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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빠.

라디카 언니를 만난 건 작년 이 맘 때 쯤이었다. 한창 명동성당에서 이주노동자들의 농성이 진행 될 때였고, 나는 이주노동자 인터뷰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언니를 만났다. 그 멤버들 안에 여성이 워낙 소수였는데다가, 노는 거 좋아하는 성격이 닮아서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그 때 나는 네팔 분들에게 순더리라는, 네팔 말로는 매우 좋은 뜻이지만 한국어 발음상 매우 토속적인 이름도 선물받았다. 그리고 일 년. 그 사이 나는 종종 언니네 집에 놀러가 밥을 얻어먹었다. 때론 술도 먹었고, 또 때론 춤도 추러 갔고, 가끔은 집회도 같이 갔다. 내가 보기에 언니는 항상 용감한 사람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늘 대장 같았고.

그리고 언니랑 같이 살던 이무 언니-언니 본명이 람부마리라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는 라디카 언니랑은 좀 달랐다. 술 먹고 놀기 좋아하는 라디카 언니와 나에게 잔소리를 하는 건 늘 이무언니 몫이었다. 또 그러면서도 묵묵히 다 받아주기도 했고.

언니는 교회를 열심히 다녔다. 수다떨고 신나게 놀다가도 언니는 열심히 교회에 갔다.

 

목요일에 언니가 잡혀갔단 얘길 들었다. 라디카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더니 몇 명 잡혀가면서 도망친 사람도 있었는데 언니는 도망을 못 쳤다고 한다. 면회 가보라고 하기에 나는 나도 모르게 언니는 언제 갈 건데, 같이 가자고 그랬다. 라디카 언니는 웃었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가, 나는 못 가 그랬다. 내가 멍청하게 실수했다. 그랬다, 언니는 그 곳에 갈 수 없는 사람이었다. 같이 살던 가장 친한 사람이 잡혀갔는데도 얼굴 보러도 갈 수 없는 거였다. 더럽다. 한국이라는데가 참 더럽다.

 

오늘 전화하니 언니는 의외로 또 담담하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잡혀가는 모습을 봤으니 이제 그냥 익숙한 일이 돼버린 걸까.

머리 속이 너무 복잡하단다. 일인 시위도 해야 하고.

라디카 언니는 몇 달 동안 일을 하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일 그만. 종종 이주 동지들이 찾아와 언니에게 얼마씩얼마씩 돈을 주고 갔다. 병원비 때문에 안 그래도 돈이 많이 들던 때. 언니는 오빠들이 용돈 준다며 웃었다.

 

우리 순더리 맛있는 거 해 줘야지 하면서, 내가 감자 좋아한다고 매번 상에 감자요리를 빼 놓지 않았던 언니들. 방 안에 엎드려 누워서 잡지 보면서 수다 떨던 것도 그립고, 술 그만 먹으라고 잔소리하던 언니도 그립다.

 

이주노동자들과 만나면서 제일 속상한 건 인사할 때를 늘 놓치곤 한다는 거다.

어느날 갑자기 잡혀가버리고 나면, ..

마지막 만났던 날도 생각나고. 술 그만 먹으라고 했던 것도 나란히 누워 수다를 떨던 것도 생각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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