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사진 찍기
(2)어둠 속에서만 피는 꽃
(3)기사식당만 즐비할 것 같은 효창운동장 근처에도
사진 전시와 차, 책이 함께 하는 공간이 있답니다.
역시 사진과 가장 어울리는 커플은 여행이려나?
이국 냄새 물씬 풍기는 사진들이 역마살을 부추긴다.
여행향 가득한 사진이야기가 있는 곳, 마다가스카르.
입구쪽에는 오래된 물건들, 볼 수 있는 책들이 가득하고요.
카운터에도 아기자기 소품과 사진들이...
또다른 쪽들에선 사진전이...
그리고 날이 풀리면 사람들이 가득해질 야외 테라스엔 눈사람 인형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요.
어느날 어느 도시에서,
아주아주 작은 들꽃 숲을 발견했습니다.
아주아주 작은 들꽃숲 옆에는
아주아주 작은 집이 하나 있습니다.
도시가 네모 네모로 나뉘다가 남은 구석에서는
아주아주 잘 어울리는 두 작은 친구가 함께입니다.
도시란 건 참 이상하다.
화려한 듯 보여도 은근히 회색들 뿐이다.
그러다가 간혹 아무런 거리낌없는, 베일 없는, 주저함 없는 원색의 유혹을 받게 된다.
화려한 도시에 주어진 '이물감'이라 쓰여지겠지만,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도시답다'로 읽혀질 모습들..
* 밝은집 님의 한국현대사진의 풍경 에 관련된 글
한국 현대 사진계 원로, 중견, 신진들의 사진을 총망라해서 볼 수 있는 전시가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 분관에서 열리고 있다.
작가별로 3섹터로 나뉜 전시의 구획은 3세대간 구분이기도 하지만, 사진을 통해 바라보는 피사체와 카메라에 대한 작가의 위치같기도 하다.
희한하게도 실제 피사체와의 물리적 거리는 모두 제각각이지만
원로에서 신진으로 갈수록
피사체는 사람-자연-사물(또는 투영되는 사회)로,
피사체와의 거리는 다가옴에서 멀어짐으로,
카메라와의 거리는 도구에서 친구로 변하는 느낌이다.
1.
1880년대 사진이 도입된 이후 1960년대 프로사진가 개념이 정착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는 1세대들의 사진에서는 대체로 피사체 내부까지 꿰뚫어 사진이라는 정지화면에 담아내고자하는 엄청난 욕망이 느껴진다.
육명심 [백민-강원도 강릉](1983)
주명덕 [논산](1971)
심지어 극히 거리감을 두고 싶은 피사체에게조차 바라봄의 거리에 대한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이러한 거리감 개념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만병통치가 아닌- 가벼운 두통을 동반할만큼 피사체에 대한 진중한 고민을 하게끔 유도해낸다.
황규태 [만병통치](2000)
2.
중견 집단들은 사진전을 안착화시킨 세대이기도 하다는데, 그래서인지 -다른 요인도 많겠지만- 사진의 크기가 커지면서 화면 안에 자연이 중심을 차지하기 시작한다.
혹여 사람이 주요 피사체라 하더라도 주변화하거나 존재가 희미해지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여전히 묻어나는 피사체에 대한 거리는
피사체의 중심이 사람에서 자연으로 옮겨지면서 보다 드넓은 시야를 선사하는 자연을 닮아가고 있다.
민병현 [SNOWLAND.SL165](2006)
배병우 [소나무](1992)
b
김아타 [ON-AIR Project 056-1](2004)
3.
중견 작가들이 새로이 확장시킨 피사체가 자연이라면,
신진 작가들이 새로이 확장시킨 피사체는 사회다.
물론 1세대도 인물이 있으니 주변의 사회를 담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그 '사람'으로부터 파생된 공간을 담은 것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반면, 신진들은 사회 자체가 핵심 피사체로써 사람이나 사물, 간혹 자연이 그 공간안에 배치되어진 느낌이다.
때론 작가가 아닌 카메라가 원하는 대로 찍은 것 아닐까 싶은 사진도 있다. 그만큼 사물을 대한 감정의 깊이가 달라짐을 느끼게 한다.
김옥선 [Alex and Eric](2004)
아래 사진은 너무 작게 축소되어 놓칠 부분이 있는데,
실제 이 사진을 보게 되면 전화박스 바닥에 전쟁을 벌이고 있는 작은 병정인형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백승우 [Real World II](2006)
대체로 감정 투여의 대상을 사람과 자연까지 봐준다 하더라도 사물로 확장시키는 건 이상한 거부감의 벽에 부딪히게 된다.
그러나 결국 사람이 만들어내는 사물과 그 사람으로 구성되는 것이 사회이고,
사회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다보면 사물에 대한 '바라보기'는 당연한 결과치다.
확실히 상대를 꿰뚫어 표현하고싶고 관계 맺고 싶은 욕망이 21세기가 된 우리들에게도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지만,
지금의 시대에 대뇌의 명령을 무시하고 간뇌의 감성을 증폭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프로젝트일 수 있다.
현대인들은 조금씩 사회가 할퀴고 간 상처를 품고 있는 일종의 정신병자들이며, 소외라는 현상의 핵심 대상들이다.
따라서 뭣 모르고 상대방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열망을 풀가동했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는 순간이 오면 - 물론 계속 제정신이 아니면 상관없을 것 같은데- 상대방이 요구하는 감정의 홍수에 휩쓸려버리게 된다.
실제 요즘은 누구를 만나든 마치 정신과 상담 치료를 원하는 사람마냥
끊임없이 말을 한다. 그러나 어떻게 듣는 지를, 관계의 진정성을 잊은 존재들 같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생존 전략으로 조금씩 감정의 경계선을 긋는다.
동시에 생존 전략 차원에서 사회를 통해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진실,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진리를 찾고자 한다.
* 사진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한국현대사진의 풍경]
한 가을 낮에 만난 길가의 조형물.
선선한 가을 바람을 말하듯, 가고 싶고 되고 싶은 세상을 말하듯 눈길을 잡아 끌었으나,
그저 동아일보사의 홍보물이었을 따름이라는 거.
터키에서 단일민족이니 혼혈이니 하는 말은 쓸데없는 말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래전부터 -지금도 역시 - 유명한 무역 중심지이고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대륙 통치의 중심지였던 곳이니 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고 함께 살았던 건 매우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외모에 대해서 까탈스럽지 않은 것 같다.
일례로 대머리같은 건 흠도 아니다.
물론 경향은 눈에 보인다.
TV를 보니 굉장히 풍만한 타입을 좋아하는 것 같다.(물론 밸리댄스를 잘 출 것 같은 관능적인 건강미를 갖춘..)
그래도 동양인은 좋아한단다. 납작하게 평면으로 생긴 게 '신비롭다(?)'고...
신기한 게 아니고?ㅋㅋ
아닌 게 아니라 여행 중 생판 모르는 터키 남자 중 작업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장난 아니다.
1분만 얘기하면 그 다음 바로 작업 멘트 시작! ^^;;
신기하지? 여행이라 그런가?
한국에서 남모르는 누가 말을 걸려하면 바로 묵묵무답 무시전략에 돌입하는데
여행이라 마음 열리고 몸이 열린 상태라 그런지
걸려오는 작업이 짜증나는 게 아니라 그냥 재미있는 에피소드이고 기분을 좋게 해주는 여행의 꽤 괜찮은 소득이다.
이제 거리에서 말 걸어오는 사람이라곤 사이비종교집단이나 강매집단뿐이고,
붙은 날파리를 떼어내기 위해 언제나 무시와 차가운 시선을 유지하게 만드는 삭막한 이 나라가 새삼 서글프다고나 할까.
어쨌든...
이렇게 왕래가 잦은 지역이다보니 어느날 아프카니스탄에서 전쟁을 피해 건너온 사람들 중에 루미라는 성직자도 끼어있었다는데,
그는 성선설을 믿으면서 수행을 통해 선한 의지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콘야라고 지금 터키에서 가장 이슬람 색채가 강한 동네에 메블라나 사원을 짓고 포교했다.
예전 TV 광고 중에(불가리스던가?) 긴 모자에 하얀 치마 두른 남자들이 계속 제자리에서 도는 모습을 본 기억이 나는 데, 그게 바로 루미가 만든 수행 방법 중 하나인 '셰마'였다.
보통 왼손바닥 아래, 오른 손바닥 위로 향하게 하고(하늘과 땅을 상징한단다) 시계 반대방향으로 2,3시간 정도 돈다는 데 나중에 손이 펴지면서 하늘을 향해 올라간단다.
5분 정도 셰마하는 사람을 봤는데, 어찌나 평온한 표정인지..
셰마 비슷한 수행을 해본 대체의학하는 내 친구가 그러는 데,
마약한 것 같이 굉장히 기분이 좋단다.
음...
Zoo Keeper나 웹이미지 코딩같은 단순 작업을 오래 했을 때 느끼는 각성 같은 건가?^^;;
이렇게 처음으로 이슬람 사원에 들어갔다.
이슬람 사원의 특징 중 하나인 저 뾰족 탑을 '미나레트'라고 부르는데,
하루 5번이나 기도하는 무슬림들의 기도 시간을 알려주는 곳이라고 한다.
목청 큰 사람이 저기서 소리쳤다고... 지나다니며 보니 요즘엔 스피커가 한두개씩 달려있다.
보통 이슬람 사원 내부는 가운데 거대한 돔이 있고 안은 텅 비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모두 메카를 향해 꿇고 앉아 기도할 수 있도록 천장부터 내려온 긴 줄에 초받침이 있는 정도?
이곳은 박물관이라서 그런지 원래 사원들이 그런지 모르겠지만,
루미를 비롯한 성직자들의 관이 사원 안에 있다.
아래 사진은 가장 조명 많고 가장 큰 관이었는데 바로 루미의 관.
메블리스트들은 엄격한 수행이 유명하다고 해서 굉장히 소박한 실내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화려해서 약간 놀랐다.
한켠엔 손으로 베낀 경전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책의 삽화 역시 화려하기 그지 없다.
세세한 그림 중에는 굉장히 재미있는 것도 있었는데, 잘 안찍혀도 몇장 찍을 걸...-_-;;
이슬람에선 보통 여성이 머리카락을 보이게 하지 않게끔 하고 다닌다지만,
요즘 터키에선 하고싶은 대로 한다.
콘야는 가장 보수적인 동네라 그런지 확실히 머플러 여인들이 많긴 하다. 다들 독실해 보이기도 하고...
모든 이슬람 사원에 있는 것 중 하나가 세정의식을 할 수 있는 곳, 즉 씻을 수 있는 수도 시설이다. 아래 사진은 둥근 정자 모양의 수도시설이 있던 구조물의 천장.
가까워도 절대 가본 적 없는 사육신공원.
오늘같이 어디든 붐빌 것 같은 날, 절대 안붐빌 것 같은 사육신공원으로 슬렁슬렁 걸어가봤다.
그런데 생각보다 안타까운 곳이었다.
노량진이면 드넓게 펼쳐진 한강을 기대하겠지만, 강변에 깔린 고층아파트와 군사구역이라는 철조망이 눈앞을 가려버렸다.
공간도 좁고 볼 것이 있는 곳도 아니지만,
사당에서 묘로 올라가는 이런 길은 보기 좋다.
돌로 바닥도 평평하게 만들고 쉬라고 의자도 많이 만들어놨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곳은 역시 나무 그늘 시원한 잔디 위였다.
사육신들의 묘 위 나무 그늘에 늘어지게 낮잠을 즐기는 이들의 모습이 참 여유로워보였다.
좀 더 나무를 많이 심고 잔디를 깔아줬으면 하는 바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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