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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란 게 간략하게 단상이라도 남겨두지 않으면 그대로 잊혀지는 경우가 많다.
읽으면서, 읽고난 직후에는 이 깊은 울림을 내 어찌 잊으랴 하지만... 약효가 길어야 몇 달이다. 깊은 울림이 있었다는 것은 기억나는데 뭐가 깊었는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난감한 상황이 종종.....
그래서 가급적이면 단상을 적어놓으려고 하는데 이것도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어려운지라, 지난 두 달 동안 읽은 책도 별로 없고 기록도 없다. ㅡ.ㅡ
오늘 Forever war 를 마친 기념으로 밀린 책 포스팅...
0. Homage to Catalonia (까딸로니아 찬가)
스페인 전쟁을 다룬 조지오웰의 유명한 르포.
Havana 에서 읽기 시작하여, Toronto 에서, 그리고 Boston, 마지막에 서울로 도착하는 비행기에서 마지막 장을 접었던 책이다.
추천 서문에 보면, 조지오웰의 진정한 위대함은 그가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로부터 비롯된다고 써 있다. 천재는 독자로 하여금 경이로움과 함께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좌절감"을 주는데 비해, 조지오웰은 우리와 다름 없는 평범한 인간으로서, 하지만 "누구보다 치열한 평범한 인간(?)"으로서 성공과 실패, 작은 기쁨과 분노, 회한들을 전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글이 유머러스하고 따뜻해서 좋았다. 비장하게, 혹은 참혹하게 쓰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 그리고 사후 해석에 근거한 전지적 작가 시점이 아니라, 당시 상황에 대한 인식을 자신이 알고 있는 만큼, 자신의 판단에 따라 솔직하게 (틀린 상황 판단이나 잘못된 정보까지 그대로 포함하여) 기술한 것이 무척이나 맘에 들었다. 몇 달씩 신문도 못 보고 전장에서 고립되었던 사람들이 실제로 가졌던 인식의 지평, 그리고 막연한 아우라에서 정치적/전술적 의미들을 구체화시켜가는 사고의 진화 과정을 마치 내가 직접 경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역시 그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나중에 시가전이 벌어졌을 때, 아나키 지도부들의 어리버리함과 전투 자체의 어처구니 없음 때문에 몹시 마음에 안 들어하면서도, 누구를 위해 총을 들 것인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선택은 명확하다며 단호하게 나서는 모습이란....
노동자 계급의 군대라는 희미한 정보 하나만으로 전장으로 달려와, (적군보다는) 벼룩과, 추위와, 배고픔과 싸웠던 오웰, 그리고 에스빠뇰은 물론 영어도 몰라서 "퇴각" 명령도 못 알아듣고 막무가내로 전진에 뛰어드는 독일 출신 노동자 병사의 열정과 무모함의 근원은 "해방과 연대의 정신" 말고 무얼로 설명할 수 있겠나.... 그 아무리 거창한 혁명이론과 비교한다 한들.....
읽는 내내, 그리고 읽고 나서, 오웰이 이 글을 남겨주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공식적인 우파의 역사와, 또 공식적인 사회주의 역사 속에서 진정한 혁명주의자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과연 보존될 수 있었을까나...
Owell~ muchas gracias!
근대 역사에서 실질적인 인간해방 사회가 두 번 실재했다고 하는데 (빠리 꼬뮌과 까딸로니아 노동자 자치 시기), 전자를 다룬 마르크스의 프랑스 혁명 3부작은 이론적으로 매우 빼어난 저작이라고는 하지만 "감흥"은 적은데 비해, 이 책은 좀더 생동감이 느껴져서 쉽게, 그리고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었던 거 같다.
그야말로 강추!!!!!
참, 알렉산더 버크만의 ABC of Anarchism 서문에 보면 엠마 골드만이 그가 살아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스페인 전투를 본다면 얼마나 기뻐할까 하며 안타까워하는 구절이 나온다. 알렉산더 성격에, 그가 만일 살아서 이 전투의 마지막까지 목도했다면 홧병에 쓰러지거나 도시락 폭탄 들고 직접 클렘린에 뛰어들어갔을 거 같은... ㅡ.ㅡ
0. Forever War - Joe Haldeman
긴 말이 필요 없다.
범 우주적 회한의 대 서사시라고 표현할 밖에....
의미도 몰라요, 이유도 몰라요.
그런 전쟁에 징집되어 정체도 알 수 없는 외계인과 Forever War 를 치루며 경험해야 했던, Mandella의 시공간을 (진짜로) 뚸어넘는 생존기이자 성장기이며, 한편으로 연애담이기도 하다.
30년 전의 독자들이 이 소설을 통해 베트남 전의 문제를 들여다보았다면,
오늘의 독자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오늘날의 또다른 전쟁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Mandella 에게 완전 감정 이입.....
이토록 감정 표현이 절제되고 섬세할 수가...
Forever Peace 를 읽어봐야겠구나....
지난 한 달간 정신 없는 와중에,
자원방래하신 지인들을 동반하여 두 번이나 갑사에 다녀왔더랬다.
미국 가기 전의 2년 반 대전생활까지 친다면, 벌써 다섯 번 다녀온 셈이다.
나도 아무 말 안 하고 절집 툇마루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재미에 여러 번 가도 질리지 않는 듯...
고즈넉한 분위기와 초록 우거진 숲길, 개울 앞 찻집은
서울 생활에 지친 방문객들에게 거의 항상 호평을 받는다.
다른 곳 방문을 제안해도 다들 "웬지 갑사~" 하며 그 곳을 원하는 건,
아마도 감수성 민감하던 시절, 교과서를 통해 접했던 "갑사로 가는 길" 때문일 듯...
교과서 글이라면 다들 학을 떼는 듯 하지만,
그래도 그 시절 읽은 것들이 은근히 알게 모르게 영향을 준다.
갑사~동학사로는 두 번 넘어봤지만, (그 글에서처럼 눈 쌓인 길도)
동학사에서 "갑사로 가는 길"은 넘어본 적이 없는데,
갑사에서 시작해 동학사 이르기 직전 나타나는 남매탑은 그야말로 밍숭맹숭이다.
더구나 한창 배가 고플 시점.... 대개는 돌로 만들어진 탑이라도 뜯어먹고 싶은 심정이다. 얼릉 내려가서 산채비빔밥 먹어야지 결의를 다지고... 애틋은 개뿔 ~ ㅎㅎㅎ
그런 거 보면 작가들의 감수성은 나같은 사람이랑 질적으로 다른게 틀림없어...
어쨌든,
아우라의 힘은 강력하고, 추억은 아름다운 법이다.
줄거리는 까먹어도 사춘기에 간접 경험된 "갑사로 가는 길"의 애틋함과 고즈넉한 정서는 사람들 마음 속에 오래오래 남나보다... 그리고 실제 경험하지 않았지만 추억에 남아있는 그 곳에 가고들 싶어한다.
누가 또 대전을 찾아 "갑사로 가는 길"을 원한다면...
내 기꺼이 충실한 관광 가이드의 자세를 발휘해주리다!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장난 아니다.
대박으로 지른 것 몇 가지를 빼더라도
소소한 살림살이, 하다 못해 프라이팬이나 필러부터 시작해서 창문 블라인드, 방충망에 이르기까지......
이번 달 카드대금 청구서는 내 평생 월 최고치를 기록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향후 10년까지 포함해서)
아직도 끝나지 않은게...
신발도 다 떨어졌고, (그나마 여름 샌달 ㅡ.ㅡ)
옷도 청바지밖에 안 남아서 출근용 복장도 마련해야 하는디.......... 흑.....
(지금 주머니 주렁주렁 달린 면바지 입고 출근해서 방에 콕 처박혀 있음)
딱히 긴축재정을 도모할 구석도 없구만....
동네 사람들!!!!
당분간 나보구 놀자구 하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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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보다 훨씬 더 '겨우 땜빵하면 오늘도 무사히 보'내고 계신거죠?땜빵과 무사히에 산오리도 무한 안도하고 싶군요.ㅎㅎ
즐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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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땜빵'이 아니라, '오늘도 빵꾸'의 연속....ㅡ.ㅡ우쨌든... 산오리님 즐추!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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