하나 산다.  

 

절을 뒤로 하고 오는 길, 마음에 산 하나, 절 한 채, 그리고 특별히 (아까 대웅전에서 본) 새 한마리가 정갈하게 들어 찬다.  씻고 가라, 놓고 가라, 버리고 가라, 그런다. 산이, 절이, 새가 말이다. 그런데 어쩌랴, 그들이 벌써 마음에 있고, 난 그로 인해 또 얼마간 스스로를 참, 아끼며 생을 참, 소중히 여기며 살것이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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