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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알베르 - 자끄 오디아르(1996)

지난주 EBS세계의 명화에서 봤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어머니로부터 "너의 아버지는 1차대전의 영웅이었어"라는 말을 듣고 자라난 알베르는 그 자신도 영웅이 되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의 아버지는 술로 세월을 탕진하다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을 뿐이다. 가난한 어머니는 아버지를 영웅으로 만들어 정부로부터 연금을 타낼 속셈으로 알베르를 속였던 것이다.

그러다 2차대전이 발발하고 알베르의 마을에 독일군이 진주했다가 다시 연합군에 밀려 후퇴한다. 소심한 직물영업사원으로 전쟁에서 몇발자국 비껴나있던 알베르는 자신의 장인과 아내가 레지스탕스, 즉 영웅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고, 이에 굴욕감을 느낀 알베르는 무단가출(?)을 하여 파리로 향한다.

독일군의 지배로부터 갓 해방된 당시의 파리는 온갖 영웅담이 난무하고 있었다.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서 무언가(?)를 했던 사람들은 누구나 영웅이 되었으며, 출신별로 분파를 만들어 서로 대립한다. 애국심과 국가주의를 통해 부풀려진 이들의 영웅담은 런던에서 '자유프랑스의 소리'를 방송하며 소일했던 망명건달이든, 한적한 시골농가에서 영국공군 조종사를 몇일간 숨겨주었던 농부이든 할 것 없이, 악의제국 독일에 대항한 투사로서 추앙받는다.

이때 파리에서 구걸을 하며 살아가던 알베르는 여러곳에서 주워들은 무용담을 가공하여 그 자신도 영웅의 대열에 합류한다.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임에도 파리는 레지스탕스 조직별로 모임이 성황을 이루며 나름의 정치조직으로 변모해가고 있었고, 그들 사이의 권력투쟁이 본격화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레지스탕스조직에 가입해본 적이 없어 특정조직과 연관이 없던 알베르는,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이유 때문에 프랑스 육군 중령으로 임관을 하게 되고 그는 '공식적인' 전쟁영웅이 된다.

이에 자신의 권력을 만끽하던 알베르는 독일로 끌려간 프랑스인 SS병사들을 체포하게 되고, "프랑스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총살명령을 내리게 된다. 이 일로 충격을 받은 알베르는 자신의 거짓을 털어놓고 당국에 자수하지만, "프랑스의 명예"가 실추될 것을 우려한 프랑스 정부는 이 일을 쉬쉬하며 덮어버리고 만다.

지역이든, 종족이든, 민족이든, 국가이든… 그것은 울타리를 어디다 칠 것인가의 문제일 뿐이다. 인간을 억압하고 파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정의라면, 그 울타리를 어디다 치느냐에 따라서 정의가 뒤바뀌고, 불의를 저지른 죄인이 영웅으로 둔갑해서는 곤란하다.

남한만큼 수많은 전쟁영웅이 존재하는 나라도 드물다. 그리고 국민들의 집단적 콤플렉스 때문인지 그들에 대한 애착도 상상을 초월한다. 김훈의 “칼의노래”나 드라마“불멸의 이순신”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전쟁영웅은 항상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같다. 영웅을 좋아하기에 앞서, 우리는 영웅을 누가 만들어냈는지, 왜 영웅을 만들어냈는지부터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이순신 동상은 다까끼 마사오가 광화문 앞에 건설했다지 아마?

 

*첨언 : 이 영화에서는 마띠유 카소비츠가 주인공 알베르역을 맡아 열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전 "증오"보고 별다른 느낌이 없었는데, 왜 그렇게 충격적으로 봤다는 사람들이 많은지 난 잘 모르겠어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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