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리반, 조금 더 힘을 내! 그리고 조약골 너도!

꼬뮨 현장에서 2011/05/25 02:54

난 밴드에 대한 욕심은 별로 없고 밴드 하나만 잘하면 좋겠는데 자꾸 여기저기서 밴드를 같이 하자고 한다.

즐겁고 좋은 일이다.

악어들이 이번 두리반 블루스 나잇 공연에 베이스 세션을 하자고해서 고심 끝에 그러겠다고 했다.

몇 번 연습을 같이 해보니 은근히 재밌다. 드러머 묵희도 결합하니 제법 괜찮다. 당분간 악어들이 두리반에서 공연을 많이 하는데, 그때마다 세션을 할 것 같다.

그래서 공연 일정이 심각하게 불어났다. 이번 주는 공연이 다섯번이다.

화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그리고 일요일. 거의 매일 공연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심지어 면도조차 제대로 할 시간이 없이 일을 한다.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다시 잠을 자는 순간까지 거의 쉬지 않고 일을 한다.

오늘도 피자매연대 일을 하느라 홈페이지 관리와 일정 조정, 달거리대 주문과 발송, 전화걸기 등의 작업을 오후 내내 하다 우체국에 가서 세 통의 우편물을 부친 후 두리반 라디오 방송을 위해 달려나갔다.

두리반 옥외방송 라디오는 51+를 전후로 약간의 침체기가 있었지만, 요즘은 다시 잘 굴러가고 있다.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모두 열의가 있어서, 엔지니어와 프로듀싱으로, 그리고 끼어들기 잘하는 디제이로 같이 일하는 나도 흥이 난다.

오늘 방송은 주플린과 잔반이 진행을 하면서 두리반 안종녀 위원장과 G20 쥐벽서 사건으로 유명해진 행위예술가 안티고네(ㅎㅎ) 그리고 두리반 라디오를 통해 대안 미디어 운동을 주목하려는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학생들이 함께 했다.

두리반 1층에 열 명 넘는 사람들이 라디오 방송에 참여했는데, 그중에는 지나가다 우연히 두리반에 와서 보고 엉겁결에 마이크를 잡고 방송에 참여하게 된 경우도 있다.

방송이 열려 있으니 참 좋다. 누구나 두리반으로 방송시간(오후 5시 30분 무렵)에 오면 참여할 수 있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은 인간인가 보다.

두리반 라디오 도중 내가 중간중간에 끼어드니까 그것을 참지못한 잔반과 주플린이 결국 내 마이크를 빼앗아버렸다.

이른바 나는 숙청을 당한 것이다.

앞으로 화요일 방송에서 이들은 나에게 마이크를 넘기지 않겠다고 하는데... 지켜볼 일이다ㅋㅋ

 

라디오 방송을 하다 급하게 섭섭해서 그런지의 공연을 하러 용산으로 떠났다.

진보의 합창 '나는 진보다' 행사에 섭섭해서 그런지가 초대를 받은 것이다.

지난 민주노총 주최의 5.18 문화제에서 천 명이 넘는 노동자들 앞에서 공연을 한 뒤로 섭섭해서 그런지의 멤버들(윤성일, 유채림, 정경섭, 김성섭)은 이제 웬만한 큰 무대에 서더라도 긴장하지 않게 됐다.

오늘 진보의 합창 행사도 사실은 작은 자리가 아니었다. 백 명이 넘는 인사들이 모였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편하게 치뤄냈다.

비교적 잘 소화한 기분이다.

섭섭해서 그런지 멤버들은 워낙 오랫동안 같이 농성을 해온 처지인지라 서로에 대한 여유와 믿음이 있다.

그래서인지 서로 호흡이 잘 맞는다.

서로 받쳐주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노래 한 곡, 한 곡에 집중한다.

두리반 농성 1년이던 2010년 12월 24일 '두리반 365 막개발을 멈춰라'에 처음으로 '개구장이' 한 곡을 연주하며 데뷔무대를 치른 섭섭해서 그런지는 2011년 51+에서 두 곡을 부르며 두 번째 무대를 잘 마쳤고, 세 번째 무대는 앞서말한 민주노총 5.18 문화제였다. 여기서는 세 곡을 연주했다. 이제 네 번째 무대까지 섭섭해서 그런지는 잘 끝마쳤다.

500일 넘는 절박한 철거농성 투쟁을 하면 누구나 강퍅해지기 쉽다.

오늘이 두리반 농성 515일째인데, 하루아침에 살던 생계터전을 빼앗기고 길거리로 내몰린 철거민이 목숨을 건 농성을 하면서 드럼을 배우고, 밴드를 결성해 같이 연대하는 활동가들과 외부 공연을 다닐 수 있다는 것이 참 감동적인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두리반이 이렇게 오랜 시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이곳을 함께 지켜온 수많은 사람들의 힘이지만, 그곳에는 역시 음악과 문화를 통해 연대하고, 공감하며 이를 투쟁의 힘으로 전화시킬 수 있었던 두리반 사람들이 있었다.

섭섭해서 그런지의 공연은 이런 두리반 사람들의 힘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그래서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멤버들은 신명나게 연주를 하고, 안종녀 위원장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응원을 해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 김나은

 

긴 하루가 끝날 무렵 섭섭해서 그런지의 공연을 마친 우리들은 두리반으로 다시 돌아와 김청승 감독의 '마이 스윗 홈 - 국가는 폭력이다'를 감상하고, 늦은 시간까지 다큐멘터리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특히 두리반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다큐멘터리에 대해서 말이다.

용산참사 현장에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들은 여러 편이 있다. 김청승 감독의 작품은 이들 다큐멘터리에서 다루지 않았던 용산 망루에 연대온 철거민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래서 역시 다른 다큐들과 마찬가지로 소중하다.

용산참사 현장에서는 유가족들, 용산4상공 철대위 식구들, 용산범대위 활동가들, 신부님과 수녀님들을 비롯한 종교인들, 그리고 시민들, 또 연대온 철거민들 등등 워낙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이들 모두를 하나의 다큐멘터리에서 주인공으로 다룰 수는 없다.

나 역시 용산에서 음반 작업을 하면서 이들 다양한 사람들의 일견 같으면서도 다른 목소리들을, 특히 전면에 나타나지 않았던, 또는 나타나지 못했던 목소리들을 드러내는데 신경을 많이 썼었다. 김청승 감독도 감독과의 대화에서 바로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는 자신의 다큐멘터리가 널리 상영되길 바란다면서 아예 두리반 라디오 방송용 노트북 컴퓨터에 "국가는 폭력이다" 다큐 원본 파일을 복사해주었다.

이제 이 다큐를 보고 싶은 사람은 두리반에 오면 파일을 복사해가거나 볼 수 있다. 참 멋진 일이다.

 

나는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짬짬히 블루스 음악을 계속 듣는다. 그리고 베이스 기타 연습도 꾸준히 하고 있다.
이번주는 공연이 다섯개다. 오늘 섭섭해서 그런지의 진보대합창 '나는 진보다' 공연 후에도 목요일에 한예종 '광주민중항쟁을 기억하는 음악회' 공연, 금요일 칼국수 음악회 블루스 나잇 공연, 토요일 성미산 마을축제 공연, 일요일 두리반 벼룩시장 공연이 줄줄이 예정돼 있다.

사실 미친 일정이다. (내 매니저가 되겠다고 한 사람들 다 어디 갔냐??)

강정마을이, 두물머리가 조금만 더 힘을 내 잘 견뎌주길 바라며, 나도 이곳 두리반 농성장이 감동적인 승리로 투쟁을 마무리할 때까지 벅찬 일정을 이겨내기 위해 조금 더 힘을 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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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5 02:54 2011/05/25 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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