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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6/09/02 14:21

pannella님의 [롭스 & 뭉크 전시회]

사뿐사뿐.Idolog님의 [뭉크&롭스전] 에 관련된 글.

 

이 전시의 부제는 [남자와 여자]이다.

그러나 제목에 [악마/돼지와 여자]라고 적은 건 남자는 안보이고 그 자리에 악마와 돼지만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물론 악마주의를 세상 종말의 징후로 보고 이를 이끄는 존재를 여자라고 생각했던 화가들의 작품을 대하는 21C 여성인 나에겐 

관람 내내 그게(남자) 그걸(악마와 돼지)로 보이는 야릇한 체험 상태였지만...ㅋㅋ

확실히 부제 [남자와 여자]는 표현 상 어폐가 있을만큼 '남자'가 안보인다.

오히려 남자와 여자는 마치 '관찰하는 자와 관찰당하는 자'의 경계라도 되는 것 같다.

 

창부정치가(1896)

 



남성이 되어 즐겨볼까하다가

괜히 좁은 속에 '지들이 세상 망쳐놓은 주제에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는 외침이 머리속을 메아리치고 있는 지라,

그냥 편하게 여자인 내맘대로 해석하고 즐기기로 했다.

제일 간단한 방법으로

작가들이 관찰의 대상인 여성(뭔가 남자와 달라 인간이 아닐 것 같은)을 그린 동안,

나는 그들의 그림에 표상된 여성이 되어 악마와 돼지들의 세계를 보고 있었다.

 

 

롭스는 책 속 삽화 그림을 많이 그렸던 것 같은데 이 작품 [주술] 역시 옥타브 위잔의 [여전하] 中 '마법의 거울'편에 수록된 삽화이다. 별 설명없어도 무슨 분위기인지 척보면 알만한 상황. 여성에 대한 화가의 전형적인 시각을 볼 수 있다.


 

 

[사탄-골고다]는 롭스의 사탄 연작 시리즈 중 하나인데, 예수의 모습을 한 악마와 그 아래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목졸리고 있는 여성이 보인다. 

사탄 연작은 악마주의의 도발을 새로운 위기로 받아들이고 육체에 대한 두려움을 표시했다는 데, 시리즈중 [사탄-제물]이 참 인상적이었다.

사탄의 몸통이 사탄을 나타내는 데 주로 쓰이는 소 두개골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주변부에 날아다니던 천사를 패러디한 해골모양의 아기악마들, 오~ 압권.

 

 

롭스는 어릴 때부터 인물을 캐리컬쳐화하는 걸 좋아하고 썩 잘했다고 한다.

이 작품 [발론지방의 장례식] 역시 인물을 희화한 것이 인상적이다.

특히 장례 진행중인 신부가 너무 가까이 얼굴에 갔다댄 성경을 보면서,

언젠가 보좌관이 써준 글을 있는 그대로 교과서 읽듯이 읽던 국회의원이 떠올랐다.

 

 

[악녀- 범죄의 기쁨]도 '악녀들'이라는 시리즈 중 하나인데 역시 소설 삽화로 쓰였다고 한다.

남성을 꼬신 여성이 메두사상에서 키스하는 동안 남성에게 버림받은 여성은 상 아래서 캬라멜 녹듯 녹고 있다. 롭스는 '이미 악마는 지배하고 있고 여성을 매개체로 사용한다'고 했다던데, 그림 상으로만 보면 어찌 그 결과의 가혹함 또한 다시금 여성의 몫이 되는지...

 

사실 악녀들 시리즈 중에는 [악녀들-돈후안의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나신의 여성이 뭉크의 [사춘기]에서 본 소녀의 자세와 비슷하게 살짝 겁 먹은 듯, 울먹이는 듯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그리고 돈후안이라고 추정되는 남자는 온 몸을 망토로 가린 채 흐릿하게 뒷편에 보인다. 마치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남자의 모습, 베일을 선호하는 모습, 악마같은 대체물로만 발현되는 모습을 상징하는 느낌이다.

 

 

롭스의 그림이 상대적으로 화려한 반면 뭉크의 그림은 상대적으로 칙칙하기 이를 때 없다.

그러나 이 그림 [마돈나]만큼은 다르다. 그림 속 그녀는 사랑스러운 동시에 두려운 존재이며, 육체적이면서도 정신적인 존재이다. 그녀는 매우 매혹적이면서도 뭉크가 꿈꾼 순종적인 여성의 이미지도 동시에 내재하고 있다.

한편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아기와 정자들은 여성과 모성을 동시에 표상함으로써 그녀를 완벽한 '마돈나'로 만드는 데 성공한 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보기에 오히려 이 그림은 많은 여성들이 섹스할 때마다 겪게 되는 임신에 대한 공포를 극단적으로 표현했다는 느낌이다.


 

 

[흡혈귀II]는 뭉크의 여인에 대한 피해의식, 선입견을 그대로 표현한다. 그래서 심지어 자기 자신을 여성의 제물로 바치고 있다.

 

이 작품[골목길]은 그린 이의 의도와 나의 받아들임이 완전 반대인 대표적인 경우인데,

화가는 숨 막힐 듯한 골목길에서 여성이 마치 남성을 희롱하는 듯 상징적인 구도와 포즈로 묘사한거라고 큐레이터가 적어놨더라.

그러나 나는 아무리 봐도 권위적 남성성이 극대화된 완전 정장 차림의 수많은 남자들이 골목을 만들고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한가운데인지라, 그 여성이 희롱당하기보다 희롱하고 있다는 게 참 믿기기 어려운 상황 판단이다. (선입견 과도?ㅋㅋ)


 

 

'여성은 악마의 공범자이며 남성이 저지른 모든 살인 , 범죄 , 혐오는 여성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라고 말했다길래

그림 안의 여성들이 일정 정도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자 권력도 있는 존재인 줄 알았는데... 현실과 똑같네.

여전히 여자는 악마가 될 수 없었고 그저 악마의 시녀일 뿐이다.

그리고 그 이유만으로 어떠한 처벌과 수치와 모욕도 모두 받아 마땅한 존재이다.

 

적어도 나에게 그림의 안과 밖은 같은 세상이다. 마음 편히 숨어들거나 거만해지거나 평정심을 유지하거나 내가 '나'로 있을 만한 공간은 극히 드물다.

만국의 여성들은 한(恨)으로 승화하려나?

 

* 그림 출처 : 덕수궁 미술관 http://www.deoksug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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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2 14:21 2006/09/02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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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4/07/15 01:05

 

그를 아시나요?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라고.
모르신다고요? 꽤 유명한 사람인데..

미술시간에 왠만큼 졸지 않으면 모르기도 쉽지 않은 '달리', 1904년에 태어났으니 올해 꼭 100년째다.
모르긴 몰라도 전 세계가 '달리' 전시회 붐일거다.
그 여파로 우리나라에서도 9월까지 전시가 있을 예정이라는데, 지금은 예술의전당에서 전시중이다.

 



[ 내가 알던 달리 ]

 

 책에서 본 달리는 언제나 -스트레스가 아닌 - 삶의 활력이 될만한 정도의 긴장감을 주는 존재였다.
나무위에 흘러내리는 시계, 공중에 떠있는 호랑이, 나체의 여성, 아슬아슬한 창끝, 기이한 공간에 존재하는 초상화 등...
그림을 따라가다보면 언제나 그림 속의 이야기를 고민하게 만들고, 솜씨좋은 뎃생에 감탄하면서도 구도가 위태로워 절벽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두려움을 갖게 한다.
한편 색감은 밝고 온후하다고나 할까? 게다가 초현실주의가 아니던가?
덕분에 절벽은 절벽인데 떨어져도 별 탈은 없을 것 같다는게 달리의 작품을 접한 후의 한결같은 결론이다.


[ 이번에 본 달리 ]


미리 밝히자면 내가 책으로 봐왔던 달리의 유화작품은 이번 전시에 한 점도 없다. 그 대신 대부분이 브론즈 소재인 조각상과 책의 삽화들을 볼 수 있었다.

삽화는 대체로 소품과 같은 사이즈의 연필화나 수채화들이고 대부분 목판이나 동판으로 제작되어졌다고 한다. 이번에 들어온 것은 성경(bible)과 단테의 신곡 등에 삽입된 삽화들이었는데 성경의 삽화는 작품수가 꽤 방대했다.
안타까운 건 성경이든 신곡이든 내용을 안다치더라도, 유럽의 문화와 언어를 모르는 대한민국의 범인이 그 삽화에 감동받기란 불가능에 가까운게 아닐까 싶은 점이다.
결국 삽화들은 처음 몇점만 유심히 쳐다보는 척하다가 결국 대부분 그냥 흘려버리게 되었다.

 

반면 브론즈상들은 꽤 감동이다. 사실 달리는 유명해도 거장이라는 느낌을 가져본 적은 없는데 브론즈상을 보니 무게감이 남다르다. 동물상도 바로 뛰쳐나갈 것 같지만, 특히 사람모양에 가까운 브론즈상들은 당연히 현실에 없는 환상이면서도 왠지 곧 살아나 눈을 마주칠 것 같았다.


 

가장 눈길을 끈 작품은 '불타오르는 여인'상. 불타서 죽는 건지 불길에 괴로워하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불길이 올라오는 여인의 뒷모습은 마치 작은 날개가 돋아 지금이라도 당장 승천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달리의 그 유명한 늘어지는 시계는 조각품으로도 여러점 남아있는데, 아마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그림이 아니었을까 착각했을 거다.

한편 달리의 작품에 영감을 받은 국내 유명 디자이너들의 의상과 가구도 전시되어있는데, 음... 보기 싫다.
의상은 정말 별로... 바느질도 엉망, 디스플레이도 엉망, 왜 이런 기획이 들어갔는지 당황스럽다.
더불어 전시관 자체는 꽤 규모가 있지만, 디스플레이는 너무 어둡게 해서 작품을 살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맛을 없애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결론적으로
브론즈상들이 없었다면 상당히~! 우울했을 전시였다.
관람료도 비싸고 디스플레이도 않좋고...
게다가 아무리 컨셉이라도 미술책에서 봤음직한 유화 한점 볼 수 없었던 건 정말 안타까운 점이다.
이런 거장의 전시라면 유럽의 미술관에 갈 수 없는 자들의 대리만족에 나름대로 복무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너무 촌스러운건가?

그래도... 홈피는 예쁘네. http://www.ilovedali.com/

 

그림 출처 : 전시 팜플렛 + 네이버('불타오르는 여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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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15 01:05 2004/07/15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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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3/12/08 19:47

* 꼬마게시판(http://go.jinbo.net/jineeya)에서 퍼온 옛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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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진경 - 그 새로운 이름]
- 하나의 웅장한 풍경화같은 전시회

듣기만해도 금강산 속을 걷는 듯한 감성을 전해주는 단어, "眞景".
진정한 절경을 그리고자 했던 겸재 정선의 의지로부터 꽃을 피우게 된 진경산수화는 이후 조선각지의 명승지가 그려지면서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진경의 본뜻은 '실제의 경치'를 의미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고유명사로 인식할 정도이다. 이번 전시 [진경 - 그 새로운 이름]은 조선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진경에 대해 200년도 훌쩍 넘긴 현대 작가들이 배포있게 자신만의 진경을 선보이고 있다.


원형으로서의 자연

역시 시작은 자연의 모습을 흠뻑 느끼게 해주는 작품들이었다. 그런데 새삼스레 자연을 작품으로 접하다보니 마치 술에 취한듯 정신이 몽롱해지는 느낌이었다. 예를들어 비디오 모니터 10대를 통해 실제 하늘의 모습을 담아낸 정소연님의 작품 [하늘]의 경우에는, 15인치도 안될 작은 모니터들이었는데도 계속 쳐다보고 있으니 뇌세포가 나른해지는 것 같았다. 한지에 붓으로 규칙적인 먹점을 찍어놓은 김호득님의 수묵 작품 [흔들림]은 그야말로 점과 약간의 여백뿐인데도 꽤나 산같고 바다같은 자연의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대기로서의 풍경

한지에 채색한 작품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고운 파란색과 검정색을 가진 김보희님의 작품 [무제]는 산이라고 하기엔 낮은 언덕과 그 언덕 사이를 살며시 구비도는 호수를 그려내고 있다. 마치 신선들이 노니는 아득한 자연을 표현한 듯하면서도 어딘선가 본 듯한 느낌도 풍긴다. 반면 배병우님의 사진 작품 [오름]은 실제 우리가 보아온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먼 길 떠나 세상 처음보는 도원에 닿을 것 같은 기분이다.


양식으로서의 산수

유근택님의 작품은 A3 정도 되는 작은 화선지에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앞동산의 풍경등을 담아냈다. 전시장에는 약 30장 정도 전시되었던 것 같은데, 밤과 낮, 비올때나 개었을 때, 해 날때와 달이 보일 때 등에 따라 서로 다른 앞동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이렇게 가까운 대상을 주제로 표현해낸다고 느껴지는 작품이 있었던 반면, 송필용님의 작품 [만물상]은 굉장히 추상적이다. 푸른 면과 하얀 선의 울긋불긋 솟은 힘찬 봉우리들과 화면 중심 하단부에 흑과 백으로 구성된 거대한 봉우리는 차가운 느낌의 색 배열과는 반대로 뜨거운 기운을 솟게 한다.


환경으로서의 도시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많은 최호철님의 작품에서는 역시 만화적 냄새를 지울 수가 없다. 사실 도시를 그릴라치면 차갑고 지친 느낌을 배제하고 표현하기란 힘들거다. 최호철님의 작품 역시 건조하고 기운없는 도시와 현대인을 고스라니 옮겨놓았다. 그럼에도 담담하게 미소짓게 만드는 부분은 작가의 도시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녹아있기 때문인 듯 싶다. 전성휘님의 작품 [도시의 섬]은 처음 볼 때는 유채로 색깔 고민없이 슬슬 그린 것 같아보인다. 하지만 우리의 도시가 가지고 있는 지극히 촌스러운 색감을 떠올려보면 그의 작품이 얼마나 진실된 것인지 알 수 있다. 지금도 광주 어딘가에 존재하는 그 도시에는 원색적인 색의 아파트와 건물들이 있고, 그 한가운데 아직도 개발 논리의 뒷그늘에 자리잡고 기와집에서 옛시골의 풍경 그대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200여년 전 조선시대 작가들이 본 풍경과 현대인들이 보고 있는 풍경은 분명 차이가 있다.
옛날 양반들은 산수가 절경인 곳에 일부러 화가를 보내 풍경화로 담아오도록 했다는데, 역시 그 자연이 사람에게 맞고 자연스럽고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도시 토박이인 내가 작품을 보면 자연의 풍경이 오히려 낯설고 지방의 어느어느 지역이라는데도 무릉도원 같아보인다. 오히려 도시의 환경에 안정감을 느끼고, 화가에게 시켜 풍경화를 그려오게 시킨 느낌이다.
그래도 과거나 현재나 작가들의 변하지 않은 마음가짐이 있다면 자연과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동반자적 개체로 자연을 바라보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리하여 이 전시회는 眞景을 담겠다는 거대한 목표가 아닌 단순하고 소소한 일상과 사람과 자연을 담아낸 화가들의 집합 같지만, 화가들이 담은 모습은 서로 달라도 변치 않는 마음가짐을 통해 하나의 웅장한 풍경화같은 느낌을 주는 전시회였다.
아름답게 짜여졌으나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은 전시회...



김보희님의 [무제]


정선휘님의 [도시의 섬]


원인종님의 [치악산]


임택님의 [옮겨진 산수]



* 전시장 : 국립현대미술관(http://moca.go.kr)
* 사진 출처 : [진경 - 그 새로운 이름] 팜플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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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08 19:47 2003/12/08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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