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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앳미 - 아네스 자우이(2004)

* 이 글은 해미님의 룩앳미 내 목소리로 말하기

   사슴벌레님룩앳미,

   리버미님의 룩앳미-인간관계내 권력들여다보기에 관련된 글입니다.


 

 

 

한가한 토요일, 집에 있으면 뭐하나싶어 그냥 혼자 나가서 봤다.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 등장인물을 보니 어디서 많이 보던 사람이다. 가만히 보니 영화"타인의 취향"의 매력적인 "마니"(아네스 자우이)였다. 그 옆에 보니 같은 영화의 대머리아저씨(장 피에르 바크리)도 있네? 나중에 알고보니 실제로 둘이 부부이며 시나리오작업도 같이 했다고 한다. 암튼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아네스 자우이를 다시 보게 된 것은 행복한 일이다. 왜? 너무 매력적이니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해미님이 아주 정확하게 지적해 주셨다. 그 사람의 권력이 아닌 그 사람 자체를 보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또한, 조그마한 권력조각을 쥔 사람이 타인의 호의를 진심으로 바라보기란 훨씬 더 어려운 것임을 이 영화를 통해 실감했다.

 

영화의 후반부, 실비아선생과 세바스티앙은 에띠엔의 권위의 城(?)으로부터 과감히 벗어나는 길을 택한다. 멋있는 장면이다. 하지만 나라면 과연 그 길을 선택할 수 있을까? 레니가 군훈련소에 입대했을 때 차렷!이라는 구령에 자신의 몸이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보냈던 20여년의 교육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구나"라고 자조적으로 말했듯이, 나도 20여년간 권력관계를 파악하고 그에 최대한 적응할 것을 교육받아왔다. 내게 있어서도(특히, 내 몸에 있어) 권력은 여전히 저항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순응해야 할 대상이다. 그것이 아무리 미시적인 권력일지라도.

 

그런데 애매한 것은 에띠엔느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다. 주인공 롤리타의 아버지인 에띠엔느는 극히 자기중심적인 인간이기에 주변 사람들을 자기가 소유한 권력으로 붙들어매어두고 상처를 입히지만, 그가 하는 많은 행동들은 때로는 예쁜 악동처럼 코믹하게 그려지기도 한다. 권력은 취향의 문제는 아닐터인데... 감독은 에띠엔느를 통해서 무엇을 말하려고 한 것일까?

 

참, 위에서 레니를 인용한 것은 영화를 보고나서 광화문쪽으로 걷다가 우연히 레니와 마주쳤기 때문이다. 예의 그 김영하스러운 웃음을 짓고서 내가 나온 극장안으로 사라진 레니... 마치 화장실칸에서 나오다가 마주친 친구처럼 어색했다. 그때가 눈이 흩날려서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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