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팝니다

잡기장
토요일 이랜드 총력집회를 갔다가 2명의 조합원을 만났다. IT노동자에겐 주말이 따로 없어서 토요일 오후 집회지만 모일 수 있는 사람은 이정도. 건대에 왔다가 간 사람도 있고.

노조 사람들과 얘기할때 지각생은 대체로 딴 세상 사람이다. 단체 상근 활동하는 IT노동자로서 파견, 고용안정, 구속 등의 문제에 대한 감성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야근은 기본이고 주말에도 대부분 일하는 IT노동자들이 어렵게 한자리에 모이면, 서로 사는 이야기, 현실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얘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노조 운영에 대한 얘기도 모였을때 왕창 하는편이고 이런 저런 세상 얘기하다보면 어느새 새벽이 되고,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고 아침 일찍 출근하기 위해 어떻게든 집에 들어가야 한다. 이런 가운데서 "문화부"가 할 게 뭘까. 문화부랍시고 하는건 대체로 혼자 '즐기는'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고, 다른 사람들이 맡은 일이 대개 지금 노조 상황에선 시급하게 느껴져서 그걸 돕는게 낫다. 물론 그걸 강요하지 않고, 실제로 내가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나마 스스로 어떤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계속 딴 얘기를 한다거나, 다른 관점을 얘기해서 논의를 조금더 풍부하게 하는 것이다. 오바 재롱을 부리며 적절히 분위기를 업시키는 것도 내가 스스로 하는 역할 중 하나다. 물론 거의 나만 업되는 경우가 많긴 하다. 대신 그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오랫만에 만났고, 투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시점에서 그것만 갖고도 할 얘기가 적진 않으니까. 그래서 처음에는 보통 조용히 듣기만 하고 슬슬 때가 됐다 싶으면 다른 화제를 던지거나 분위기를 바꾸는 작업에 들어간다. 그런데 토요일에는 화제가 금방 나에 대한 얘기로 돌아왔다.

그럴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금 어떤 상황인가. 누구 표현대로 "한국에서 좀처럼 만들어지기 어려운, 브라질에서 볼 법한" 색으로 얼굴과 팔이 변색되어 있고, 팔에는 온통 생채기가 가득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에코캠프+살살페 얘길 꺼내기 시작하면, 그저 신기해하는 사람들과 다시 얼굴에 행복이 가득해져 침튀기며 떠들고 있는 지각생을 상상할 수 있을터. 그 얘기가 끝나니 묻는다. "일자리 구한다면서요. 어케 되고 있어요?" 흠.. 이제 본격적으로 구해야죠. 모든 걸 제쳐놓고 에코캠프에 빠져들었는데, 이제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 통장 잔고는 계속 5만원 아래도 유지되고 있는데 폰 요금도, 교통카드도 낼 수 없는 상황. 지금 괴로운 것보다, 하고 싶은게 점점 많아지고 구체화되고 있는데 이래저래 내가 위축될 것이 더 문제다.

일자리. 구해야지. 그런데 막막하다. 3년전, 앞으로 어느 단체던 상근활동하며 살아야지 하고 생각했을때, 내가 원했던 것은 돈은 적어도 좋다, 어케든 생계만 유지하고 내가 하는 일이 스스로 즐겁고 누군가를 이롭게 하며, 그 자체로 존중받고 사랑받고 싶다, 는 것이었다. 일반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면 어떻게 하던 그런 것을 많이 포기해야할 것을 알고 있다.

일자리를 구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알바야 이것저것 계속 했고, 일단 시작하면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는데 처음 들어갈때가 항상 어려웠다. 낯을 가려서가 아니다. 지각생은 누구와도 서슴치 않게 말을 시작하는 편. 그것보다 첫 접촉 이후 생성되는 긴장, 서로가 서로를 파악하려 하고, 자신을 포장하려 하고 초기에 기세를 잡기 위해 하는 온갖 유무형의 행동들. 그리고 스스로 느끼는 압박감과 위축. 나를 있는 그대로 내세우자니 평소에 비관적인지라 잘하는게 뭐가 있더라 싶고,난 뭐 이러냐 그러기도 하고. 괜히 죄의식을 느끼기도 하면서 알아서 설설 기고, 같은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을 은근히 탐색하고 경쟁하려하는... 여튼 일자리를 구하는 초기 행동이 도무지 전혀 맘에 들지 않는다. 아.. 그냥 일단 일하게 해줘바. 잘할건데. 꼭 이런 걸 해야돼?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 뭐가 담길 수 있지. 첫 면접으로 어떻게 날 알 수 있지. 내가 느끼는 구직과정은 "불신의 바다를 오버로 헤쳐나가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그래서 어느 단체에 들어가 적당히 자원활동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잘 어울릴 수 있다고 판단되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일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래서 처음에 한 환경단체에 자원활동을 시작했는데, "환경을 살리기 위해 봉투붙이는 것이라도 하겠노라"했지만 사실 처음부터 "할 수 있다면 상근하고파"하는 심정이었다. 돈이야 언제나 쪼들렸으니. 진보넷도 관심이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거랑 가장 잘 맞는 단체다 싶었으니까. 그런데 너무 위축된 상태에서 오버해서 정성을 담아 메일을 보냈던 탓인지 잘 안됐고, 그 환경단체에서 상근하는 것도 어렵겠다 싶어 다시 근로기준 위반 알바의 세계로 들어갔다. 우연히 노동넷이 내 시야에 들어왔는데 (KLDP에 활동가 구인광고를 냈다가 터무니없는 임금이라고 거기서 엄청 논란이 된 바람에 알게됐다) 여기가 내가 바라는 형태로 됐다. 자원활동을 하며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거기서 뭐가 필요한지 알게 됐고, 몇달동안 함께 시간을 보낸 후 정식으로 상근활동을 하게 됐다. 서로를 충분히 알만한 시간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사실 1년은 함께 있어야 정말 어느정도 "안다"고 할 수 있겠다.


정보통신노동자가 호혜적으로 활동하며 안정적으로 생활하는 모델을 만드는 건 지금까지는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정보통신활동은 그 역할의 중요성과 의미, 모든 사람에게 퍼져 나가고 공유되는 특성에도 불구하고 "피드백"의 부족으로 다들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동체 문화가 깨지고 활동 단체들부터 벽을 높이고 단절되서 살아가는 경향이 강화될수록 정보통신활동이나 여타 비주류활동은 설 자리가 좁아질 것이다. 노동넷 재정이 파탄난 것은 운동사회 특히 노동계가 힘을 모아 책임질 만한 면이 있다고 생각되지만 그럴 가능성은 보이지 않고, 결국 스스로 살 길을 찾고, 그 안에서도 살 길을 찾기 위해 나처럼 조직을 빠져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든 최소한의 생계 유지를 위한 활동비가 나올때는 그 안에서 부대끼면서 어떻게든 해보려 했지만 이젠 지난일이다.

다른 단체로 들어가 다시 새롭게 활동을 시작하는 것도 항상 고려했던 가능성이다. 하지만 사실 어디 가나 마찬가지일 것 같다. 어떻게든 쥐어짜내서 한동안은 버틴다 해도 뭔가 새로운 모델을 만들지 않으면 결국엔 버티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일단 어떻게든 홀로서기를 해보려고 하는데 실험을 위한 자금이 필요하다. 한 1~2년 정도 세상이 어케 되던 잠시 냅두고 돈을 좀 벌어놓고, 그래서 좀 버틸만한 여력을 쌓아놓고 다시 돌아오는게 차라리 낫겠다 싶다. 또 IT노조 활동을 좀 더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 마음에 "현장 활동"을 한다는 환상을 갖고 있기도 하다. "어차피 잠시 스쳐갈 뿐"인 마음으로 임했던 그 알바들과, 단체 상근 활동 말고, 보고 듣기만 했던 "일반적인 노동자의 삶"을 직접 겪어보려는 것이다.

얘기가 샜다. -_- 계속하면,
또 막막한 이유가 뭐냐면, IT노조 활동때문이다. KLDP등 IT커뮤니티만 알고 있을때는 사람들이 힘들다 힘들다 해도 그게 얼마나 힘든건지 실감하지 못했다. 그런 곳에 있다보면 IT기술이 주는 느낌, 변화와 혁명의 분위기, 세상과 동떨어져 그것을 움직이는 사람 중 하나, 전문가주의 여타 그런 다양한 것들이 어떤 막연한 환상을 형성하고, 그것이 많은 IT인들에게 공유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IT인들이 스스로를 "IT노동자"로 인식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상황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정말 실제로 얼마나 그런 것이 만연한지, 문제는 "내"가 아니라 이 사회구조라는 것, 내가 부족해서 이런 어려움을 느끼는게 아니라 실제로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나도 그랬다.

하지만 내가 IT노조에 있으며 보고 듣는 얘기란, IT란 허울 좋은 이 바닥이 얼마나 황폐한지, 얼마나 사람들이 빼앗기고 고통받고 있는지 하는 것이다. 고소득을 올리는 일부의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그리고 그런 사람도 임금 외에 나머지 노동조건들은)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권리를 대부분 찾지 못하고 있다. 밥먹듯 야근하는 것은 기본이고, 주말에도 일하는 것도 너무나 흔하다. 그러면서 연장근로수당, 휴일수당을 챙겨 받는 IT노동자는 거의 없다. IT산업은 "비정규노동 천국:이라 불릴 정도로 구조적으로 뒤틀려 있다. 흔히 "SI"라고 말하는 형태로 많은 개발자들이 이곳저곳에 파견돼서 일하는데 그러면서 정당한 노동조건을 보장받지 못하고, 정부-대기업으로 시작해 내려오는 줄줄이 하도급 구조에서 영세 업체에서 일하는 IT노동자는 죽도록 일만해주고 거의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게 비일비재다. 해고투를 했던 한 조합원이 근로감독관에게 "당신들 IT노동자들은 참 바보요. 아니 어떻게 이렇게 일하고 있었어" 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얼마전에 모 포탈에서 "IT노동자의 야근을 없애주세요"란 청원이 있었는데, 그 즈음에 약간 바람을 타서 IT노동자의 현실이 조금 가시화되긴 했다.

IT노조가 만들어진지 벌써 3년이 됐는데 아직 조합원도 많지 않고, 잘 알려져 있지도 않다. 지금 사회에서 IT노동자들이 단결했을때 그 사회적 파장은 정말 적지 않을텐데. 많은 걸 할 수 있고, 지금도 필요한 부분이 많은데 하는 생각에 아쉽다.
인터넷 실명제, 통신비밀보호법 개악(휴대폰/인터넷 감시감청 강화), 생체(전자)여권 등 한국 사회는 지배층에 의해 급격히 감시 사회로 가고 있는데 그런 감시 시스템을 만드는데 실제로 참여하는 사람들이 IT노동자들 아닌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IT노동자들이 스스로 어떤 관점을 갖고 생각을 말하고 행동을 하는게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럴 수 있는 역량이 흩어져 있고,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다.

쓰다보니 신변잡기 글에서 갑자기 주장 글이 되고 있는걸 느끼는데 -_-;;
여튼, IT산업의 어두운면을 계속 보고 들어온, 그리고 그것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자 하는 사람이 다시 그 바닥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니 깝깝하다는 말. 좀더 포스가 있는 활동가라면 "굳은 결의"를 다지고 거침없이 들어갈지 모르지만 난 그런 사람은 아니다. 난 여전히 내가 실제로 뭔가 하기 전에는, 행위하기 전에는 스스로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또 그렇게만이 실제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하지만 날 팔겠다고 내놓아야되는 때가 오니 "잘 모르는, 알 수 없는, 규정하기 싫은" 나를 안답시고 규정짓고 떠벌리고 다녀야 한다는게 짜증이 나는구나. 오늘 신문보니 항만노조의 "클로즈드 샵"이 깨졌다고 하는데 사실 jachin 을 비롯한 사람들의 영향으로 IT노조의 상으로 최근에 구상하게 된게 "유니온 샵" 모델이다. 물론 꿈같은 얘기다. 하지만 꿈은 꾸라고 있는거지. 아 이말 저말 필요없고 누가 개인후원좀 해주면 지금 하고 싶은 것들 열심히 좀 해볼텐데. 돈 벌기 위해 내 노동력을 독점적으로 제공하는거 정말 싫다. 내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에게 힘 닿는 데까지 구별 없이 제공하고, 나는 대신 다른 식으로 보상 받아 최소한의 안정된 삶을 꾸려가는게 내가 언제나 바라는거다. 이런 생각은 1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구나. 오히려 그런게 더 옳다고 확신하게 되니 내 개인적으로 봤을땐 참 안타깝다. 그렇지만 사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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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3 13:29 2007/08/13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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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 2010/03/29 10:24 | DEL
몇 달 전에 소득공제 때문에 내가 후원하고 있는 단체들과 후원회비금액을 보고 완전 깜놀! 한 달에 5만원 이상 민우회 포함 타단체 후원금이 나가고 있었다. ;ㅁ; 후원/회원 단체 리스트 중에서 활동하지 않는 곳도 많기도 하고. 그래서 이번 세상만나기[각주:1] 로 유령회원으로만 되어있던 단체인 여성환경연대[각주:2]에서 자원활동을 하기로 마음 먹고 갔다. :)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각을 했다. ㅋ 도착하니 점심시간이었다. 자원활동을 하겠다던 나..
말랴 2007/08/13 15:05 URL EDIT REPLY
지각생 전화가 꺼져있네요 텐트를 빌리고 싶은데... 으찌할꺼나?
011 760 8715 전화주세요
지각생 2007/08/13 16:08 URL EDIT REPLY
집 앞까지 찾아온 최초의 불로거로 기억하겠삼 ㅋ 잘 댕겨오셔요
su 2007/08/14 12:50 URL EDIT REPLY
교환가치를 생각해봐야겠군. ㅎㅎ
지각 2007/08/14 19:40 URL EDIT REPLY
높게 쳐주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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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반

잡기장
어제 새벽에 포스팅을 했는데, 아침에 비밀로 돌렸다. 그러나 역시 불폐들의 눈을 벗어날 순 없더라. 그들이 두려워 ㅋ

거한의 이벤트가 70카운트를 채 안남겨두고 있다.
시간을 때우는 포스팅.

토욜에 강남 뉴코아에 갔다. IT노조 사람 2명과 함께 6시까지 있는데, 그날 잠을 설치다 아침 늦게 잠이 든탓에 아점을 먹어 계속 배가 고팠다. 6시가 되서 도저히 참지 못하고 사람들을 꼬드겨 밥을 먹고 왔다. 비빔밥을 먹는데 어찌나 맛있던지. 공기밥 추가하고 뺏어먹기까지 해야 겨우 느긋해졌다. 모처럼 대화주제가 흥미로와 한참을 얘기하고 다시 뉴코아로 돌아왔더니 사람들이 도시락을 먹고 있더라.

도시락. 참 어감이 좋다. 먹는거라 당연히 좋고, 집에서 뒹굴거리다가 아니라 어디서 뭔가 하다 출출할때 꺼내는 것이라 더 좋다. 방금 밥을 먹고 왔지만 도시락을 보니 다시 군침이 돈다.
근데 직접 싸오는 도시락 말고 사먹는건 대개 고기+생선 메뉴가 두가지 이상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 난감하다. 먹고 싶지 않은데 안먹고 남기자면 다 버리게 되고. 보통 그래서 고기+생선을 제외한 다른 반찬을 싹싹 비우고는 옆 사람에게 넘겨준다. 대개 옆 사람은 나랑 반대의 상황. 잘 안먹고 남겨둔 채식 반찬이 한 두 종류 있기 마련. 서로 바꿔 먹고 만족한다. 이미 소비한 고기니 남기지 않고 먹는게 낫지.

어쨌든 사람들이 도시락을 먹는 걸 보고 있는데 사람들이 밥과 반찬을 많이 남기는게 눈에 띈다.
잔반이 감지되면 그 순간 내 머리속에는 "먹어야돼"라는 속삭임이 들린다. 학교때 농활 이후로 전문 잔반 처리로 활동하면서 만들어진 단순 회로 인간. 이번 에코캠프+살살페 가서도 어김없이 그랬다. 물론 예전만한 포스는 보여줄 수 없지만.

그런 집회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거지만서도. 그렇게 남겨진 밥과 반찬을 모아보면 꽤 많은 양이 될 거 같아 기분이 좀 그렇다. 일회용 도시락 용기와 나무젓가락, 버려지는 음식쓰레기. 모르겠다 혹시 민주노총의 조직망을 통해 그런 것들을 제대로 처리하는지. 속으로 "남기지 말고 드삼"하고 이백번 말했다.

저녁에는 서버가 죽어 모처럼 옛날 일하던 곳에 가 밤을 샜다.
5년이 된 장비라 맛이 가도 전혀 이상하진 않다. OS가 깔린 하드는 완전 아작이 났는데 데이터 복구에 4,50은 들거라고 하고. 하드 디스크가 분명 하나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증발해서 다들 벙떴다. 나는 경찰과 국정원의 개입설을 주장했다. 별로 웃진 않더라 -_- 데이터는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에 백업 받고 있었는데 내가 그만두기 얼마전부터 하드가 꽉 차 백업이 안되고 있었다. 나도 마음이 진작 떠났길래 그런 줄 알면서도 방치했다. 덕에 여덟달동안의 데이터가.. -_0

원래 이 서버는 makker 가 전에 운영하던 거고, 내가 싫어하는 윈도우 서버라 별로 도와주고 싶진 않았지만 어쩌다보니 밤새 붙들고 있게 됐다. 차도 끊기고 비도 오고.. 아무리 해도 잘 안된다. 시간은 계속 간다. 이럴땐 딴 일을 해보면 잘되는 법이다. 역시 딴 일을 했더니 자~알 된다. 새벽 5시까지 스트레이트로 작업해 놓고 쓰러져 잤다. 그 사무실은 방바닥이 아니라 의자 4개를 나란히 놓고 거기서 잤다. 원래 한두사람 잘 수 있게 해놓은 공간이 있는데 거기는 하루종일 아래층 중국집 주방에서 올라오는 열기로 달아오른 곳이라 별로 잘 만한 곳이 못된다. 거기서 잔 많은 사람들이, 생전 안 눌리던 가위를 눌리고 헛것을 봤다는 제보. 그런데 본 모양이 대체로 비슷하다. 아무래도 정말 뭔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갑자기 이렇게 된거지. 이런 생활을 청산하고 싶었던 건데. 어차피 재정 파탄난 곳이라 수고비가 나올 것도 아니고. 아침에 잠을 깨자마자 날 붙들고 이거저거 물어보고 시키는 통에 짜증 -_-# 에이, 이렇게 된거 와락 집중해서 끝내버리자. 달려들었다. 근데 확실히 막힐때는 딴거하거나 자는게 낫다. 어제 계속 막히던 부분을 너무나 허무하게 넘어가버리고, 그 다음부턴 일사천리. 하나씩 문제가 해결되니 이거 또 신이 난다. 어이 여기서 신내는 건 좀 그렇잖아.

비가 온다.
원래도 헤졌던 샌들은 살살페를 다녀온 후로 완전히 밑이 뚫려버렸다. 멀쩡한 신발은 지금쯤 어느 택배 라인을 타고 내게 돌아오는 중. 부안 계화도 "그레"에 놓고 온 것을 makker 가 택배로 보내줬다. 밑이 뻥 뚫린 샌들로 자전거 타니 발바닥이 아프다. 그런 샌들을 신고 사무실을 나와 지하철을 타러 가는데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양말이 그냥 물에 젖는다. 양말을 벗어버리고 가방에 넣고 가니 철벅철벅 시원하다. 맨발예찬론을 들었던 생각이 났다. 아스팔트가 뜨거울 것 같아 안하고 있는데 조금 식겠다 싶으면 나도 맨발로 걸어다닐까.

쓰면서 거한 불로그 들어가 봤는데 아직 여유가 있다. 흠.

내게 메신저로 말 걸어주는 사람이 둘이나 있다니. 이제 시간은 채팅으로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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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3 01:16 2007/08/13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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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3 01:34 URL EDIT REPLY
졸려서 5~6줄만 읽다가...지각생님은 경품?상품?사은품?... 뭐가 받고 싶은데요...(하~품...ㅡ.ㅜ;)
거한 2007/08/13 01:34 URL EDIT REPLY
저는 그게 참 어려운 게, 소화기관이 별로 좋지 않아서 한꺼번에 많은 양을 먹지 못하거든요. 집에서는 제가 직접 밥을 푸니까 괜찮은데, 밖에 나가면 어김없이 정량을 다 먹지 못해요. 내가 먹을 양을 정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각생 2007/08/13 01:39 URL EDIT REPLY
존// 앗 강력한 우승후보, 존. 혹시 탐색하러 온건가 ㅋㅋ 전 뭐든지 좋아요

거한// 각자 도시락을 받으면 여럿이 모여 밥과 반찬을 한데 모아놓고 덜어 먹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을 해봤죠. 그럼 조금은 줄지 않을까요 :)
2007/08/13 01:47 URL EDIT REPLY
존/많이먹으나... 일은 거의 하지 못하는 비효율
거한/많이 못 먹으나 일은 많이 하는(?) 완전효율
지각생/많이 먹...으나(맞나요?) 그만큼 일을 하기에 고효율이라 사료됨...슬프군...ㅡ.ㅡ;;
거한 2007/08/13 02:07 URL EDIT REPLY
그래서 밥 잘, 많이 먹는 사람이랑 먹으면 너무 좋아요. 모아서 골라 먹는 것도 괜찮은데요? 약간 번거로움이 있겠지만.
ScanPlease 2007/08/13 02:19 URL EDIT REPLY
저도 예전에는 반찬을 남기지 않는 쪽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사실 채식을 시작하고나서부터, 그부분에 대해서는 좀 둔감해졌어요.
지각생 2007/08/13 10:27 URL EDIT REPLY
존// 엄청 많이 먹으나 그만큼 많은 삽질을 하기에 결과적으로 저효율임 -_-

거한// 아..199975까지 보고 너무 졸려 잠들어버렸삼. ㅠㅠ

스캔// 소비를 줄이자는 주의니, 이미 소비된 것은 쓰레기가 되지 않게 먹는게 낫겠다는 생각이긴 한데.. 그러다가 다시 '고기맛'이 들면 어쩌나 걱정이죠. 물러터진 지각생이라..
navi 2007/08/13 10:40 URL EDIT REPLY
그 글 나도 봤는데;;-_-;;;;
지각생 2007/08/13 11:23 URL EDIT REPLY
날이 많이 덥죠? 땀좀 닦으삼
현현 2007/08/13 13:19 URL EDIT REPLY
지각생도 이벤트를 할 때가 되지 않았소?
지각생 2007/08/13 13:38 URL EDIT REPLY
ㅎㅎ 저번 이벤트 선물도 아직 못줬삼 ^^;; 이러다 양치기 소년 되겠다 싶어 아직 이벤트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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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1

잡기장
귀를 뚫었다. 10일, 종로에서.
한쪽만 뚫을까 하다 양쪽을 다 했는데 아주 이쁘다.
생각보다 아주 간단하게, 살짝 따끔하니 벌써 끝났다. 특히 왼쪽은 거의 느낌조차 없었고.
씻은 후 잘 말려주고, 소염제를 사먹으라고 하네.
아예 잘 안씻는 사람은 잘 안말려도 되나
어쨌든 기분이 퍽 좋아졌다. 양쪽에 "G"를 달고 거울을 보니
그것이 내 입을 땡기는 효과가 있나보더라. 내 입이 사정없이 벌어져 위로 치켜올라가 있었다. 씨익
같이 가 준 채경, 땡큐. 덕분에 더 안 미루고 할 수 있었어요.


오늘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에코캠프+살살페 갔다가 무게를 줄이려고 실어보낸 내 텐트(일인용) 두동을 가지러 망원동의 모 단체로 가고,
거기서 유기농 밤호박 2개를 선물 받아 모처럼 청파문으로 놀러갔다.
비가 개자 마자 날씨는 무척이나 뜨겁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지각생은 금방 땀으로 범벅이 됐다.
비맞고 잘 안 닦아줘서 자전거 상태가 안 좋다. 그래서 더 힘들다.
청파문 아래쪽의 가게에선 아이스크림이 반값이다. 모처럼 한 무더기 사들고 갔다. 불과 어제만해도 잔고 만원이 전재산이었으나 새로 5만원이 들어오고, 전에 참가했다가 소홀히 한 프로젝트 단위가 정리되면서 약간 돈을 받기로 해, 급한 불은 껐다. 마음이 푸근하고, 청파문 사람들 볼 생각에 들떠 볼 것없이 주머니를 털고.


청파문에 잠시 있다가 종로로 갔다.
이때 귀를 뚫었다.
4시에 종로에 있는 모 단체로, 회의에 가는 채경. 들어보니 나도 가볼만 하다. 솔깃했다.
그런데 5시에 있는 한 작은 워크샵이 조금 더 나를 잡아당겼다. 조직내 민주주의. 게다가 상황극에 급 캐스팅까지 됐으니 재밌기는 이쪽이 더 재밌을 듯하다. 왜 이런건 늘 겹칠까.


아주 재밌었다. 내가 관심 있는 주제이고, 분위기도 좋았다. 모처럼 신나게 떠들었다. 어디가서 오늘처럼 적극적으로 얘기한적도 많지 않다. 전에 일하던 단체에서 겪은 것들, 어이 없던 것들과 좋았다 싶은 것들을 얘기했다. 물론 함께 있으면 힘을 받는 사람들이 있으니 가능했다.
근데 나도 그만큼 힘을 주고 있는걸까.


끝나고 함께 저녁을 먹었다. 더 술을 한잔 하자는 은근한 분위기였지만
내일 MT가 있어 참기로 했다. 아직 지난주까지 놀고 온 것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바로 또 놀러가다니.
게다가 이번엔 이런 저런 이유로 요근래에는 회의도 안나가다가 놀러가는데 불쑥 나타나는 꼴이다.
다음 다음주는 노조 야유회가 있고..


자전거가 앞으로 나가질 않는다.
자꾸 멈추고, 뒤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난 여전히 조급하다. 그래서 여전히 늦는다. 뒤늦게 후회하면 뭐하나 싶으면서도 후회한다.
모처럼 다시 부정적인 에너지에 살짝 휘감겨 버렸었다. 질투, 불안, 위축. 그것이 이해를 방해했다.
쿨하게.. 맘쓰지 않으려해도, 거의 성공하다가도 다시 내 마음은 붙잡고 싶은 무엇으로 가득 찬다.
자전거를 돌렸다.


때마침 서버 관련한 전화가 온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문제고 관심도 없다. 하지만 모른척 하지 못한다. 쌩쌩 달리는 차소리에 겨우겨우 알아들으며 통화를 마치고 나니 어느새 시간은 꽤 흘러있다.
멈춰서 잠시 생각한다. 다시 자전거를 돌린다.


멀리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저 차들과 함께 20분만 달리면 되지만
번잡한 내 마음은 그걸 견디지 못할 것 같다. 이런 마음으로 차와 나란히 자전거를 타면 사고가 나거나 싸움이 날지도 모른다. 홍제천으로 내려가 천천히 남쪽으로. 불광천을 만나 다시 북쪽으로. 집에 도착하니 11시 반.

형은 컴퓨터를 하고 있고 TV는 보는 사람 없이 켜 있다. "놀러와". 놀러가고 싶은 마음은 아니지만 그대로 엎어져 유재석과 신화를 본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다 티비를 끄고 방으로 들어갔다. 낮에 켜놓고 나온 컴퓨터가 아직 돌아가고 있다. 요즘 내 컴퓨터가 다시 속을 썩인다. 주워온 PC는 전력공급이 약한건지 비실비실하고, 부활한 내 놋북(경배하라~)은 무선랜 브릿지 역할을 잘 해주고 있었는데, 괜히 갈아엎는 내게 심통을 부리는지 리눅스가 설치되지 않는다. 인터넷 연결 안되고 내 시간과 애정을 계속 쏟아줄 것만 기다리고 있는 컴퓨터들.


씻지도 않고 바로 자리에 누웠다. 이불을 판판히 펴지도 않고, 베개가 어디갔나 찾지도 않고, 귀걸이가 어찌될지 0.5초 생각하곤 그대로 쓰러져 잤다.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베개가 없으니 아무래도 불편하다. 잠이 깨서 살짝 주위를 둘러보니 조그만 생수통이 있다. 그걸 이불 밑으로 집어넣으니 머리를 괼만한 둔턱이 생겼다. 머리를 괴고 다시 잠을 잤다.


꿈을 꾸지 않고, 언어화된 생각을 하진 않는데 잠은 자꾸 왔다갔다한다.
머리를 괴고 있는 생수통의 둥근 형태가 느껴진다.
그게 점점 커진다.
계속 커지면서 어떤 환각을 느낀다. 그것의 정체는 불안이다.
눈을 뜨진 않은채로 마음을 추스린다. 난 지금의 내 감정을 알고 있다. 오랫동안 느껴왔던 익숙한 느낌.
의식적인 노력으로 밀어내고, 걷어내고, 제 몫을 돌려줬던 것. 모처럼 기회를 잡아 내 무의식을 다시 사로잡으려고 하는 듯하다. 다행히도 난 그걸 어떻게 대처할지 알고 있다. 서서히 불안과 두려움이 제어된다.
그러면서 생수통의 크기도 점점 작아진다.
크기가 손가락 두께만큼 작아진다. 역시 이것도 환각이다.
숨을 쉬듯, 심장이 뛰듯 생수통은 계속 커졌다가 작아진다.
문득, 내가 아침 알람을 맞추지 않았다는 걸 생각해냈다. MT를 가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한다.


잠이 오지 않는다.
블로그에 들어온다.
이런 날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게 낫다고 속으로 되뇌인다.
그냥 담담히 쓰기로 한다.


요즘의 나는 정말 좋아졌다.
전처럼 위축되지도 않고,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이런 저런 계기들을 통해 계속 거듭나고 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용기를 내고, 더 이해하고 싶어지고.
그러다 어쩌다 살짝 균형이 무너졌다. 그래도 심각한 정도는 아니다.
다만 그 짧은 순간을 견디지 못한게 아쉽고, 그래서 이해하지 못한게 아쉽다. 심통나고, 조급하게 확인하고 싶어하고 했던 것이 아쉽다.


차를 얻어타고 가기로 했으니, 가면서 좀 자면 되겠지. 2시간 정도 더 잘 수 있겠다.


누구도 아프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가 기분좋았던만큼 나를 만나는 사람들도 기분 좋아지고
내가 우울해진만큼 누군가의 마음의 짐을 덜은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언제나 내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는 경우가 있게 마련이다.


아무래도 잠은 더 오지 않을것 같다. 미안하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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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1 04:08 2007/08/11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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