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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3/06/26
    운동, 삶의 기반
    득명
  2. 2020/08/18
    고 이오덕 선생님 비판 1.
    득명

운동, 삶의 기반

 

 

 

[난장이가.쏘아올린.작은.공.조세희.1.mp3 (4.06 MB) 다운받기]

 

 

 

 

  요즘 아저씨 낙 중에 하나가 동네 도서관에 가서 이런저런 책도 구경하고 두어권 읽고 오는 겁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도 쏘이고 그러다 책을 빌려 도서관 앞 나무그늘서 읽기도 하고요.  지난 주에는 책 두어권을 뚝딱 읽어 치웠는데요.  저자가 책 첫장에 뭐라고 적어놓은..  한동일의 공부법이란 책이었는데요.  한자리에서 책 한 권을 다본 것은 처음 있는 일 이었어요.  먼곳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었습니다.

 

 

  핵교서 3층 복도를 지나 옥상 순찰을 가는 중에 악을 쓰는 친구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평소 가끔 사무실로 들려오는 흡사 동물의 울음소리같은 소리였죠.

 "아~~앜~~~ @$% 싫타고 아~~~앜ㅋㅋ"

 옥상 점검 중에도 3층서 조곤조곤 타이르는 선생님과 악 쓰는 소리가 또렷이 들렸습니다. 

  "아~~아~~~앜ㅋ"

 

 

  예전에 아무 이유없이 일상 중에 눈물을 뚝뚝 흘리는 걸 본 ㅇㅇ선생님 전담 수업시간이었습니다. (담임수업 외 시간을 전담 수업이라함)   그 친구의 고함소리는 수업시간 계속 지속되었고 친구의 아버지에게 직접 연락할 수 있는 해당반 담임선생님이 오시고나서 그쳤답니다.  악을 악을 쓰다가도 아버지 얘기만 나오면 뚝 그쳤다는데..  친구와 아버지와의 관계가 그려졌습니다.   학교서 할 수 있는 교육은 사실 한정적이며 대부분은 부모님께 영향받은게 아닌가? 그럼 학교서 하는 교육은 뭘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침 식당서 ㅇㅇ 전담선생님이 맞은편에 앉으셨습니다.

 

  "아이구..  복도 지나다 들은 소리치던 그 친구..  수업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것 같던데유."

  "수업시작하고 15분 넘게 소리를 질렀어요.  대단한건 같은반 친구들이예요.  다들 아무일도 없다는 듯 익숙하게 그 친구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려줬죠.  다른 학교 같으면 수업못하게 한다고 다른 학부모한테 난리났을거예요."  

  "네 ..."

 

  마치 고객센타에서 악성고객 민원에 시달려 풀이 죽은 것 같은 선생님께 다시 물었습니다.

  "많이 심드실거 같아유..  근데 (많은 학생들 대하다보면 별일 다있을거구)  선생님은 그런 일을 격으면 어떻게 푸세요?"

  "풀긴요 뭘...  그냥 집에가서 잠자요.  음."

  "네.."

 

  

  전학교에선 선생 한분이 정서학대로 고발당해 짤렸습니다.  아저씨가 꼰대가 되서 그런지 예전에는 봉걸레 자루가 부러지도록 빠따도 맞고 귀싸디기를 선생님께 맞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정서학대를 당했다거나 트라우마 라는거에 시달리지도 않습니다.  학생들때문에 속 뭉게지는 선생님들을 보면 아저씨가 선생 안된게 천만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아저씨는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기도 하지만요  음. 

 

  살아가면서 우리는 상처를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어떨땐 아주아주 사소한 무심코 들은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삶이 상처받는 연속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생명은 다시 항상성을 유지하며 생명을 계속 이어가도록 되어있어요.  그 힘을 발현하는 열쇠는 땀 흘려 몸을 쓰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나쁜기억은 조그맣게 없어지고 즐거운 기억이 많아집니다.  맨발로 흙길을 걷거나 맨발로 일할 수 도 있고요.. 맨발로 흙길을 가볍게 뛸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매일 몸을 써서 땀 흘리는 시간이 30분 이상이 되면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기를쓰고 운동을 해야합니다.  안그러면 상처와 안좋은 기억이, 과거가 우리를 갉가먹습니다.  

 

  몸을 쓰는 운동을 해야 생각이 왜곡되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특히 몸으로 벌어먹지 않는 분들은 반드시 운동을 꼭!! 해야합니다.

 

  뭐든 좋습니다.  양손, 양발을 함께 쓰는 운동이면 더욱 좋고 쉽게 접할 수 있으면 좋습니다.  그게 우리가 나고 자라며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해요.  그래야 몸도 마음도 고장나지 않는 방법이구요.  그래야 행복하게 살수 있습니다. 

 

 

  동물처럼 악을 쓰던 5학년 그 친구가 얼른 치료를 받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이건 가족들의 몫이겠죠.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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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오덕 선생님 비판 1.

 

 

 
 

 

 

[noraemaul01_a02.MP3 (2.44 MB) 다운받기]

http://bob.jinbo.net/main/index.php

 

 

 

저는 시기적으로 선생님께서 고민하신 교육을 받은 1세대입니다.  선생님과 같이 전쟁을 격지 않았고 극도의 빈곤을 격은 세대도 아닙니다.  그러나 당사자가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이상, 사회는 삶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는걸 절감하며 살아가고 있는 세대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전교조는 노동자이긴하나 학생들때문에 여타의 노동조합 운동과는 달라야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전교조의 궁극 목표는 교사들의 이익보다는 학생들이 민주교육으로 바로 서는 교사의 역할을 충실함에 방점을 두셨습니다. 

 

  1.  8~90년대 선생님께서 바라보신 노동조합과는 달리 제가 알고 경험한 전교조 외의 노동조합은 표면적으로는 근로조건 향상만을 주장하는 것으로 보이나 궁극적으로 인간해방, 결국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시기는 근로조건 향상 조차 아주 힘들게 주장하는 정도의 단계이고요 아니 정규직이다 비정규직이다 모두들 고용을 유지하기위한 몸부림에 방점이 찍힌 형국입니다. 노동조합은 이기적으로 혼자 살겠다는 주장을 하는 단체는 더더욱 아닙니다. 궁극적으로는 선생님께서 얘기하신 학생들의 해방과 노동자들이 목표로하는 해방과는 별반 다를게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다들 대동세상, 무릉도원, 천상에서와 같이 지상에서도 같은 세상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곳 진보이고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셨던 바로 그 교사 노동자와 일하는 현재의 모든 노동자는 같습니다.  그것이 곧 분단된 통일 조국의 해방이기도 하고요.

 

  2. 선생님께서는 교사의 역할을 너무나 절대시 하셨습니다.  설령 한 아이가 자살을 하였습니다. 그 아이가 죽기까지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교사일까요? 제가 볼땐 가족입니다. 인격적인 1차 집단 관계를 맺는 가족이 영향을 끼쳤습니다. 청소년기에는 친구의 영향도 있다고 보는데 이 역시 가족의 영향에 비하면 무시하고 남을 정도입니다.   그냥 끼리끼리 모인정도의 영향입니다.

 

  한 친구가 괴로워합니다.  저 역시 그런 사람중의 하나였습니다.  물론 책을 통해 만나본 선생님의 글쓰기 행위로 지금 50을 바라보며 건강히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어느새 어쨌든 어른이 되었습니다. 제가 괴로워하는걸 훌륭한 선생님 한분이 해결해 줄 수 있을까요?  산술적으로 따져보아도 2/3 이상의 시간을 가족에 얽매여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요.   반대로 그렇다면 나만 바뀌면 그 영향들이 보란 듯이 없어질까요? 제가 지금껏 살아오며 한 사람이 정신적 문제가 생겼을때 그 단 한사람을 치료한다고 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한 사람이 일상생활이 힘들정도의 문제가 생긴경우 대부분은 가족도 문제가 있어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았으니까요. 그 한 사람은 주변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밖에 없으니까요.  특히 자립하기 이전엔 그렇고요.

 

   그래요.  제가 볼땐 가족구성원의 입장에서 문제가 있는 한 사람을 바라보아야하고요.  문제가 생긴 구성원을 치료하기 위해선 가족 구성원 모두가 치료를 받아야하는 경우가 거의다 였습니다.   여기에 교사의 역할이란 거의 무시할정도의 경우였습니다.  그렇다고 교사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말씀을 드리는 건 아닙니다.  선생님께서 얘기하신 길잡이 정도의 역할은 할 수 있겠지만..  교육이 잘못되어 학생이 죽는다는건 지나친 비약이라 생각합니다. 왜냐면 생명은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나가려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제 유전정보속에 새겨진 정보탓인지도 모를일이지요.   그래서 운명을 바꾼다는 것은 이런 유전정보를 기도를 통해 바꾼다는 말이 생겨났을 지도 모르겠구요.

 

  저는 묘자리는 잘 모르겠는데..  돌아가신 분들과 현생의 사람들과도 일정부분 통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유신론자로 살아왔습니다.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으므로..  중요해지는 덕목은 '감사'라는 생각을 합니다.  마이스터 에카르트라는 신학자는 그의 신학 모든 얘기를  '감사합니다.'라는 말 하나로 압축하기도 하였고요.

 

  선생님..  저는 지금도 선생님 글을 보며 위안을 얻습니다.  헝크러진 머리가 정화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현세를 살아가다보면   에이..  선생님 이건 아닌데요? 하는게 자꾸 생겨납니다.   그럴때마다 등불같은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나는 선생님이고 선생님은 저이고 우리는 모두 절대자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예요. 

 

  어제는 귀뚜라미 소릴 들으며 거실에서 잠을 잤습니다.  선생님께 영원한 빛이 비춰지기를 기도합니다.  궁금한게 있음 다시 여쭤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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