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회에 대하여

평화가 무엇이냐 2005/02/01 14:37
아래 글에서 제가 쓴 '우회'라는 말에 대해 더 설명해야 할 것 같네요. 제가 '요즘 우회하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을 때 저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용하는 수단 같은 것'이라는 뜻으로 우회를 사용한 것이 분명히 아니에요. 저는 '비폭력, 평화, 채식주의, 가난한 삶, 걷기'의 길이 그 자체로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는 길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목적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기에 우회는 없겠지만 또한 목적이 없기 때문에 마냥 우회인지도 모르겠어요. 일반적으로 어떤 목적을 세우면 달려들기 마련인 제게 목적이 없다는 말은 '이기겠다는 목적을 갖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긴다는 것은 내가 누굴 꺾고 승자가 된다는 것인데, 사실 이긴다는 것을 상정한 순간부터 비폭력, 평화, 채식주의, 가난한삶, 걷기는 불가능해진다고 저는 보거든요. 이기는 것이 목적이 되면 이와 같은 소중한 가치들은 돌보지 않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목적이 없이 흘러간다는 뜻에서 '우회'라고 표현한 것 같아요. 그리고보니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정의와는 약간 또는 매우 다르네요. 이기겠다는 목적은 갖지 않지만 그렇다고 제 삶에서 방향이 없는 것은 아니죠. 무카이 꼬오라는 분이 말했던 것인데, '져도 져도 지지 않는다'의 길을 저는 스스로 걷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우회라는 것도 지지 않기 위해 길을 걷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거든요. '적'이 나타났을 때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그냥 피해버리는 것이 일단 우회의 시작이에요. 하지만 좀더 그 우회의 길을 좀더 걷다보면 아예 적이 나타날 길로는 걷지 않게 되죠. 그런 길로 흘러들어가는 것이 제게는 방향이고요, 적이라는 존재 자체가 사라진 길을 추구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처음에는 적을 상정해서 우회를 하게 되지만 좀 지나면 아예 적을 상정하지 않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제대로된 우회의 길을 닦고 싶은 것이랍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
2005/02/01 14:37 2005/02/01 14:37
tags :
Trackback 1 : Comments 3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dopehead/trackback/89

  1. Tracked from 2005/02/01 16:52 DELETE

    Subject: 혼자 가는 길이 아니라면

    * 이 글은 돕헤드님의 [우회에 대하여] 를 읽고 남기는 글입니다 * 함께 고민해보고 싶은 생각에 짧은 몇 마디와 함께 글 남겨둡니다. 저도 작년에 한창 전범민중재판운동을 하다가 비슷한 고
  1. hi 2005/02/01 15:02 Modify/Delete Reply

    지난번 글에서, 아마 조언을 주셨던 분이 하신 말씀 같은데. "어차피 길거리 음악을 하겠다면 제일 중요한 것은 걸러지지 않은, 정제되지 않은 치열함이지 무엇이 올바른 것인가 고민하며 수십 번 고치고 고친 신중함은 길거리 음악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저는 이 말을 100% 신뢰하지 않습니다. 이건 자신의 미숙함을 감추는 수사에 불과하거든요. '정제되지 않은 치열함'이 감수성을 자극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극된 감수성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2. hi 2005/02/01 15:07 Modify/Delete Reply

    예전에 롹을 하던 제 아는 동생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뜨지 않으면 다 언더냐??" 전 그 말에 동의합니다. 마찬가지로 정제되지 않는 것이 길거리표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심히 동의하지 않구요. 님이 말씀하신 바 '우회'라는 것이 제가 생각했던 우회와는 다른 의미였다고 하더라도 말씀이죠. 제대로 된 '우회의 길'이 뭘지 궁금해집니다.

  3. 돕헤드 2005/02/02 11:34 Modify/Delete Reply

    행인님의 말씀에 저도 동감합니다.
    미숙함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언더인 척, 과격한 척 하는 것은 참 우습지요.

Writ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