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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29
    교육과학기술부 보도자료 유감
    손을 내밀어 우리

교육과학기술부 보도자료 유감

더 사이언스에 어제 날짜로 실린 글...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 23일 배포한 ‘나라 경제 살리기에 과학기술계가 적극 동참키로’라는 제목의 보도자료(사진)를 우연한 경로를 통해 사전에 입수하게 됐다. 박스로 테두리를 해서 요약한 내용을 보니 2000여명 인턴연구원 채용을 추진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 인건비 동결, 경상비 10%와 업무추진비 20% 절감 등 강도 높은 경영효율화를 한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1분기에 2009년 예산의 30% 이상을 집행하고, 상반기에 3분의 2 이상을 조기 집행한다고 했다.

정부 지시 순순히 응한 과학기술계

놀라운 것은 이어지는 본문 첫 번째 단락이다. 교과부 산하 과학기술계 27개 기관장들이 12월 23일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과학기술기관장협의회’를 열어 ‘자율적으로’ 강도 높은 경영효율화 노력을 기울이기로 결의했다고 밝히고 있다. 과학기술기관장협의회가 열리는 시간은 23일 오후 2시였고 내가 보도자료를 받아든 시간은 23일 3시 이전이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과학기술기관장협의회가 아직 열리고 있던 시간에, 당사자들이 회의결과를 발표한 것이 아니라 교과부가 먼저 회의결과를 버젓이 발표한 것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언론이 곧바로 보도자료 내용을 그대로 게재한다. 매일경제는 23일 오후 3시 7분에 인터넷판에 기사를 올렸고, 바로 이어 연합뉴스가 23일 오후 3시 57분에 기사를 게재했다. 그나마 맨 먼저 기사를 실은 매일경제는 어느 연구원의 말을 빌어 “현장에서 직접 뛰는 연구원들과의 합의 없이 기관장들이 효율화 방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며 “과학기술분야는 일반 제조업 분야와는 다른 데도 예산을 조기 집행한다는 것은 정부가 과학기술분야도 건설 분야처럼 ‘속도전’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문제점까지 지적했다.

과학기술계가 정부의 지시에 순순히 따라간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문제는 교과부가 제시한 임기응변식 처방이 ‘나라경제 살리기’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계의 혼란을 더욱 부채질하여 과학기술의 발전을 오히려 더디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과학기술계는 정부의 지침이 주어지면 이렇다 할 반발 없이 고통을 분담해 왔다. 정년단축, 연봉제, 계약제 등의 일방적 도입과 차등성과급제 확대, 퇴직금 삭감 등 일련의 강압적 조치를 할 때마다 정부가 내세운 명분은 고통 분담이요 경제를 살린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는 정부에 대한 불신과 과학기술자들의 사기 저하, 그리고 극심한 이공계 기피로 나타났을 뿐 정부가 내세웠던 긍정적인 효과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1년짜리 비정규직 양산 도리어 부작용

그런데 정부는 또 다시 경제를 살린다는 미명 아래 즉흥적이고 일회적인 방침을 밀어붙이고 있다. 교과부의 이번 발표는 구태의연한 전시행정으로서 국민에 대한 기만이요, 과학기술계에 대한 모독이다. 알아보니 과학기술기관장협의회가 소집된 것도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합의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교과부가 지난 19일에 산하 기관의 기획부장단 회의를 소집하여 이 같은 경영효율화 방침을 하달했고, 23일의 과학기술기관장협의회 또한 사실상 교과부가 소집했다. ‘나라 경제를 살리자’는 명분 앞에 기관장들은 언제나처럼 고개를 떨구고 말았던 것이다.

과학기술계만 경제위기에서 비켜날 수는 없지만, 1년짜리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것은 도리어 부작용을 크게 한다는 사실을 교과부는 알아야 한다. 더구나 연구현장의 요구가 아닌 정부의 지시에 따라 급조된 2000여명의 인턴연구원들이 당장 투입될 업무도 불확실하며, 그들을 받아들일 준비나 계획도 미흡하다.

현재 과학기술계 출연연구기관은 비정규직이 1만 명에 육박하고 있고 그 중 상당수는 비정규직법으로 인해 1년 이내에 해고될 처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기는 하는지, 새로 투입되는 인턴연구원들이 혹여 업무에 적응하게 되더라도 1년 후에는 다시 실업자가 될 텐데 무슨 대책을 갖고 있는지, 교과부에 묻고 싶다.

교과부가 진정 과학기술계가 경제위기 극복에 동참하기를 바란다면 시늉만 하지 말고 연구현장과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마련하고 차근차근 실마리를 풀어가야 한다. 이번 보도자료 사건과 같이 한 건 올리기에만 급급하다 보면 경제위기 극복은 물 건너 가고 한국 과학기술의 위기만 더욱 심화될 것이다.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이성우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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