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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 40호> '응급피임약은 전문의약품'으로 그대로?

‘응급피임약은 전문의약품’으로 그대로?
식약청의 피임약 재분류안 비판

 

 

6월 7일 식약청의 의약품재분류안으로 촉발되었던 피임약 재분류안이 8월 29일 3개월여의 논란 끝에 확정됐다. ‘사전경구피임약은 일반의약품’으로, ‘응급피임약은 전문의약품’으로 현행 분류안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골자다. 여성계와 종교계의 반발 속에서 보건복지부는 피임약 사용 관행과 사회·문화적 여건 등을 이유로 재분류에 대한 판단을 3년 후로 유보했다.

 

 

‘응급피임약은 전문의약품’으로
 

이번 사후응급피임약의 접근권 관련 보완조치로 ‘야간진료의료기관 및 심야응급실’에서 ‘심야 시간(22시~익일 06시)이나 휴일에 응급피임의 원내조제를 허용’하는 방안이 포함된다. 그러나 72시간 안에 복용하지 않으면 실질적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응급피임약’은 의사의 처방없이는 구매할 수 없는 ‘전문의약품’으로 여전히 남게 되었다.
여성은 원치않는 임신이나 성폭력 등의 긴급한 상황에서도, 사회적 인식 때문에 접근하기 어려운 산부인과의 처방을 반드시 거쳐야하고, 그리 많지 않은 야간진료기관을 찾아 헤매야 하는 어려움 속에 계속 놓여지게 된 것이다.

 

 
여성의 결정권과 함께
의료접근권 확대가 필요


우리는 임신·출산에 대한 여성의 결정권과 함께 의료접근권의 확대를 요구해 왔다.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전환을 반대한 측에서는 마치 전문의약품 전환이 여성의 건강권을 고려한 입장이고, 일반의약품의 전환이 여성의 건강권을 무시한 조치인양 호도하면서 건강권 대 결정권이라는 왜곡된 쟁점을 형성해 왔다. 그러나 피임약 문제를 포함한 임신·출산 결정권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성의 건강권이다. 여성이 아이를 낳을 권리와 함께, 피임과 임신중지를 포함한 낳지 않을 권리도 존중받아야하며, 안전하고 건강하게 자신의 선택을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제대로 된 연구결과도 없이 과장되었던 부작용 사례에 대한 데이터 축적과 명확한 추적관찰 연구를 통해 부작용이 없는 안정한 피임약이 공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병원과 약국에서 피임약의 사용법과 주의사항을 주지시키는 철저한 복약지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강제해야 한다.
또한 전문가집단에게 부여된 정보독점권을 환자의 알 권리로 전환해서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해 알고 판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나아가 일상적인 건강을 체크할 수 있는 주치의 제도 도입과 의료 복지 확대 등 공공 의료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으로까지 나가야 한다.

 

 

피임은 여성 혼자만의 몫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성차별적 사회구조와 성적 의사소통을 꺼리는 문화 속에서, 피임방법을 선택하고 실천하는 과정도 여성과 남성은 동등한 입장에 서있지 못하다. 남성의 피임실천율이 낮은 가운데 피임에 대한 책임까지 여성들에게 상당수 떠맡겨지면서, 여성들은 원치않는 임신의 불안감을 홀로 감당해내고 있다.
남성의 피임실천율을 높이는 방법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확장이 함께 필요하다. 피임과 임신, 출산에 대한 책임이 더 이상 여성들에게 전가되지 않게 하기 위한 전사회적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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