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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낀 시] 그 날

나가 자전거 끌고잉 출근허고 있었시야

 

근디 갑재기 어떤 놈이 떡 하니 뒤에 올라 타블더라고. 난 뉘요 혔더니, 고 어린 놈이 같이 좀 갑시다 허잖어. 가잔께 갔재. 가다본께 누가 뒤에서 자꾸 부르는 거 같어. 그랴서 멈췄재. 근디 내 뒤에 고놈이 자꾸 갑시다 갑시다 그라데. 아까부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른한티 말을 놓는거이 우째 생겨먹은 놈인가 볼라고 뒤엘 봤시야. 근디 눈물 반 콧물 반 된 고놈 얼굴보담도 저짝에 총구녕이 먼저 뵈데.

 

총구녕이 점점 가까이와. 아따 지금 생각혀도...... 그땐 참말 오줌 지릴 뻔 했시야. 그때 나가 떤건지 나 옷자락 붙든 고놈이 떤건지 암튼 겁나 떨려불데. 고놈이 목이 다 쇠갔고 갑시다 갑시다 그라는데잉 발이 안떨어져브냐. 총구녕이 날 쿡 찔러. 무슨 관계요? 하는디 말이 안나와. 근디 내 뒤에 고놈이 얼굴이 허어애 갔고서는 우리 사촌 형님이오 허드랑께. 아깐 떨어지도 않던 나 입에서 아니오 요 말이 떡 나오데.

 

고놈은 총구녕이 델꼬가고, 난 뒤도 안돌아보고 허벌나게 달렸쟤. 심장이 쿵쾅쿵쾅 허더라고. 저 짝 언덕까정 달려 가 그쟈서 뒤를 본께 아까 고놈이 교복을 입고있데. 어린놈이....

 

그라고 보내놓고 나가 테레비도 안보고야, 라디오도 안틀었시야. 근디 맨날 매칠이 지나도 누가 자꼬 뒤에서 갑시다 갑시다 해브냐.

 

아직꺼정 고놈 뒷모습이 그라고 아른거린다잉.....

 

-5.18민중항쟁기념 서울청소년 백일장 대상.

-경기여고 3학년 정민경: 여수에서 태어나 7살 때까지 광주에서 자랐고, "어릴 때 들었던 이야기들이 그대로 시가 됐다"고 함.

-진압군을 피해 자신의 자전거에 올라탄 학생을 엉겁결에 진압군에게 내주고 평생을 아픔 속에 살아간 작중 화자의 슬픈 고백을 다룸.

 

=청산위원회 하러 연맹 사무실에 왔다가 오늘자 신문에서 우연히 읽음. 20년전 쯤에 읽은 박용주의 "목련이 진들" 이후 가장 선연한 이미지로 다가온 5.18 관련한 학생의 시.

=나도 무언지 모를 그 날들의 환영과 환청 속에 지금껏 살고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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