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만화영화책 - 2006/09/08 15:55

프랑스와의 수교 120주년 맞이 각종 행사가 열리고 있는데, 대림미술관의 [프랑스 현대패션 사진전]도 그 일환.

패션 사진전이다보니 '옷 구경이나 실컷 하는 것?'이란 생각으로 갔는데, 그래도 역시 방점은 '사진전'에 있었다.

유명해보이는 잡지 사진이나 패션모음집 등에 사용된 것들이라지만 꽤 볼만. 왠지 우리네 패션잡지보던 때의 마음가짐과 전혀 다르다고나할까?

그냥 남의 나라 거라니 신비해보여서냐?(ㅋㅋ)

아님 우리나라에선 맛보기 힘든 문화 자유, 문화 풍성, 문화 해방감의 차이인가?

 

사라 문의 ['보그'걸을 위한 수영장 작업](1983)은 왼쪽 개를 통해 내뿜어지는 動적 이미지와 오른쪽 소녀를 통해 발현되는 靜적 이미지가 개끈이라는 끊어질 듯 위태로운 한가닥 선으로 연결되어져있다. 훤히 보이는 개의 얼굴과 그늘에 가려진 소녀의 얼굴 대비도 인상적이다.




 

 

['보그'영국판을 위한 소니아리켈](1976)에서는 정장입은 애꾸눈 고양이에게 차를 권하는 여인들의 모습이 연출되는데, 코믹한 설정과는 달리 과묵한 표정들이 마치 피카소의 삐에로를 보는 애처로움을 자아낸다.


 

사라 문이 찍은 작품 중 가장 독특했던건 [웨딩드레스 '보그')(1984)였다.

인터넷에서 사진을 못 구하다니 안타까움.

무엇으로 통할 지 모르는 벽의 거대한 구멍(좌)과 반드시 삐그덕거릴 것 같은 계단(우)사이에 웨딩드레스가 걸려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촬영하고 있는 모니터와 카메라의 모습이 사진 안에 그대로 담겨져있다.

벽의 못에, 옷걸이에 걸린 웨딩드레스는 마치 결혼의 무게라도 되는 양 축 늘어져있는데, 실제 사람이 진짜로 걸려있는 듯 한 모습이다. 거기에 계단 쪽의 문이 만들어내는 그림자가 웨딩드레스를 가리려는 듯 도사리는 모습이 암울함을 더하는 듯 하다.

 

['노바'를 위한 인간 - 거울작업](1971) 역시 매우 흥미로웠는데, 거울 앞뒤 몸통에 건 두 남자와 한 여자가 삼각형의 꼭지점을 이루듯 서있는데, 서로의 거울을 통해 서로를 비추는 형상이 마치 그들의 거울이 서로를 마음 속에 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물론 거울이 없는 여인 앞에서 '서로의 마음에 서로 품기'는 끝이 나버리지만...

 

[이세이 미야케를 위한 테레사 스튜워트](1995)는 적흑의 강렬한 대비가 인상적인데, 옷이 마치 거대한 꽃과 같다. 벽과 나란히 서있는 그녀를 비스듬히 찍은 것이 역동성을 더하는 듯 하다. 이런 풍의 사진이 몇개 있는데, 모두 포르말린 냄새가 날 듯 과도하게 인공적이다.

 

 

사라 문의 작품 중에 [해부적 구조](1997)는 인체의 척추를 따라 내려오는 옷 모양새가 마치 인체의 내부를 투시하고 있다. 옷을 입었지만 X-ray를 찍어놓은 느낌.

 

작품들 중에는 사진끼리 이미지 연결이 되어 있는 것들도 있다.

[샤넬](1990)은 단정히 서있는 모델의 나부끼는 치마폭이 인상적이고, [오스텐드](1990)는 거대하게 몰아치는 파도와 한갈래 길 같은 둑방이 있는데 이 두 작품은 파도와 치마폭의 실루엣에서 서로 느낌으로 연결되어 있다.

 

아래 사진은 데보라의 [무제_'Parco'를 위한 풍경](1981) 9개의 사진 중 한 작품이다.

그중에서도 이 세여인이 등장하는 시리즈는  총 3장인데,

첫번째 사진은 세 여인이 모두 무표정한 표정으로 창밖을 보는 거였다.

아래 사진은 두번째 사진인데 오른쪽 끝의 여인 표정이 어느새 매우 강렬. 가운데 여인이 곁눈질로 의식하고, 왼쪽 여인이 이미 상황을 알지만 피곤한 듯 무시하는 표정이 뭔가 긴박감을 더해준다.

 

이 사진 다음의 세번째 사진은 사진 각도가 오른쪽 여인에게로 넘어왔는데,

왼쪽 두여인과 오른쪽 여인 사이의 창틀이 어느새 문으로 차단되어 있었다.

마치 감정의 골이 더이상 회복할 수 없는 차단의 상태로 치닿고 있음을 나타내는 듯 하다.

 

프랭크 페랭의 [데필레 028](2004)는 엄청나게 큰 원형 무대에 K2나 미국 권투무대를 연상시키는 천장의 조명들 아래 워킹 중인 세 모델을 나타내는 데, 정말 인간이 자잘해보인다. 마치 SF의 한 장면같아보이기도 하고...

 

 제라르의 [꿈의 파브릭_아브라함폴햄 1999 봄/여름 오트 쿠튀르](1999)는 처음엔 두 남자가 잡고 있는 손이 옷을 벗길 듯 말듯 해서 불안정해보였지만, 살짝 보인 모델의 웃는 입술이 상황을 마치 정지상태로 만든 것 같다.



 

장 라리비에르의 [신기루-"씨티즌 K를 위한 패션" 시리즈](2001~2)는 마치 환타지 소설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듯 하다. 아래 사진은 가위를 들고 날고 있는 여성들이 마치 마녀인 양 보이지만 왠지 공포스럽지는 않다.

신기루시리즈는 희한하게도 무서운 또는 무표정과 과장된 원근법, 위험해보이는 물건(가위) 때문에 위협적으로 보일 것 같지만, 사용된 요소와는 전혀 다르게 굉장히 코믹스럽고 유쾌해보인다.

 

 

아래 사진도 신기루 시리즈 중 하나인데, 눈감은 살아있는 줄인형, 다가오는 가위, 망망대해인지 호수인지가 폭풍 전야의 기분을 느끼게 한다. 죽음 또는 종말을 앞둔 줄인형 모델의 표정이 아이러니하게 참 고요하다.


 

프랑소와즈 위기에의 작품들도 흥미로웠는데, 구도가 정면이 아니라 항상 비뚤어져있고 모델이나 옷이나 기타 찍고 싶은 것들의 일부가 반드시 잘려있다. 위기에는 르포기자 출신이라서 극적이고 일시적 화면을 담고자했다고 한다.

 

 

패션 사진은 '대중문화의 가장 예민한 센서'라고 한다는데,

굳이 말하자면 보이는 세상 반쪽 문화의 센서같다.

이 세계는 더러움이란 없다는 듯 정돈, 깔끔, 인공, 가식, 조작된 아름다움, 조작된 행복, 관리된 풍요의 세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세계는 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행, 불행이라던가, 만족, 불만족이라던가, 흥분, 냉정이라던가의 일관된 감성 정의가 힘들다.

그 세계로 인해 나는 역시 풍부한 감정을 겪게 된다.

 

그들의 세계는 다들 아는 知의 세계같지만 생각 외로 未知의 세계다.

마치 영화 [콘스탄틴]에서 현실과 지옥은 동떨어진 게 아니라 바로 같은 세계를 다르게 본 것 뿐이었던 것처럼...

 

* 사진출처 : 대림미술관(http://www.daelimmuseu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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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8 15:55 2006/09/08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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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straea 2006/09/08 1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침 가보려고 생각중이었는데..^^

  2. jineeya 2006/09/08 2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astraea/옷! 정의의 여신님이다(O.O)! 어떤 문화제에서 오늘 바로 알게 된 단어인데 이런 우연의 일치가~!

  3. astraea 2006/09/09 0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뜻을 바로 아시네여~^^

  4. 슈아 2006/09/21 2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 설명이 넘 좋아유~

  5. jineeya 2006/09/23 1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슈아/아 넘 오랜만에 블로그에 들어온다...-_-;;; 칭찬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