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누를 만나다

떠남과 돌아옴 2010/02/17 23:09

미누를 만났다.

포카라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었지만 미누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곳으로 간다는 것이 낯설지 않았던 것 같다.

설레는 길.

그는 잘 지낼까.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 잘 견디고 있을까.

남산 아래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너무나 그리워해 행여 마음의 병이나 얻진 않았을까.

모든 것이 궁금했다.

한편으론 그를 직접 만난다는 사실이 아직 믿기지 않았다.

쫓겨난 친구.

하지만 한국과 네팔의 물리적 거리가 멀다고 해서 마음의 거리마저 멀어지면 안되겠다 싶었다.

사실 미안하다고, 누굴 대신해서가 아니라 그냥 용서를 빌고 싶었다.

그런 모진 시련을 당할 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나도 무척이나 마음이 아팠다고 말해주고 싶었고, 그래서 더욱 만나고 싶었다.

 

친한 친구를 이렇게 멀리 내쫓아버린 이놈의 국가에 대해 나는 여전히 조금도 용서할 마음이 없다.

인간의 유통기한을 맘대로 정해놓고, 끝난 사람은 멋대로 폐기해버리는 나라.

인간을 사냥하듯 잡아다 머나먼 곳으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던져버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잘도 돌아가는 체제에 나는 온힘을 다해 제동을 걸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야만적인 강제추방으로도 우리의 끈끈한 연대를 갈라놓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미누를 만나러 가는 길이 그와 나를 아프게 만들었던 폭력의 기억을 깨끗이 지워버리는 여정이 되길 바랬다.

무엇보다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마지막 날 트렉킹을 약간 일찍 마치고 포카라 시내로 돌아온 것이 오후 3시 무렵이었을 것이다.

미누와 만나 저녁을 같이 먹기로 약속을 잡아두었다.

그 사이 나는 편지도 부치고, 빨래도 하고, 오랜만에 샤워도 좀 하고 싶었다.

그런 계획은 숙소에 보관해두었던 휴대전화기가 분실되었다는 것을 알고 엉망이 되었다.

누군가 가져간 것이다.

 

인천공항을 출국하면서 전화기를 두고 갈까 가져 갈까 고민이 많았는데, 일단 가져가 보기로 했었다.

출국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못다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혹시 받지 못한 전화가 몇 통 있었기 때문에, 로밍을 해서라도 몇 군데 연락은 해줘야지 싶었다.

용산참사 장례식이 끝나고, 1년 가까이 그 전화기 화면에 적어두었던 문구 "용산참사 해결하라"를 "가자, 네팔로!"라고 변경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라도 나는 전화기를 켤 때마다 그 문구를 보며 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그 전화기를 네팔에서 잃어버리고 말았다. 

네팔로 가고 싶다는 전화기의 소망은 이뤄진 셈이다.

누구 손에 쥐어지든, 아니면 해체되든 네팔 어느 동네에서 잘 지내고 있기를 바라며, 자꾸만 미련이 생기는 마음을 다잡아보기로 했다.

너라도 네팔에 살게 되었으니 좋은 일 아니냐며 자신을 위로하면서 말이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짐더미를 뒤지며 전화기를 마지막으로 찾고 있던 중, 문득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역시나 일을 마치고 산에서 좀 일찍 내려온 미누가 우리가 묵고 있던 숙소로 찾아온 것이다.

그의 낭랑한 목소리.

약간은 탔지만 여전히 상냥한 얼굴.

다부진 몸매.

부드럽지만 힘있는 손.

그였다.

반가워서 와락 안았다.

 

다행히 그는 잘 지내고 있다.

여러 프로젝트들을 하면서 바쁘게 지내는 것 같다.

혹시나 했던 걱정이 사라진다.

추방되면서 미처 챙기지 못했던 그의 짐을 디온이 가방 하나에 담아 정성스럽게 챙겨주었다.

나는 네팔에서는 바다가 멀어 해산물이 귀하다는 말을 듣고, 미누가 먹고 싶어할지도 모르는 미역과 김과 그밖에 라면 같은 것들 그리고 음반도 몇 장 넘어서 한아름 미누에게 안겨주었다.

디디와 무나와 함께 둘러앉아 네팔 음식과 한국 음식과 술을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날 공연이 있었는데, 깜빡 잊고 목장갑을 안가져갔어요.

노래할 때 목장갑을 끼지 않으면 왠지 노래가 잘 나오지 않아요.

그날도 노래가 잘 안되는 거에요.

어느새 우리는 미누의 환상적이고 열정적인 무대에 빠져든 관객들 같았다.

함께 손을 들고 스탑!스탑!스탑! 크랙다운! 이라고 외치면서 말이다.

 

한국의 어느 주점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미누가 몸도 마음도 건강하다는 것을 느꼈다.

참 다행이었다.

 

미누는 우리를 위해 이틀의 일정을 비워두고 있었다.

바쁜 와중에 이틀이라는 시간을 비운다는 것이 그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운이 나쁘게도 우리들 스케줄이 맞지 않아서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 있지 못했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나마 밀린 회포를 풀었다.

여운이 많이 남는 밤이었다.

네팔에 이렇게 좋은 친구가 있으니 언제고 다시 와야겠다.

마침 2011년은 네팔 방문의 해라고 한다.

내년에 다시 오겠다고 다짐을 한다.

그때까지, 미누야, 그리고 네팔에서 내가 만난 모든 정겨운 친구들아, 안녕.

나는 이제 인도 바라나시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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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7 23:09 2010/02/17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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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나 2010/03/10 10:12 Modify/Delete Reply

    트레킹할때 남은 컵라면 두 개를 맛있게 먹던 민우...
    돕 니 지메일로 내 핸펀에 있는 사진 몇 개 보냈도다.
    너도 사진좀 정리해서 보내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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