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 선생이 현충일에 쓴 옥중일기

평화가 무엇이냐 2012/06/12 19:07

체제 바깥에서 비로소 체제 내부의 폭력을 명확히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감옥으로 쫓겨난 평화활동가 송강호 박사는 우리 사회에 내재한 폭력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습니다.
서경식 선생이 디아스포라의 시선으로 사회의 차별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처럼, 송강호 박사는 추방당한 자의 시선에서 우리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제도적 폭력의 본질을 송두리째 드러냅니다. 그것은 바로 군대라는 제도의 존재 자체입니다. 우리에겐 일상화된 군사주의로 드러나고요.

송강호 선생이 현충일에 작성한 옥중일기를 읽어보세요. 권정생 선생이 우리 강정마을에도 계신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그가 하루빨리 강정마을의 품으로 돌아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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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6.6. (수) 현충일, 흐림

국가 공휴일이라고 백미가 나왔다. 재소자들은 특별한 날이라고 아침에 준 흰 쌀밥보다 그냥 평소에 먹는 보리밥을 더 좋아한다. 맛이 없기 때문이다. 달력에 나와 있는 빨간 날은 재소자들에게는 무료하고 쓸쓸한 날이다. 더구나 나처럼 TV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TV 소음을 피해 달아날 수도 없는 좁게 갇힌 공간에서 소음 공해에 하루 종일 시달린다. TV에서 그나마 챙겨 보는 것은 저녁에 한 시간 동안 나오는 뉴스다. 원래 12시에 방영된 것을 6 시간이나 늦게 틀어주고 KBS 아나운서들이 정부의 입맛에 맞추어 편집한 내용이라 정부의 잘못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도 없거나 사건의 전후 좌우를 뒤바꿔 보통 시민들은 도통 무슨 사건인지 이해할 수도 없는 3류 방송뉴스이긴 하지만 그것이 이 감옥에서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소식원이기 때문에 꼭 보고 있는데 공휴일에는 그것도 5분짜리 MBC 뉴스 단신으로 대치된다. 교도소의 재소자들은 공휴일에는 두 배로 징역을 산다는 말이 맞다.

나는 현충일에 메스꺼움을 느낀다. 더러운 정권이 자신을 감추기 위해 그리고 국가가 자신의 집단 이기주의를 애국심으로 치장하기 위해 희생된 국민들을 이용하는 날, 그들의 희생을 영웅시하여 또 다른 희생자들을 만들어낼 준비를 하는 날이라는 분노를 느낀다. 어느 나라나 자국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희생된 이들을 영웅시 한다. 천안함의 희생자들처럼 경계를 철저히 하지 못하여 패전한 장병들조차 영웅시하는 이유가 있다. 이들의 잘못을 비판하면 지금의 군부까지 다 책임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희생자의 유족들도 자기 가족과 자녀들의 죽음의 이유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무조건적으로 그들이 영웅시 되고 그에 따른 국가적인 보상과 재정적인 지원에 더 집착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나는 현충일이 한국 전쟁과 월남전에서 우리 군인들에 의해 희생당한 북한 주민들과 베트남 시민들의 죽음과 그 가족들의 슬픔도 함께 기억하는 그런 균형 잡힌 추념의 날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야 전몰자들을 영웅시하고 자국이 겪어야 했던 전쟁이 일방적으로 정의로웠다는 거짓된 신화로부터 깨어나고 전쟁과 폭력이 피아 모두에게 고통을 주는 인류의 공적임을 일깨워 줄 것이다. 또한 군대와 기지 모두를 반대하는 정신대 할머니들의 소원이 왜 현충일날 우리 모두에게 다시금 상기되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나는 현충일도 폐지하는 것이 낫고 국립 현충원도 단지 군인들만의 공동묘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왜 국립묘지에 전두환과 같이 우리 국민 수백 명을 죽인 독재자가 묻혀야 하고 전태일처럼 대한민국의 수 많은 노동자들에게 인권과 노동의 존귀함을 일깨운 사람은 묻힐 수 없는가? 군인들만이 국가유공자이고 애국자라는 이기적인 편견을 버리고 진정으로 우리 대한민국을 명예롭게 한 여러 분야의 유공자들을 묘지에 모시든지 아니면, 이것이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바지만, 국립묘지를 없애야 한다. 군인은 군인묘지에 묻히는 것이 옳다. 군대는 인류가 결국 없애 버려야 할 존재다. 전쟁 없는 세상은 인류의 간절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노예 제도도, 인종차별제도도 결국 사라졌다. 이제 다음 차례는 군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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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2 19:07 2012/06/12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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