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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흑소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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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가시노 게이고의 흑소소설, 말 그대로 블랙 유머 소설이다.
저번에 헌책방에서 사둔 것인데, 그 동안 쳐박아 두었다가 이번에 읽게 되었다.
소감은? 앞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도 혹시 헌책방에 있으면 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재미 있었다. 괜히 블랙 유머 소설이라고 한 것이 아니다.
 
블랙유머라고 하지만, 현실에서 있음직한 얘기들이다. 그래서 나오는 웃음이 조금은 씁쓸하다. 우리 안에 있는 가식, 허영심, 모순, 욕망이 드러난다고나 할까.
 
하나씩 보자.
<최종심사>, <불꽃놀이>, <과거의 사람>, <심사위원>은 연작은 아니지만, 등장인물 등이 연결된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상이나 감투 등에 대한 욕망과 이를 둘러싼 가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문학상을 받고 싶고, 문인들과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싶지만, 이를 밖으로 표현하지는 못하고, 그런 기색이 보여져서도 안 된다. 내가 '이런 사람'인데 왜 나를 알아주지 않는 건가 하는 안타까움이 인간군상들 사이에 보인다. 이 중에서 <심사위원>의 반전이 최고다. 내가 사무카와와 같은 취급을 받는다면? 생각하기도 싫다. <과거의 사람>은 바로 직전의 수상자조차 과거의 사람이므로 제대로 취급을 할 필요가 없다는 세상의 진실을 보여준다. 이 <과거의 사람>이 제일 인상 깊었다.
 
<거대유방 망상증후군>의 주인공이 가진 딜레마에 빠진다는 나는 어떻게 할까. 그러니까 환각작용이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어 거대유방을 보고 싶다는 열망은 여전한데, 약이 상식적인 범위로 욕망을 제한시켰다. 그로 인해 여성의 가슴이 모두 거대유방으로 보이는 것이다. 여성의 가슴을 ABCD컵으로 구분할 때 모두 다 D컵 이상으로 크게 보이는 환상이 보인다. 하지만 직접 닿기라도 하게 되면 환각은 사라진다. 여친이 거유가 아니면 달콤한 꿈도 끝이다.
 
여친이 결혼할지에 대해 대답을 요구하자 주인공은 고민한다. 속생각, '일단 가슴을 만지고 나서 대답하면 안 될까?' 그런데 그렇게 거유가 중요한 조건인 걸까.
 
비아그라와는 정 반대로 성기능을 약화시키는 약 <임포그라>가 개발되었다면 그런 약을 어디에 쓸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그 약을 필요한 사람이 많았다. 가장 크게는 남편의 외도를 막을 수 있는 획기적인 약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굉장한 수익을 거둘 것이라 생각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판매량이 줄어들었다. 바로 플라시보 효과 때문이었다. 주인공 자신 또한 애인과 잘 해보려는 순간 아내가 약을 먹였다는 말에 바로 물건에 힘이 빠진다. 그게 약 때문인지 플라시보 효과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여기에서 저자는 "이 세상에 남자처럼 연약한 동물이 어디 있으랴" 하면서 끝을 맺지만, 임포그라가 나오게 된 것도 바로 남자가 권력을 가지고 있고, 여자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시력100.0>에서처럼 시력이 그렇게 좋아지면 남이 보지 못하는 미세한 연기나 먼지를 보는 것으로 그칠까. 이건 별로.
 
<사랑가득스프레이>의 반전도 절로 킥킥대게 했다. 아무리 기를 써도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에게 사랑가득스프레이를 주입하지만 효과가 없다. 대신 그의 MHC(주요조직적합 유전자복합체)를 이용하여 '사랑끝스프레이'를 개발한다는 거. 설마 내가 그런 사람은 아니겠지.
 
<신데렐라 백야행>은 기존의 신데렐라 이야기를 현실성 있게 바꾸었다. 착한 요정의 도움으로 - 비비디 바비디 부 - 왕자비가 된 것이 아니라 신데렐라가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신데렐라처럼 하면 왕자비 된다' 하는 비법이 있다는 거.
 
여친에게 차였지만, 그녀에게 요구받는 것은 바로 스토커다.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면 스토커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이동경로는 물론, 생리주기까지 알아야 하고 계속 감시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어야 하고, 심지어 그녀 집에서 나온 쓰레기봉투까지 뒤져야 한다. <스토커 입문>은 과연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하긴 사랑을 쟁취하고자 한다면 그 정도로 집요하고 적극적이야 하는 거겠지. 나는 과연 그러한가. 그런 대상이 없어서 그러하지 못한 것일까.
 
"스토커란 말이지, 집념의 화신이 되어야 해. 그런데 심심하다는 게 말이 돼? 기왕에 스토커가 되기로 했으면 좀 더 성의를 보여. 어정쩡하게 하면 가만두지 않을거야!" 그야말로 블랙 유머의 진수다.
 
<임계가족>에 나오는 가와시마 데쓰야는 나름대로 애니메이션이라는 게 상품을 팔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사실을 통찰하고 있으며, 여기에 저항하려 한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은 가족과 주위 이웃들 때문에 실패하게 되고, 결국은 장난감 회사에 의해 '임계가족' 취급을 받는다. 그의 가족이 구입하면 살 사람은 다 샀다고 봐야 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가끔씩 내가 그런 처지에 있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 자본주의가 참 대단하다고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웃지 않는 남자>는 블랙 유머이긴 한데, 정말 썰렁한...
<기족의 사진 한 장>도 이게 무슨 유머인가 싶고... 다른 식의 이야기 전개를 기대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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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8 04:42 2009/06/18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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