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내 가슴

희망을 노래하라 2005/11/24 10:32
'우리의 노래는 총보다 강하다'를 만든 것이 지난 1월인가 2월 무렵이었다.
지율스님의 4차 단식이 한창 막바지에 이를 무렵이었고, 천성산을 관통하는 고속철도 터널을 뚫지 말라는 스님의 호소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던 시점이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여전히 KTX를 타고 다닌다.
 
그 노래를 지금까지는 기타로만 치면서 불렀다.
빵빵한 드럼과 베이스와 올갠과 피아노와 현란한 기타 솔로 등등의 반주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했었다.
나 혼자서 이것들을 다 연주할 수는 없고, 그렇다면 천상 밴드가 있어야 하는데, 내 주위에 밴드가 없었다.
음악적으로도 그리고 의식과 활동의 측면에서도 나와 잘맞는 그런 친구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음악의 지향이나 운동의 지향이 나와 어울릴 수 있는 사람들이 원래 거의 없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우리의 노래는 총보다 강하다'는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나 내가 원하는 본격적인 밴드의 모양이 갖춰진 후에야 녹음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 음악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그것은 곡의 분위기와 리듬 그리고 곡의 구조와 코드 진행 등을 넣어주기만 하면 자기가 알아서 원하는 악기의 반주를 만들어주는 그럼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유명 기타리스트의 애드립을 흉내낸 기타 솔로도 생산해내서 붙일 수가 있고, 유명 재즈 피아니스트의 선율도 따와서 붙일 수가 있다.
참 세상 많이 좋아진 셈이다.
 
이 프로그램을 하루가 넘도록 조작을 하면서 겨우 기본적인 내용을 습득하고, 바로 '우리의 노래는 총보다 강하다'의 반주를 만들어보았다.
베이스와 드럼과 기타와 피아노 그리고 중간 독주 부분에 섹소폰을 넣었다.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고, 또 대충 만들어서는 다른 음악 프로그램에서 잘잘한 수정을 가하고, 트랙 별로 녹음을 해서 믹싱을 하는 등 나름대로 상당한 심혈을 기울여서 반주 만들기에 성공했다!
보통 나는 음악을 만들거나 녹음을 하거나 할 때 늦은 새벽까지 작업을 하기 일쑤인데, 어떤 곡은 날이 밝아진 다음 아침에 들어보면 어두운 새벽에 들을 때와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이번 경우에는 밤이든 아침이든 낮이든 그런대로 들어줄만 했다.
 
다른 사람은 어떨까?
궁금했다.
대부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만든 반주이긴 했지만 그래도 나중에 내가 복잡한 수정을 많이 가했기에 그리 건조하거나 단순하거나 조잡하게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고 난 생각하고 있었다.
 
음악의 귀재, 초희에게 먼저 들려주었다.
분명히 그는 날카로운 지적을 해주리라.
초희는 한 번 듣더니 별 감흥이 없다는 듯,
 
"그거 프로그램으로 만든 반주 아냐...?"
 
딱 이 한 마디가 돌아왔다.
세상에.
가슴이 미어졌다.
며칠간 작업한 내 노력은 모두 헛수고였다는 말인가.
아무리 베이스와 드럼이 단순히 반복되어서 컴퓨터 프로그램 티가 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딱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있다는 말인가.
 
아, 초희는 원래 음악신동이니까 그렇다 치고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괜찮다고, 자연스럽다고 말해줄꺼야.
난 용기를 냈다.
수진감자와 고철에게 들려주었다.
이들에게는 이미 저간의 상황설명을 해준 뒤였다.
초희가 그렇게 말한 뒤로 난 사실 기분이 많이 '다운'되어 있었다고 말이다.
이번 토요일에 열리는 새만금 갯벌살판 준비를 위해 모인 자리였다.
 
고철이나 수진감자의 반응도 초희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처음 반주가 흘러나오자마자
 
"이건 너무 티나는 거 아냐?"
"누가 들어도 이건 컴퓨터 반주인지 딱 알아듣겠다."
"키보드에 입력되어 있는 반주패턴을 그대로 따온 것 같은데..?"
 
아, 무너지는 내 가슴이여.
이렇게 해서 '우리의 노래는 총보다 강하다'는 완전히 새로 처음부터 다시 작업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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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24 10:32 2005/11/24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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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초희 2005/11/24 12:00 Modify/Delete Reply

    그그그그그그랬구나;ㅁ;
    그런데 '감흥이 없'지는 않았어.

  2. 돕헤드 2005/11/24 15:03 Modify/Delete Reply

    치치치.

  3. 고철 2005/11/24 15:16 Modify/Delete Reply

    쩝.. 그래도 정정 하나... 수진감자가 아니라, 화숙씨였음. -.-;;

  4. 쪼인트 2005/11/24 17:19 Modify/Delete Reply

    내가 괜찮은 드러머 알고있는데 도와줄까요?

  5. 아침 2005/11/24 17:41 Modify/Delete Reply

    ktx타는거에 가슴이 무너진건 아니란거지??

  6. 돕헤드 2005/11/24 21:08 Modify/Delete Reply

    고철/ 아, 맞다. 화숙씨였지..
    쪼인트/ 도와준다면 언제든 고맙습니다. 괜찮은 드러머에 쪼인트의 기타라면 거의 환상이겠군요!!
    아침/ 나 모르게 타란 말얏!!!

  7. 쪼인트 2005/11/24 23:22 Modify/Delete Reply

    음원 좀 올려주세요 악보는 다운받았는데요!!! 그러고 날짜 잡죠. 라이브는 장담 못하지만 레코딩은 가능합니다... 저도 코드 맞줘서 리프도 함 생각해보고 솔로도 함 생각해보겠어요!!!!!! 저는 요새 거의 기타를 안 쳤어요 그래도 손가락으로,,, 핑거피킹 스타일로 약간 헐렁하지만 뻑쩍지근한 뉘앙스의 기타 사운드를 마음에 들어하고 잇어요 함 해볼께요!!!

    찍는 거 보다는 훨 낫지 않겠어요?!!!!


    간만에 재밌겠는데요!!!


  8. 돕헤드 2005/11/25 01:58 Modify/Delete Reply

    알겠습니다. 음원을 올릴께요. 들어보고 멋진 리프 부탁해요! 아무리 허접한 리프라도 찍는 거보다야 훨 낫겠죠.

  9. 매닉 2005/11/26 09:33 Modify/Delete Reply

    완존 뽕짝이네...(메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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