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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1/09
    제 멋대로 미디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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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5/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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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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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5/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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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5/11/25
    엉뚱한 불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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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5/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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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5/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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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5/11/14
    무제
    hongsili
  10. 2005/11/01
    어떤 의자....(2)
    hongsili

조금 덜 건조한 원문

한겨레 신문사와 [한국 건강형평성 학회] 공동으로 한국 사회의 양극화, 그 중에서 건강 불평등 문제에 대한 연재 기획 기사가 보도되고 있다. 성과와 한계에 대해서야 학회에서 평가가 이루어질테니 나중으로 미루고.... 어쨌든 단지 미국에 체류한다는 이유만으로, 한 섹션을 맡아서 쓰게 되었는데... 원래도 건조하게 썼지만, 분량 조절 때문에 그랬을 것으로 짐작은 한다만.... 지나치도록 건조하게 요약되었다는 느낌이.... ㅜ.ㅜ http://hani.co.kr/arti/society/rights/97314.html 인터뷰 원문을 올려둔다. (스크롤의 압박 심함)


지난 1월 5일, 보스턴에 자리한 하버드 보건대학원의 연구실에서 가와치 (Ichiro Kawachi) 교수를 만났다. 그는 사진 찍는다고 해서 특별히 넥타이까지 준비했다며, 얼른 사진부터 찍고 이것 좀 풀게 해 달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 1년 반 동안 강의실 바깥에서 넥타이를 맨 모습은 처음 본 것 같았다. 그동안 자료 분석 진행이나 사변적인 개인사들을 주로 이야기하다가, 질문지에 녹음기까지 준비해서 공식적으로 ‘인터뷰’를 하자니, 하는 사람이나 당하는 사람이나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였으나, 막상 이야기가 시작되니 그런 어색한 분위기는 금방 사라졌다. * 우선, 근본적인 이야기로 시작해보자. 건강 불공평 (health inequity) 문제가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이것이 정의(正義)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건강 불공평은 단순히 다르다는 것을 넘어서, 불공정(unfair)을 의미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그것을 줄이기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즉, 그러한 불공평이 결코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는 점... 이러한 두 가지 사실은, 우리에게 일종의 의무 - 불공평을 감소시키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를 부과한다고 생각한다. * 건강 불공평과 관련해서는 ‘불평등은 나쁘다’는 직관에서부터, 공리주의나 평등주의 같은 윤리 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논거들이 존재한다. 이 분야의 연구자로서, 학문적으로 혹은 정서적으로 당신을 움직이는 동기는 무엇인가? 우선 이론적으로는 롤즈(John Rawls)의 정의론 개념을 근간으로 삼고 있다. 알다시피, 차이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차이가 공정하지 못한 경우다. ‘기회의 평등’을 강조하고, 가장 열악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한에서만 불평등을 용납할 수 있다는 롤즈의 이론은 건강 형평성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개인적인 동기라면, 벌써 20여 년 전의 일이지만, 다른 의사들과 마찬가지로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사회적 불평등을 체험할 수 있었다. 사실 응급실에서 24시간만 당직을 서보면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않나? * 그렇다고 모든 의사들이 이 분야에 헌신하는 것은 아니다. 혹시 상대적으로 평등한 뉴질랜드 사회에서 여기 미국으로 옮겨오면서 그런 문제에 더욱 민감해진 것은 아닌가? 꼭 그렇지는 않다. 물론 뉴질랜드가 미국보다 보다 평등한 사회인 것은 맞지만 그 곳에서도 불평등 문제는 심각하다. 이를테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백인과 소수 인종 마오리 원주민 사이의 평균 수명 격차는 9년에 이른다. 이는 미국 흑인/백인의 수명 격차보다도 훨씬 큰 것이다. 내가 진료한 환자들의 상당수가 마오리 원주민들이었고, 그들의 건강 문제는 당뇨, 천식, 심장병 등 전형적으로 이곳 미국의 흑인들의 질환과 비슷했다. 그리고, 알다시피 내가 처음으로 공중보건 분야의 연구를 시작한 것은 담배 규제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 분야에서 어느 정도 일하다보면, 이것이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흡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건교육이나 홍보 활동이 중요하지만, 문제의 핵심에 사회적 불평등이 놓여 있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런 것이 내가 건강 불평등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들이다. * 전염병이 창궐하던 시절, 사람들은 빈곤층의 사망률이 더 높은 것을 직관으로도 이해할 수 있었다. 영양실조, 열악한 주거 환경이나 불결한 위생 상태가 문제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상황은 변했다. 심장병이나 암 같은 만성 질환이 중요한 건강 문제가 되었고, 그 원인도 흡연, 운동 부족, 스트레스 같은 것들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중요한 질병도 바뀌고 그 위험 요인도 바뀌었는데 빈곤 계층의 사망률이 더 높다는 사실만은 바뀌지 않고 있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 그렇다. 지난 세기만 해도 비만은 부유층, 심장병은 사장님들한테나 생기는 병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나. 그러나 비만이 부유층의 질환이던 시절, 전염병 때문에 사망률은 빈곤층에서 훨씬 높았었다. 이제 이런 만성질환이 본격적으로 문제가 되는 시기에 이르자, 그 위험요인들이 또다시 낮은 사회계층에 집중되고 이들의 사망률이 여전히 높은 현상이 관찰되고 있다. 컬럼비아 대학의 링크(Bruce Link)와 펠란(Jo Phelan)이 지적한 대로, 이것이야말로, 사회경제적 요인이 건강과 질병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 이러한 주장이 다른 한편으로는, 건강 불평등은 꾸준히 있어왔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지속되는 한 앞으로도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주장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건강 불평등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동안 전혀 성과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건강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이건 상대적 의미에서 그렇지, 절대적 격차는 사실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최 빈곤층에서도 평균 수명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 않나. 미국 흑인/백인의 영아 사망률이 훌륭한 사례가 예가 될 수 있는데, 상대적 격차는 벌어지고 있지만 절대 차이는 분명 감소하고 있다. 만족할 만한 성과는 아니지만 상황은 꾸준히 나아지고 있으며, 무언가를 하는 이상, 건강 불평등이 영원히 이 상태로 지속할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 흡연이나 운동 부족, 식이 같은 위험요인들은 대개 개인의 생활습관들이다. 따라서 건강하지 못한 것이 이런 잘못된 생활습관을 가진 개인들의 ‘도덕적 무책임’인 것처럼 비판 혹은 비난받기도 한다. 심지어 허리케인 카트리나 당시에도, 시의 대피 명령을 무시하고 남아 있다가 그렇게 된 건 본인들의 잘못이라는 주장까지 있지 않았나? 좋은 지적이다. 물론 그러한 비난의 내용은 결국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빈곤층의 절반 이상이 자가용이 없었고 시정부에서는 이들의 대피를 위해 어떠한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었다. 차가 있는 사람들도 몸이 불편해서 혼자 이동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바로 이런 게 전형적인 피해자 비난(victim blaming)의 예라 할 수 있다. * 록펠러 재단의 전직 이사장인 노울즈(John Knowles)는 ‘한 사람이 건강에서 갖는 자유가 다른 사람의 세금과 보험료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자조(自助)와 개인의 책임감이 특히 강조되는 미국 사회에서 건강에 대한 개인 책임론은 더 큰 호소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 건강 불평등과 관련하여 개인과 사회의 책임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건강 형평성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다. 개인과 사회의 책임을 구분하는 것은 단순한 차이로서의 ‘불평등(inequality)’과 불공정(unfairness)으로서의 ‘불공평(inequity)’을 가르는 기본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분명,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결정에 책임이 있다. 누군가, 완전한 세상에서 완벽한 지식을 가지고도 단지 즐기기 위해 담배를 피우고 있다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그 사람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담배 이야기를 계속해 보자. 흔히, 흡연이 건강에 해롭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나쁜 걸 알면서도 계속 담배를 피우는 개인들에게 잘못이 있다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역학 연구 결과가 보여주듯 흡연을 지속하는 이들의 90%는 담배의 해악을 충분히 이해하거나 판단할 수 있기 전에 담배를 피우고 중독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담배 광고는 바로 이들 미성년자에게 집중되고 있다. 일단 담배에 중독이 되고 나면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지식 그 자체는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운동이나 식이 습관 또한 사회적 제약의 산물이다. 동네에 신선한 과일이냐 야채를 판매하는 상점이 없고, 안전하게 운동할 수 있는 시설이나 환경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지식이 있다고 한들 어떻게 좋은 걸 사먹고, 운동을 할 수 있겠나? 이런 상황에서 운동 안하고 식습관 나쁜 것이 온전히 그 개인들의 잘못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나? 많은 건강 습관들은 어릴 적에 형성되고, 그 환경은 어린이들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그 부모들의 잘못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 부모들 또한 한정된 자원 속에서 똑같은 사회적 제약에 직면해 있을 뿐이다. 어느 누구도 이 사회 안에서 완전히 독립적인 결정을 내리고, 온전한 책임을 질 수는 없다. 인간은 경제적 동물 (Homo Economicus)이라는 개념 - 인간이 완전히 이성적이고, 완벽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미래를 내다보는 올바른 결정을 통해 비용을 절감한다는 가정은 모든 심리학 연구들이 보여주듯 틀린 모형이다. 경제학자들도 이를 인정하지 않나. 문제는, 일반 대중들이 이러한 잘못된 신화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점인데, 미국의 경우 미디어의 오도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미디어는 이러한 건강 행동이 순전히 개인의 책임인 것처럼 보여주고 있다. * 이건 한국도 매우 비슷하다. 건강 관련 TV 프로그램들은 개인의 노력과 의지만을 강조하고 있다. 마치, 그걸 못 하면 의지박약한 인간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교육 수준이 높고, 돈과 시간을 비롯한 자원이 충분한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실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게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몇 년 전 하버드 교수 중에 하나는 왜 시민들이 하루 30분 운동도 못하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심지어 자기처럼 바쁜 사람도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하는데 말이다. (웃음) 이 양반 같은 경우, 먹고 살기 위해 두세 가지 직업을 매일 전전해야 하는 사람들의 삶을 전혀 생각조차 않고 있는 것이다. 따로 점심시간이 없고, 마땅히 씻을 곳도 없는 일터에서 점심시간 30분 운동이라는 것이 도대체 가능이나 한 일인가? *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보여준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은 미국 사람들은 물론 전 세계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특히나 미국의 경제적 번영을 금과옥조처럼 생각하던 한국 사회에서 그 반향은 더욱 컸을 것이다. 미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건강 불평등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무엇을 들 수 있나? 인종 간 격차 문제? 물론 인종, 계급 간 건강 불평등 문제는 심각하다. 하지만 그 자체는 미국만의 고유한 특성이라 할 수 없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한다면,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로서, 다른 선진국들의 거의 두 배에 이르는 보건의료 비용을 지출하고도 건강 수준은 선진국들 중 거의 바닥에 머물러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불평등 때문이다. 우리는 부유하지만, 극단적으로 불평등한 사회에 살고 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보건의료에 지출하고 있지만 여전히 국민의 13-14%는 의료보험조차 없다. 미국을 모델로 쫓아가려는 어떤 사회도 이와 똑같은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불평등의 심화는 결국 평균마저 까먹는다는 걸 분명히 알아야 한다. * 잠깐 다른 이야기이지만, 사실 카트리나 이후 황당했던 것 중 하나가, 이러한 비극이 그동안의 퍼주기 식 복지 정책의 실패를 여지없이 보여주는 것이라며 더 많은 감세를 통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공화당의 주장이었다. 세금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에는 무슨 이유든 다 가져다 붙일 수 있다. 감세야말로 저들의 만병통치약 아닌가? 심각하게 신경 쓰지 마라. (웃음) 카트리나가 보여준 것은, 수십 년에 걸쳐 이루어진 구조적인 저투자와 저개발의 결과이다. 한 꺼풀만 벗기면 미국이 실제로 어떤 사회인지를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생생하게 드러난 것이다. * 그 이야기를 듣고 싶다. 미국의 건강 불평등 수준은 여타의 서구 선진국들에 비해서도 특히 심하다. 도대체, 무엇이 미국 사회를 이렇게 다르게 만들고 있는가? 우선 역사 그 자체에서 일부 답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심각한 인종 문제가 그렇다. 150년 동안의 노예제도, 그리고 이후 150년간 이어진 인종 분리의 역사는 쉽게 회복하기 어려운 인종간의 격차를 낳았다. 이러한 역사가 오늘날 지속되는 흑/백인종 간 건강 격차의 상당 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일부에서는 이질적인 인구 구성 자체가 불평등의 단초가 된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를테면 스웨덴의 경우, 가난한 이민자의 비율이 미국의 흑인 비율과 매우 비슷하지만 이 정도의 심각한 불평등은 나타나고 있지 않다. 이렇게 지속되는 건강 불평등의 이면에는 불평등에 대한 미국인들의 놀랄만한 너그러움을 중요한 이유를 들 수 있다. 미국 예외주의 (American Exceptionalism), 즉, 개인주의, 큰 정부를 싫어하는 반-국가주의, 심지어 세금을 통해 혜택을 얻고 있는 빈곤층에서도 뚜렷이 나타나는 세금 혐오, 그리고 도덕주의가 그 기반이 되고 있다. 미국은 매우 도덕주의적인 국가다. (웃음) 그래서 건강 문제도 바로 도덕의 문제로 치환되는 것 아니겠나? 역사학자가 아니라, 이러한 문화의 연원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하기는 어렵지만, 이것이 미국 사회의 지배적 문화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전 나의 책에서 소개했지만, 미국의 경우, 소위 진보성향이라고 분류되어야 마땅할 노조 지도자들의 의견이, 유럽의 기업가들보다 더 보수적인 경우가 많다. * 현실 정치에서 좌파의 힘이 약하다는 것도 한 이유라고 할 수 있지 않나? 동의한다. (진보/보수 간의) 힘의 불균형이 심각하다. 냉전 시대에 자행된 극도의 억압 - 상당 부분은 기업들의 음모로 알려져 있다 -은 모든 사회주의 형태의 노동운동이나 힘 있는 좌파의 생존을 실질적으로 어렵게 만들었다. * 역사에서 가정이란 없다고들 하지만, 만일 미국 사회에 강력한 좌파 정당이 존재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을까? 글쎄, 가정은 금물이다. 사람들은 현재의 공화/민주 양당 체계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이 둘은 별로 다르지 않다. 논쟁의 범위는 협소하기 이를 데 없고, 그 자체가 상당히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다. 그러나, 대선 후보였던 케리 (John Kerry)조차 극좌파로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곳에서 가까운 시일 내에 좌파 정당이 출현하여 대중적 영향력을 획득할 수 있을 거라고 보지는 않는다. 정치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사회적 모순이 격화되어 급진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미국 역사를 보면, 모순이 심화되면 그 이후 과감한 개혁이 있었다. 20세기 초반 ‘진보의 시대(Progressive Era)’나 ‘뉴딜 (New Deal)’ 같은 것이 그 예이다. 이를테면, 현재 미국 달러화의 거품이 붕괴되고 이자율이 치솟는 상황에서 경제가 붕괴되고 실업률이 급상승하면 또다시 그런 급진적 개혁들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 그래도 그동안 미국에서 이루어진 대표적인 건강 불평등 해소 정책이 있으면 소개해주면 좋겠다. 몇 가지 예를 들 수 있는데, 존슨 (Johnson) 행정부 때 시작된 메디케어 (Medicare)와 메디케이드 (Medicaid) 사업은 건강 불평등과 관련해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단순히 빈곤층이나 노인에게 의료 이용의 접근성을 높였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실질적인 빈곤 예방에 큰 역할을 했으며 이로 인한 건강 불평등 감소에 기여했다. 잘 알려져 있듯, 의료비 때문에 파산하는 경우가 미국에서는 상당히 흔하다. 또한 어린이들의 발달 교육 프로그램인 헤드 스타트(Head Start) 사업의 경우, 어린이 사망률의 전반적 감소는 물론 흑/백인 간 건강 격차를 줄이는 데에도 기여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공중보건 활동 그 자체가, 의도적이던 아니던 간에 건강 불평등 감소에 큰 역할을 해왔다. 담뱃세 같은 경우 흡연율 자체는 물론 계층 간의 격차를 감소시킴으로써, 흡연으로 인해 발생하는 건강의 사회적 불평등을 줄이는 역할을 했다. * 건강 불평등에 관한 연구로 치자면, 그 양이나 질적인 측면에서 미국은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지금 소개해준 프로그램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정책 개발이나 실행은 연구에 비해 한참 뒤쳐져 있는 것 같다. 연구가 실제 정책으로 이어지는데 가장 결정적인 걸림돌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를테면, 지난 해 막바지에도 메디케이드와 메디케어를 비롯한 사회보장 예산이 대폭 감축되지 않았나? 맞다. 연구 결과가 실제 정책으로 연결되기까지 현실적으로 여러 걸림돌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를 논하기에 앞서 한 가지 우리가 인정해야 할 부분이 있다. 모든 연구와 정책 실행 사이에는 시간 격차가 존재한다는 점 말이다. 거주 지역의 건강 효과를 예로 들어보자.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빈곤 지역의 사망률이 높은 것은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살기 때문에 일어나는 당연한 현상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주민들의 특성뿐 아니라 지역의 환경이나 정책 그 자체가 주민들의 건강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들이 속속 발표되기 시작했다. 이제 이를 바탕으로 지역 자체를 바꾸기 위한 정책들이 개발되고 있다. 우리가 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 알기 위해서는 무엇이 문제인지를 먼저 연구해야 한다. 여기에는 시간이 걸린다. 이러한 불가피한 시간적 격차를 인정한 가운데에서, 몇 가지 중요한 걸림돌들을 지적하자면, 우선 기업의 이해(vested interest)를 들 수 있다. 많은 기업들, 특히 대표적으로 담배 산업은 건강 불평등으로부터 이득을 얻고 있다. 이들은 교육 수준이 낮거나 형편이 어렵기 때문에 스트레스에 많이 노출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펼친다. (광고판들은 빈곤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건강 불평등을 감소시키려는 모든 노력들에 대해 이러한 기업들은 반격을 거듭해왔다. 예를 들면, 여기 매사추세츠 주에서는 1993년 주민 투표를 통해 담뱃세를 40센트 인상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이후 담배 소비가 줄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약 5개월 후, 담배 회사들은 정확히 40센트 가격을 인하함으로써 그 효과를 무위로 만들고 말았다. 두 번째 문제는 건강 효과와 정치의 시간적 불균형을 들 수 있다. 대개 정책의 효과들, 특히 건강과 관련된 효과들을 오랜 기간이 지난 후에야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헤드 스타트 프로그램 같은 경우는 한 세대가 지나서야 그 건강 편익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4년, 혹은 7년을 주기로 선출된다. 눈에 보이는 단기적 효과로 승부하는 정치에서, 이러한 장기적 건강 편익을 도모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세 번째로, 건강 불평등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낮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건강 불평등 자체는 무척 오래된 현상이지만, 이 문제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 수준은 놀라울 정도로 낮다. 몇 년 전 하버드 교수인 블렌던 (Bob Blendon)이 건강 불평등에 대한 전국 수준의 여론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당시 50% 이상의 미국인이 건강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고, 심지어 흑인의 52%는 백인과 흑인들의 평균 수명이 같다고 믿고 있었다. 사람들이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이를 바꿀 수 있겠나? 최소한의 민주주의 사회라면 대중의 의견이 선거로 반영되어 정치를 움직여야 하는데, 대중이 이 문제를 알지 못한다면 설령 정치인들이 알고 있다고 해도 굳이 어떤 조치를 취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지적한 세 가지가 건강 불평등에 대한 정책들을 만들고 실행하는데 아마도 가장 중요한 걸림돌이 아닌가 싶다. 추가한다면, 문제에 대한 잘못된 진단과 처방을 지적할 수 있다. 건강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에도, 보건의료비에 대한 지출을 늘리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설령 예산을 획기적으로 확충하여 현재 보험이 없는 사람들한테 모두 의료보험을 제공한다고 해도, 사회경제적 불평등 자체를 줄일 수 있는 사회정책, 이를테면 누진적 조세 제도나 최저임금의 인상 같은 것이 병행되지 않는 한 건강 불평등은 해결될 수 없다. * 보건의료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국 상황을 조금 이야기하고 싶다. 지금 한국 정부는 보건의료와 생명공학 산업을 차세대 경제 성장의 주요 동력으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세상을 들썩이게 한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현재 정부는 대통령 산하에 의료산업 선진화 위원회를 구성하고, 의료기관의 영리법인과 민간 의료보험 도입을 중요한 의제로 다루고 있다. 이 분야의 선험자라 할 수 있는 미국의 경험을 이야기해주면 좋겠다. 보건의료의 상품화가 미국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나? 그러한 주장이 이윤을 창출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건강을 증진시키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이야기하고 싶다.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미국식 보건의료 제도가 문제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심지어 경제학자들조차, 민간 의료보험이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미국 상황은 그야말로 끔찍하다. 천문학적인 액수가 환자 치료가 아닌, 환자를 거부하고 행정 처리를 하는데 낭비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보험이 없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미국을 따라 하려는 그 어떠한 시스템도 미국과 같은 대재앙을 반드시 만나게 될 것이다. 오히려 미국에서는 다른 국가들의 사례를 연구하면서 단일 보험자 체계에 대한 논쟁이 한창인데... 나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 이야기를 좀 확대해보자. 곧 출간될 당신의 책이 세계화와 건강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들었다. 세계화는 말 그대로 전 세계 모든 이들의 일상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건강, 그리고 건강 형평성과 관련하여 세계화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세계화는 한편으로 건강에 대한 커다란 위협이자, 또 다른 한편으로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장점을 먼저 말한다면, 세계화는 우리에게 가능성, 지구촌에서 긴밀하게 통합되면서 서로에게서 편익을 얻을 수 있는 잠재력을 열어주고 있다. 특히 기술적 진보가 그런데, 이를테면, 엊그제 신문에 보도된 대로 설사로 인해 일 년에 60만 명의 어린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던 로타 바이러스 (Rotavirus) 백신이 개발되지 않았나? 이런 기술적 진보가 이를 가장 필요로 하는 어린이들에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은 잠재적인 장점이 아닐 수 없다. *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잠재적인 가능성이다. 현실을 보자. 백신이 개발되는 것과, 그것이 필요한 이들에게 쓰이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맞다. 세계무역기구 (WTO)로 상징되는 현재의 무역 체제는 이러한 잠재적 편익이 실제로 실현되는 데 중요한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지적재산권 (TRIPS) 문제는 대표적인 걸림돌의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로타 바이러스 백신도 이 때문에 저개발 국가에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될 수 없을지 모른다. 이를 위해서는 무언가 분명히 다른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현재 전 지구적으로 자원 분포의 불평등은 매우 극심하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잘 사는 나라의 작은 희생과 기여가 다른 국가의 시민들에게 엄청난 혜택을 줄 수 있다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세계화의 폐해를 지적하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이것이 일종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현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의 방식은 오히려 재앙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글쎄, 나는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다수의 선진국들이, 물론 미국의 경우 좀 다르지만, ODA 규모를 늘려가고 있고, 심지어 민간 부문의 기여 또한 급진전하고 있다. 게이츠-멜린다 (Gates-Melinda) 재단이 저개발국의 백신 공급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것이 그 한 예가 될 수 있다. 또한, 다른 방향에서 볼 때, 에이즈 치료제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에서 드러나듯, 대중의 광범위한 저항이 다국적 제약 산업을 한 걸음 물러나게 한 경우도 있었다. 현재의 불안정한 WTO 질서가 오래 갈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 이를테면 에이즈 약제 문제만 해도, 실제로 엄청난 희생과 투쟁들이 있었다. 그리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도 아니고... 맞다. 하지만 컵에 반 남아 있는 물을 보고, 아직도 반이나 남았네, 이제 겨우 반밖에 안 남았네 하는 관점의 차이를 이야기하고 싶다. 세계보건기구가 주도한 에이즈 프로그램인 ‘3 by 5’의 경우 2005년까지 3백만 명에게 치료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계획했지만, 실제로는 목표 수치의 1/3밖에 달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백만 명에게 새로운 치료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세계화에 장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다기보다, 보다 세계화된 질서 속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세계화가 건강에 100% 해만 끼친다고 말할 수는 분명 없다. 문제는 다시 처음으로, 사회 정의의 문제로 돌아간다. 미국 사회에서, 워싱턴 D.C에서 태어난 흑인 남성의 평균 수명이 57세 밖에 안 된다고 할 때 그것이 불공정한 것처럼, 분명히 우리가, 혹은 선진국들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방글라데시의 평균 수명이 56세 밖에 안 된다는 것은 정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정의야말로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 마지막으로, 건강 불공평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낙관주의라고 본다. * 하워드 진(Howard Zinn)을 비롯하여, 미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변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낙관주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가장 낙관을 기대하기 어려운 곳에서 말이다. 약속이라도 한 것 아닌가? (웃음) 흥미로운 현상이다. (웃음) 낙관주의와 함께 우리는 열정을 가져야 한다. 나머지는 모두 갖춰져 있다. 우리는 무엇이 문제인지 지식을 가지고 있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과 자원도 가지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러 있다. 문제는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보다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키는가 하는 것이다. 세상에 영원불멸 지속하는 것은 없다. 미국 역사가 보여주듯, 어려움 뒤에 혁신적인 기회가 찾아왔고,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기회를 가지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문제가 최고조에 이르면 그것의 변화 가능성 또한 높아지는 법이다. 다만 낙관과 열정을 가지고 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 결국 신념의 문제로 돌아왔다. 오랜 시간 답변해주어서 고맙다. --------------------------------------------------------------------------- * Ichiro Kawachi 소개 가와치 교수는 일본에서 태어나 가족과 함께 뉴질랜드로 이주하여 유년기를 보낸 후 그 곳에서 의과대학을 졸업, 임상의사로 일하다 지난 92년부터 하버드 보건대학원에서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과 관련한 연구와 강의를 계속해오고 있다. 280여 편의 관련 논문과 저서를 출판하였으며, 사회역학(社會疫學) 분야 최초의 교과서인 『사회역학』의 공동 편집자를 맡은 바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은행 (World Bank에서 건강 불평등 이슈와 관련한 자문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저명한 국제 학술지인 Social Science and Medicine과 American Journal of Epidemiology의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2003년 가을에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으며, 당시 한국 건강형평성 학회 창립 학술대회에 특강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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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새로운 대통령

칠레에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고 신문이 시끌벅적하구나...

물론 한국 인터넷 신문에는 별로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았더만, 여기 뉴욕 타임즈에는 거의 두 면을 할애해서 그 기사를 내보냈다.

소문난 마초 사회에서, 그리고 미국의 앞마당에서,

세 자녀를 가진 이혼녀, 사회주의자가, 그것도 낙승(!)을 했으니 놀라운 일이기는 하다.

 

물론 미국 신문답게(!!!) 꼬치꼬치 개인사를 흥미진진하게 늘어놓았는데, 가끔 신문을 읽다보면, 이게 보도 기사인지 가쉽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얼마 전에는 마르코스 부사령관의 오토바이 전국 투어를 소개하면서 그가 중년의 백인 대학교수 출신이라는 둥, 데리고 다니는 마스코트 수탉이 어쨌다는 둥, 경호원들이 어떻다는 둥, 아무도 눈치 못채게 깜짝 등장했다는 둥.... 투어의 정치적 내용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내용......일전에는 스키마스크가 이렇게 섹시할 수 있다는 걸 역사상 처음으로 보여준 남성이라는 표현까지 썼더랬다.

 

우고 차베스를 소개할 때는 항상 "미국 편집증" + "대중주의자"라는 수식어를 붙여준다. 기사 내용과는 상관 없이, 마치 공식 호칭이라도 되는 양... 마치 "위대하신 수령님"이 한 구절이듯, "대중주의차 차베스, 편집증 환자 차베스" ㅎㅎㅎ

 

아니나 다를까, 오늘 Michelle Bechelet을 소개하는 기사도 그녀의  개인사를..... (뭐, 이런 개인사가 정치적 성향을 반영하고, 결정한다는 점에서 아주 나쁜 접근은 아니겠지..)

 

= 현재 54세. 세 자녀를 가진 외부모. 1번 결혼과 이혼, 그리고 동거

 

- 군인 아버지, 고고학자 어머니에게서 출생

- 주 칠레 대사관 경계 업무를 맡게 된 아버지를 따라 60년대 미국에 잠시 거주 - 이 때 히피와 포크 문화 세례

- 의대진학 후 사회주의 활동 (당시 아옌데 정부)

- 1973년 피노체트 쿠데타 이후 아버지  고문-투옥 후 사망 (물론 그녀도 가혹한 고문 당함)

- 1975년 가족들과 함께 호주를 거쳐 동독으로 탈출 - 반 피노체트 운동

- 병원 오더리로 일하다가 독일어 배운 후 훔볼트 대학에서 의학 다시 전공 - 이 때 역시 칠레 망명자와 결혼하고 자녀 출산

- 79년 추방령이 해제된 후 칠레 귀국하여 소아과 전공한 후 보건학 공부

- 하지만 우수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경력 때문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지 못하고 무료 진료소 같은 곳에서 일함

- 중도-좌파 연정 수립된 후 94년에 보건부 자문관 역할을 하다가 돌연(?) 국립 국방 대학에 등록, 우수한 성적으로 미국의 Inter-american Defense College에 초청됨기도 함

- 97년에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사회당의 정치위원 (국방.. 헥)으로 선출됨

- 6년 전, 리카르도 라고스가 아옌데 이후 처음으로 사회당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후 그녀를 보건부 장관에 임명

- 2년 후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 (ㅡ.ㅡ)

 

설마, 고문과 힘든 망명 생활을 거치고, 외부모로 세 아이를 키우면서 의사로, 국방 전문가로, 사회주의자로 살아온 이 역전의 용사가, 쉽게 포기하거나 굴복하지는 않겠지?

 

올해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열린다는 중남미 세계 사회 포럼은 아주 잔칫집이겠구나...

 

 

* 사족

오늘 Martin Luther King day 기념식에 다녀왔는데, 도인처럼 생긴 "흑인" 하원의원 아저씨가 특강을 하면서, 우리 모두 'dangerous negro'가 되잖다. 이건 흑인 민권운동 당시 FBI에서 킹 목사를 지칭했던 표현이다. 그러면서 security file에 우리 이름을 자랑스럽게 올리잖다. 헥... 무슨 소리야.. 난 조용히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근데... 사실 무척 감동 받았다. 이라크 전에 반대하고, 동성애자 차별에 반대하고, 소수인종 차별에 반대하고.... 만일 지금 그렇게 우리가 직접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면, 킹 목사가 말했던 'dream'은 그저 'nightmare'가 되고 말 것이란다... 

그래도 security file에 오르는 건........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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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ure vs. nurture

열심히 일하다가 문득 떠오른 잡생각.... (항상 바쁠때면 ㅎㅎㅎ)

 

에피소드 1.

 

어제 Indianapolis Wishard Memorial hospital의 견학 중에 간호부장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가.... 의사 인력과 비의사 (특히 간호사) 사이의 의사 소통, 협력 증진을 위한 특별한 방안이 있냐는 질문을 잠깐 했었다. 이건 병원 운영에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 제기이자, 한편으로 임상 서비스의 질과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부분이다.

 

이런저런 이야기 도중.... 자연스럽게 남자-의사/여자-간호사라는 젠더 권력의 문제가 제기되었는데...

지금이야 안 그렇지만, 50대 중반 쯤으로 보이는 이 간호부장 왈, 자기가 병동에서 일할 때는 (남자) 의사와 단 둘이 엘리베이터를 타면 안 된다는 간호사들 사이의 암묵적 동의가 있었단다. 성희롱, 성폭력이 워낙 난무했던지라... 

 

병원에서 일할 때, 여자 간호사들에 대한 남자 의사들 - 특히 교수들-의 아무렇지도 않은 성폭력적 발언과 행동들에 대해서 익히 경험했던지라 시공간을 넘어서는 그 '일반성'에 잠시 할 말을 잃었었다.

 

 

에피소드 2.

 

물론, 여자 '의사'라고 해서  성희롱의 경험이 없었던 건 아니다.

동해시에 파견 가 있던 시절, 

아침에 드레싱 겸, 회진을 돌러 다인실 남자 환자 병실에 들어갔는데,

내 담당이 아닌 아저씨 환자 하나가 아주 큰 소리로,

'의사 선생님 오셨으니 내 하나 물어봅시다. 내가 아침에 잘 서지가 않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으하하하.... 그걸 저 선생님이 어찌 알겠어?"

왁자지껄 + 집중되는 아저씨들의 시선....

 

나의 심드렁한 표정과 대답: "그래요? 주치의 선생님한테 전해드릴께요"

이어서, 싸~ 한 분위기...  

여기서 당황하면 안 된다는 거의 동물적 본능과 임상수련 동안 체득한 '환자와의 거리두기' 덕분에 가능했던 반사 + 훈련의 성과였다고 할 수 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더 세게 나가지 못한게 후회스럽고, 다시 되풀이하지 않고 싶은 기억...

소위 의사-환자라는 권력관계마저 뛰어넘는 젠더 권력이란...

 

에피소드 3.

 

지금 읽는 소설 (The Left Hand of Darkness) 에 보면 양성인간들( 말하자면, Hermaphrodite) 들이 사는 행성이 등장하는데, 조사단의 보고서는 이들이 유전공학 실험의 산물일 것으로 추측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럼 왜 굳이 이런 실험을 했느냐? 아마도 전쟁을 예방하기 위해서일 것이라는.... 남성의 공격성을 벗어나기 위해...

 

그런데.... 테스토스테론이, 호르몬이 이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다면 너무 안타깝지 않나?

무슨 짐승들도 아니구말야....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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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멋대로 미디어...

1.

 

홍실이님의 [테러가 아니라서 다행?....] 에 관련된 글. 

작년에 텍사스 정유공장 폭발 사고로 15명이 넘는 노동자가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수학여행 떠났던  여고생 실종 사건이나 마이클 잭슨 어린이 성추행 사건은 분초를 다투어가면서 그리도 열심히 중계를 하더니만, 이 사건은 진짜 건조하게 사실 보도 몇 번만 하고 끝나서 황당했던 기억이 난다.

 

지난 주 웨스트 버지니아 주의  광산에서 폭발 사고로 또다시 12명의 노동자가 한꺼번에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런데, 이번의 언론 태도는 엄청 다르다. CNN의 경우, 지난 카트리나 현장 중계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앤더슨 쿠퍼를 현지에 보내, 구조 작업의 진행, 가족들과 주민들의 표정들을 거의 실시간 생중계를 했다. 하지만, 재폭발의 위험성 때문에 구조작업이 쉽지 않았고, 결국 이틀만에 구조대가 사고 지점에 도달했을 때에는 조난된 13명 중 12명이 숨지고 나서였다. 그래서 이 한 명만 병원으로 후송되었는데.... 

 

어제 보니, 병원의 의사들이 주욱 가운 입고 앉아서 현재 상태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 20대 젊은 노동자의 각종 검사 기록은 실시간으로 전국에 생중계되고 있는 형편이다. 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들이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남긴 메모(I love you)는 전 미국인의 심금을 울리고 있으며, 가족과 마을 이웃들이 촛불을 들고 먼저 떠난 이들을 추모하는 광경은 매 뉴스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으례 그렇듯, 극적인 휴먼 드라마는 열심히 떠들어대고 있지만, 정작 광산 현장에서의 노동안전보건 문제는 거의 보도되지 않고 있다. 신문 기사에 의하면, 이 사업장은 그동안 엄청난 규정 위반을 저질러 왔다. 우연하게 벌어진 일회성 사고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작년 텍사스 공장 재해도, 지금처럼 극적인 '인간 드라마'와, '방송할만큼 충분한' 구조시간이 있었으면, TV 에 제대로 나와줄 뻔 했지 않을까...

 

2.

미군이 이라크 마을 공습 작전 도중에 병에 걸린 아기를 발견했다.

Spina bifida 라는 일종의 신경외과적 질환인데, 출생 직후 수술해주면 별 문제가 안 되지만 그냥 두면 하반신 마비를 가져올 수도 있는 그런 병이다.  

그래서.... 인정많은 미군들이 이 아기의 딱한 사정을 알렸고, 지지난 주에 드디어 미국 병원에 와서 수술을 받게 되었다. 역시 또 저명한 의사가 나와서, 수술이 늦어져 완전 회복은 어려울 수도 있다는 둥 예의 그 심각한 표정을 짓고, 아기의 똘망똘망한 얼굴과 고마워하는 엄마의 인터뷰가 줄줄 이어졌더랬다.

 

바그다드 병원에 있는 또다른 어린이들, 이번에 미국에 온 아기처럼 미국의 도움으로 치료 기회를 얻기를 열심히 바라고 있는 어린이 환자들과 그 가족의 모습을 뉴스에서 연일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선행을 몹시도 자랑스러워하는 뿌듯한 리포터의 표정.....

 

제비 다리 일부러 부러뜨리고 박씨를 기대하던 놀부는, 이에 비하면 인류 5대 성인의 반열에 올려줘야 할 것 같다. 

그동안 미국의 공습에 의해, 그리고 물자제한 조치로 인해 얼마나 많은 어린이들이 그 자리에서 혹은 서서히 생명을 잃어갔나. 열화 우라늄탄에 의해 백혈병에 걸린 어린이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거나, 오랜 금수 조치 때문에 기본적인 의약품도 없어서 수많은 어린이들이 설사병으로 죽었다거나.... 이런 이야기는 도대체 듣도보도 못했단 말인가?

 

 

 

텔레비젼 보고 있으면, 정말 저 놈의 방송국 뽀사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 두번은 아니지만....

아으.... 진짜 열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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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한 의원들

듣자 하니 한국 국회는 요즘도 맨날 헛바퀴만 돌리고 있다고 하던데....

 

미국 의원나리들은 어찌 이리들 부지런하게 법안 처리를 해대시는지 모르겠다.

회기 마감을 앞두고 부쩍.... 장난이 아니다. 

 

엊그제, 40 billion dollar 의 의료보장 감축안이 통과되었다.

 

메이케이드 환자들도 "책임감"을 높이기 위해 본인부담율을 확 높이고,

장기요양이 필요한 노인들은 재산을 홀라당 다 까먹기 전까지는 메디케이드 혜택을 받기 더욱 어렵게 만들어놓았다.

그 뿐이랴...

보험금을 60일 이상 내지 않는 (못 내는?) 메디케이드 대상자들에 대해 주 정부가 급여를 중단할 수 있도록 했고, 본인부담금을 내지 않는 환자에 대해서는 약국이나 의료기관이 서비스 제공을 거부할 수 있도록 했다. 

 

정말 너무들 하는구나..... ㅠ.ㅠ

 

상원에서는 이 법안이 51:50으로 가결되었다.

한 주에 두 명씩, 상원의원이 총 100명인데 어떻게 51:50이 가능할까?

미국 법에 의회 득표수가 동수인 경우,

부통령이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단다.

그래서, 딕 체니(!).... 그가 한 표를 얹었다.

 

주도면밀하게 준비해서 이런 법안들 척척 통과시키는 미국 의원들을 보고 있노라면,  

차라리 길바닥에서 사학법개정 반대 외치는 딴나라 의원들의 모습이 정겹게 느껴질 지경이다. 그들이 미국 의원들만큼 부지런하고 치밀하기까지 하다면, 그건 정말 대재앙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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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유감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무신론자가 뭐 특별한 소회가 있을까마는...

어이 없는 일이 있어서...

 

1.

 

한 2주 전에 뉴욕 타임즈에 보도되기로,

 

미국의 유수한 대형교회들 (megachurch - 그래봤자 신도 수만명이다. 한국에 비하면 그까이꺼)들이 일요일과 겹친 이번 크리스마스에 예배를 보지 않기로 발표했다는 것이다.

신자들이 오랜만에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성탄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란다. 친절하게도.. 온라인 예배를 집전할테니 가족들과 집에서 참가할 수도 있다고...

 

종교학자들의 해석은 좀 다른데, 이런 날일수록 (특히 일요일이 겹치면) 교회가 눈에 띄게 텅텅 비는게 현실이기 때문에 나온 고육지책일 것이란다.

어떤 이들은 작금의 현실을 개탄했다. 성탄이야말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랑을 나누는 시간인데... 가족이 없는 이들, 사랑이 필요한 이들이 이제 성탄절 마저도 갈 곳이 없어졌다고....

 

2.

 

지난 가을부터 한 달에 두어 번 씩 자원 활동에 참가해왔었다. 별 건 아니고, 일요일에 진행되는 노숙자 급식 프로그램에 가서 식사준비를 하고 설겆이 등등을 하는 거다. 장소는 교회 주방과 강당을 빌려서 하곤 했다. (사실, 할 말 많다... 주방용 영어 못해서 겪은 수난과.... 감자 세 푸대 까느라고 손에 쥐났던 거 등등)

이번 크리스마스 때도 딱히 할 일이 없던지라 (ㅡ.ㅡ) 당번 신청을 했는데...

담당자의 답장 왈....

이번 주에는 급식을 제공할 수 없게 되었단다.

자원자가 없고 (인원이야 매번 들쭉날쭉 하니까 그럴 수도 있지. 이럴 경우 응급 콜을 해서 사람들을 다시 모으곤 한다)...

무엇보다.... 교회를 빌릴 수가 없어서란다.

아무리 노력해보아도 도대체 성탄절인 일요일 오후-저녁 시간 교회를 빌릴 수가 없어서 노숙자들에게 따뜻한 밥 한끼를 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기도 진짜 열 받았다고... (really upset)

 

그렇지... 크리스마스니까....

특별한 프로그램과 교회 파티가 있겠지.... 

 

일주일에 겨우 한 끼,

지붕과 창문이 있는 공간에서, 탁자에 정식으로 앉아, 저녁을 먹고 따뜻한 차 한 잔을 즐겼던 그들이 너무 사치스러웠던 것이여....

 

젠장....

크리스마스가 없었어야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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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도덕을 지켜라..

특별히 연구자로서의 자존심 어쩌구 하고픈 맘은 없지만... 황우석 연구팀의 행동이 연구자들을 "능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맨 처음 미디어에 대한민국의 희망으로 등장할 무렵.... "월화수목금금금" 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꽤 한다고 여겼다. 대학원생들이나 연구원들은 도대체 어떻게 산다는 거야... 논문에 저자 명단이 두 줄 이상인 걸 보구, 특히나 그 중에는 청와대 보좌관도 들어있는 걸 보구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한국 학계의 고질병이겠거니 하면서 넘어갔었다. 그런데 그 이후 밝혀진 것들이나 나대는 모습들이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학술 연구지들은 공저자의 기준을 엄격하게 정하고 있다. 임상시험에 여러 기관이 참여했다고 해서 그 참가 병원의 연구자가 모두 공저자에 들어가는 것은 안 된다고 분명히 지침에 나와있다. 고로, 난자를 제공했다고, 혹은 프로젝트 팀에 들어가 있다고 전부 공저자가 되는 건 아니란 소리.... 논문 집필에 실제로 참여한 사람만이 공저자가 될 수 있다. "감사의 글"은 괜히 있는게 아니다. 노성일 인터뷰에 보니, 후학을 생각하여 자기 이름 대신 그 연구원 이름을 공저자에 넣은 걸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더라....... 도대체 되도 않는 윤리 자문 해주고 공저자에 들어간 보좌관은 뭐고, 그나마 난자 제공 마저도(!) 안 한 한양대 교수들 이름은 거기 왜 들어가 있나? 기껏 공동책임저자에 들어갈 때는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자기 이름 슬쩍 빼달라고 한 새튼 교수는 또 뭐고.... 일반인들이야 모른다 하더라도, 최소한 업계의 상도덕 상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헬싱키 선언을 몰랐다니, 논문 제출 시에 같이 내는 윤리 준수 양식은 읽어보지도 않고 싸인을 했다는 소린가? 도대체 윤리 보좌관이랑 뭘 의논했대? 이것이 진실이라도 놀랍고, 둘러대는 거짓말이라도 놀랍고.... 이 사회에 자기네 말고는 제대로 된 연구자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어찌 이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야? 최근 스캔들 내내, 어처구니가 시리즈로 없었지만, 그 중에서도 백미는 이 난리통에 일본에 선수 논문을 빼앗겼다는 희대의 사기발언이었다. 하다 못해 신문 독자 투고도 이틀은 있다가 실리는 법인데, 무슨 학술 논문을 1주 만에 실어주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가장 빠르다는 것들도 접수에 심사에 두 달 이상은 걸린다는 것은 학계 언저리에만 있어도 알고 있는 상식 아닌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라.....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건 "황우석 죽이기" 에 대한 반박자료라는 것을 보고 엄청 열받았기 때문이다. 이 자료는 또 누구 보라고 만들었나? 과학은 과학으로 어쩌구 하더니만, 이게 지금 과학인가? 이런 언론 플레이 과학 어디서 배웠나? 나도 좀 배워보자. 이제 좀 고만 했으면 싶다. 연구자들이 바보냐? 일반 시민들이 모른다고, 연구자들 빤히 보는 앞에서 생쑈 좀 하지 말아라. 최소한의 상도덕은 좀 지키란 말이다. (에구, 괜히 흥분해서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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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강 치어리더...

초절정 난감한 기사....

 

오늘 뉴욕타임즈에 실린 내용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에도 제약회사 판촉사원들이 가가호호(?) 의사의 진료실을 방문하여 일심히 판촉활동을 벌이는데 (이를 Drug Rep 이라고 한다. 전국적으로 약 9만명이 있다고... 사족이지만, 각종 세미나 참가비, 저녁 만찬, 학회 지원, 골프 회동... 아주 다양한 형태의 제약회사 판촉활동이 의사들을 상대로 벌어지고 있다. )

 

대학 치어리더 출신들이 이 분야에서 엄청 각광을 받고 있단다.

 

몸에 대한 숭배가 지극하기 그지 없는 미국 사회에서 치어리더, 그것도 주목받는 역할을 한다는 것은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공인받는 지름길...

이러한 자산을 바탕으로 여기저기 많이들 진출해 있는데, 요즘 제약회사가 그 중 하나가 되었다는 것...

하도 스카우트가 활발하다보니, 치어리더들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이를 업체 (주로 제약회사)에 연결시켜주는 인력 중개회사까지 생겨났단다.

 

"전공이 뭔지는 물어보지도 않아요.

검증된 치어리더의  기술-과장된 몸짓, 과장된 미소, 과장된 열정-만 있다면 충분하죠."

 

소개된 사례들 중 하나는, 역시 치어리더 출신일 뿐 아니라 현재에도 활동하는 현역...

주말에는 Washington Redskins의 치어리더로 일하고, 평일에는 제약회사 판촉사원으로 부인과 전문의들을 만나 질의 곰팡이 감염증 치료 약제를 소개한단다..... ㅡ.ㅡ

 

전직 판촉사원이 쓴 책에 보면, 의사들이 해당 약제를 쓰지 않는 이유를 열 가지나 들이대다가, 미모의 판촉여사원이 방문하여 머리결 한 번 튕겨주고 소매 한 번 잡아댕겨주면 "OK, 한번에 용량을 어떻게 하면 되지?" 하고 돌변한단다.  

다른 서베이를 보면, 이런 여성 판촉사원들 중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다수 있고, 심지어 한 법정소송기록에 의하면, 제약회사들이 이들로 하여금 의사들과 개인적인 친분관계를 맺도록 부추기기도 했다니....

 

판촉사원의 대부분이 미모의 매력적인 여성임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얼마 안 되는 남성 사원들도 다들 운동선수 같은 체격에 핸섬하기 그지 없단다.

 

교과서에서 배운 미국의 근거중심의학 (evidence-based medicine), 임상 지침(clinical guidlines)은 어디로 갔더란 말이냐... 그런게 존재하기는 하는 건가?

 

 

* 사족

이 기사 바로 옆에 좋은 소식 하나...

노조에 적대적이기로 악명 높은 텍사스에서 SEIU가 Janitor (잡역부, 청소 등등) 5천여명을 조직화하는데 성공했단다. 그동안 이들 임금이 시급 5.25불 (최저임금보다 10센트 높음 ㅜ.ㅜ)에, 의료보험은 물론 아무런 부가 혜택이 없었다고... 앞으로도 정식 협상을 비롯하여 기업주들의 노조파괴 공작 (도대체 이게 불법노동행위가 아니라는게 이해가 안 가지만)에 맞서 싸워햐 한다는 험난한 길들이 남아 있지만.... 그래도 희망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역사적인(!) 사건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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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불똥...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엉뚱하게 당 게시판이 쑥대밭이 되었구나... ㅡ.ㅡ

 

쌀 비준안을 제대로 저지하지 못했다고, 비정규직 투쟁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쑥대밭이 되었다면야 모르겠지만,

황우석 스캔들 때문에 저리 되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줄기세포 연구가 성공하면,

세계인 누구나 그 치료의 혜택을 입고,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그 부가가치로 돈방석에 앉게 될텐데...

이 좋은 거를 사사건건 시비 거는 당이 아주 눈엣 가시처럼 보이나보다.

 

무서워 죽겠다.

우리가 미국만큼 돈이 없고, 미국만큼 무기가 없고, 미국만큼 힘이 없다는게 다행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지금 미국이 한 딱가리 하는 거는 저리 가라였지 않을까  ㅠ.ㅠ

 

근데..

진짜 기가 막힌 것은... 인터넷 공간에서 들끓는 익명의 목소리들이 아니라,

연구자들의 반응이다.

유전체 사업단장인 유향숙 박사의 논평에 아주 쓰러질 뻔했다.

중대한 시점에서 윤리가 과학의 발목의 잡는 일은 없어야겠다고...

이 발언은, 언론의 제멋대로 취사선택 때문에 왜곡되어 전달된 것이라고 믿고 싶다.

황우석 박사, 헬싱키 선언이 있는지도 몰랐단다. 아마 대부분의 다른 연구자들도 모를 것이라고...

이야......... 굉장들 해...

한양대 IRB도 아주 한딱가리 잘 하고 있더만....학생들, 전공의들 보기 부끄럽지 않을까?

 

학교 다닐 때 내내 배웠던 "공산주의가 나쁜 이유 - 목적이 수단을 합리화시키기 때문"은 바로 오늘 한국사회에 적용할 수 있다. 난치병 퇴치라는 신성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윤리니, 난자니 그까이꺼...

 

 

남의 탓을 해 무엇하랴만, 이게 전부 군사문화의 잔재라고 생각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뭐든지 빨리빨리...

어떻게든 결과만...

 

이래저래, 당의 앞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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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venstein 할배.. 뒷이야기

참세상 기사 좀 써보겠다고 레벤스타인 할배 만났는데....

질문한 대로 답 안해주고 맘대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바람에 원고 쓰느라 죽을 고생했다. 써놓고 보니 엄청 후진데... 더 고치지도 못하겠다. 이 바람에 혹시 잘리지 않을까? ㅎㅎㅎ

 

사실,

대화 내용이 기사에 쓰기는 좀 어려웠다. 

연구자의 자세라던지, 그동안 살아온 궤적이라던지... 연구자인 나한테는 무척이나 관심있는 것들이었지만, 일반 독자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 사진은 선물(?)로 받아온 책들..Lost Baggage는 할배 시집이다.

 

 


 

 



1.

내가 노조에 대해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한단다.

나 스스로는 그런 환상 따위(?) 없다고 믿는데, 실제로는 안 그런가보다.

금연 사업같은 건강증진 사업에 노조 참여가 활발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런가 물어봤더니만.... 그게 경비 절약에 커다란 인센티브가 되기 때문이란다. 여기 미국은 의료보험을 노조를 통해 가입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홍실: 아니, 그럼 기업이랑 동기가 하나도 다르지 않잖아요?

할배: 노조가 무슨 착한 사람들 모여서 만든 이상적 단체라고 생각하는 거 아냐? 물질적 토대를 왜 간과하는겨? 진짜 혁명적인 조합 (revolutionary union)도 있고, 기업식 조합 (business union) 도 있어.. 노조 자체를 지나치게 도덕적이고 이상적인 조직으로 볼 필요는 없다구...  지역 위원회 같은데 가보면, 소위 좌파 노조들은 일반 주민이랑 조합원들 앉혀 놓고 이해도 안 가는 트로츠키가 어떻고 마르크스가 어떻게 떠들어서 사람들이 잘 모이지도 않는데, 오히려 우파 노조들이 일상 요구들을 잘 파악하고 조직화를 더 잘하는 경우도 많아..

 

2.

마르크스나 엥길스, 가깝게는 폴 스위지만 해도 엄청 좋은 집안 출신의 '혁명적' 지식인들이다. 꼭 겪어봐야만 상황을 더 잘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 경험은 유전자만큼 강하게 삶에 흔적을 남기는 거 같다. 

할배가 진짜 어렵게 살았단다. 뉴욕으로 이민온 유대인 건설 노동자의 아들... 총쏘고 살인 사건 나고 그런 거는 동네에서 허다하게 봤단다. 명문 코넬 대학에 들어가서는, 학교 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맨날 술만 퍼마셨단다. 대학생, 중산층의 삶 자체가 너무 충격이었단다 (frustrated). 그래서 그 흔한 장학금 한 번 못 받았다고....

60년대  후반-70년대의 시민권 운동이 잠잠해질 무렵, 사람들이 하나 둘씩 활동을 접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을 때... 할배는 생계가 막막해서 택시 운전을 시작했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 (중간 계급, 지식인들)은 활동을 하는 동안 부모나 가족으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자신은 전혀 그럴 수가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고... 힘들었던 시기에 첫째 아이도 병으로 죽었다니.... ㅠ.ㅠ

그런 어려운 순간들을 다 이겨내고, 노조 전임자로, 지역 활동가로, 연구자로.... 한시도 실천활동의 끈을 놓지 않은 이 할배의 동력을... 그 다른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3.

건강형평성 연구에 대해 엄청 비판 (사실은 비난 ㅜ.ㅜ) 했다.

그래서 뭐 어쩌겠다는 거냐구....

사실은 그게 나도 고민인데 말이다...

연구가 사실 밥벌이기도 하고.. 뭐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만. "안 그러면 너 굶어 죽냐?" 그러는데.... 참....

내가 세상과 타협한 중년의 연구자고, 할배는 세상 물정 모르는 기개 넘치는 젊은 학생인 것 같은 분위기였으니.... 어찌 당황스럽던지...

 

4.

할배 시집을 펼쳐보면서, 박노해 시인 이야기를 꺼냈다.

홍실: 한국에 엄청 유명한 노동자 시인이 있었어요. 지하 사회주의 조직을 이끄는 실천가이기도 했고... 근데... 감옥에 갔다오더니 사람이 좀 이상해졌어요.

할배: 너 감옥 가본 적 있어?

홍실: 아뇨

할배: 우린, 시련을 겪은 사람들에 대해서 함부로 이야기하면 안 돼. 내 친구 중에도 노조활동 하다가 회사 측 폭력 때문에 몸이 완전히 망가진 사람이 있어. 다친 이후에 그이는 활동을 떠나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지... 나는, 그 사람이 지금 그렇게 살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홍실: 네 (부끄부끄...)

 

할배에게서 드러나는 그 거침 없음과 유쾌함, 노동과 삶, 활동하기의 즐거움 (왜 즐거움만 있었겠냐만..)에 깊은 감화를 받았다... 오.. 멋진 할배....

 

할배도 만나서 수다 떤게 즐거웠다니, 다음에는 술 한잔 해야겠다.

인터뷰 하자고 불러내서 오히려 커피 얻어마신게 민망했으니, 담에는 내가 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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