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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08
    [기고] 128일 투쟁 보고(3)
    손을 내밀어 우리

[기고] 128일 투쟁 보고

KIST지부의 청탁을 받아서 허겁지겁 쓴 글.

 

여럿이 모여 평가할 내용도 많은데 이런 거 막 써도 되나 몰러....암튼 기록삼아 올려 둠.

 

 



모든 직원이 하나 되어 강제통합을 막아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128일 투쟁에 관한 보고-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한국생명공학연구원지부(이하 “생명지부”)는 지난 8월 29일 투쟁속보(생공투 속보 82호)를 통해서 128일째 이어온 KAIST와의 강제통합 저지투쟁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강제통합의 진원지였던 청와대가 통합이 아닌 협력으로 방향을 선회했고,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가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하 “생명연”)-KAIST의 협력방안에 대해서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으며, 생명연과 KAIST가 실제로 협력방안을 마련하여 실무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하여, 강제통합은 더 이상 추진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공공부문 선진화 방안 2차 발표까지 출연(연) 통합은 언급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그러한 결론에 힘을 보탰다.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지만 가슴이 뿌듯하다. 4월 15일 KAIST 서남표 총장이 통합을 제안하여 논란을 일으킨 직후부터 5월 말까지만 하더라도 투쟁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았다. 4월 22일에 박종구 교과부 제2차관은 생명연의 선임연구부장과 KAIST 부총장을 불러 두 기관의 협력방안을 5월까지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4월 25일에 당시 김도연 교과부 장관은 언론사와 인터뷰를 통해 “KAIST와 생명연이 통합을 준비하고 있다”고 통합을 독려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5월 7일에는 이주호 당시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KAIST 서남표 총장이 잘하고 있다”면서 통합에 힘을 실었다. 마침내 5월 23일에 교과부는 박종구 차관 주재로 두 기관의 협력에 관한 세 번째 회의를 열고, “KAIST가 제출한 통합안을 뼈대로 하여 5월 27일까지 합의안을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5월 23일에 드러난 교과부의 계획은 6월에 통합논의를 공론화하고 7월까지 통합에 관한 MOU를 체결하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성공한 한국 과학자로서의 명성을 기반으로 한 서남표 총장의 통합 의지, 서 총장의 MIT 동문이자 제자이기도 한 김창경 청와대 과학비서관의 적극적인 지원, 그리고 청와대의 의중에 충실하게 따른 교육과학기술부가 합작하여 통합계획을 착착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부 일각에서조차 “정부가 말을 꺼낸 이상 그냥 물러서겠느냐, 어떤 식으로든 통합을 추진하고야 말 것”이라고 했고, 일부 원로 과학자들은 말로는 강제통합에 반대한다면서 행동으로는 정부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가 끝내 통합을 밀어붙일 것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생명지부는 서남표 총장의 제안 이후 정세를 주시하고 이런 상황을 예측했다. 곧바로 4월 24일에 비상총회를 갖고 통합저지 투쟁에 돌입했다. 인위적 통폐합을 하지 않는다고 공언했던 정부가 강제통합을 획책하는 것은 이율배반이고, 통합의 시너지 효과가 불확실하며, 5공 치하에서의 KIST-KAIS의 통합 실패 사례에서 보듯이 강제통합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과학기술계 출연(연)의 강제통합은 이공계 기피현상을 더욱 부채질할 것이라는 점 등을 지적하면서 강제통합 기도를 중단하라고 요구하였다. 5월에 접어들자, 생명연 뿐만 아니라 KAIST의 노동조합과 교수협의회, 그리고 대학원 총학생회가 모두 통합반대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조장희 가천의대 석좌교수, 홍창선 KAIST 전 총장, 신성철 KAIST 전 부총장, 백성기 Postech 총장 등 원로 과학자들도 우려한다는 견해를 속속 피력했다. 정치권에서도 통합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기세를 높이기 시작했다. 생명지부의 투쟁은 한 달 남짓 만에 정부의 강제통합 방침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생명지부가 넉 달동안 지치지 않고 꾸준하게 투쟁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조합원뿐만 아니라 전 직원이 하나 되어 투쟁한 것이 가장 큰 힘이었다. 4월 25일부터 8월 6일까지 69일간 빠짐없이 진행했던 출근투쟁이 대표적이다. 비정규직, 책임급 직원, 보직자들을 포함하여 연인원 2,907명, 하루 평균 42.1명의 직원들이 참가했다. 5월 21일 교과부 앞 상경투쟁에는 조합원과 직원 200여명(당시 전체 조합원이 85명)이 참가했고, 5월 27-28일 KAIST 앞 출근집회에는 500여명이 함께 했으며, 6월 16일 연구소 비상대책위원회가 주최한 전 직원 결의대회에는 800여명의 직원들이 참가해서 통합반대를 함께 외쳤다. 출연(연) 역사에서 정부의 방침에 일개 연구소가 전면적으로 반대하여 이토록 강하게 저항한 것은 전례가 거의 없다.

투쟁은 일단 끝났다. 생명지부는 통합저지 투쟁을 통해 여러 가지 소중한 성과를 얻었다. 우선, 출연(연)에서 노동조합이 꼭 필요한가 하는 의구심을 일거에 떨쳤다. 이번 투쟁을 통해 대다수 직원들이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맞설 수 있는 조직은 노동조합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투쟁속보를 통해서 전 직원들과 만나고 교감한 것도 중요한 투쟁이었고 하나의 성과였다. 투쟁속보는 하루 평균 600부씩 발행했고, 점심시간마다 식당 앞에서 전 직원들에게 직접 배포하였다. 투쟁을 시작하던 당시 85명이던 조합원 숫자가 거의 2배로 늘었다. 생명지부의 위상과 역할은 투쟁 이전보다 훨씬 커졌다.

생명지부가 투쟁을 시작하면서 내걸었던 목표는 ‘생명연 해체 기도 저지’와 ‘안정적 연구환경 쟁취’였다. 강제통합은 저지했으니 이제 ‘안정적 연구환경 쟁취’라는 목표가 남았다. 정부는 공공무분 선진화 방안을 순차적으로 발표하면서 출연(연)의 경영효율화를 강조하고 있다. 3년 동안 전체 출연(연) 인원을 10% 감원하고, 성과에 따라 급여 차등폭을 확대하는 것이 이른바 경영효율화의 주된 내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생명연 뿐만 아니라 전체 출연(연)의 문제이다. 정부가 안정적 연구환경을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악화시키려 한다면 생명지부는 공공연구노동조합의 깃발 아래 강제통합 저지 투쟁에 버금가는 투쟁으로 맞설 것이다.(2008.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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