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 34호>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 과거의 '오류'를 넘어라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 과거의 ‘오류’를 넘어라!

 

 

여전하다. 통진당 사태를 두고 보수우익언론은 색깔 입히기에 혈안이 됐다. 이번 기회에 노동자민중운동 전체를 종북으로 덮어 씌워 여론 재판을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심각하다. 통진당 사태를 통해 드러난 진보정치의 비민주적 조직 관행과 의회주의적 정치세력화의 비극은 노동자민중들에게 자본가 정치와는 다른 ‘노동자정치운동’을 회의하게 만들었다.

필요하다. 새로운 정치세력화운동을 둘러싸고 조합주의적 정치세력화의 재현을 논하거나, 정치를 기각하고 대중투쟁으로 돌파하자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이 주장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해야 한다. 통진당 사태를 비판하는 것으로는 새로운 노동자계급정치의 전망을 열 수 없다. 이번 특집에서는 새로운 정치세력화운동에 있어 우리가 극복해야 할 문제로 이 두 가지 문제를 짚었다.

 

 

사라진 ‘노동’을 찾아라!

- 노동조합 중심성이 아니라 노동계급 중심성이다!

 

책임회피

당연하듯 통용되는 일상적 단어나 개념이 때로는 오히려 그 뜻을 모호하게 만들거나, 혼란스럽게 하기도 한다. 현재 ‘진보’라는 단어와 개념이 그렇다.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이 ‘진보우파’모임을 한다고 하니 이제 진보는 보수의 상대적인 개념조차 되지 못하고 역설적이게도 지금은 낡은 것이 되었다. 여기 비슷한 비운의 단어가 있으니 바로 ‘노동 중심성’이다.

민주당 후보까지 지지하는 것을 ‘계급투표’라고 강변했던 민주노총 상층지도부들은 지난 지자체 선거나, 서울시 보궐 선거에서, 그리고 이번 총선까지 진보정당에 대해 한마디도 없다가 사태가 악화되자 마치 구민노당 당권파들이 모든 것을 망친 양 격노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노동’을 정치의 미아로 만들어놓은 것을 망각하고 이제는 운동 내 좌우를 넘나들며 ‘노동 중심성’을 대안이라 외친다.

그들이 말하는 노동중심성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조합주의 정치세력화가 아니다

통진당 출범과 일련의 사태를 접한 노동자들은 ‘노동중심성’을 찾자는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통진당의 진성당원으로 민주노총 조합원이 40%가 넘고, 조준호 민주노총 전위원장은 노동의 몫으로 공동대표를 했음에도 ‘노동중심성’이 실종됐다는 말에 공감한다. 이것은 ‘노동중심성’이 노동자 당원의 숫자도 아니고, 노동자출신이 대표를 하는 문제도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보다 정당 내 노동조합의 영향력과 지분이 확대되면 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노동조합은 대중운동이다. 노동조합 내에는 다양한 정치 성향을 포함하고 있고 심지어 비계급-반계급적 운동성향까지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공식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당 운동을 결정해 버리면 그 당 운동은 ‘조합주의적 정치세력화’로 귀결될 뿐이다. 그 양상은 우리가 봐왔던 것처럼 노동의제를 의회에 청원하고, 결국에는 노동자들을 동원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면서 노동자 정치운동을 ‘의회’에 가둬놓게 되는 것이다.

 

정체성을 찾는 것이다

‘노동중심성’을 여전히 노동조합의 영향력 확대로 사고한다면 과거의 우를 다시금 반복하는 것이다. 실제 민주노동당에서 민주노총의 영향력은 ‘배타적 지지’를 무기로 실리주의, 야권연대연합 독려로 행사되었지, 그 이상으로 진전된 바가 없다. 따라서 문제는 어떻게 정당과 노동조합 모두를 계급적으로 강화, 재편하고, 이를 토대로 노동자정치를 구현할 것인가이다. 그러므로 지금 필요한 것은 노동조합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노동(조합)중심성’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자계급의 이해에 철저히 복무할 수 있는 정체성, 즉 ‘노동계급 중심성’이다.

진보정당이건 민주노조건 지배계급이 설정한 ‘민주’와 ‘진보’의 개념과 울타리를 넘어 계급성을 찾아야 한다. ‘노동계급중심성’이란 노동조합의 정당 내 지분이 아니라 정당의 계급정체성을 준거로 한다. 자본주의를 넘어 노동해방으로 나가는 무기로써의 정치가 아니라, 노동조합의 압력과 입김의 수위 정도(사실상 노조 상층 간부의 그것)를 ‘노동중심성’의 바로미터로 놓은 순간, 비판해 마지않았던 한국노총 상층부가 행하였던 정치와 다를 바 없다. 역사는 이를 ‘배반의 정치’, ‘출세주의자의 정치’라고 일갈했다.

 

되찾아야 할 노동계급의 정치

노동자계급정당을 만들려는 이유는 노동조합의 의사를 반영하거나, 지분을 설정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는 정당, 투쟁은 노조”라는 현실적이지도, 효과적이지도 않은 구도를 강화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노동조합의 계급성을 강화하고, 보다 정치화하여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넘어 노동자계급으로, 정치적으로 성장하고 다시 이를 바탕으로 현장에서의 계급적 실천을 만들기 위함이다.

계급의 철학과 지향을 잃은 ‘노동중심성’은 오히려 계급 정치를 혼란케 하는 독이며, 노동조합 관료와 기회주의자들이 ‘노동자 정치’라는 이름으로 기사회생할 수 있는 탈출구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중심성’은 단순히 노동자가 당원의 다수에 이루는 것에 머물거나, 노동의 의제를 좀 더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과 노동의 대립과 충돌이 이 사회의 주요한 지표임을 명확히 하고, 노동자가 행위자로써, 계급의 요구와 실천을 기반으로, 집단화되어 정치를 하는 것이다.

 

김재광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