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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5/27
    명심보감이 나한테 이야기하더라.
    hongsili
  2. 2005/05/25
    숨겨진 재능(4)
    hongsili
  3. 2005/05/21
    일단 끝(1)
    hongsili
  4. 2005/05/18
    박복한 운명(6)
    hongsili
  5. 2005/05/16
    구해근 교수의 특강(4)
    hongsili
  6. 2005/05/13
    다시 일상으로...(3)
    hongsili
  7. 2005/05/07
    헛 소리... ㅡ.ㅡ(3)
    hongsili
  8. 2005/05/07
    [주간 민중복지]에 실린 글(2)
    hongsili
  9. 2005/05/02
    보스턴의 메이데이(2)
    hongsili
  10. 2005/05/01
    동네 사람들~~
    hongsili

의사들....

남의 아픔에 일정 정도 무심해져야 의사가 될 수 있다.

 

이건 사실 특별히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정상적(?)인 의대-수련의-전공의 과정을 거치다보면 자연스레 습득되는 기술이다. 물론 특별히 예민한 사람들도 있더라마는...

 

요즘 수술한 귀가 자꾸 먹먹해지는 느낌이 들어 수소문 끝에 여기 연수와 계시는 ENT 선생님 한 분을 소개받았다. 수술 후 1년 지나면 자연히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라고 걱정하지 말란다. 다행...... 하지만, 어쨌든 답답한 느낌, 그리고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청력, 그치지 않는 이명 현상에 대해 호소했더니... 뭐 그냥 잊어버리란다....

 

어떻게 잊어버리냐구 ㅜ.ㅜ ...

 

나중에 재수술 한 번 하면 괜찮아 질거란다. 재수술..... 엉엉...

 

 

수술하려고 입원했던 날, 밤 11시가 넘어 주치의가 동의서를 받는다고 불러냈다.

새벽부터 드레싱에, 수술방 준비에, 하루 종일 수술방.. 그리고 저녁 회진까지.. 힘들었겠지.. 허나, 이 양반... 다짜고짜 "선생님, 다 아시죠?" 하더니 나보구 싸인하랜다.

학생 때 ENT 공부 열심히 안 해서 잘 모르니 설명 좀 해보라고 했더니만... 하기는, 자기도 공부 하나도 안 해서 전공의 시작하고 엄청 힘들었다는 둥.. 실컷 농담 따먹기하다 결국 수술 방법에 대해서는 설명을 안 해줬다. 수술하고 나서도 머리를 칭칭 동여매놔 귀도 안 들리는데다,  안경도 못 써서 눈도 안 보이는 준 헬렌켈러 상태가 되었는데 이 주치의 양반, 이 김에 좀 쉬세요.. 그러면서 천하태평이다. 뭐가 들리고 보여야 놀던 말던 하지...

 

미국으로 떠난다고 마련된 환송회 자리에서 이비인후과 전공의로 있던 근영이에게, 영 청력이 좋아지는 거 같지 않다고 걱정을 늘어놓았다. "어허.. 사람들이 오해를 하는데, 그 수술은 염증 제거가 1차 목표지, 청력이 좋아지는 건 아니예요. 6개월 지나서 좀 나아지면 다행이고 뭐 아니여도  할 수 없고.... 누나도 참 알면서...."

 

수술해 준 집도의 선생님은 말할 것도 없다. "거 참 수술 깨끗하게 잘 되었네...." "선생님, 근데 청력은 어찌 될까요?" "글쎄, 한 2년 기다려 보구 재수술할 수도 있고, 뭐 정 안 되면 뭐 보청기 써야지"  보/청/기/요? 흑....

 

어찌 이리들 무심하단 말이냐....

 

귀만 보지 말고, 제발 사람 좀 봐달란 말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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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노동운동 이야기 [3]

[미국 노동운동 이야기 [2]] 에 관련된 글.

* 박노자님의 한겨레 글 : 책 읽고 흘린 눈물 (2005.4.10) 하고도 관련 있음

 

한동안 손 놓고 있던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 13장 "The socialist challenge" 를 어제(!) 읽었다.

 

앞서의 포스트에서도 언급했지만, 미국에서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은 상상초월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연대, 불굴의 의지 또한 장난은 아니었다.

 

1912년, 여기 보스턴 북동쪽에 위치한 로렌스 지역 "아메리칸 방직"이 소유한  4개 공장에서 파업이 일어난다. 노동자들은 영국, 아일랜드, 러시아, 이태리, 시리아, 독일, 폴란드, 포르투갈, 벨기에 등등 세계 각지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 엄청 후지고 위험한 집에 살면서 죽어라 일하는데 일주일에 겨우 8.7달러 밖에 받지 못했다. 당시 지역 의사였던 (여성!) 엘리자베쓰의 기록에 의하면 소년 소녀들 중 상당수가 노동을 시작한지 2-3년 안에 사망하고 공장에서 일하는 젊은이 100명 중 36명이 스물 다섯 살이 되기 사망했다고 한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1월 (한겨울, 여기 진짜 추운 곳) 월급 봉투를 열어본 노동자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지 않아도 먹고 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일언반구도 없이 월급을 깎아버린 것이다. 노동자들, 당장 일을 멈추고 공장 밖으로 나갔다. 다음 날 다른 공장의 노동자 5천명도 파업에 가세했고 순식간에 만 명이 파업에 동참하게 되었다. 이 소식은 곧장 뉴욕에 있던 IWW 에 전달되었고, Joseph Ettor 가 파업 지도를 위해 이곳으로 급파되었다. 각 인종을 대표할 수 있도록 대표를 뽑고 매일 이 평의회를 통해서 중요한 결정을 해내게 된다. 당시 IWW 에 속한 노동자는 채 천명이 안 되었지만, AFL은 이들 비숙련 노동자 문제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이들은 IWW 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당시  IWW는 대규모 집회와 행진을 조직했고 파업 참가자들은 5만명 (당시 로렌스 총인구는 8만 6천명 ㅡ.ㅡ)의 생계를 위한 음식과 연료를 마련해야 했다. 물론 전국 각지, 노동조합, IWW 지부, 사회주의자 그룹, 개인들로부터 온정이 답지했다.

 

그럼 그 동안 정부와 자본은 뭘하고 있었을까. 시장은 지역 민병대 소집하고 주지사는 주 경찰을 동원했다. 파업 수 주일 후 파업 노동자들의 행진이 경찰에게 공격 당했고 그 이후 거의 폭동이 벌어졌는데, 이 와중에 한 노동자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허나, 당국은 IWW 간부인 Ettor와 Arturo를 범인이라고 체포했는데.. 당국의 설명에 의하면 이들이 "이름을 알 수 없는 누군가(??? 이런 희안한)를 교사하여" 이 살인 사건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이들이 투옥된 후 IWW는 또다른 간부를 파견하여 파업을 계속 진행시켜 나갔는데... 당시 로렌스 시에는 민병대 22개 중대, 2개의 기병 중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계엄령이 발동되고 길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 조차 금지되었다. 많은 노동자들이 투옥되고 심지어 총검에 찔려 살해되기도 했는데, 파업은 여전히 지속되었다. Ettot은 "총검으로 옷을 짤 수는 없다"는 뽀대나는 멘트까지 날렸다.

 

2월, 파업 노동자들은 대규모 피켓 시위를 벌였고 7천~1만개의 피켓들이 끝도 없이 늘어섰다. 하지만, 식량은 떨어져가고 있었고, 아이들은 굶주렸다. 이때, 사회주의 신문이었던 New York Call 에서 파업 가정의 어린이들을 다른 도시의 가족들에게 안전하게 맡기자는 제안을 했다. 이는 이전에 유럽에서도 쓰였던 방법이란다. 사흘만에, 아이들을 맡겠다는 4백통의 편지가 신문사에 도착했다. IWW와 사회주의자 그룹은 아이들의 탈출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2월 10일, 백 명이 넘는 어린이들이 로렌스를 떠나 뉴욕에 도착했는데, 뉴욕의 중앙역에는 5천명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들이 "마르세이유"와 "인터내셔날가"를 부르면서 이들을 맞이했다. 그 다음주에는 또다른 백명이 뉴욕으로, 35명이 버몬트로 옮겨졌다.

로렌스 당국, 아동 학대 법조문을 들이대며 더이상 아이들이 로렌스를 떠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또다른 40명의 어린이들이 필라델피아로 떠나기 위해 2월 24일 기차역에 모였는데... 경찰이 나타나 어린이와 엄마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휘둘러 순식간에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 때 한 임산부는 곤봉에 맞아 정신을 잃었는데, 일주일 후 사산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파업을 계속되었다...  노동자들은 하루를 투쟁가와 함께 열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메리칸 방직"은 항복을 선언했고 임금인상에 합의했다. 3월 14일 만명의 파업 노동자들이 광장에 모여 찬반 투표를 통해 이 어려웠던 파업을 승리로 끝냈다. 뿐만 아니라, 9월 말에는 당시 투옥되어 재판을 받게 된 IWW 지도자들 석방하라고 1만 5천명이 참여하여 24시간 한시 파업까지 벌이는 마무리까지..... 결국 이들은 무죄석방되었고 당시 로렌스에서는 만 명의 노동자들이 모여 축하행사를 벌였단다....

 

이 사회에, 이런 시기가 있었다는 것은 다시 봐도 믿어지지 않는데....

 

 

 



민병대와 방위군의 총질보다 무서운 것은 내부의 분열...

 

AFL은 일찌감치 숙련직, 백인, 남성 노동자들의 조직으로 자리를 잡았더랬다. 이에 비해 IWW 는 "One Big Union"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는데, 하루는 IWW 지도자인 Haywood가 루이지에나 벌목 노동자 투쟁 현장에 가보니 흑인 노동자는 한 명도 없는 걸 보고 깜짝 놀라서 이를 강력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AFL은 제껴 두더라도, 어쨌든 노동운동이 성장하고 사회주의 영향력이 강화되면서 이들 사이에도 차이가 나타나게 되었다. 사회주의자들은 IWW의  전술인 사보타지와 폭력을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지도자인 Haywood를 위원회에서 제명하기도 했다. 당시 헬렌 켈러(!)가 New York Call 에 기고를 통해 이러한 분열상을 통렬이 비판했더랬다. 잠시 샛길로... 헬렌켈러가 사회개혁 운동가에서 분명한 사회주의자로서 정체성을 갖게 되자 그녀를 그렇게 칭찬하던 언론이 발달 과정에 문제가 있어서 그녀의 판단력이 흐려졌다는 둥, 별 황당무계한 비난을 늘어놓는데.. 그에 대한 헬렌 켈러의 반격은 진짜 통쾌하다. 너네들이야 말로 "Industrial Blindedness and Social Deafness"닷!!   그녀는 또한 여성 참정권 운동론자들에게, 기껏 해야 이 놈 아니면 저 놈을 뽑는 건데 왜 그렇게 투표권에 목을 매냐. 선거가 우리를 해방시켜주는게 아니라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쓰다보니 넘 길어져서 힘들군. 시작은 창대했으나 수습이 안 되는 전형적인... ㅜ.ㅜ

 

W.E.B Du Bois 에 대해서 쓰려고 했는데 그건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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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

금강산도 식후경

 

먹고 죽은 놈 때깔도 곱다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양반

 

등등...

 

아름다운 선현의 가르침들이 있다지만...

 

 

 

왕복 여덟 시간이 넘는 기차 여행과 

 

3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 빌딩 숲을 가로 질러...

 

 

아...

 

더이상 말을 못 잇겠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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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다가...

끝도 없이 수정해야 하는 보고서 땜시 죽을 맛이다.

 

어제는 하루 종일 두통 때문에 거의 일을 못했다.

머리가 아프다거나, 배가 아프다는 건 나에게 매우 드문 증상..

오랜만에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가 의심도 해보다가, 혹시 뇌혈관 어디가 하나 터졌나 걱정도 해보다가 (아는게 병이다 ㅡ.ㅡ )... 약을 먹을까 고민도 해보다가...

몇 년 전 타이레놀 먹고 입원한 경험 땜시 그것도 영 꺼려지고... 그 때, 진료해준 친구가 집에 가겠다는 나를 두고 "너 오늘 밤에 집에 갔다가 전격성으로 빠지면 죽을 수도 있어" 협박했던 것이 생생하게...

오늘 아침까지도 전두엽 부분이 지끈지끈하더니만, 커피 마시고 일에 매진(!) 하다보니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일을 게을리해서 생긴 병인가보다.. 흑.

 

어제 밤, 아픈 머리를 쥐어짜면서 자려고 보니, 뭔가 환경이 낯설게 느껴졌다.

뭘까.... 이리저리 고심해보니 방이 지나치게 어둡더라는...

창문 밖에 바로 가로등이 있어서 불을 꺼도 너무 환하다고 불평했었는데, 이제 보니 가로등 전구가 나갔나보다. 그래서 불끄고 잘라치면 방이 엄청 깜깜하다.

좀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저 방문 틈으로 사다코가 쳐다 볼 것 같은 ... 으허헉... 생각하니 더 무서워.. 

이런 거는 까먹으려고 할수록 더욱 생생하게 떠오르는 법인데....

큰일이다.

괜히 포스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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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이어받기 - 뻐꾸기로부터

* 뻐꾸기님의 [음악 이어받기(젊은바다로부터)] 에 관련된 글.

 

이런 어려운 숙제를... 끙끙끙...

 

1. 컴퓨터에 있는 음악 파일의 크기 :

  약 700메가 정도 (여러 군데 흩어져 있어서 계산이 어려움 ㅡ.ㅡ)

 

2. 최근에 산 음악CD :  자우림 5집이 그나마 가장 최근. 

 

3. 지금 듣고 있는 노래는? :  Avalon의 OST 듣고 있었음

 

4. 즐겨듣는 노래 혹은 사연이 있는 노래 5곡

 남들은 이래저래 사연들도 많더만, 영 그런게 없어서....

 더구나 파일 링크가 가능한 것 중에서 억지로 쥐어짜보면...

 

1) 애국의 길

뭐 의외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경희대에서 있었던 범민족대회 전야제 였던가 (기억 가물가물) 노천극장을 꽉 채운 인파 속에서 불러졌던 이 노래는 상당한 감동으로 기억됨...

 


♪ 민족음악연구회 - 하나되는 땅 ♪

 

2) 그리운 이름

후진 기타 솜씨로 집에서 뚱가뚱가할 때, 울 엄마가 유일하게(!!!) 맘에 들어했던 노래



♪ 노래를 찾는 사람들 ♪

 

 

3) 저 평등의 땅에

신문사 뒷풀이에서 노래 시키면 항상 부르던 노래. 옛날에는 왜 그렇게 노래들을 불렀을까? 엠티가면 노래책 첫장부터 끝장까지 불렀던 적도 있는데... ㅡ.ㅡ  

 


♪ 노래를 찾는 사람들 ♪

 

 

4) 굽이치는 임진강

오호... 좋아하는 음악만 놓고 보면 민족해방 계열로 분류될 수 있겠군.애국의 길에  이어...

 


♪ 노래마을 - 우리의 노래가~~ ♪

 

5) 이 세상에

운동과는 거리가 좀 먼 사람들 모임에서 노래 시킬 때면 부르던 노래. 지금 보면 아주 건전한 내용의 가사를 담고 있음



♪ 겨레의 노래 ♪

 

아이구.. 이제 이어받을 사람을 정해볼까나

 

1) 예리한 글을 많이 올리는 붉은 사랑

2) 요즘 통 취생몽사에 뜸한 행인

3) 바쁘지만 따뜻하게 살아갈 것 같은 감비

4) 박학다식한 기자 양반 몰롯

5) 정신없는 후배 해미

 

근데 이 블로거들이 이걸 확인할지 모르겠네.. 뭐 그렇다고 따로 멜을 보낼 수도 없고... 진인사 대천명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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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 없으면...

오늘은 여기 공휴일 Memorial Day - 현충일 혹은 전몰장병 기념일 정도 되는 날..

 

모처럼 늦잠을 자서 아홉시 쯤 눈을 떴는데...

 

정전이다.

 

배가 고파 밥을 먹으려고 보니 냉동실에 들어있던 밥을 데울 방법이 없다.

마이크로웨이브는 당근 작동 안 되고, 화력도 가스렌지가 아니라 전기를 쓰다보니 물 한 잔 끓일 수 없다. 

머리를 감으려니 건물의 온수 장치가 작동 안 되는 탓에 찬물밖에 안 나온다.

노트북은 배터리가 있으니까 쓸 수 있지만 모뎀이 작동을 안 하니 인터넷으로 검색하려던 자료를 찾을 수 없다.

 

할 수 없이....

누워서 두 시간을 더 버둥거렸다.

엄마랑 10시쯤 채팅하기로 했었는데, 그것도 못하고...

사무실에 나갈래도 머리는 감고 나가야 되는데 물이 너무 차서.. 흑흑...

그나마 화장실에 물이 나오는게 다행이라고 여겨지기까지 했으니...

 

결국 11시가 넘어서 찬물로 머리 감고, 냉장고에 들어있던 쥬스와 아직도 냉기가 남아있는 빵을 씹어먹고는 주섬주섬 짐을 싸는데 전기가 돌아왔다.

다시 앉아서 밥 데워 먹구 나갔다.

 

취약한 도시인의 삶이라니...

영국의 SAS survival guide 이런 책이라도 하나 장만하던가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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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이 나한테 이야기하더라.

朱子曰,

勿謂今日 不學而 有來日   勿謂今年 不學而 有來年

日月逝矣  歲不我延   嗚呼老矣 是誰之愆. 

주자가 말하기를,

오늘 배우지 아니 하고서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며, 올해에 배우지 아니 하고서 내년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날과 달은 흐르니 세월은 나를 위해서 더디 가지 않는다.

 


少年 易老 學難成   一寸光陰 不可輕

未覺池塘 春草夢   階前梧葉 已秋聲.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짧은 시간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

아직 못가의 봄 풀은 꿈에서 깨어나지 못했는데 어느덧 세월은 빨리 흘러 섬돌 앞의 오동나무는 벌써 가을 소리를 내느니라.

 


陶淵明詩 云,

盛年 不重來  一日 難再晨   及時 當勉勵

歲月 不待人

도연명의 시에 이르기를,

젊었을 때는 두 번 거듭 오지 아니 하고 하루에 새벽도 두 번 있지 않나니 젊었을 때에 마땅히 학문에 힘쓰라.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느니.

 


筍子曰

不積步 無以至千里   不積小流 無以成江河

순자가 말하기를,

발걸음을 쌓지 않으면 천리에 이르지 못할 것이요,

적게 흐르는 물이 모이지 않으면 강하를 이룩하지 못할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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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재능

아무래도...

요리에 타고난 재능이 있는게 아닌가 싶다.

 

며칠 전에 요리책을 보고 짬뽕을 만들어봤는데... 정말 맛있었다.

물론 재료가 훌륭하기는 했다. 새우, 오징어, 조개, 중국 배추, 죽순, 양파, 고추, 부추, 표고버섯에 두반장..  하지만 그게 어찌 재료 탓만일까... 시식에 나선 용감한 이웃들도 내심 감탄하는 눈치였다 (^^).

 

며칠 전에 깍두기를 만들어보았는데.. 이 또한 훌륭했다. 뭐, 어묵 조림, 오이무침 같은 것은 이제 눈감고도 할 수 있는 수준이다.

 

두어달 전에 손님들을 초대하여 튀김 요리를 한적도 있었다. 새우, 깻잎, 연근, 고구마, 오징어, 부추말이 등등... 그 바삭한 느낌은 나조차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수준이었다. (물론, 기름 냄새에 질려서 나는 많이 먹지 못했다만)...

 

잠시...

 

공부를 관두고 요리계에 진출해보면 어떨까 하는 깜찍한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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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끝

오늘 발표를 끝으로 공식적인 펠로우 프로그램은 끝났다.

물론 담주에 수료증 비스무레한 종이 하나 더 받아야 하지만... 그래도 허접한 발표가 끝나니 마음이 후련하다. 영어가 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뻔뻔함은 확실히 늘었고 거기에 오바 액션(!) 또한 늘은 듯. 눈, 귀 공해를 견디며 들어준 사람들이 고마울 따름... 

 

어쨌든 끝나고 리셉션한 다음 돌아와 침대 시트, 이불, 커텐 걷어다 빨래하고, 밀린 설겆이, 목욕탕 부엌 물청소 하고 나니 벌써 10시가 넘었다.

 

이제 내일부터는 밀린 논문과 보고서 작업 땜시 도서관 출근 시작이다.

낼 아침에는 도시락도 싸야 하고, 보온병에 커피도 챙겨야 하고.....

돈이 없으니 몸이 고생이지만 어쩌랴...

 

살림은 정말 끝도 없다........

내 한 몸 유지하는 것도 이렇게 쉽지 않으니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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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복한 운명

며칠 전 하버드 서림 (정식 명칭 : Harvard Book Store)에서 제프리 삭스 (Jeffrey Sachs)의 신간 (The End of Poverty: 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Time) 출판 기념 강연이 있다는 공지를 보았다. 오호. 그가 누구던가.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자문을 맡으며 경제학자로서는 보기 드물게 빈곤 문제,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가졌던 자 아니던가. 뭐 그의 저서를 읽어본 적이야 없지만, 일단 내가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가 나쁜 듯이건 좋은 뜻이건 경제학자로서 굉장히 남다르다는 증거. 하여, 오늘 저녁에 거기에 갔었다.

 

사진기를 깜빡해서 현장의 분위기를 전할 수야 없지만, 미국 생활 어언 10개월만에 그런 산소 부족 강의는 처음이었다. 300석도 넘어보이는 홀에 좌석이 꽉 찼음은 물론 바닥에도 어디 앉을 틈이 없었다. 겨우 바닥에 삐집고 앉아서 한 시간 반동안 목과 허리의 통증을 감내하며 강의를 들어야 했는데..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분위기는 젼형적인 부흥회 분위기.  아저씨, 미모는 남다르지 않지만, 목소리가 예술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한석규 식 낮은 목소리... 정확한 발음과 느리고 강한 발성... (크자 님도 저녁 내내 목소리 칭찬을 하셨더랬다)...  

 

근데 말이다........

시작은 정말 좋았다.

 

극단적 빈곤 (특히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 지역)과 관련한 본인의 체험 (유엔 개발 기구 등에서 일했고, 특히 Milleneum Development Goal 개발의 당사자기이도 하니까), 그리고 너무나 심금을 울리는 자료 사진들....  미국인이 1인당 보건의료에 6천불을 지불하는데 비해 케냐는 겨우 8불을 지불할 뿐이라면서 보여주는 사진. 한 침대에 엄마 세 명과 아이 세명이 걸터 앉아 있는 모습... 평범한 인간의 심성이라면, 누가 가슴이 아프지 않고, 누가 죄의식을 가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많은 국제 기구의  공식 보고서들, 경제학 교과서에는 이렇듯 말도 안 되는 처참한 아프리카의 현실이 단지 "부패" 때문이라고 진단한단다. 부패는 이 땅 어디에도 있고, 경제 발전으로 성가를 드높이는 아시아에도 특히 만연해 있다. 과연 부패가 이들 빈곤의 원인일까? 제프리 삭스는 그렇게 물었다. 부패가 아프리카 가뭄의 원인이냐고, 부패가 말라리아의 원인이냐고....

 

그래서 나는 기대했다. 무엇이 그들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는지 모범답안을 함 들어보자....

 

 



첫째, 아프리카는 아시아가 1960년대에 경험한 녹색혁명 (혁신적인 식량생산 증대)을 경험하지 못했다. 강수 분포와 대유량의 하천이 없었기 때문. 둘째, 아프키카는 고유한 질병 문제, 특히 말라리아 문제가 심각했다. 셋째, 대부분의 거주지가 해안으로부터 떨어진 내륙에 위치해 있는데, 이는 가뭄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었지만, 한편으로 교통의  장애요인이라 국제 교역에 참여할 기회를 제한했다. 

따라서, 그들의 가난이, 국가 상층부의 부패 때문이라고 희생자를 비난해서는 (victim blaming) 안된다.....

 

흑.

결국, 그들의 불행한 운명을 탓해야 한다는 말인가?

나는 "넷째, 어쩌구..." 라는 설명이 나올 줄 기대했었다. 식민지배가 어쩌구, 신자유주의가 어쩌구 이런 이야기를 기대했더란 말이다. 아프리카야 말로 인류 문명의 발상지이고, 현재도 엄청난 천연 자원이 넘쳐나는 곳인데... 왜 이들의 터전을 그리 저주받은 곳이라고 이야기하냔 말이다.....

 

그는, 흔히 주류 사회가 이야기하듯, 시장이 좋은 해결 방안이 될 수도 있다고 인정했다. 다만 그가 강조한 것은 그것이 유일한 해결책이 아니라 여러 방안들 중 한 가지 (just one of tools) 라는 점이다. 그는 개발 혹은 발전(development),  그것도 지역사회가 중심이 된 개발의 중요성, 그리고 적극적인 원조의 중요성을 매우매우 강조했다.

현재 미국의 원조 실태를 보면, 국내 총생산의 0.7%, 그러니까 100달러 중 70센트가 해외 원조에 쓰이고 있고, 그 중 16센트는 전략 국가들 (아프카니스탄, 이라크, 파키스탄, 콜롬비아 등), 2센트 정도가 이런 최빈국에 투자되고 있는데 그 중 반이 미국인 파견 인력을 위한 인건비란다 (기억이 정확한가 모르겠네?). 어디 이래서야 쓰겠는가... 이게 오늘의 논지였다. ㅜ.ㅜ

그들의 박복한 운명... 이것이 진정한 문제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박복한 이웃을 돌보지 않은 지구촌 이웃들... 나쁜 사람들(ㅡ.ㅡ).....

으으......... 삭스 아저씨..... 여기서 끝나면 안 되잖아요....

 

충격을 접고....

몇 가지 드는 생각...

 

우선, 하버드 서림.. 백년 된 서점이라더니만 확실히 저력이 있다. 꾸준한 평론 모임, 저자 특강..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놀라운데, 이런 메가톤 급 인사를 일개 서점 이름으로 불러서 강연을 시킨다는게... 강연료를 떠나 놀랍기 그지 없었다. 안내라고야 자기네 메일링 리스트, 홈페이지, 책방 게시판에 안내문 붙인게 고작인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온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고....

 

좀더 근본적인 이야기를 해주기 바랐던 나의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이런 강의가 나름 중요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것이 정치적 수사이건, 부르조아의 여유이건... 현장을 직접 본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그 생생한 울림... 그걸 이제 알았냐 하면서 우습게 볼 수는 없었다. 캄보디아에 여행 갔을 때, 학교와 일반 가정을 둘러보고, 그리고 "one dollar"를 외치며 모여드는 앙코르와트의 아이들한테 받았던 충격...   "least developed country"라는 학술적 호칭으로는 그 현실을 감히 담아낼 수 없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다같이 죄의식이라도 갖자는 소리냐...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보자면... 미국인들, 죄의식이라도 가져야 할 것 같다. 그들이 세계에 어떤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누구의 희생을 발판으로 지금의 생활을 꾸려가고 있는지 최소한 미안함이라도 느껴야 한다. 그게 시작이다. 미국에서 아무렇지도 배출한 온실가스가 아프리카의 가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그들이 우습게 생각하는 몇 달라, 몇 센트의 푼돈이 이들에게 얼마나 절실한 금액인지..... 미국인은 (세계인들은) 알아야 한다. 거창한 이론을 떠나, 그게 인간의 도리다.

 

하지만, 한국에서 아프리카 어린이가 어쩌구, 에이즈 문제가 어쩌구.. 하는건 웬지 낯설다. 그동안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에 너무 다급하여, 그리고 단일민족 신화(?)에 사로잡혀 소위 국제 연대, 혹은 지원의 문제들을 등한시했던게 사실이다. 남들을 잘 모르겠고.... 내가 그랬다는 뜻... 아니, 한국이 지금 난리인데 듣도 보도 못한 말라위가 어쩌구, 탄자니야가 어쩌구.. 이건 너무 오바 아니야.. 이게 솔직한 심정... 

잘 차려입은 하버드 교수들, 혹은 국제기구 고위 관료들이 아프리카 문제를 자신의 일인 것처럼 떠들어대는 것도 어색하지만, "인간 해방"을 종교처럼 떠받들면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에 1달러가 없어 죽어가는 현실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도 앞뒤 안 맞기는 마찬가지...

 

뭐 이래저래 고민많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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