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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30
    어느 날(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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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7/06/17
    골목길 접어들 때엔(5)
    새삼
  3. 2007/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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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7/05/20
    추억의 편지(11)
    새삼

어느 날

내일 수업 교안을 만들면서 (이제야!!!!)

이런저런 오래된 사진들을 들춰보고 있는데

무려 3년 전의 사진을 발견.

아 왜케 웃기지.

어설픈 자세 하곤 손톱과 팔찌의 색을 맞춘 촌스러움이라니.

 

근데 머리는 지금이랑 비슷하네..ㅎ

 

어째 추억에 잠기게 되누나~




옆에 있는 보라씨 보구싶어..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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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접어들 때엔

* 민중언론 참세상[골목길 접어들 때에~] 에 관련된 글.


 

새벽 골목길은 원래 조용하다.

낙산공원 초입에 있는 우리집으로 오르는 언덕길.

12시 조금 넘어까지 하는 슈퍼가 문을 닫으면 간혹 개, 고양이 소리나 간간히 들렸다.

 

여름이니 골목길이 활기를 띤다.

좁은 골목 양쪽으로 다들 창문을 열어놓은 탓에

12시 넘어 골목도 시끌시끌하다.

싸우는 사람들 소리도 들리고 TV소리도 들리고 설거지하는 소리도 들리고 담배연기 소리도 들리고 쌔근쌔근 자는 소리 그리고 내 발자국 소리. 다 들린다.

 

어려선 시장 골목에 살았다.

앞집 아주머니가 밥을 챙겨주면 뒷집 아주머니는 아이들이 잘 자나 들여다봐주는 곳에 살았다.

문도 활짝 열고 자거나 꼬맹이들끼리 놀며 뛰어다니던 곳이었다.

특별한 날이면 엄마 손 잡고 골목을 나서 시장으로 갔다.

하나에 오백원짜리 닭꼬치를 하나 쥐어주면 동생과 나눠먹곤 했었다. 그게 하나 더 먹고 싶어 구워지는 닭꼬치를 보며 침을 질질 흘리곤 했다.

엄마는 해물탕거리를 사 한데 넣고 보글보글 끓어주었다.

지금 기억으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그 때 못 먹던 미더덕을 지금은 오독오독 잘도 먹는데,

이제 그 골목은 사라졌겠지.

그래서인가봐. 힘들게 올라가야 하는 언덕위 이 집을, 이 골목을

내가 이리도 애틋하게 좋아하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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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11

요즘은 잠드는 게 참 힘들다.

하루종일 힘들어하는 것이 그 때문임을 알면서도

자리에 누운 채 두세 시간은 그냥 뒤척이기만 한다.

 

누운지 두 시간이 지나

문득 보내야 할 메일이 하나 생각났고

그녀의 메일 주소를 확인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쓰지 않던 계정에 로그인을 했다.

 

그 곳엔 어린 내가 있었다.

안쓰럽지만 훨씬 생기 있는, 내가.

메일이 아직 소통의 수단으로 유의미했을 무렵의 편지들은

온갖 기억들로 나를 이끈다.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친구와의 심각한 이야기들,

부끄러운 목소리로 너를 좋아해라고 말하는 몇 통의 편지들,

각종 관계들, 그 안에 오해들, 이제 연락하기 어려운 사람들, 그런 것들.

 

일부러 기억을 도려내어버린, 지워 버린 편지들까지 모두 기억나는 밤.

 

지금보다 더 바보 같았겠지만,

그래도 사람들에, 그 관계들에 애정을 쏟고 살았던 내가

그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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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편지 2



사랑하는 엄마께

 

엄마, 오늘 편지 잘 받았어요. 엄마 말씀대로 11월 1일날 결심했던 것을 잘 지켰는지 궁금해요. 엄마, 이번에 엄마가 넣어주신 편지는 우리에게 처음 온 편지 거든요. 제가 만든 우체통이 우리집에 도움이 되니 기분이 좋아요.

엄마 내가 요즘은 말을 듣다 안 듣다 하니 싫지요? 양념이 싱겁게 잘 안 되요. 조금씩 짜지거나 맵게 되거든요. 엄마 좀 협조 부탁드려요. 무엇보다도 우리 식구끼리만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즐거워요. 엄마, 답장을 꼭 보내주세요.

엄마 무척 사랑해요.

 

엄마의 오른팔 ** 올림

 

추신 : 조금 써서 미안해요.

-----

 

양념 부분은 실제 요리 이야긴지 나름의 비유였는지 모르겠다. 깔깔.

협조 좀 부탁드린다는 어린 딸년의 편지를 받고 엄마는 어떤 표정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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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편지

이사를 한답시고
온 식구가 오랜만에 모여 앉아 수다를 떨다가
뭐든지 추억이라고 버리기 싫어하는 오마니가 고이고이 모아놓은 편지와 일기 더미를 봤는데
온 식구가 박장대소 ㅎ
그냥 두기 아까워서 블로그에도 스리슬쩍.
어려서부터 유명한 악필이었으므로 내용은 리타이핑..ㅎ
어릴 적 나 역시 비꼬기 좋아하는 모습 그대로. 깔깔.





편지 전문

어머니께

어머니, 안녕하셔요? 다른 어머니들과는 달리 회사를 다니시니 집안 일까지 하시면 힘드실 거예요.
어머니께서 허리가 아프시고 흰 머리가 늘어나실 때면 우리가 말을 잘 들어야지 생각도 하지만 왠지 어색하고 일을 잡아도 기운이 나던 것도 힘이 빠져요.
더구나 요즘엔 책까지 쓰셔서 더 바쁘시고, 번역도 밀리셨다고 하셔서 무척 걱정이 되네요.
어머니, 저희는 '사랑의 매' 때문에 억지로 말을 들을 때가 많아요. 매가 무서워서 말을 들으면 싫으시다는 어머니시지만 왠지 매만 보면 떨리고, 무서워요.
그렇기 때문에 말을 잘 듣는 거예요. 이제부터 사랑에 매가 필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ㅋㅋ)

그리 똑똑하지 않고 그리 건강하지도 않아서 상을 많이 타다 드릴 수도 없고 너무 어려서 아직은 도와 드릴 일
(2장) 도 그렇게 많지는 않고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것은 집안 일 조금과 사랑과 기쁨이어요. 이것은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그리 좋은 것은 못 돼어도 조그마한 힘든 드릴 수 잇을 거예요.

더구나 아빠께서 이럴 때 집에 안 계시고 나가 일하시니(이 부분은 마구 지웠다 다시 쓴 흔적이 ㅋㅋ) 우리 집의 기둥이 흔들리고 있어요.
이럴 때야 말로 정신을 바짝 차려서 우리집을 이끄시는 가장이 되셔야 해요. 그래야 우리집이 예전처럼 평화롭고 아름다운 빛을 되찾을 수 있으니까요.
어머니 그럼 이만 씁니다.

1991.3.25.
자랑스런 장녀
** 올림
(그림과 함께) 음악을 지휘하듯 우리집을 지휘하시는 어머니(깔깔깔)
---------------
생전 엄마한테 '어머니' 따위로 불러 본 적도 없으면서
저 요구 사항 많고 비꼼이 가득한 편지 속에선 꼬박꼬박 '어머니'라고 부르는 걸 보면
좀 영악한 아이였던 거 같은데 ㅎ

이후 2탄 3탄을 기대하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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