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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 33호>통진당만 아니면 된다는 논리로는 불가능하다

 

민노당을 되풀이 할 수 없다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의 역사적 실패에 대한 면밀한 평가 없이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기획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구 전진/전국현장노동자회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 「새로운 노동자 정치를 위한 제안자 모임」의 논의 역시 애초 민주노동당의 맥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제안자모임은 ‘노동중심의 대중적 진보정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 하에 다음과 같이 당의 조건을 천명하고 있다.

“당의 정체성이 노동계급의 이상과 지향을 반영하고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 뚜렷해야한다”
“노동자들이 이름만 당원이 아니라 당의 주체적이고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조직의 체계를 구성하고 당의 문화와 기풍을 만들어야 한다”
“가치와 지향에서의 노동자 중심성, 활동과 조직 구조에서의 노동자 주체화를 담보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당원 숫자에서 노동자 당원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 한다”

애매하고 추상적
언뜻 보기에 제안자모임의 주장은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우선, ‘노동계급의 이상과 지향’은 너무도 애매한 말이다. 복지국가도, 사민주의도, 사회주의도 모두 노동계급의 이상과 지향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제안자모임이 말하는 노동계급의 이상과 지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애매한 표현으로는 그 어떤 것도 판단할 수 없다. 또한 ‘이름만 당원이 아니라 당의 주체적이고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문화와 기풍’은 너무도 선언적이고 추상적인 말이며, 초기 열성적으로 활동하던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왜 활력을 잃어갔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통진당을 극복하는 것이 노동자 당원 비율의 문제라면 여전히 통합진보당이 가장 높다.

양날개론에 대한 철저한 평가와 폐기 필요
핵심적인 문제는 ‘제안자 모임’의 논의 어디에도 ‘의회정당-산별노조의 양날개론 비판’은 들어있지 않다는 점이다. 정치투쟁은 진보정당이, 경제투쟁은 산별노조가 한다는 역할분담론은 정치의 공간과 경제의 공간을 무 자르듯 갈라버렸고, 거대한 산별노조가 오직 진보정당의 표밭 역할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에서 통합진보당식 동원정치는 필연적이었다. 이런 근본적 문제에 대한 평가가 없이 새로운 당 운동으로 제안된 ‘노동자중심의 대중적 진보정당’은 민주노동당을 다시 만들자고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당의 전략이 ‘의회’에 있다면
신자유주의자들 및 민족주의자들을 제외한 정당을 만든다고 해도, 그 당의 전략이 여전히 ‘의회’에  있다면, 그 당은 현장과 유리되면서 노동계급의 운명과 상관없이 자신의 성장을 추구하는 존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통진당 사태는 이를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노골적으로 드러냈을 뿐이다. 민노당의 의회주의 노선이 바로 통진당의 사태를 잉태한 것이다. 96-97년 총파업 투쟁의 패배에 대해 “노동자 국회의원 한명만 있었어도”라는 평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당이 민노당이다. 이제 ‘진보’ 국회의원은 10명도 넘게 있지만, 과연 지금 노동운동은, 정치운동은 ‘진보’하고 있는가?
새로운 정치세력화를 의회주의 정당에서 찾을 수 없다. 새로운 정치세력화 운동은 민노당의 실패를 넘어설 때 비로소 가능하다.
 
백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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