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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3/04/17
    ㄱ상회(2)
    득명

ㄱ상회

 

 

 

  명희.  본명은 ㄱ상회. 아마도 ㄱㄱ상회, ㄴㄴ상회..  이런 간판에서 보고 붙인 이름이지 않았을까 싶다.  주성이발관에서 ㄱ형님을 부르는 이름은 명희였다.  

  "얘.. 명희야 머리감켜 드려라..  얘 명희야 수건 걷어라. 얘 명희야 커피 한 잔 타라"

 

  머리를 감겨주는 의자에 앉으면 누구나 다 타이루를 붙여놓은 세면대로 90도 가까이 머리를 숙여야한다. 그러면 명희형님은 조그만 회색 물조루에 물을 가득 길어와 머리에 뿌리고는 비누칠을 해서 머리를 감겨주셨다.  머리를 감겨주실때는 늘상 문지르는 부분이 따로 있었고 박박 문지르는 통에 얼얼함을 느낄때즈음이면 머리감는 일은 끝났다.  그리고는 옆세면대에 세수물을 조루에 길러 담아주셨다.   세수를 하고 있으면 주머니에 수건을 쿡 찔러주셨다.  주머니가 없는 추리닝 같은 걸 입고간적이 없어서 바지주머니가 없을때는 분홍색에 흰보풀이 점점이 박혔던 수건을 어떻게 건네주시는지 알지 못한다.

 

  명희형님에게는 형과 여동생이 있다.  어려서 성광여인숙 골목에 살적에 동네 한참 형이지만 약간 지능이 떨어져 학교에 늦게 들어가셨다.  골목서 바보같다고 놀려도 명희형님은 늘상 웃기만 하셨다. 수줍은 듯 손톱을 자주 만지셨다.  동네에서 보던 그 형이 어떻게 주성이발관에서 일하게 되셨는지는 알 수가 없다.  성광여인숙 골목에는 가끔식 술취한 아저씨아주머니들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성이발관은 처음에 주성국민학교 안에 있었다.  맞는지 알 수 없지만 전해듣기로 교장선생님이 제소자 교육에 관심이 있으셔서 감방에서 머리깍는 기술을 배운 제소자에게 새로운 삶의 살아가도록 국민학교 안 화단옆에 이발관을 지으셨다고 한다.  머리를 깍아주는 이발사님들은 모두 감옥에서 머리깍는 기술을 배우셨던 분들이셨다. 어려서 머리깍을때는 키가 작아 의자에 판자를 얹어 주시면 그위에 앉아 머리를 깍았다. 조금 커서는 머리깍다 고개를 숙이거나 돌리면 한소리를 듣곤 했다.  내가 이발소라는 곳을 가게된 것은 초등학교 6학년때가 처음으로 기억한다.  그 이전에는 누나가 보자기 망도를 씌우고 가위나 삼각형 모양의 머리면도기?로 바가지 머리를 깍아주었다.

 

  주성이발관에서는 깍으려는 머리는 스포스 머리나 상고 머리 2개 중 하나를 선택해야했다.  머리를 깍기전에 '스포스요..'  아니면 '상고머리요..' 하면 이발사님들이 머리를 깍기 시작했다. 명희 형님은 언제나 스포스 머리를 하시고 머리를 감겨주셨었다.

 

  주성이발관에 가면 거울옆 진열장들에는 오백원짜리 지폐나 오래전 지폐들이 붙어있었고 맨위에는 돌맹이들이 진열되어있었다.  겨울에는 연탄난로에 들통이 하나 올려져 있었고 드라이기는 은빛나는 동그란 입구가 달린 드라이기가 있었다.   머리를 깜고나면 주머니에 걸쳐진 수건으로 머리를 닦고 옆에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 빗을 빗고 나면 초록색 물향수?가 담긴 매캐한 화장품을 한번 발랐다.  가끔씩 다방 아주머니가 커피배달을 오시기도 하셨다.  이발소 벽에는 이발사님들의 각종 선행으로 받은 표창장들이 걸려있었고 경찰과 무슨무슨 협약?을 맺었다는 위촉장이 있었고 그 옆으로는 '바쁜 꿀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나는  주성이발관 근처 대형마트서 일했었고 10년전 이발소 근처서 명희형님을 만났다.

  "어...?"

  "안녕하세요?"

  "응.. 그려.  ...  워티기 왜 요즘 안와?"

  "저짝 동네로 이사가서 그렇게 됐네유. 워디 가시는거예유?"

  "잘 계시쥬?"

  "그려..  여기 사장님 돌아가셨어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셨어."

  "예..  근디 동생분도 계시지 않으셨어요?

  "으응..  시집가서 애덜낳고 잘살고 있어. 애들 이쁘지.  잘살어."

  "근데 워디 가시는 거여유?"

  "으응..  이거 신난거 테이프 사러가는겨.  신나는 노래 나오는 테이프"

  "예.."

  "아이구..  반갑네.  머리깍으러와."

  "예.. "

 

 

  10년후 다시 주성이발관을 찾았다.  이발소가 없어졌다.  집으로 발길을 돌리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평화약국, 평화아파트 옆으로 옮겼다.  명희형님을 보고 싶은 급한 마음에 발길을 부랴부랴 돌렸다.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명희형님은 없고 명희 형님의 형님이 계시다.  머리를 다 깍고 이발사님께 명희형님의 안부를 물었다.

 

  "아이구..  명희를 아시네.  명희 허리아파서 일 못허고 그냥 집에서 있어.  오늘도 답답하니 계속 전화오고 그래쥬. 워티기 전화번호 알려줄까?"

  "아..  아닙니다.  얼굴뵈면 아실텐데.  전화까지는 좀...  명희형님과 어려서 골목서 함께 지냈었는데.  성광여인숙 골목, 쌀가게 뒷집서 살았었어요.  근데 명희형님 진짜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ㄱ상회여 ㄱ상회.  명희가 지금 64세여. 엄마가 엄청 똑똑했어지."

  "전에 같이 일하셨던 분들은 다 어디로 가셨어요?"

  "반은 죽고.. 다 죽었어.  다 죽고 나만 살었지. 살아서 재랑 둘이 운영하는거여."

  "이발소가 60년은 넘었으니 당연한거쥬 뭐."

  "그려..  고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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