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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홍성규 동지를 추모하며...

죽음은 늙음이나 아픔이나 마찬가지로 인간의 육체가 겪게 되는 한 현상이다. 한 현상이라기보다는, 실존의 범주이다. 죽음은 그가 앗아간 사람의 육체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서 그의 육체를 제거하여, 그것을 다시는 못 보게 하는 행위이다. 그의 육체는 그의 육체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환영처럼, 그림자처럼 존재한다. 실제로 없다는 점에서, 그의 육체는 부재이지만, 머릿속에 살아 있다는 의미에서, 그의 육체는 현존이다. 말장난 같지만, 죽은 사람의 육체는 부재하는 현존이며, 현존하는 부재이다. 

-김현 평론집 <말들의 풍경> 중에서

 

16일 새벽 2시 30분경에 나보다 겨우 여섯살 많은 홍성규 동지가 세상을 떴다고 그 날 아침에 연락을 받았고, 17일 밤에 장례식장에 갔고, 18일 아침에 영결식장에 갔다. 어제부터 오늘 새벽까지, 그의 밝은 영정사진 모습과 딸기코가 된 채로 크하, 푸하하하, 웃어제끼던 그의 너털웃음을 내내 떠올리며 술을 마셨고, 오늘 점심과 저녁과 이 밤에 약간의 술을 더했다. 그러면서 오래 전에 읽었던 김현의 글귀를 떠올렸다.

 

96년에 내가 멋모르고 과기노조 위원장을 맡았을 때, 전임자가 둘씩이나 있으니 한명은 본부 전임을 맡으라고 강권하다시피 해서 선전홍보국장을 맡겼다. 그리고 98년 겨울 지질자원연구원의 경영혁신이라는 이름을 빈 인원감축에 맞서서 우리가 원장실 점거농성에 들어갔을 당시 그 연구소의 지부장이 도중하차하고 대신에 지부장을 맡았다. 우리는 함께 싸우고 함께 벌금형을 받았었다.

 

예전에 백순환 전 금속연맹 위원장이 대우조선 위원장을 하던 시절에 왜 노조를 하느냐고 기자가 물었더니 노조를 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착해빠져서 (자기 앞가림한답시고) 노조를 떠나지 못한다고 했는데, 홍성규 동지는 그럴 때의 착함이 참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폐암으로 3년여의 투쟁생활을 하면서도 사람들을 늘 웃으면서 만났고, 걱정하는 동지들에게 괜찮다고 안심시키곤 했다. 최근 병세가 악화되기 직전까지도 출장을 다니고 광산에도 들어가고 했다고 들었다.

 

그에게는 아내와 두 딸이 있다. 지은이와 지영이었던가, 처음 만났을 때 초등학생들이었는데, 어제 갔더니 대학생과 고3이 되어 있었다. 지영이가  KBS 어린이합창단 단원이 되었다고 자랑스러워하던 홍성규 동지의 옛날 표정이 기억난다. 오랜만에 만난 지질자원연구원의 한 조합원은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두 딸을 다 키우지 못하고 떠나는 걱정을 하더라며 안타까워했다.

 

이미 고인이 된 김현의 말마따나 고 홍성규 동지의 몸은 이 세상에 없고, 그를 기억하는 우리는 남아 '부재하는 현존'을 증거한다. 덕분에 어젠, 참 많은 동지들을 한꺼번에 만났다. 일찍이 여러 동지들을 사고와 병으로 잃었지만, 홍성규 동지의 죽음은 그 나이로 보나 죽음의 원인으로 보나 우리 또래들이 늙음이나 아픔이나 죽음 앞에 한 걸음씩 다가서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한 사건이다. 삼가 고 홍성규 동지의 명복을 빈다.

 

성규형, 잘 가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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