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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사노위 : 16호> 희망버스, 자본과 정권에 정면으로 맞서자

 희망버스, 자본과 정권에 정면으로 맞서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시 켜진 진화된 촛불, 희망버스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희망버스’를 탈 것인가에 대해 민주당 내 찬반이 있고, 진보정당은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주류 언론은 이를 두고 비판과 염려를 쏟아내고 있다. 경찰은 3차 희망버스를 저지하기 위해 치졸하게도 2차 ‘희망버스’의 버스기사들을 탐문하며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희망버스’가 정세에 중심에 서 있음을 웅변하는 징후다. 2008년 촛불이 한 둘 켜질 때, 일부의 저항 또는 ‘놀이’라고 간주하였던 정권과 주류 언론은 촛불이 들불처럼 퍼지자 사색을 하고 반사회적 행위임을 목이 터지게 호도하였던 상황이 재현되고 있다. 촛불이 ‘미친 쇠고기’에 그친 것이 아닌 것처럼, ‘희망버스’는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와 김진숙 동지에 그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에 접어들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정권과 주류언론이 더욱 더 민감하다.

 

‘희망버스’는 2008년 촛불과 비슷하면서도 진화된 직접행동이다. 무엇이건 간에 건들이면 폭발할 수 있는 이명박 정권하에서, 즉 휘발성 높은 정세 속에서 조직 노동자가 아닌 각성된 인민의 자발적 제기와 참여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2008년 촛불과 유사하고, 저항의 의제에 있어 당장의 당사자 문제가 아니라 궁극적인 사회적 정의와 필요(자신이 정리해고를 당장 당하지 않더라도 이것이 사회적 해악이며,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로 상승하여 진화되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노동의 문제가 놀랍도록 부차화 된 한국에서 노동의 문제를 사회의 문제로 부상시켰다는 점에서 차별화 되고 진전된 직접행동이다. 더불어 투쟁하는 주체가 있다면 연대하고, 그리하여 결국 연대자가 투쟁의 주체가 되는 민주적인 투쟁의 전형을 만들고 있다. 때문에 한진 지회가 어떠한 합의를 하고 투쟁을 정리한다 하여도 김진숙과 해고 노동자가 싸우고 있다면 ‘희망버스’는 조직되고 있다. 수년 간 노동조합 집행부가 투쟁하는 소수의 노동자를 버리고 기만적 합의를 하였을 때 대부분은 투쟁이 끝났다고 집행부를 비난하는 것으로 그친데 반해, ‘희망버스’는 민주노조 투쟁의 전통을 부활시키고, 만나고 있다. 정권과 자본이 우려하는 바로 그것 “정당하면 연대하고 투쟁 한다”는 것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정면으로 맞설 수밖에 없는‘희망’

 

3차 희망버스는 정권의 탄압과 자본의 방해에도 분명 부산 한진중공업으로 향할 것이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의 투쟁을 할 것이다. 그러나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와 김진숙 동지의 ‘생환’에만 투쟁이 갇힌다면 거꾸로 정리해고 철회와 85크레인의 정신을 제대로 찾아올 수 없다. 정리해고는 96/97 노동자 총파업으로 무력화 하였지만, 98년 경제위기를 빌미로 김대중 정부가 부활시킨 노동자 사형제도다. 이는 자본의 요구에 순응한 결과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희망버스’에 편승하지만 바로 그들이 과거, 다른 이름으로 관철시킨 악법이다. 이명박 정부와 자본에게 있어 금과옥조와 같은 것은 이전 정권과 다름없이 ‘노동유연화’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은 노동유연화(노동 불안정화)의 핵심이다.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이 국회청문회를 비웃고 외유하는 것은 싸가지가 없는 재벌회장의 튀는 행동이 아니라, 바로 정권과 자본이 그를 비호하고 응원하기 때문이다.

 

한진중공업의 생존권 투쟁은 정권과 자본에게 정면으로 맞서는 투쟁으로 해결될 수 있고, 우회로는 없다. 2008년 100만이 집결한 610 대회에서 명박산성을 넘지 못함으로 인해 급격히 촛불정세가 하강한 것을 떠올리자. 대중은 “이렇게 많이 모였는데 어쩔 수 없다”는 것에 절망과 허무를 맛보고 대열에서 이탈해 나갔다. 87년 대투쟁의 아련한 기억 “100만이 모이면 이긴다.”는 역사적 체험이 좌절되자 방향과 방책의 혼란을 느낀 것이다. 당시 넘어서야 할 것은 물리적으로는 ‘명박산성’이었고, 심리적으로는 ‘87년의 기억’이다. ‘희망버스’도 마찬가지다. ‘희망버스’의 유쾌하고 발랄한 투쟁은 역으로 비장함의 또 다른 표현이다. 유쾌하고 발랄함이 비장하게 제대로 분출되지 않으면 우울과 상심으로 돌변한다. 3차 희망버스는 적극적으로 85호 크레인으로 향해야 한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내심 주저하며 거리를 두는 것처럼 야당과 명망가로 통제될 수 없는 직접행동으로 85호 크레인을 가로막는 물리력을 돌파하고, 정권과 자본이 강요하는 기만적 ‘평화’의 심리적인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이를 통해 4차 희망버스는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유성기업의 민주노조파괴, 명동 ‘마리’의 철거, 재능교육의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권 부정,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 발레오 만도의 먹튀자본, 반값 등록금의 거짓말, 분노하지만 손 놓고 있는 4대강의 파괴, 모든 이를 빚쟁이로 만드는 민생파탄의 주범, 이명박 정권과 자본의 심장으로 향해야 한다. 정확한 공간은 바로 그들의 집결지 서울이다. ‘희망버스’가 정권과 자본의 심장으로 향할 때 조직노동자는 자신의 가장 큰 힘이며, 역사적 임무인 ‘총파업’으로 발맞추어야 한다. 정권과 자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한진중공업 정리해고를 넘어 전국정세 속에서 정권과 자본을 위협하는 가장 큰 태풍이 되는 것을 해내야 한다. ‘희망버스’가 희망을 만들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정권과 자본에 정면으로 맞설 수밖에 없고, 맞서야만 비로써 더 큰 희망으로 도약할 것이다.

 

김재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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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3일 사노위 주간촛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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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한진중공업, 투쟁하는 노동자를 엄호하자

 

[성명] 한진중공업, 투쟁하는 노동자를 엄호하자

- 단결과 연대가 무엇인지 현실에서 확인하자

 

한중중공업의 정리해고 투쟁이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자본과 정권의 협박과 으름장으로 이루어진 합의서는 법적 효력도 없을 뿐 아니라, 조합원의 바람과도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에 일고의 가치도 없다. 당연하게도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이러한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는 이번 뿐 아니라 이미 몇 차례 이루어졌고, 그때 마다 더 이상의 정리해고는 없음을 노사가 확인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루어진 정리해고였기에 때문에 정리해고 대상자이건 아니건 투쟁에 나선 것이다. 만일 이번에도 투쟁이 유야무야된다면 남아있는 노동자의 내일도 보장할 수 없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 희망퇴직이란 이름으로 위장된 정리해고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이것은 한진중공업 노동자 뿐 아니라 부산지역의 노동자, 전국의 노동자가 모두 알고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김진숙 동지와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비대위를 조직하고, 아무리 힘들더라도 여기서 멈출 수 없다는 의지를 천명해야 한다. 비대위는 투쟁의 지도부가 되어야 한다. 민주노조운동은 바로 이것이다. 집행부가 조합원의 의사를 무시하면 바로 현장의 힘으로 민주성과 자주성을 회복하고, 다시금 투쟁에 나서는 것이 민주노조의 전통이며 힘이다. 한 동안 볼 수 없었던 민주노조 운동의 전통과 힘이 투쟁하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로부터 나오고 있다.

 

“희망버스”는 김진숙 동지만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무력하게 받아들였던 정리해고에 대하여 “아니다”라고 대중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며, 아래로부터의 의지와 실천을 응원하고 연대하는 대중행동이다. 충남 유성공장에는 용역깡패가 공장을 장악하고, 경찰의 비호 아래 극한의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자본과 정권은 한진투쟁을 진압하면서 유성투쟁에 대한 자신감을 얻고, 유성투쟁을 탄압하면서 한진투쟁이 자신의 의도대로 될 것임을 장담하고 있다. 사실상 하나인 두 개의 투쟁에 사력을 다해 임하자. 투쟁하는 노동자를 지지 엄호하자. 투쟁하는 노동자 앞에서는 세상이 호락호락 자본의 뜻대로 되지 않음을 똑똑히 보여주자!

 

2011.6.30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 공동실천위원회(사/노/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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