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제국주의와 자본주의가 낳은 아이티 비극


지금 아이티 민중에게 필요한것은 물, 식량, 의약품이다


지난 식량위기에 이어 대지진으로 전 세계의 이목이 아이티에 쏠리고 있다. 지금까지 아이티 정부의 확인으로만 15만구의 시신이 수습되었고, 앞으로도 사망자 수는 늘어 35만 명에 이를 것이라 한다. “150만 명 이상이 집을 잃고, 90%의 수도 시민들이 길거리에서 노숙하고 있다”, “시민들은 집도 없고 음식도 없고 할 것이라고는 떠나는 일밖에 없다며 도시를 등지고 있다”는 안타까운 보도들도 이어지고 있다. 
이에 각국 정부를 비롯해 국제구호단체들의 지원이 아이티로 향하고 있다. 19일 UN에 따르면 각국 정부 등이 약속한 지원금은 12억 달러가 넘는다. 한국정부도 민관합동으로 1,0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세계 각지에서 물, 식량, 의약품 등 구호물품이 전달되고 있고, 구급대 및 의료진 등 구호인력들이 아이티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하지만 대참사로 최소한의 행정기능마저 마비된 아이티는 여전히 식량부족 등으로 인한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구호활동마저 통제하는 미국
한편 미국은 일찌감치 1만 2500여 명의 군대를 파병하고, 수도 포르토프랭스 공항과 대통령궁 등을 장악통제하고 나섰다. 이 과정에서 지난 16일 미국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탄 전세기는 착륙을 허가하면서, 구호품을 실은 프랑스와 브라질의 항공기 등을 돌려보내 프랑스 등의 강력한 항의를 받았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도 “미국이 비극을 이용해 군사적으로 아이티를 점령할 것”이라며 “군인 대신 의약품과 구조대, 물을 보내라”고 미국정부를 비판했다.
파장이 커지자 클린턴 장관은 “미국 정부는 아이티를 돕기 위해서 온 것일 뿐, 그들을 밀어내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다”며 미군이 인도적인 구호물자를 실은 비행기의 이착륙을 최우선적으로 하도록 조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지난 18일 며칠 동안 종적을 감춘 르네 프레발 아이티 대통령과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미국이 아이티의 국가재건과 안정화 과정에 적극 협력’한다는 공동선언문을 들고 함께 나타나 이미 미국의 아이티 장악 시나리오가 현실화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아이티 포르토프랭스 공항에 도착한 미군들

아이티, 제국주의 수탈의 역사

쿠바와 도미니카공화국에 접해있는 중미의 섬나라 아이티는 그동안 제국주의 수탈에 끊임없이 시달려왔다. 그 시작은 콜럼버스가 1492년 아이티에 상륙하여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점령하면서부터다. 그리고 콜럼버스와 스페인은 금 채광을 위해 아프리카 노예들을 아이티로 강제 이주시켰다. 그 다음 점령국 프랑스는 아이티를 대규모 집단노예노동으로 설탕과 커피 재배하는 대토지제도로 재편하고, 식민지 수탈을 이어갔다.
아이티는 1804년 프랑스군에 대항해 승리를 거두면서 세계최초로 흑인독립국가를 수립했다. 하지만 독립 후에도 프랑스, 영국, 미국, 독일 등 제국주의 국가의 군사적, 경제적 개입은 끊이지 않았다. 노예해방의 빛은 오래가지 못했다. 20세기는 미국의 식민지와 다름없었다. 미국은 남미에서의 사회주의와 좌파 정부들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해, 1915~1934년  동안 아이티를 점령했다. 또 미국은 1957년부터 30년 동안 아이티민중을 수탈하고 막대한 부를 축적한 뒤발리에 독재정권을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지원했다.

아이티,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그림자
1986년 민중봉기로 독재정권은 축출되었지만, 미국의 개입은 끊이지 않았다. 1990년 민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아리스티드가 당선되지만, 7개월 만에 군사쿠데타로 아리스티드는 망명길에 오르게 된다. 이후 3년 동안 이어진 군부독재는 수천 명의 아이티 민중의 학살과 수십만의 보트피플을 낳았다. 1994년 미 해병대 파병과 함께 아리스티드는 복귀하게 된다.
아리스티드는 자신의 정치복귀와 함께 원조를 위한 IMF 프로그램(저임금 유지, 국유기업 민영화, 관세와 기타 수입 규제 조처 폐지 등)을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아리스티드는 군대를 해산하고, IMF의 요구사항인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거부하고, 교육과 보건, 노동자의 임금 향상 등을 추진해나갔다. 하지만 반동의 공세와 미국의 경제봉쇄정책 등의 벽을 아리스티드는 넘지 못했다. 미국의 눈 밖에 난 아리스티드는 결국 2004년 다시 미국의 암묵적 용인 속에 군사쿠데타로 축출 당한다.
2006년 아리스티드를 계승한 르네 프레발 대통령이 친미, 반동 세력의 선거방해, 투표부정 등 공세 속에서 우여곡절 끝에 당선되었다. 아이티 민중은 친미 반동세력의 준동에 맞서 대중시위를 벌였고 프레발 대통령을 구했다. 그러나 프레발정부는 유약했고, 미국에 협조적이었다. 2004년 이후 유엔 평화유지군(PKO)이 사실상 국가를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진의 피해를 키운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아이티가 이번의 지진에서 피해가 컸던 이유는 바로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착취와 수탈의 결과 때문이다. 그동안의 제국주의 침략은 아이티의 농업을 파괴했다. 1980년대 주식인 쌀을 자급하던 아이티는, 미국에 대한 농산물 개방으로 지금은 쌀을 75%나 수입하는 나라가 되었다. 2008년 세계경제공황은 곡물가격 폭등과 함께 아이티에 식량위기로 나타났다. 빈민들은 진흙으로 만든 쿠키를 먹는 참상이 이어졌고, 견디다 못한 빈민들의 격렬한 시위가 대통령궁을 향해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이번 참사의 희생이 컸던 원인으로 1인당 국민소득 790달러에 80%가 빈민층인 반면, 1%의 부자가 전체의 부의 50%를 독점하고 있는 아이티의 극심한 양극화문제를 지적한다. 실제 포르토프랭스의 가장 큰 빈민가인 시테 솔레이유(Cite Soleil)에는 130만 명의 사람들이 좁고 낡은 건물에 몰려 살아 피해가 컸다. 또 부족한 의료시설과 의약품 부족은 사상자를 더 키우고 있다. 반면, 고급 주택촌인 벨빌(Belvil)과 떼오닷(Theodatt) 등은 이번 지진에도 끄떡없었다.
제국주의 점령군들은 이러한 아이티의 빈곤, 열악한 사회간접시설, 급속한 삼림 파괴 등을 개선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부자들을 보호하고, 빈민들을 대변하는 아리스티드 전 대통령과 그가 지도하는 라발라스가족당 지지자들을 공격하는 우익테러를 용인했을 뿐이다. 이 순간에도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그랬듯이 아이티에 영향력 확대와 막대한 ‘재건사업’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점령을 강요하고 있다.

아이티가 제대로 살아나기를
아이티의 참사가 전 세계 인도적 구호의 손길을 모으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티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과거를 다시 반복하지 않는 길을 찾는 것이다. 아이티에 지금 필요한 것은 군대가 아니라 의료진과 구조대다. 또한 아이티를 지배했던 제국주의 국가들은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아이티에 대한 모든 부채를 탕감하고, 그간의 수탈에 대한 배상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구호와 원조, 재건을 빌미로 한 제국주의 점령과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강요를 중단시키는 길이 아이티민중이 이 고통 속에서 제대로 살아나는 첫 걸음이다.
한새안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