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영화제 웹데일리에 실은 글
성장통을 겪어본 적이 없다. 있었을 텐데 기억하지 못한다. 머리가 벌써 잊은 그것을 몸이 재현하는 순간이 있는데, 여성이 여성의 삶을 말하는 영화를 볼 때가 그렇다. <엄마…>(류미례, 2004), <엄마를 찾아서>(정호현, 2005), <쇼킹 패밀리>(경순, 2006)는 특히 그랬다. 저마다 다른 성장배경과 시선을 담은 다큐멘터리인데도 감독이 직접 가족과 자신의 삶을 들려주는 화면에 몰입하다보면 해마다 가슴에 다시 멍울이 맺혔다. 관절이 뻐근하게 쑤셔왔다. 단 한 장면, 단 한마디 말에 느닷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숨이 넘어갈 듯 웃어댔다. 어둠 속에서 한 관객을 첫 생리에 당황하는 여자아이로 돌려놓는 그 영화들. 나루/ 다큐멘터리 감독
나는 성장한다, 가족 안에서
<엄마…> <엄마를 찾아서> <쇼킹 패밀리>
2007. 04. 11. 수요일
올해 4월5일, 서울여성영화제에서 상영한 <스테파니 데일리>에서 스테파니는 법정 심리학자 리디에게 자신이 TV와 학교를 통해 충분한 성교육을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그런 사건으로 임신할 수도 있다는 것도, 그 사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도, 임신을 확인한 후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 지도 몰랐다. 엄마도 아빠도 딸에게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미리 말하지 못했고, 딸도 부모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하지 못한다. 딸도 부모도 무죄판결을 원하지만 진실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드러난다. 고향 사람들로부터 술 한 잔만 들어가면 죽여주는 사람으로 알려져 자식들이 난감해하지만 음악만 나오면 춤을 추는 <엄마…>의 엄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진 땅을 전부 교회에 헌납하겠다는 <엄마를 찾아서>의 엄마, 이혼했다는 이유로 아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하거나 아버지의 시상식장에서 옷차림에 대한 비난을 감내해야 하는 <쇼킹 패밀리>의 엄마와 감독은 어땠나. 한 집에서, 혹은 각자 다른 집에 살더라도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관계를 가족이라고 부르지만 이들은 종종 세상에서 가장 멀고, 윤리와 관습의 잣대가 더 가까이 다가온다. 버릴 수도 안을 수도 없는 가족, 그러나 무엇이 장애물이고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지 정면으로 인식하는 순간, 영화 속 그들 모두는 한 걸음 나아간다.
이해할 수도, 화해할 것 같지도 않던 엄마와 손을 잡게 되는 감독이 나인 것만 같아서 몰입하는 동안, 그 피비린내 나는 통증에서 헤어나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그로 인해 성장을 확인하는 나는, 이런 영화들이 존재하는 한 어쩔 수 없이, 언제나, 아직은 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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