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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 33호>통진당의 정치적 타락이 주는 교훈

 

진보정치의 도덕성
최근의 통진당 사태에서 여러 시선 중 가장 큰 하나는 소위 ‘진보’진영의 도덕성을 개탄하는 것이다. 보수 반동 언론과 세력은 통진당의 사태를 즐기며 늘 자신들이 도덕적이었던 것처럼 비아냥대기 바쁘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대중들은 통진당 지지와 무관하게 심각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고 나아가 전체 운동세력에 대한 불신의 근거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저들이 언제는 그럴 줄 몰랐어?”, 또는 “저들과 나는 무관해”라는 냉소는 오히려 노동자정치가 수렁에 빠지는 것에 동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문제는 ‘도덕’과 ‘노동자계급 정치’간의 상관관계에서 어떤 정치노선이 타락의 위험을 안고 있으며, 어떤 정치노선이 타락의 유혹으로부터 강건할 수 있는가이다.

철학과 정치노선
도덕의 개념과 범주는 상당히 넓은 스펙트럼 속에 펼쳐져 있다. 통진당 사태에서 제기되는 도덕적 문제는 합의된 룰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것, 부끄러워 할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타락한 정치세력, 정당 민주주의를 파괴한 자들로 지목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히 통진당 당권파만의 문제인가? 이미 세를 키우기 위해 통진당 전체가 전태일과 노무현의 만남으로 노동자 정치의 역사를 배신했고, 야권의 승리를 위해 민주당의 2중대를 자처했고, 진보신당 탈당파는 당의 결정을 걷어차고 통진당으로 향하지 않았던가? 결국 따지고 보면 개개별의 도덕성이 아니라 추구하는 정치노선과 철학의 문제인 것이다. 언제든 권력을 가지면 또는 힘의 우위를 점하면 솟아올라 행사되고 타락의 길로 치닫는 그들의 행동 이면에는 대리주의와 선민주의가 있다. 또한 이를 모태로 하는 의회주의다. 이러한 정치철학과 노선은 어느 정파이건 간에 잠복해 있을 수 있으며, 아직 대세를 장악하지 못해 숨죽여 있을 수도 있다.

걷어내야 할 것들
제2의 통진당 사태를 보고 싶지 않다면 노동자계급의 정치노선에서 대리주의와 선민주의, 의회주의를 걷어내야 한다. 대리주의는 역할을 특정하고 정치를 위임하게 하며, 그 역할과 위임을 받는 자는 자신을 선민으로 착각하고 자신이 역사의 전면에 있으며, 따라서 불가피하다면 무리수도 용납할 수 있는 것이다. 무지몽매한 대중은 아직 자신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며, 곧 따르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역사에서 봤던 광기의 정치를 만들어 내기까지 한다.
노동자계급정치는 자신이 소외된 노동으로부터 스스로 해방되는 것이며, 착취의 종식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노동자계급의 정치 원리에서 대리와 위임은 최소한의 것이며, 직접행위는 최대한의 것이다. 또한 의회는 전술적 활용일 뿐, 변혁은 작업장과 거리에 있음을 명확히 한다.

우리안의 독
지금 목도하고 있는 타락한 정치를 노동자계급 정치 전체로 등치시킬 수 없다. 하지만 이 정치적 타락에 대해 ‘나는 아니다’라는 오만이 아니라, 혹여 자신 속에 존재 할 수 있는 독을 점검하고, 걷어낼 기회로 삼아야 한다. 물론 아무리 말로 고고한 철학과 노선을 떠벌여도 행위와 일치한다는 보장은 없다. 이 역시 각성된 노동자계급의 직접정치, 집단적 힘으로 강제할 때 가능하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통진당 비판을 넘어, 노동자계급의 정치를-단결과 연대, 직접행동, 착취의 종식, 노동해방-현실로 만들고자하는 현장 활동가의 기세와 실천이다.
    
김재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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