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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투쟁 속에 '인간'은 있는가?
 초청포럼'중구난방' 후기

현장에서 미래를  제123호
초보좌파

우리의 투쟁 속에 
명분과 당위가 아닌 ‘인간’은 있는가...?

초보좌파


8월 19일. 토요일. 오후 3시.
한국노동정책이론연구소(한노정연)에서 ‘열린포럼 중구난방’ 두 번째를 연다기에 땡볕을 뚫고 혈혈단신으로 찾아 갔다.
 
왜 갔냐구? 중구난방이라길래....
참고로 아는 척하면^^
중구난방 (衆 : 무리 중  口 : 입 구  難 : 어려울 난  防 : 막을 방)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소공(召公)이 주여왕(周勵王)의 탄압 정책에 반대하며 이렇게 충언(衷言)하였다.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개천을 막는 것보다 어렵습니다[防民之口 甚於防川]. 개천이 막혔다가 터지면 사람이 많이 상하게 되는데, 백성들 역시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내를 막는 사람은 물이 흘러내리도록 해야 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말을 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왕은 소공의 이 같은 충언을 따르지 않았다. 결국 백성들은 난을 일으켰고, 여왕은 도망하여 평생을 갇혀 살게 되었다고 한다. 즉 대중의 말길[言路]과 자유로운 생각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자면, 맘껏 떠들어도 누가 뭐라 할 사람없는, 거침없는 상상력이 이야기될 수 있는 자리라길래 갔던 것이다. 난 그동안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내 이야기처럼 입에 걸치고 다녔다. 난 ‘남’의 이야기가 마치 ‘나’의 이야기인 양 또 다른 ‘남’들에게 떠들고 있었다. ‘나’의 이야기와 ‘남’의 이야기 사이의 깊은 골은 그다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왜냐면 ‘남’의 이야기가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점점 ‘나’의 이야기는 자취를 감추고 ‘남’의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로 스스로 착각하며 지내왔다. 그것은 편했다. ‘남’의 이야기를 내 것으로 편집하는 것도 쉬웠고, 내 속의 나를 끊임없이 되돌아보며 힘들어 할 필요도 없었다. ‘남’의 이야기가 맞으면 그냥 내 속으로 집어넣으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사실 내 이야기를 하려고 갔다기보다는 그러한 상상력과 이야기들이 흘러넘치는 소리에 목이 말라서 갔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게다. ‘나’의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기에 ‘나’를 이야기하는 것이 부끄럽고 어딘지 모자라고 자신 없었다. ‘자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래서 더욱 듣고 싶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다른 자리들보다 더 큰 기대를 가지고 갔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 중구난방에 초청된 사람은 다큐영화 ‘돌 속에 갇힌 말(87년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항의 농성 사건)’의 감독인 ‘나루’님이다. 이 다큐영화는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 구로구청에서 발각된 부정투표함에 시민, 학생 등이 항의하며 시작된 농성이 국가의 폭력으로 짓밟히게 된 사건을 다룬 것이다. 당시 상황을 찍었던, 유일하게 남아있는 영상과 당시 참여했던 사람들의 증언과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민중의 열망에 대해 폭력으로 답하는 지배계급과 국가의 모습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민중들에게 무차별 행해지는 폭력의 모습은 볼 때마나 울화가 치밀고 가슴은 먹먹하며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살인폭력 자행하는 국가권력 해체하자!! [고 하중근 열사를 추모하며]
 
영화 상영을 끝내고 중구난방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으레 그렇듯이 처음에는 서로 잘 모르는 사이이기에 무언가 말문을 연다는 것이 쉽지 않은 법이다. 나루감독에 대한 질문과 답변으로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중구난방으로 이어졌다. 그러면서도 내 마음 속에는 ‘아무리 중구난방이라지만 그래도 이야기 자리라고 하는 것은 무언가 중심을 잡고 이야기가 오고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아직도 나는 내 이야기가 자유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 어색해서 무언가의 틀거리가 주어지고 그 속에서 그것에 맞게 이야기하는 것에 여지껏 익숙해져 있는 것이었다. 한 번 물이 들면 그 물이 빠지기는 무척 어려운가 보다.
 
건방지지만 시건방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돌 속에 갇힌 말’이 ‘인간’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좋았다. 그것도 역사로 불리우는 투쟁 속에 그 투쟁의 역사적 의미 등등에 대해 재조명 어쩌구저쩌구가 아니라 그 투쟁 과정과 이후의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개인적으로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 다큐영화는 끝에 이런 말을 남긴다. “역사에 대한 예의 그러나 인간에 대한 예의가 우선이다.”
 
감히 말하건대 우리는 인간을 위해 투쟁해야지 투쟁을 위해 인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돌 속에 갇힌 말’에 보면 당시 그 사건의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크게 두 분류로 나뉜다. ‘관망하고 지시하는 사람 부류’와 ‘직접 뛰어들어 행동하는 사람 부류’이다. 관망하고 지시하던 사람들은 공권력의 폭력이 자행되던 그 순간에 아무도 구로구청 현장에 남아 있지 않았다. 부정투표함의 사수가 민주주의의 사수라는 그 하나의 믿음으로 모여 들었던, 직접 뛰어들어 행동했던 시민, 학생 등 민중들만이 국가의 폭력 앞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건이 역사의 뒷켠으로 밀려나 있는 동안, 그 투쟁과 폭력 그리고 그 이후를 오직 한 개인으로 감당해야 했던 그들은 역사의 그늘 속으로 배제되고 소외되어 있었다. 역사라고 할 것까지 없다. 바로 우리에 의해 배제되고 소외되어 있었다.
‘적과 싸우면서 적을 닮아 간다.’고 했던가. 역사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결의를 요구하지만, 결국 그것은 개인의 희생으로 정리될 뿐인 것 말이다. 우리의 투쟁 속에 명분과 당위가 아닌 ‘인간’은 있는가? 명분과 당위 속에 ‘인간’은 희생당하고 있지는 않은가? 투쟁과 조직의 이름 앞에 ‘인간’은 배제되어 있지는 않은가? 국가든, 민족이든, 학교든, 가정이든, 조직이든 그 명분과 당위 앞에서 ‘인간’은 고려되고 있는가? 나 역시 적을 닮아 가고 있지는 않은가?
 
중구난방의 이야기가 자연스레 ‘우리’라는 속의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 진행되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아무도 ‘누가 틀렸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강변하거나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고 그 다음을 요구하지 않았다.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자신의 덜익은 생각과 떨리는 가슴과 부끄러운 감정을 자연스럽게 드러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강요하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의 잣대를 갖고 듣지 않을 수 있었다. 그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하기 위해 내 스스로 노력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참여한 사람들은 우리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충분히 공감했다.(적어도 내 생각에^^;)
그래서 그랬는지 세꼬시 집으로 옮겨서 계속된 뒷풀이 자리는 나머지 아쉬운 여운을 남길 만큼 즐거운 자리였다. 나만 그랬나?^^; 중구난방...담에도 꼭 가야지...ㅋㅋㅋ
 
여전히 나의 머릿 속에는, 가슴 속에는 그 말이 남아 있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우선이다”

 

2006/09/03 16:30 2006/09/0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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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이 지나도, 돌 속에선....
 초청포럼'중구난방' 후기

현장에서 미래를  제123호
김경환

19년이 지나도, 돌 속에선 그들의 목소리가 메아리친다
독립영화 <돌 속에 갇힌 말>
- 폭력과 억압이 독재를 표한다면, 대한민국은 아직 민주화가 되지 않았다.

김경환


이번에 기회가 되어 본 ‘돌 속에 갇힌 말’은 개인적으로 오랜만에 본 독립영화였다. 이전에 본 독립영화라고 해봤자 고작 ‘화씨 911’같은 마이클무어감독의 영화 몇 편 본 것 외에 그다지 많이는 접해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돌 속에 갇힌 말’이라는 영화는 나에게 많은 느낀 점과 고민지점을 던져준 영화이다. 특히나 마이클무어감독의 독립영화들은 미국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면 ‘돌 속의 갇힌 말’같은 경우 남한에서 일어난 이야기라서 그런지 많은 관심과 흥미를 형성해 준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은 우선 얼마나 많은 이들이 87년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가에 대한 기억이었다. 나 같은 경우는 내가 태어나고 바로 다음해였으며, 나에겐 좀 생소한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87년도에 살았던 분들은 어떨까? 간단하게 가장 가까이 있는 어머니께 이 이야기를 해보았다. 내가 아는 이야기랑 크게 벗어나지 않은 이야기들이었다. “88올림픽준비, 노태우 정권 출범, 나의 돌잔치(?)” 그리고 민주주의운동의 절정인 “6월 항쟁” 정도가 나의 어머님이 기억하는 87년도였다. 나도 그렇고, 아마 거의 대부분의 이들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돌 속에 갇힌 말’의 ‘나루’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다른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바로 87년 12월 16일 대통령직선제 선거 당시 노태우 전대통령의 불법선거와 이에 대항한 민중의 이야기이다. 구로구청에서 진행된 이 사건은 투표함 안에 있던 불법 선거의 증거들과 이 사건의 현행범을 찾아내지만, 결국 노태우정권은 성립되고 그 과정에서 민중의 목소리는 돌 속에 갇혀버리는 사건을 역추적하는 이야기이다. 당시의 구로구청에서 싸운 사람들과의 취재, 그리고 말을 꺼리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제작기간이 왜 5년인지를 나름 짐작 할 수 있었다.

난 이 영화를 보면서 문득 ‘평택’이 기억났다. 군부대와 전투경찰, 용역까지 진압에 뛰어들어 평택의 주민과 각 시민단체들의 목소릴 현재 붕괴된 대추 초등학교 안으로 가두어 버렸다. 난 당시 현장에 있지는 않았으며, 군부대의 투입 2일전 대추리를 빠져나왔었다. 그리고 수업도중 대추 초등학교가 붕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새벽부터 군부대와 전투경찰, 용역들이 밀어 닥쳐선 주민과 학생, 시민단체를 무력진압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투쟁”이란 문구가 있는 곳에 그런 무력진압 없는 곳이 어디인가? 그렇다. 없다. 하지만 87년 12월 16일, 민주화투쟁, 진정한 국민으로써 투표권 쟁취라는 궐기 아래 맞선 민중들에게도 이 무력진압이란 것이 적용되었다. 또한 19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달라졌다면 현제 정부는 아주 약간 세련되어 졌다는 부분 외에는 전혀 바뀐 것이 없다. 여기서 세련이란 의미는 얍삽하다는 것이다. 말로는 “민주주의의 사회에서 서로 화해와 평화, 사랑을 실천하...”라고 자신들에게 믿으라고, 따라오라면서 뒤통수(?)를 치는, 국민과의 배신을 서슴지 않고 있다. 단지 그 차일뿐이다.
당시 노태우가 누군지 민중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노무현은 우리가 누군지 몰랐다.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 주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노무현인 줄로만 알았었다. 하지만 현실이 그런가? 난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하며, 이러한 행동은 국민들이 아직은 남한사회에서 주인으로써 살아가지 못하는, 겉모습만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독재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기에 아직 남한의 민주주의는 멀었다고 말하고 싶다

2006-09-03 13: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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