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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8/20
    노현정씨에게, 부탁함(2)
    금자
  2. 2006/08/17
    don't read enough?
    금자
  3. 2006/08/09
    몰라몰라(3)
    금자
  4. 2006/08/05
    캐나다의 정원(6)
    금자

노현정씨에게, 부탁함

노현정 씨 결혼을 보면서 든 오지랖 넓은 생각들 ;;; 

 

며칠 전까지도 포털에 줄줄이 사탕으로 엮인
노현정씨 결혼 기사 제목을 지나치면서
뭐 미국서 공부한다는 재벌가 자식이
‘첫 눈에 반해 두 달 만에 결혼을 결심하고야 만’ 흑인 여성이나 치카노 여성 쯤의 기사도 아닌데 읽어본 들 무슨 재미냐 하는 생각이었다.
그건 뒷북이다 싶게 이제사 본 영화 ‘호텔 르완다’에서
후투족의 학살장면을 찍어서 가져온 기자가
‘고맙다, 이걸 보고 사람들이 르완다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알게 될 거야’ 하는
주인공에게 내뱉는 그 스산한 대사가
차차차 즈려밟듯이 마음 속에 차차차 스며들었기 때문이었다.
 
“고마울 거 없다. 사람들은 뉴스에서 이 학살 장면을 보고는
오, 테러블, 댓츠 소 테러블, 하고는 저녁 먹으러 나간다”
그 기자 말대로 유엔 평화군과 기자들과 르완다와는 다른 국적의 여권을 가진 사람들은 르완다에서 모두 철수하고,
또 그 밖의 사람들이 오, 테러블과 뭐 먹을까를 왔다갔다 했던1994년 여름,
르완다에서 근 백 만명의 사람이 죽었다.
 
순진무구하게도 마치 그 대사가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기사를 읽고는
오, 나쁜 새끼들, 나치들한테 배웠냐, 하고는 금새 돌아서서
노현정씨 결혼기사를 읽는다’는 식으로 들렸다.
그래서 웬지 궁금했지만(도대체 왜!!)
, 노현정씨 결혼 기사는 결코 클릭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에헤라디야, 자진방아를 돌려라,
라는 심정으로 오늘 노현정씨 결혼 기사를 읽고 말았다.     


 



참말로, 누구 블로그에서 본 글처럼
그 놈의 힐튼 상속녀 기사만 뜨면 저절로 기사를 클릭하고 마는 것처럼(제길슨!) 나도 빠져, 빠져, 들었다.
 
이런,
우리의 힐튼 상속녀가 애완견 팅커벨을 살 쪘다고 내팽개치거나
새로운 ‘심플 라이프’ 시리즈에서는 니콜 리치랑 따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설정으로 간다거나
한 번 입은 옷은 절대 거들떠 보지 않는다는 기사들보다
따분하고 지지리부진한 그 기사를 클릭하다니!
홍세화씨 식으로 말하자면, 존재를 배반하는 손가락의 클릭질이었던 게다.
 
기사를 읽으면서
‘예쁘게 잘 살게요, 미국서 공부하고 이 년 후에 돌아올께요’라는노현정씨 멘트에 ‘언니, 이 년 뒤에 난 고 3이라서 텔레비 못 보는데, 어떠케요 ToT’
라는 댓글을 다는 절박한 심정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결혼을 축하하고픈 마음이 들었다.
평소 텔레비를 하도 안 봐서
그녀가 진행했다는 시청률 1위의 스타 골든벨을 한 번도 본적은 없지만
뭐랄까,
우물에 빠진 아이를 보면 달려가서 건져낸다는 ‘인’의 마음이 들어부렀다.
그래서 ‘생얼’ ‘엑스 파일’ 이런 기사를 보면서
다덜 부러워서 환장했구먼, 이봐들, 자제하자고,쯤의 마음이었다.
 
적어도 우리의 현정씨는 말이다,
이 년 후 어찌돼든, 암튼 일을 그만두는 대신 ‘휴직’을 선언했고,
그것 때문에 비록 아나운서 지망생들의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지만
암튼 빡 터지게 경쟁율 치열한 아나운서 자리에 공백을 만드는데 기여했다.
(한 자리의 공백이 중요한지 아니면 아나운서 같은 전문직 여성도 결혼 후 커리어 단절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공고히 한 것이 더 중요한지는 모르겠사와요.)
 
또한 삼성가의 아들처럼 동아일보 사주의 딸과 결혼한 것도 아니고,
사실 현대가 아들이랑 조선일보 뭐시기네 딸 이런 기사보다는 백 배 낫지 않수?     
 
또또한 재벌과 결혼했다 이혼한 다른 현정씨처럼
미국서 우연히 뭐시기 공연을 보다가 사랑에 빠졌어요, 그가 누군지 몰랐죠, 라는 식의 ‘로맨틱한 멘트’도 날리지 않았다.
현대가에 납품하는 아버지와 현대가 사이에 혼담이 오가면서 시작했다는,
그렇지만 첫 눈에 반해 두 달간 뜨겁게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는
‘믿거나 말거나’를 일부러 조장하는 듯한 멘트만 날렸을 뿐이다.
 
아마도  현대가에서도 텔레비젼 뉴스에 하청업체 사장 얼굴이 모자이크로 처리되고 목소리가 변조된 채 나와도 다음 날 바로 그 대기업에서
“납품단가 인하니 착취니, 그런 말을 들을 바에는 납품 계약 끊겠다”는
전화를 하는 그 민첩성을 가지고 노현정 씨를 찾아냈나 보다.
다시 한 번 깜딱 놀랐다고 할 수 밖에.
 
연예 전문 기자도 아니고 노현정씨를 스타킹(stocking)한 것도 아니라서
현대가에 납품한다는 그녀의 아버지네 기업에 대해서는 모른다.
하지만 혹여나 노현정씨나 그녀의 아버지도 원 하청 불평등 관계나
해마다 평균 5-10%를 깎아 내린다는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 관행에 분통터져본 경험이 있으시다면,
하청업체나 중소기업을 위해서 조금 ‘공부하셨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그리고 현대가에게는 언론에 대기업을 ‘꼬지른’ 하청업체 사장이나 며느리가 될 노현정씨를 찾거나, 포털 사이트 인기 검색어를 주물럭 거리는 그 민첩성과 실력을‘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상생관계’같은 방향으로 돌렸으면 하는 오지랖 넓은 바램을!!
 
하청 업체 사장님들이 언제 사돈이 되고 장인 어른이 될지 누가 안단가?
 
부디 장인 어른 모시는 마음의 발톱 때만한 크기로 중소 하청 기업들을 대접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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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read enough?

Toronto, Canada

Danforth Ave.

 

간만에 부시의 귀염둥이 표정을 보았다.

과자님한테 습격당했을 적에 '과자 먹다가 다쳤어요' 하던, 그 수줍어하던

미소 그대로였다. 대박

아이고, 깨물어주고 싶네 그랴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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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몰라

조금 많이 뻔하거나 상식적으로 조금만 머리를 굴려 생각하면

웬만한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결과들을 학문적으로 세심하게 풀어내서

이론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사회과학의 일이지만,

그래도 그걸 위해서 깨알같은 각주를 달고

참고문헌이랑 인덱스다는데 조교들 노동력을 이용하고

그 많은 나무들 깍아서 종이책으로 펴내고

하는 걸 생각하면, 완전 회의 만빵이다.

싸가지 없게 말하자면

난 그렇게 먹고 살고 싶지는 않다는 거야.

 

이건 파블로 네루다

무엇을 쓰기보다는 무엇 하나라고 제 손으로 만들고 싶다라면서

목수가 되고 싶어했다는 것과는 질이 다르다. 나도 안다고. -_- 

 



싸가지 겁나 없게 나가기로 했다, 오늘 블로그 긁적긁적에 말이쥐.

 

대학원에 들어와 그 등록금을 내고 '여봐라' 할 수 있게 배운 것은,

영어로 책 읽기랑 아메리칸 앤스로폴로지 같은 외국 학술지에서 

자료찾는 것이다. 

아주 자랑스럽게도 마음 먹고 책 잡기 시작하면 삼 사일 안에 웬만한 

영어 책은 읽고 발제문도 쓴다 -_-

학위 없이 대학원을 그만 둔다고 해도 

하루에 영어 책 한 페이지를 죽을 똥 싸는듯한 심정으로 읽었던 내게

참으로 여봐라, 란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캐나다에 와서 중고 영어 책들, 대개 사회과학, 그 중에서도
인류학 관련 전공 도서들을 샀다.

이 책들을 읽는 내내 얼마나 한국 책들이 읽고 싶어서 환장했는지 모른다.

특히 나는 동남아시아와 관련된 책들을 읽고 있는데

 

아아, 아니올시다.

어거지로 한장한장 읽어내려가면서 짬짬이 푸드 채널도 보고

홈 인테리어 채널도 본다.

마치 주발이가 김기덕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하루에 17분씩 할당해

의무량을 채운 뒤에야 다른 디브이디를 본 것처럼,

나도 그런 식이다.

 

서구학자들의 해 놓은 연구들을 보면 그닥 새로울 것도 없는 아시아적 상황

(급속한 근대화에 눈이 멀고 모든 생활 양식이 근대화를 향해서 마구잡이로 달려드는)을 그 긴 참고문헌들을 가지고 아주 세련되게 풀어논다는 것이다.

저번에 읽은 Intimacy Economy of Bangkok 도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데 별반 많이 잘못 한 것도 없이 (제국주의적이라거나 이런 아주 무선 놈들)

나는 많이 지치고,지겹고, 하품나고, 오늘분 2챕터만!!! 이라는 심정에 들끊는다.

모르겠다, 왜 공부하는지.

인류학자들처럼 매력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재미없는 글을 쓰는지 모르겠다는 그 누구의 말처럼

이것들, 참 매력없다.

 

 

조금 많이 뻔하거나 상식적으로 조금만 머리를 굴려 생각하면

웬만한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결과들을 학문적으로 세심하게 풀어내서

이론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사회과학의 일이지만,

그래도 그걸 위해서 깨알같은 각주를 달고

참고문헌이랑 인덱스다는데 조교들 노동력을 이용하고

그 많은 나무들 깍아서 종이책으로 펴내고

하는 걸 생각하면, 완전 회의 만빵이다.

싸가지 없게 말하자면

난 그렇게 먹고 살고 싶지는 않다는 거야.

 

이건 파블로 네루다

무엇을 쓰기보다는 무엇 하나라고 제 손으로 만들고 싶다라면서

목수가 되고 싶어했다는 것과는 질이 다르다. 나도 안다고. -_- 

 

하지만 나도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뻔한 이야기 주저리주저리 하느니

치공기술이나 목공예, 가구 디자인, 도공, 요리, 리코더 불기 같은 것을 배워서

무엇인가 소박하게나마 손으로 만들고,

시위에 가서 리코더도 불고 

사람들 불러서 맛난 것도 해 먹고  

주변 사람들이 그걸 가지고 좋아라하는 것을 느끼고

그걸 가지고 관계를 만들고 또 사람들에게 잘해주고,

마구마구 잡지 '좋은 생각'류의 그런 생각들... 

 

필드워크는 너무 작위적으로 보이고

-현지조사지에 가서 1년 살고 그걸로 이빨 까서 박사 학위 받고,

그러고 어쩌라고?

그래서 나는 점점 공부에 흥미를 잃고

그러고 있다.

 

사람들은 "석사 마치면 박사, 지금 석사할 나이도 아니고

박사할 나이구먼"의 눈빛인데 

몰라, 몰라. -_-

양키 데리고 산책 나가서 꽃향기나 맡을래, 킁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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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정원

토론토도 지금 한참 여름,  

햇빛은 한국과 비슷하게 뜨거운데 좀 덜 찝찝하고 끈적끈적해서

바람이 휘익, 불면 기분이 마구 좋아져.

바람이 불면, 여기저기서 나무들의 잎파리가 싸그락 거리는 소리가 귀를 채워.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면

작은 나무들과 큰 나무들알록달록한 꽃송이들.

옹기종기 모여앉아있는 그 식물들이 가진 '인간'다운 얼굴

 

그 식물들이 ‘인간다운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알록달록한 색깔이나 시간의 결을 촘촘히 묻고 있는 그 큰 나무들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야.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선물이랍시고 꽃 사들고나타나는'로맨티스트'들을

책장에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시리즈로다가 꽂아놓은 사람들과 쌤쌤으로 치는인간. -_-




캐나다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날마다 가만히 앉아서 혼자 생각할 시간을 즐길 수 있다고 대답했는데,

그 시간들, 돈을 벌기 위한 노동시간과 가사노동시간을 제외하고 남는 시간들을 나무를 키우고 집을 가꾸고 하는 시간들로 채울 수 있는 삶, 그런 것들.

 

그리고 한국의 '저부가가치' 노동자가 갖는 시간.  

         

7 1일은 캐나다 데이였어.

잘은 모르지만 아마 영국에서 독립한 날을 기념하는 듯.

그 날은 나와 엄이 스페인에서 돌아온 날이였고 칠월의 첫째 토요일이었어.

5일 근무를 하는 캐나다에서는 7 3, 그러니까 그 다음 월요일날 따로 날을 잡아서 하루를 쉬더구먼.

그 때 나는 완전 눈 시뻘겋게 뜨고 마치 반공반핵 김정일 타도에 참여한 교회사람들이 미국을 받들어모시는 마음가짐으로 캐나다의 이 멘털리티에 빠졌지. 

이 사람들은 그 시간들을 가지고 인간의 얼굴을 한 나무들을 만들고 가꾸고, 그런 거겠지.

         

태국의 한 벽돌공장에서는 노동자들이 마시는 물에 암페타민 (각성제)을 넣어서 잠도 안 자고 일하게 만들려는 수작을 폈고 (1998년 방콕 포스트에 난 기사)

언젠가 본 다큐먼터리에서는 한국 여성노동자들이 눈에 이쑤시게를 끼우고 재봉틀을 돌리는 모습이 나오더군.

         

자신마저 돌볼 수 없는 삶에서 나무를 키운다는 것이 가능할까,

나무와 함께 삶이 커가는 므흣한 기분,

런 게 바로 사회 책에 나오는 삶의 질이 아닐까. 시간이 조용히 흐르는 길을 걸으면서 남의 집 정원들을 찬찬히 보았어.

 

그러고 여기와서, 포스코, 에 대해서 읽었어.

그들이 가졌을 시간의 양, 하루 중 혼자서 가만히 앉아 생각하고

누군가와 나무를 키우고 누군가를 돌보고 돌봄을 받았을 시간의 양을 생각하니,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이요원이 저부가가치 인간이라는 소리를 듣고 

화장실에서 울었던 그 장면이 생각났지. 

 

건설 노동자의 삶와 골프 캐디를 액면가 그대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전전했던 몇 저부가가치의 직업 중 가장 육체 노동군에 속했던 골프 캐디로서의 몇 달간을 생각해보니, 마음이 찌르르했어.

 

 

정말이지 말 그대로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와 멍하게 텔레비젼을 보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어. 

특히 새벽 5시 티업이 있고 저녁 7시가 넘어 경기가 끝나는 여름 시즌에는,

'날 잡아 잡순다'고 해도 암 것도 할 수가 없었어.

콧구멍에 파를 끼운다고 해도나무에 물을 줄 시간이나 여력이라곤 없었어. 

 

건설노동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 사실 잘 몰라.

노가다를 해서 학비를 번 것도 아니었고

가까이 건설노동을 하시는 분들이 계신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이 가졌을 시간의 양, 이런 것은

공사 현장에 옷을 갈아입는 곳이나 화장실처럼 기본적인 시설조차 없다는

신문기사만으로도 충분히, 잘 알 것만 같았다.

느자구없게도 그런 기사들은 캐디 생활을 떠올리게 헸어.

 

오늘 동네를 산책하면서 몇몇 정원을 찍었어. 

부디, 부디 므흣하게 나무와 함께 커갈 수 있는 삶,

그런 것들이 있는 곳으로 가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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