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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2/21
    이명박에게 노동정책은 없다
    손을 내밀어 우리

이명박에게 노동정책은 없다

맨날 뭔가 쓴다고 허우적거리면서도

정작 이 블로그는 방치한지 한달이 훨씬 지났네요.

 

소소한 일상들을 혼잣말로나마 뱉어내겠다고 하면서도

가끔은 왜 이리 어려운지 몰라.

 

11월과 12월의 기억들은

사진메모로라도 하나씩 더듬어보기로 하고

 

오랜만에 참세상에 보낸 글 하나 여기에도 올려 둠.



 

이명박에게 노동정책은 없다


대통령이 된다면 정치노조, 강성노조, 불법파업을 없애겠다고 공언한 이명박 후보가 17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위장전입, BBK, 탈세 등 갖가지 논란과 의혹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의 실정에 대한 분노가 이명박을 둘러싼 도덕적 문제들을 외면하게 했고 경제회생에 대한 기대에 넘쳐 노동자들을 포함한 국민들은 그에게 무더기 표를 던졌다.


경제지표로만 보자면 노무현 대통령은 억울할 만도 하다. 세계 11위의 경제규모에 5%에 이르는 고성장, 2000포인트를 넘나드는 코스피지수, 그리고 올해 기어이 2만불을 넘어선 1인당 국민소득을 보라. 2005년 한해동안 삼성전자가 벌어들인 순이익 7조 9261억원, 포스코 3조 2066억원, 하이닉스 2조 124억원, 현대자동차 1조 5261억원, SK텔레콤 1조 4466억원, LG카드 1조 1937억원이라는 엄청난 이익들은 노무현 정부가 자본의 충복 노릇을 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는데, 왜 국민들은 다시 이명박의 경제성장 제일주의에 현혹되고 있는가.


뭐니 해도 이명박 당선의 일등공신은 바로 노무현이다. 노무현 정부는 한국경제의 성장의 과실을 모두 초국적 자본과 재벌들의 손에 넘겨버렸고,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영세자영업자들의 삶은 벼랑 끝으로 밀어냈다. 인구의 1%가 전체 토지의 57%를 가진 나라에서 전체 인구의 15%가량은 절대 빈곤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이승만 정권 아래 못 살겠다 갈아보자고 외쳤던 국민들의 절규는 거의 반세기 만에 이번에는 반노동자 반민중적인 노무현 정부를 통렬하게 심판했다. 그러나 우리 노동자 민중의 비극은, 더 강력한 신자유주의자이며 극우 보수주의자에게 정권을 내맡겼다는 점이다.


새삼스런 말이지만 자본주의국가에서 노동조합운동의 활성화 여부는 그 사회의 정치와 경제 민주화의 척도이다. 얼마 전에 스웨덴 대사가 했다는 말을 떠올려 본다. 그는 ‘노조 조직률이 높아지면 경제부담이 커진다는 오해가 있는데, 오히려 산업계에 큰 자산’이라고 했다. 산별노조와 사용자단체 사이에 체결한 산별 협약이 경제문제를 예측할 수 있게 해 스웨덴의 산업발전에 기여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명박의 노조관은 과거에 그가 현대건설 회장으로 있을 때 노조에 대한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한 것에서 머물지 않고 아예 강성노조 자체를 없애겠다고 공언하는 데까지 왔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신봉하면서 자본주의를 구동하는 노동계급을 철저히 배제하는 이명박의 인식은 다수의 국민에게 불행한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이미 IMF 국가부도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는 사회적 안전망이 얼마나 부실한지 깨달았고, 비정규직의 확대는 국민경제를 위축시키고 노동자 민중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시급한 문제임을 공감했으며,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대로 된 산별체제를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노력해 왔다. 그러나 이명박에게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답이 없고, 노동정책이란 개념이 없다.


이명박의 모든 정책은 오로지 기업 살리기로 요약된다. 고용의 문제든 비정규직의 문제든 이명박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으로 해결하겠다고 했다. 연 7% 경제성장을 이루면 일자리는

해마다 60만개씩 늘어나고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된다고 주장한다. 이명박에게 비정규직의 문제는 고임금체제 아래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자본의 불가피한 수단일 뿐이므로, 속내를 보면 심각한 고민거리에 해당하지도 않는다. 노동정책은 따로 없지만 경제분야의 주된 공약에는 ‘노사관계 법 지배 확립’이 버젓이 자리잡고 있다. 법치주의라는 이름으로 이명박 정부가 노골적인 사용자 편들기를 넘어서서 얼마나 직접 사용자를 대변하게 될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작년에 정부와 한국노총과의 야합으로 개악한 노동관계법조차 경총은 자기들 요구가 다 수용되지 않았다고 딴죽을 걸었는데, 이젠 정부가 더 앞질러 나갈 판이다. 한국노총은 전체 조합원의 총의를 모은답시고 호들갑을 떨더니 노사발전재단 활성화와 노조 전임자 임금 자율보장 등 몇 가지 기득권 차원의 요구를 내밀고는 이명박에게 투항했고, 민주노총은 종이호랑이 신세로 전락하여 ‘밟히자, 밟히면 꿈틀한다’는 전술 아닌 전술로 한해를 힘겹게 넘기고 있는 형국이니, 이명박의 앞길은 순풍에 돛단 격이렷다.


정부가 실질적인 사용자인 공공부문을 보면 또한 가관이다. 노무현 정부가 중단한 공기업 민영화는 재추진하고, 정부사업에 민간참여와 아웃소싱을 확대하겠다는 것이 부각된다. 가스, 발전, 상수도 등 필수적인 공공서비스와 관련하여 노무현 정부는 민영화의 꿈을 버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직접 상장과 부분 매각과 같은 방식으로 박차를 가하고 있던 터였는데, 이명박은 국책은행에 대한 민영화까지 더하겠다는 기세이다. 지자체 사업의 민간위탁과 대대적인 아웃소싱은 관변에 기생하는 토호집단들의 배불리기에 국민의 세금을 바친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명박은 여전히 공공부문에서 시장을 확대하고 자본의 이익을 좇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 와중에서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앞날은 다시 IMF 직후에서 2000년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한미FTA 체결, 한EU FTA 추진에서 더 나아가 한일FTA, 한중FTA 등 모든 경제블록과의 FTA는 적극적으로 추진될 것이고, 영리병원의 도입과 자립형사립고의 확대 등 자본이 집요하게 요구했던 내용들은 마치 빌딩 공사처럼 하루가 다르게 쑥쑥 진행될 것이다. 최근에 OECD 회원국들의 2008년도 평균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2.3%로 하향 조정되었어도 한국은 도리어 5.2%로 상향조정되었다. 부동산 재벌과 건설자본, 그리고 초국적 자본의 투기와 가진 자들의 탐욕이 만들어내는 높은 성장, 그러나 일반 국민들의 소득성장률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노동자 민중의 삶은 나날이 피폐해진다. 그들이 선택한 이명박 대통령은 애시당초 국민의 편이 아니라 건설자본의 필두에서 무분별한 개발과 파괴에 앞장섰던 자본가였으니.


뜨거운 물에 살아있는 개구리를 넣으면 놀라서 뛰쳐나와서 살고, 찬 물에 개구리를 집어넣고 서서히 물을 데우면 뜨거워지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그대로 죽게 된다는, 잘 알려진 우화가 있다. 최초의 CEO 대통령이라며 환호하는 사용자단체들의 논평을 보면서, 특히 노동자들에게 이명박 정부는 막상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가 그래도 궁금하다.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의 말로 보자면, 이명박을 일단 뜨거운 물로 보고 있는 듯하다. 대선 직전에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석행 위원장은,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면 노동운동은 더욱 극렬해질 것이고, 자신도 싸우다 죽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다고 했다.


민주노총이 앞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벌이게 될 싸움은 ‘죽이려는 자와 살려는 자와의 싸움’이라고 했다. 死卽生 生卽死라, 모름지기 일리는 있는 말이지만 언제나 맞는 말은 아니다. 죽기로 각오하고 우리가 정부와 싸워야 했던 시기는 기실 10년전 IMF 외환위기를 당했을 때부터였다. 김대중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노동자들을 찬물에 넣고 서서히 불을 때기 시작했고 그것은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의 합법화로 나타났다. 이어서 노무현 정부는 초국적 자본과 재벌의 들러리 역할을 자처하면서 비정규악법 제정, 국민연금법 개악, 산재보상보험법 개악, 사학법 재개정, 한미FTA 체결, 노동관계법 개악을 통해 노동3권 축소를 강행하였고 그 과정에서 1천명에 이르는 구속자를 양산하였다. 그 10년을 거치면서 우리 노동자들은 이미 스스로의 힘으로는 탈출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워진 물에 갇혀서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지난 10년 동안 민주노총과 각 현장의 내로라하는 간부와 활동가들은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실천했던가. 지금이라도 우리 노동자들이 살 길은 무엇인가. 그것이 이명박의 당선을 보면서 착잡하게 나 스스로 던진 질문이다. 설령 지금 우리가 죽는 길로 이르게 되더라도 그것은 이명박의 탓이 아니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시기를 거치며, 뜨거워지는 물에 잠겨서도 아직은 때가 아니야 하고 미련하게 버티었던 우리 탓이다.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보다는 이길 때까지 싸우는 지혜도 부족했고, 무수히 위기를 말하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연대는 딴전이었다. 황우석에 열광하고, 심형래에 환호하고, 이명박에 몰려드는 인파들을 보노라면,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세월로 규정하는 것은 극우 보수정권의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 노동자여야 하지 않을까. 지금은 이명박을 두려워할 때가 아니라, 오합지졸이라도 다시 모아 투쟁의 전열을 가다듬고 창과 칼을 벼릴 때이다. (2007.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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