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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4/01/11
    생머리의 남자아이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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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3/12/24
    처음이자 마지막, 아버지의 모습
    마리화나
  3. 2003/12/17
    고교 시절에 바라본 교사라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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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3/12/17
    심장으로 느끼는 시간과 빼앗긴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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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3/11/14
    맥주를 사러 나갔다 오는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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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3/11/13
    나를 아는 모든 나, 나를 모르는 모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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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3/11/12
    운전면허증을 받아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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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3/11/11
    가로등 불빛 아래 시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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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3/11/08
    오타쿠 문화에 투영된 일본의 오늘날 - 아즈마 히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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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3/11/06
    점심 밥상에서의 정치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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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2003년 10월 06일
 
빔 벤더스 감독,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나는 35년 동안이나 음반을 만들어 왔지만 대중들이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 라이 쿠더

 

애초부터 흥행사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듯한 그였지만, 역시나 저런 대사를 뱉어 낸다 싶었다. 빔 벤더스와 라이 쿠더라면 굳이 <파리, 텍사스>같은 작품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무슨 생각으로 꼼빠이, 이브라힘, 바바리또 같은 이름을 가진 이들을 불러 모았을지에 대해 그리 의심이 가지는 않는 까닭이다.

 

그들의 연주와 노래는 놀라웠다. 마치 나이 스물이 넘도록 들어보지 못한 어머니, 아버지의 걸쭉한 노랫소리를 처음 들어보고는 푹 빠져드는 느낌이랄까. 30여년 전의 앨범 에서와 같은 미국 남부풍 음악의 레코딩으로부터, 바이올린 연주가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주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보틀넥 연주로 조화를 이뤄내는 라이 쿠더의 연주와 이야기도 놓칠 수 없을 듯.

 

몇 년쯤 전이던가, 모 홍콩 영화와 그 이미지 및 음악을 차용한 광고 등으로 이른바 '맘보'리듬이 국내 관객들에게 그리 낯설지만은 않을 터,  이러한 재미를 조금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다면, 안토니오 반데라스 주연의 <맘보 킹즈>를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스쳐지나가는 쿠바 거리거리의 사람과 풍경들을 보다 보니 네팔도 보이콧 했다던 이라크 전투병 파병 논쟁이 자꾸 떠오르는 건 좀 병적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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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행을 마치고

군 전역 후에 쓴 일기

 

2003년 10월 06일
 
정확히 2년 하고도 2개월 전에 긴 여행을 떠났던 것 같다. 이제 그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소감이라면, 카프카의 단편 <유형지에서>를 주욱 읽어내린 듯한 기분이랄까. 나 자신으로부터 좀 떨어져서 스스로를 관찰할 수 있을 것 같았던 환상은 뼈대만 남았고, 이제 그 뼈대에 핏줄과 신경과 살점을 붙여나가는 고된 작업만이 남은 듯 하다.

 

돌이켜 보건대, 나를 진정으로 봐 준 이들은 '미덥지 못하다'라는 말을 해 주곤 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정말 그러한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여전히 좌충우돌에 일단 질러놓고 보는 방식은 나의 '탐색에의 강한 욕구'를 얼마나 채워 주었고, 어느 정도의 길찾기에 성공한 건지!

 

한편으로는 객(客)으로서의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지나는 데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는, 일종의 통행료에 대한 부과에 대해 아쉬움도 있었다. 사람이란 같은 길을 걸어도 저마다 다른 풍경을 보기 마련 아닌가? 다리품 파는 데 지쳐, "한켠에서 되게 낮잠 자버린" 나는 이제 조금 정신이 드는 듯 하다. 해는 중천에 떠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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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휴가를 비디오와 함께

2003/10/01

 

긴 군대생활의 마지막 휴가동안 비디오만 퍼 보다 가는 거 같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 <도그빌Dogville>

 

엉뚱하지만 제목으로부터 자꾸 토크빌(Tocqueville)이 떠오른다. 그냥 나만의 생각이겠지만, 이 영화를 보는 많은 이들이 극중 톰에게 감정 이입을 많이 할 것 같다. 그녀를 마을에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후에는 그녀의 탈출계획을 세우던 그에게 말이다. 그러나 영화가 종반부에 치닫으면서 우리는 흠칫흠칫 놀라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우리의' 톰이 그녀의 '직접 처리해야하는 대상'임을 보고 충격을 받겠지.

 

아녜스 자우이 감독, <타인의 취향>

 

로맨틱 코미디물. 정말 오랜만에 괜찮은 프랑스 영화를 본 것 같다. 차마 내 이야기 같다는 말은 못하겠다.

 

구스 반 산트 감독, <아이다호>

 

잘 알려진 <굿 윌 헌팅>도 못보았고 이름만 익숙한 감독의 영화. 본인이 주인공들과 같은 거리 생활을 꽤나 했나보다. 붉은 사막이 펼쳐진 아이다호의 길 위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을 부각시키기엔 상류 집안의 상속자는 좀 진부한 설정이 아니었나 싶은 느낌이 조금은 든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 <비열한 거리>

 

짐 자무쉬 같은 사람의 영화를 보고는 보통 미국사회의 이민족은 방랑자의 이미지가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이탤리언과 화교만큼은 '가족'이라는 그 느낌이 정말 강렬하다. <좋은 친구들>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스콜세지 감독은 싸움질과 가족 사이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재미와 웃음을 만들어낸다. 하비 키이텔의 젊은 모습을 한껏 볼 수 있는 것 또한 놓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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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장의 추억

2002년 2월 23일

 

'나'라는 인간에게 가득 찬 온갖 거짓과, 오만과 독선과, '피와 살점이 튀기며 오물로 가득한' 두뇌 속을 비워 낼 수 있던 쓰레기장 ... 어린 시절 우리 동네 쓰레기장은 우리에게 풍부한 놀이터였다는 것이 참 팍팍하다.

 

산업사회의 온갖 화려함과 풍부함, 그 실체를 보여주는 것은 엄청난 쓰레기더미다. 이제와 생각하면 어린 시절, 마을 어귀 둑방 끄트머리에 있던 그 쓰레기장에서 넋놓고 찾아 헤메며 갖고 놀던 폐주사기, 부탄가스 통 등등 (이해가 안 갈 수도 ...) 금지된 온갖 장난들을 맘대로 할 수 있었던 그 곳.

 

어른들은 그 곳 근처에 오기도 꺼려했으므로, 그곳이 매립되어 테니스장이 되었을 때 나는 망연자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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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걸어보는 온갖 주문들

2000년 06월 19일

 

착하게 살자. 좀더 작고 가볍게 살자. 나는 정말 왜 이럴까? 그야말로 '사소한 일에만 핏대 내고' 말야. 그리고 좀더 솔직해지자. 작은 위선에서부터 벗어나자. '이쯤 괜찮겠지'하는 생각을 버리자. 좀더 자신에게 철저해지고 타인에게 관대해지자. 하루하루 그저 살아가기보다 작은 시간들을 소중히 여기며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보자. 자기 모멸을 게을리 하지 말자. 꾸준히 실천하며 나를 좀더 닳아 없애자. 사람들을 보자. 사람들에게로 눈을 돌리자.

 

싫다면 하지 말자. 자신에게 강요하는 사람은 남에게도 강요하기 마련이다. 끊임없는 자기비판이야말로 혁명의 정신이며 인간 존재에 대한 긍정이다. 반항하자. 반항을 통해 모든것의 의미를 반추해 가자. 흐르는 물결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훌훌 벗어던지고 뛰어들어보자. 좋으면 그냥 좋아하자. 숨기지 말고 드러내자. 두려워하지 말자. 나는 사람이다.

 

"사회주의는 노동자의 이름으로 독재를 행하는 훌륭한 사람들이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라는 것은 노동자의 자기 해방이 아니면 안 된다. 누구도 당신을 위해 사회주의를 가져다 줄 사람은 없다." - 로자 룩셈브루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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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5월 28일 일기

체육대회 날이다. 그놈의 선생들의 수업을 듣지 않는 것만으로 족한다. 날씨는 쾌청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하루 종일 멍청히 앉아있었다. 그뿐이다. 나는 멍청이다. 우리 반은 모든 경기에서 예선 탈락하고 그나마 본선에 올랐던 농구마저 어이없게 져버렸다. 말 그대로 하루 종일 멍청히 앉아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체육대회를 마치니 오후 네 시쯤 되었다. 씻고 어쩌고 하니 저녁 배식이라길래 저녁을 먹고 슬슬 연습중인 Z의 방에 가서 첼로 연주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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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5월 26일 일기

도대체 내가 할 줄 아는 게 뭔가 하는 회의를 느낀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어 여기저기 건드려 보지만 도대체 제대로 하는 것은 하나도 없고. 요즈음만 해도 그렇다. 문예 공모에 응모한답시고 기분만 우쭐해가지고 써 놓은 습작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으면서 ... 하긴 애초에 그런 류는 내게 어울리는 것 같지 않다.


몸이 별로 좋지 못하다. 감기 몸살 같은데 기침이 심하다. 학교에서는 추워서 몸을 떨고 졸음을 참느라 고통스럽다. 도대체 쉴 틈이 없다. 제길, 나는 고등학교에 다닌다.
 

S라는 녀석 정말 얄밉기도 하면서 동정이 가는 녀석이다. 정말 만화 같은데서나 나오는,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리고 오직 성공을 추구하려고만 하는 인물 같은 면이 있으면서, 이해하기 힘들게도 자기 자신에게 한없이 약한 녀석이다. 위태로워 보인다. 녀석의 중학교 생활을 대강 알 것 같다. 차라리 녀석이 자기 세계를 확고히 가질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G와 비슷한 면이 있어 더욱 녀석에게 관심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약함을 감추기 위해 강한 척 하는 모습, 위태롭다. 그래도 모두 멋진 녀석들이다. 그래, 그렇게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즐기며 살아라. S에게 마빈 해리스의 <문화의 수수께끼>를 빌려 읽고 있다. 정말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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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5월 24일 일기

밖에 나간 김에 내일이 M의 생일이라 지나가다 꽃집에 들러 장미꽃을 조금 샀다. 꽃다발을 만들어주는 누나가 정말 예뻤고 표정도 밝아보였다. 거기 있던 아저씨도 재미있고 유쾌했다. 꽃과 함께 있어서 마음들도 예뻐진 사람들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 S와 얘길 많이 했다. 축제 때 밴드 공연 끝나고 괜히 밴드 그만두고 기타도 팔아치운 것이 아쉽지 않았다. 이런저런 우리들의 분노를 분출하며 서로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해 주었다. 돌아와선 음악을 들었다. 참, C가 Wu-tang과 2Pac의 뮤직비디오를 더빙해 주겠다고 했다. 정말 고마웠다. M에게 장미꽃을 주었더니 참 좋아했다. 아, 의식이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일기를 쓰기 전엔 충만했던 감정들도 문장을 쓰려면 공중에서 흩어지고 생활의 리듬도 많이 깨져 있다. 마음을 가라앉히자. U2의 Joshua Tree를 들으며 몸도 마음도 좀 느긋해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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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5월 22일 일기

어젠 집에 비교적 일찍 갔다. 그래서 좀 시간에 여유가 생겨서 S에게 빌려온 뮤직비디오를 봤다. 물론 상태가 좀 조잡한, 무슨 영어회화 비디오 테입에다가 더빙한 것이었는데, 나도 몇 번 본 적이 있는 것들이었다. S의 동생이 좋아하는 것들이란다. 그걸 보면서 감동의 연속이었다. 비틀즈의 공연 메들리부터 게리 무어, 너바나, 앨라니스 모리셋, 그린데이(역시 논란의 여지가 다분하다. 그러나 틀림없이 멋지다), 심지어는 퍼블릭 에너미까지. 그러나 단연 최고였던 클립은 섹스 피스톨즈였다. 그들의 순수한 펑크는 한 가지 명제를 또다시 내 가슴에 공고히 한다. “Rock will never die.", 그리고 D.I.Y. ... 역시 전번에는 내가 마음이 약해졌던 거 같다. 스매싱펌킨즈를 어디 섹스 피스톨즈에 견주겠는가! 그들의 상업적 성공을 섹스 피스톨즈의 그것처럼 떳떳한 ‘부정 수입’(Filthy Lucre)이 될 수 없는 것이다. "Ha Ha Ha (매우 사디스트적인 목소리로) I am an anarchyist"

 

‘어제’와 ‘오늘’(혹은 ‘오늘’과 ‘내일’)을 이어주는 꿈이라는 풍경을 가진 잠이라는 다리를 건너지 않고 뜬눈으로 하룻밤을 보냈다. 며칠 전 K가 갑자기 같이 하자고 해서 며칠 동안 음악 믹싱하고 노래 만들었다. 그리고는 오랜만에 기차에 몸을 실었다. 어제 M과 얘기하면서도 J가 많이 생각났는데, 마침 기차에서 J를 만났다. 그렇게 완행열차의 찻간에서 출입구를 열어놓고 정말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1학년 때처럼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대화를 나눴다. 기분이 너무 풋풋하고 좋았다. J가 홍익회 손수레에서 오렌지를 사서 나눠주었다. 나는 먹지 않고 주머니에 불룩하게, 탐스러운 모양으로 넣어 두었다. 그냥 두면 상큼한 오렌지 향기가 내 몸에 조금씩 스밀 것 같았다. J와 나중엔 출입구 손잡이에 매달려 바람을 맞으며 왔다. 시원한 바람을 맞은 그 기분, 내가 진정 원하는 것, 이런 게 아닐까? 그렇게 그저 스쳐가며 설레이는 것들.

 

까페 ‘그 섬에 가고싶다’에 와 있다. 저물녘의 잔물결에 잔잔히 부서지는 햇살, 어디론가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을 본다. 창문 너머의 사람들은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는 듯하다. 나도 내 인생이 저물어갈 즈음에 저들처럼 어딘가 돌아가야 할 곳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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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5월 20일 일기

오늘은 교육청인지 어디선지 실시하는 자기지향평가 모의고사를 보는 날이다. 시험이라 ... 푸코의 <감시와처벌>을 엊그제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몇 쪽 안 읽었지만 읽다 보니 고3이 되고 나서는 거의 학교생활의 전제가 된 듯한 대입수능시험과 그를 준비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그 ‘시험’이란 것도 슬슬 속이 보이기 시작한다. 시험점수라고 하는 것은 분명 ‘길들이기’를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난 권력의 ‘개’가 싫으면서도 그렇게 되고자 하는 사람인 것이다. 토플러는 <권력이동>에서 ‘지식의 적용에 의한 권력이 고품질 권력’인 이유는 권력의 지배를 받는 자로 하여금 ‘알아서 기도록’ 하여 나아가서는 자신의 사고와 행동을 방향잡는 힘 즉, 자아를 지배논리에 일치시켜 저항의 여지가 없도록 만든다는데 있다고 하였다. 이건 정말인지 무서운 일이다. 좀 더 분명하게 안토니오 그람시는 ‘강제의 철갑을 두른 헤게모니’란 말로 민주국가를 정의한다. 그람시의 마르크스주의적 국가관은 사실 잘 모른다. 그의 저작 <옥중수고> 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충분히 호감이 가는 인물이다.

 

아침엔 작정을 하고 학교에 늦게 갔다. 7시 30분까지 등교이긴 하지만 시험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다 가고 난 뒤에는 잠시 음악을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가 사감선생이 나가고 조용해진 뒤에 옥상에 올라 담배 한 대 피우고 여유 있게 등교했다. 아이들은 조용히 자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험을 봤다. 아침에 시험에 대한 생각들을 하며 가뜩이나 무기력함에 빠져있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점심시간에 H와 심한 말다툼을 벌였다. 녀석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도를 넘는 과민반응을 보여 당황했고 화가 났다.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자괴감에 빠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그 무엇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지만 곁에 있던 S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같이 옥상에 올라가 얘기를 나눴다. 맑은 날씨에 따스한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니 가슴이 좀 탁 트이는 듯 했다. S는 아이들이 ‘자기 생각’이 없다고 했다. 백번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야인(野人)을 기대하기란 무리일 것이다. 지난번 L과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얘기했듯이 B고교라는 곳은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불행한 일이다. 우리 사회 전반이 그렇지만 이러한 교육기관에서 더욱 문제시되는 것이 토론문화가 정착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어떠한 담론이 형성되길 기대하는 건 더더욱 무리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답답한 점은 의사소통(communication)이 어렵다는 것이다. 친구사이에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해보려 했다가 상처만 받은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여하튼 그런 얘기들을 S와 나누다가 오후 시험시간을 맞았고 시험문제는 한 자 쳐다보지도 않고 80문제를 다 찍어버리고 자버렸다. 정말 답답하다. 생각해보면 만 2년이 넘은 나의 고교생활은 막연한 기대와, 오늘 느낀 것과 같은 환멸로 점철되어 온 것 같다. 나 역시 S의 말대로 우린 힘이 없기 때문에 억압당하는 것이고 우리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힘을 길러야, 즉 공부를 열심히 해서 ‘권력’을 가져야 한다고 쉽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그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죽도록 증오한다. 그런 증오 뒤에는 물론 자괴감이 수반된다. 나는 이런 식으로 정말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조금도 자유로워지지 못하고 나 자신을 파괴해 버리고 마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오직 한 가지 ‘모든 억압하는 것에 저항하라’ 이 말을 믿는다.

 

어제 H에게 받은 Smashing Pumpkins의 를 듣는다. 이들의 음악은 정말 충실한 얼터너티브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샌프란시스코 출신으로 너바나가 커트의 자살로 막을 내린 락 씬을 장악한 이들을, 머드허니 류의 시애틀 그런지의 범주에 넣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1960-70년대의 사이키델릭과 하드락의 전통을 충실히 보여주고 있는 이들의 음악은 훌륭한 얼터너티브 락이다. 이들의 음악에 마음이 가는 이유는 우선 사운드가 좋다. Rancid 같은 네오 펑크의 기수도 ‘그저 사운드가 좋으면 그만’이라고 하듯 사운드의 중요성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런지 락 보다는 깨끗한 사운드에, 부드럽고 감성적이다. 1995년작인  에 이르러서는 비틀즈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는 데뷔작인 만큼 록큰롤 밴드로서의 면모에 충실하려 한 면이 보여 마음에 든다. 불현듯 에 수록된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하드한 사운드의 곡의 한 소절이 생각난다. "Despite all my rage I'm still just a rat in a cage." 이들을 좀더 두고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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