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원칙

나의 화분 2006/02/22 18:28
울진에서 돌아온 뒤로 정신없는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울진 가기 전에 미뤄둔 일들과 3월 초에 급작스레 포르투 알레그레로 여행을 가게 되어서 또 그 준비하느라고 오늘은 오전 10시부터 잠이 깨서 이메일 수십 통을 보내고, 연락을 기다리고, 정보를 찾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마음이 심난하다.
 
그러는 와중에 옆방 전쟁없는세상의 오영은이 자전거를 산다고 해서 같이 자전거 가게에 갔다.
괜찮은 자전거를 괜찮은 가격에 사고 즐거워하는 영은을 보니 마음이 약간 진정이 된다.
그럼에도 이 복잡함은 무엇인가?
내가 괜히 여행을 간다고 했나?
새만금도 그렇고, 천성산도 그렇고, 팽성도 그렇고, 피자매연대도 3월이 오면 커다란 개편을 해야 하는데, 그것들을 모두 내려놓고 어디 먼 곳을 간다는 것이 불편하다.
아마 몸이 그곳에 간 뒤에도 며칠 간은 마음은 이곳에 남겨두고 있게 될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그곳의 따뜻한 기후에 적응이 될 무렵 난 다시 이 소용돌이 속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을 것이다.
마음은 포르투 알레그레에 남겨둔 채 말이다.
 
내 마음에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는다.
무엇인가가 언제든 비집고 들어올 수 있도록 항상 공간을 남겨두었던 내가 요즘엔 그 어느 것을 위한 여지도 남겨두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난 지금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가?
왜 쫒기는 듯한 기분이 드는가?
울진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벌써 아득하게 느껴진다.
왠지 노래를 한참 동안 부르지 않았던 것 같다.
 
친구 하나가 날보고 '넌 무슨 책임감이 그렇게 투철하니?'라고 놀려댔다.
전화하거나 문자를 보내도 답도 별로 없고, 맨날 일만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난 순간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그러고보니 책임감이 강하다는 말은 내가 듣기 싫어하는 말이다.
 
난 쾌락원칙에 따라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모든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내 욕망이 아닌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은 하지 않으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같아지도록 무진 애를 쓰며 살아온 결과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해야 하는 일이 되었고, 해야 하는 일이 하고 싶은 일이 되지 않았나.
책임감 때문에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만을 하면서 살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런데 '책임감이 강하다'는 말이 왜 그렇게 불편하게 들리는 것일까?
빌어먹을 책임감은 저 푸른 죽변 바닷가에 던져버리지 않았던가?
이미 없어져버린 줄 알았던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의 간극이 아직은 생각보다 넓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쾌락원칙에 더 충실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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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22 18:28 2006/02/22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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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tego 2006/02/22 18:37 Modify/Delete Reply

    난 돕이 책임감있는 사람이어서 좋은걸. 난 예의 없는 사람과 책임감없는 사람들을 안좋아해. 그런사람들은 옆에 있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거든

  2. slowpeace 2006/02/22 18:55 Modify/Delete Reply

    쾌락원칙중 하나가 책임감 아닐까? 그래서 쾌락리 정말 즐겁고 아름다울 수 있지는 않을까? ^^;;;;; 나도 오늘 하루 돕이 자전거 사러 같이 가주고 얘기하고 해서 즐겁고 고마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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