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떠나간 자리

나의 화분 2011/06/28 04:27

안녕.

 
당신이 떠나간 빈 자리를 느끼며 편지를 씁니다.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요.
당신은 그곳에서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고 있겠죠.
 
한국의 상황도 어찌보면 참 어처구니가 없어요.
한진중공업 소식은 들었는지 모르겠어요.
오늘 정부가 기어이 공권력을 투입해서 파업 중이던 노동자들을 끌어냈고, 그 전에 한진 노조위원장은 노동자들 절대 다수가 반대하는데도 사측과 '현장으로 북귀한다'는 기만적인 합의문을 발표했어요.
그리고 이어서 공권력이 투입돼서 85호 크레인까지 밀고 들어가서 최후로 저항하던 노동자들을 모조리 끌어내려고 했는데, 목숨을 건 저항으로 지금은 크레인 아래 약 30명의 노동자들만이 남아서 김진숙 지도위원을 지키고 있고, 크레인에는 전기도 끊어져서 김지도가 힘든 상황이라고 해요.
하루종일 트위터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항의하고, 부산으로 내려가서 한진중공업 소식을 전했어요.
그래서 다행히 경찰특공대와 용역깡패들이 85호 크레인까지 폭력 침탈은 하지 못했는데, 아마도 내일 다시 저들의 공격이 이어질 것 같아서 불안한 상황이에요.
그래서 지켜보고 있어요.
 
게다가 나와는 2003년 이주노동자들이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농성을 시작하면서부터 알게 되어 여러 투쟁의 현장에서 만나며 친하게 지냈던 영상활동가 숲속 홍길동이라는 분이 며칠 전 자살을 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답니다.
현장에서 투쟁영상을 만들어서 매일 내보내는 활동을 했던 분인데, 너무나 심각한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목을 맸다고 해요.
정말이지 믿기 힘든 일이에요.
오늘은 그래서 영안실에 다녀왔어요.
 
내일은 두리반에서 마지막 행사인 대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여해요.
점거행동에 대해 주절주절 떠들어볼 생각입니다.
빈민들의 점거행동, 노동자들의 점거행동, 철거민들의 점거행동, 농민들의 점거행동, 잉여들의 점거행동, 예술스쾃 등등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으려고 해요.
대안적 꼬뮨을 만들고 그 안에서 모두가 서로를 차별하지 않고, 배려하면서 평등한 주인이 되는 꿈을 나는 이 고단한 현실에서 하나하나 이루려고 노력해왔는데, 그 과정에서 만난 동지들이 이렇게 하나씩 떠나가는 안타까운 상황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두리반 토론회가 끝나면 그래서 다시 시신이 안치돼 있는 녹색병원 영안실로 가려고 해요.
친구의 마지막 가는 길에 꽃 한 송이라고 들고 잘 가라고, 당신이 꿈꾸던 해방세상은 살아남은 자들이 계속 이뤄나가겠노라고 조그맣게 읊조려주려고요. 
 
태풍 '메아리'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처참해요.
두리반 텃밭에서 자라는 고추들이 많이 넘어져서 잘 자라라고 다시 일으켜 세워줬어요.
바람이 세게 불어서 내가 사는 집 주변 나무들 잔가지들이 마구 부러져 있고, 경북 왜관에서는 철교가 무너져 내렸어요.
상주보 앞의 둑도 무너져 내렸어요.
모두 4대강 사업을 속도전으로 밀어붙인 결과죠.
이놈의 자본가 정권은 모든 것을 그냥 힘과 이윤의 논리로 밀어붙이려고만 하네요.
끔찍해요.
 
누군가는 자살을 하고, 누군가는 정리해고를 철회하라며 30미터 크레인 위에 올라가 180일 동안 목숨을 걸고 저항을 하고 있는데, 거기에 폭력경찰을 투입해 끌어내리려고 하고, 또 온 산하가 무너져내리고 있답니다.
지금도 가까운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는 방사능 물질이 뿜어져 나오고 있고, 그게 세상을 온통 씻을 수 없을 정도로 오염시키고 있는데, 이 땅에서는 핵발전이라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괴물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새로운 길을 걸어가려는 움직임은 제대로 나타나지도 않고 있어요.
우울하고 비참한 소식들 뿐이죠.
 
희망이 뭔가, 그것이 있기나 한 것인가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안그래도 힘들텐데 더욱 힘들게 만드는 소식만 보내서 미안해요.
세상이 어떠하든 저는 자본가들에 맞서, 공권력의 폭력에 맞서 계속 점거하고, 저항하고, 생산하는 활동을 즐겁게, 신나게, 질기게 하려고 해요.
당신과 다시 만나게 될 그날을 손꼽아 기다려봅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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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8 04:27 2011/06/28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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