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제와 군사주의

경계를 넘어 2004/11/29 11:22

 

 

얼마 전 일본에 다녀왔다.

5일 동안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일본에 간 이유는 일본의 아나키스트들, 자율주의자들, 특정 분파에 속해 있지 않는 독립적 좌파 등등이 주최한 반전집회와 데모에 결합하기 위함이었다.

 

그날은 11월 20일 토요일이었는데, 행사 장소는 하라주쿠 역 근처에 있는 어느 구립회관이었다. 나는 오전에 일찍 숙소를 나서 신주쿠 역에서 내렸는데, 신주쿠 역에서 현대판 일본의 모습을 본 뒤에 하라주쿠 역까지 걸어가서 집회에 참가할 요량이었다.

 

신주쿠에서 하라주쿠까지 걸어가다보면 명치신궁(明治神宮)이라는 곳이 나온다.

일본 근대화의 서막을 알린 명치천황을 기념해 만든 곳이라고 한다.

명치신궁도 일종의 신사(神社)인데, 도교처럼 콘크리트 건물이 빼곡히 들어찬 도시에서 신사는 숲과 나무가 우거져 있어 일종의 허파 역할을 한다.

특히 명치신궁은 내가 가본 다른 신사들에 비해 그 규모가 훨씬 더 웅장하고 장대했다.

 



그런데 원래 나는 그 명치신궁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일본 천황제가 나쁜 것이야 다 알고 있었고, 굳이 없는 시간을 쪼개서 그놈의 천황 모셔놓은 곳을 들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침반과 지도를 들고 제일 빠른 길을 골라 걷던 나는 명치신궁을 거쳐가야 더 빨리 하라주쿠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민고민하다가 입장료가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 명치신궁으로 들어섰는데...

 

처음부터 장난이 아니었다.

그 신사가 뿜어내는 웅장하고 장엄한 분위기가 개인들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조용하지만 그 속에는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함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한 발 한 발 그 넓디넓은 신사를 통과해 가면서 어느새 나는 까닭모를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두려움마저 불러 일으키는 남성적인 엄숙함과 감히 함부로 머리를 들 수 없도록 만드는 신성한 권위.

이것이 그 신사 안에 깃들어 있었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 천황을 향한 조아림이 느껴지고 있었다.

조그만 돌멩이 하나 하나에 권위에 대한 복종이 베어나오고 있었다.

 

아, 이것이 바로 천황제의 본질이구나!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파시즘이 시작된 것은 겨우 20세기 초반이지만 몇 천년의 역사를 가진 일본의 천황제야 말로 파시즘의 원형이었구나!

천황제는 일본인들로 하여금 일상 생활에서부터 상하관계를 유지시키고, 권위에 복종하는 마음을 자리잡도록 한 원흉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이 사실이구나!

 

아, 이미 죽어버린 천황이 나도 모르게 머리를 숙이도록 만들 정도라면 말 다하지 않았나.

눈물은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 이후 현인신으로서의 천황의 권위가 되살아나고, 곧이어 천황의 군대를 만들었다.

이 천황의 군대가 아시아와 세계를 침략하여 죽인 사람들은 또 얼마인가.

몇 천만 명에 이르지 아니한가.

천황이 가진 신성한 힘이 일본을 지켜줄 것이라는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 자신의 목숨을 투하한 가미가제(神風)들은 또 얼마였던가.

 

이 모든 것들은 천황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찌의 머리꼭대기에 히틀러가 있었던 것처럼, 천황제의 꼭대기에 천황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아직도(!) 앉아 있는 것이다.

새해가 되면 천황의 온화한 미소를 보기 위해 몰려드는 일본인들.

자신도 모르게 상관의 말에 복종하고, 권위에 움츠려드는 일본인들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는 아직도 천황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천황을 중심으로 일본인 모두가 일사분란한 대오가 되어 합심하고 단결하여 마침내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의 폐허를 딛고 고도의 경제성상을 이룩할 수 있었다.

천황에게 머리를 조아리듯 가정에서는 작은 천황 아버지에게 머리를 조아렸고, 학교에서는 작은 천황 교장에게 복종을 다짐했으며, 직장에서는 작은 천황 사장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랐던 것이다.

만화로 배우는 진짜 일본 역사 '천황을 알아야 일본이 보인다(세계인 刊)'를 보면 이 점을 더 생생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도 이런 천황제가, 일본처럼 제도로 남아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남아 횡행하고 있다.

일본의 천황제가 일본인들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얼마나 훌륭한 제도였는지 알아챈 사람은 맥아더뿐만이 아니었다.

(맥아더는 전후 일본을 통치하기 위해서는 구심점이 필요하다고 보고 첫번째 전범인 천황을 그대로 살려두었다.)

천황의 군대에서 장교로 임관한 박정희 역시 그 점을 매우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스스로 천황의 자리에 오르기로 결심한다.

못사는 한국을 발전시키려면 최고 통치자를 정점으로 모든 국민이 피라미드 형태로 배열되어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박정희 통치 아래 한국에서 충성과 복종은 최고의 가치가 되었다.

윗사람에 대한 존경심과 두려움을 불러 일으키도록 매일같이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고, 애국조회를 하고, 교장의 훈시를 경청하고, 태극기를 바라보며 교과서를 읽었다.

모두 일본에서는 천황제 군대에서나 하던 일들이다. 

 

일본에서 천황이 마음 속 깊은 곳에 남아있다면 그것을 뒤늦게 수입한 한국에서는 아직도 제도로 당당히 남아있는 것이다.

 

명치신궁에 들어선 내가 알 수 없는 눈물을 쏟으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바로 한국식 위계질서의 원형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일본과 한국이 이런 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정말 슬펐다.

 

일본에서는 상징으로 남아있는 천황제를 없애기 위해 많은 친구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물론 대다수의 일본 사람들은 천황제를 없애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 폐해가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한국에서 천황제의 폐해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곳은 군대다.

모든 사람이 평등해야 하는 민주주의와는 절대로 양립할 수 없는 곳이 바로 군대이다.

그런 군대의 가치가 한국사회에 만연하고 있다.

이것을 사람들은 군사주의라고 부른다.

 

한국인들의 일상생활에 뿌리박혀 있는 군사주의를 없애기 위해 우리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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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29 11:22 2004/11/29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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