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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1/15
    신을 높이는 인생의 유익
    목동
  2. 2006/11/10
    이런 인생도 있구나
    목동
  3. 2006/11/09
    바로 그건 나 때문이야
    목동
  4. 2006/11/05
    통일된 조국을 바라보며
    목동
  5. 2006/11/04
    직업의식에 대한 생각들
    목동

신을 높이는 인생의 유익

너 인생의 영혼아,
너를 창조한 주님,
그분을 송축하라.
그 하나님을 흠모하며,
그분을 향해 너의 모든 것을 다해,
그분께 영광을 올려라.
너의 일생을 다해, 너에게 주어진 그 모든 것으로 그분을 섬겨라.

인생속에 있는 모든 것들아,
그분의 아름다운 이름을 높여라.
인생속에 있는 영혼아,
그분을 향해, 호흡하는 너의 영성의 입김으로 그분을 높이라.
너의 마음도 즐거워하고,
그분을 향해 온마음을 다해 그분을 사랑하라.
너의 정신도 그분을 향해 맑은 기운으로 그분을 향해 집중하여,
그분을 생각하고, 그분을 궁리하며, 연구하라.

인생들의 육체야, 너도 그분에게 닿는 손, 발, 눈, 귀, 입등이 되어,
만민에게 그분의 영광을 증거하라.
움직이는 모든 몸의 기능들도 그분을 통해 활동하니,
당연히 돌아갈 찬양을 그분에게 올려라.

인생들아, 주님을 송축하며, 영광을 올려 찬양을 드리면,
주님을 높이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주님으로부터 유익함이란?

인생들아, 너의 영광과 찬양을 받은 그분은 너의 죄를 용서하신다.
너의 죄가 너를 얽매이게 하여, 자유롭지 못하게 하고,
빚진자와 같이 빚덩이에 눌러 질식하며,
너를 감옥에 갇힌 수인처럼 살아갈수 밖에 없게 하였으나,
그분은 너를 그죄의 모든 속박에서 너를 해방시켰다.
너의 죄가 너 인생들의 영광과 명예를 욕되게 하고,
너 인생들을 죄어, 불안과 근심과, 수치에 올아매어,
너 인생을 병들게 하며,
너의 몸을 망가뜨려, 모든 병에 노출되어,
죄의 병균이 인생들의 몸에 침투하여,
인생들의 몸구석구석을 암이 퍼지듯,
모든 정신과 마음과 육체를 몹쓸게 만들어 버렸다.

인생들아, 너의 영혼을 욕되게 하는 그 죄가운에에 있는 너를,
그분의 용서하는 은혜로 풀어, 자유와 고귀함으로 회복시켜주신다.
그리고 그 죄가 너를 파멸로 이끌어 가며, 죽음에 이르는 절망가운데 살게 한다.
결국 죽을 인생의 운명안에서 신음하다가 사라질 너의 인생이다.
그런 인생을 주님은 멸망의 길에서 건져주신다.
절망의 나락에서 신음하며, 죽어가며 파멸로 달려가는 허무한 인생을 찾아와,
영광의 생명의 길로 인도하신다.

그주님은 사랑과 자비로 너 인생들을 돌아보신다.
절망과 죽음의 파멸에서 헤매이고 허덕이는 인생들을 찾아와,
그분의 사랑으로 인생을 구원하며,
그분의 자비로 그 인생들을 생명의 길로 이끄신다.

그분은 너의 입을 채우는 모든 좋은 것으로 너를 만족케 하신다.
그분은 너의 모든 필요의 충분한 공급자이시며,
너의 풍부한 자산이시며,
너의 아름다운 기업이시며,
너의 인출할수 있는 은행의 자금의 출처이시며,
너의 거처와 모든 가족들의 보금자리이시다.

그분을 섬기고 기뻐하는 사람들을 주님은 날마다 새롭게 하신다.
몸을 강건함으로 새롭게 하며,
마음을 기쁨으로 새롭게 하며,
정신을 총명으로 새롭게 하며,
영혼을 그분의 평화와 안식으로 새롭게 하신다.
저 높은 하늘 창공을 힘차게 솟아오르는 독수리처럼,
너의 인생을 힘있는 자로 높이 솟아오르게 하신다.

그분을 영원에서 영원까지 찬양과 영광을 돌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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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인생도 있구나

우리 주변에 내 팔자가 왜 이럴까 하고 자주 생각하는 경우나
그런 태도로 일관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음을 본다.
그래서 그들은 생각하기를 안되도 그렇게 안될수가 있을까 하고
자신의 삶을 두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있다.
앞으로 넘어져도 이마팍이 깨지고, 뒤로 넘어져도 뒤통수가 터지고하는 일들이 일어난다.
이런 힘들고 고통스런 세상에 내가 왜이렇지 하고
자신의 신세타령을 하는 경험을 하는 경우도 있을 때가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생을 사는 노정의 길에서, 메몰찬 모래바람이 세차게 일어나고,
나무나 자신의 목을 축여줄 만한 오아시스가 하나도 없는 사막지역을 걸어가는 것처럼 버려지고,
찌긴 나의 인생의 발걸음이여,
하늘을쳐다보아도 쏟아날 구멍이 없어,
꽉 막힌듯한 생활의 현장에 자신의 몸을가눌길도 없어,
근심걱정에 한껏 찌들려, 살이 다 오르라 질 정도가 되어,
뼈가죽만 남은 자신의 몸뚱아리만 달랑있는 처지란, 상상하기 조차 싫은 경우일 것이다.

먼 옛날에 중동아시아에 어떤 의인(옳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었던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평소에 자기관리(영성관리, 인성관리, 인간관계관리, 자녀관리,건강관리, 재정관리등)를 잘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범사에 빈틈이 없었고, 늘 남에게 유익을 끼치며,
다른 사람을 돌보는 봉사의 생활에도 충실하다보니,
당시 자기가 사는 사회에서 존경을 받는 처지였다.
그런데 이사람이 하루아침에 망해도 그렇게 망할수 있을 까 할정도로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여러가지 재난을 한꺼번에 당하게 된다.

어느날 갑자기 그 사람이 집에 있었고,
그의 아들들과 딸들이 그사람의 큰 아들집에 함께모여 먹고 마시는 잔치하고 있었다.
그가 집에서 있는데, 밭에서 일하고 있었던 한 하인의 보고를 전한다.
그의 말인즉, 여러하인들이 넓은 밭에서 일을 하고,
그 옆에 황소가 밭을 갈고, 나귀들이 한가로이 먹을 것을 먹고 있는데,
다른 지역에서 온 도적떼들이 들이닥쳐,
하인들을 거의 다 죽이고, 재산들을 빼앗아가 버리고, 자신만이 간신히 도망쳐 왔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있는데, 또 다른 하인이 달려와 보고를 한다.
맑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양들과 그 옆에 있던 하인들을 모두 불태워 죽게 되어,
자신만이 혼자 간신히 살아와 알려주는것이라고 한다.
이 보고를 들으면서, 그의 마음이 답답함으로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또 다른 소식이 들이 닥친다.

또 다른 하인이 갑자기 들이닥쳐, 그 다른 불길한 소식을 알려준다.
큰 떼의 세무리의 갈대아인들이 나타나서, 낙타들을 약탈하고, 하인들을 죽여,
자신만 또 간신히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고통스럽고 불길한 소식을
바로 자녀들이 함께 모인 현장에서 달려온 하인이 전하는데,
갑자기 큰 바람이 불어와, 그 집을 버티고 있는 네기둥들이 뿌리채 뽑히면서,
거기에 모여 잔지하던 자녀들이 모두가 다 하루 아침에 몰살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만 겨우 목숨을 건져 이렇게 달려와 전하는 것이란다.
웬 하늘에 청천벽력같은 재난이 그에게 불어닥쳐는가고 깊은 탄식가운데에,
그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 내리는듯한 슬픔과 고통속에서 자신의 옷을 찟으면서,
울부짖고 있었다.

그렇게 몇 날을 그 고통속에 있는 그에게 이제는 자신의 몸에 악창이 일어나
극심한 피부병에 걸려, 자신의 몸도 제대로 가눌지를 못할 정도가 되었다.
그는 거의 탈진 상태가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부인마저 그에게 당신이 믿고 섬기는 그 신을 향해 항의하지 않냐고,
그렇게 자신의 신실함만 지키면 되겠냐고 그에게 충동질한다.
자신을위로해주기는 커녕 옆에 있던 부인마저, 자신을 책망하며, 마음을 상하게 한다.

그런데도 그는 하늘에 계신 신에 대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 불평하지않고,
다만 자신의 처지만 한탄하고 있으니,
가히 그는 누구도 당하기 쉽지않은
그런 인생의 극심한 고난이나 고통에 대해, 굉장한 인내를 갖고 맞이하며,
그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결국에는그는 이 모든 재난을 감당하고,
나중에는 의젓이 사는 그에게 또 신으로부터 놀라운 복을 받아,
갑절의 축복속에 자녀들을 새롭게 갖고,
인생후반에 더 나은 인생을 통해, 탁월한 인생의 고난과
삶의 질고를 이기고 살았던 그의 이야기를 듣는 인생들이
본받을 만한 삶의 철학을 터득한 사람이라 생각이 든다.

우리가 알수 없는 일들을 당하고,
힘든 상황하에서도 위의 사람처럼 흩트러진 자신의 삶을 추리고
인생을 맞대고 살기란 그렇게 쉽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런 어려운 일들을 당하면서도 신을 저주하다든가, 입술로 범하는 죄를 범하지 않았다.
우리가 하는 말들 중에도, 얼마나 많은 부분에 있어서,
그리고 특히 어려운 일들을 만났을 때에, 인생에 대해 저주하며,
신에 대해 모독하는 말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는지 모를것이다.

위의 그 의인이 당한 일련의 고통스런 재난들은 인생들이 그 원인을 알수 없지만,
신의 책은 인생들에게, 인생의 삶의 배후에 있는 악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명히하고 있다.
그 악한존재는 그 의인의 의로운 삶을 보고 질투하여,
신앞에서 그 악한존재가 그의인의 의지나 믿음을 테스트하기 위해
그런 일련의 시련들을 잔인하게 행하여,그 인생을 괴롭혔다.
그 악한 존재가 하는 일이란 지금도, 인생들을 실컷 이용해 이 땅에 악을 자행하며,
인생들의 삶들을 파괴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고,하는 일들을 밥먹듯하고 있으니.
불쌍한 인생들은 알수 없는 이런 현상들에 대해서나,
악한 존재의 활동에 대한 이해와 경각심을 갖고, 인생을 살았으면 하는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만나도, 결코 자신의 인생을 저주하거나,
하늘을 향해 모독하는 말들을 삼가고, 주어진 자신의 삶을 힘들지만, 감내하다보면,
신은 반드시 그런 인생들을 돌보며,
그에게 목마르고 갈증나는 그의 목을 축일만한 물들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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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건 나 때문이야

인생을 살때에, 하늘에 대해 한점 부끄럽지 않는삶을 살아간다면
후회없는 삶을 살아갈수 있으리라.
그러나 대부분은 그렇게 살지를 못하는 것이 인생들의 모습들이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흠이 있고, 약점이 있으며,
자신의 몸가짐을 모든 사람에게 가장 이상적으로 하면서 살아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런 상태에서 사람이 온전하게 살게하는 것 중에 책임의식을 가지고 사는 것과
문제의 원인을 다른데서 찾지 않고,
나에게서 찾아 그것을 해결해 보려고 살아가다면,
하늘에 대해서나, 땅에서 사는 많은 인생들 가운데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어느 일에 잘못되었을때에 가지기 쉬운 경향은 그 문제를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인데,
이 경향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할때부터 생겨난 현상이다.
인간의 시조인 아담과 이브의 가정은 인간역사의 최초의 가정으로
그들은 신앞에서,먹지말라고 한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신의 명령을 어기게 되었다.
그 죄를 범한 후에 그들 가정안에 서로 너 때문이야 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신의 책임을 묻는 앞에서 아담은 금지된 열매를 먹은 것이
자신의 부인이 먹으라고 해서 먹었다고 부인 이브를 탓 하였고,
이브는 열매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옆에 있는 뱀이 유혹에 못이겨
그 열매를 따먹고서는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뱀에게 전가하였다.
그후에 인간의 심성안에 자신의 잘못을 볼 줄모르고, 남에게 탓을 돌리는 현상이 생기게 되었다.

요즘 우리 사회에 가정이 깨어지는 안타까운 모습이 주변에 많이 일어나,
가정의 이혼하는 율이 점점 올라가, 허니문을 즐겨야 하는 신혼의 가정이나,
서로 함께 충분히 알았을, 그래서 정을 나누고 자식을 둔,
오랜기간 같이 살아온 가정이나 할 것없이 가정이 깨어지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가정의 불화의 문제의 원인은 바로 네탓이요라는 의식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잘아는 격언중에 똥묻은 개가 지저분한 것을 붙이고 돌아다니는 다른 개를 향해 놀려대면,
놀려대는 그 개는 자신안에 더 안좋은 더러운 냄새를 풍기는 자신의 모습을 보지 않고서
남의 허물만 자꾸 들추어 내려는 심보이다.

나의 가정도 부부간 갈등이 있었다.
갈등이 일어날때마다, 문제의 원인을 상대방에게 돌리고,
부인탓이라고 바라보는 나의 시각에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반복되는 갈등가운데에 깨달은 것은 갈등의 문제에 대해,
나 자신에게로 문제의 원인을 돌리고 자신을 먼저 살펴보게 되어,
많은 갈등이 해소되었으며, 분쟁이 있어도 쉽게 화해할수 있었다.

과거에 바로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 라는 노래의 가사가
유행하는 적이 있었던 때가 생각이 난다.
일상생활에 사람은 자주,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자신에게 돌아오는 책망을 벗어던지는 경향이 있다.
우리 주변에 실패한 사람들과 성공한 사람들의 기질을 나누어 본다면,
이 탓하는 문제하나만 가지고도 성공적으로 사는지 아니면,
실패하며 사는지를 분간할수 있겠다.
일이 안 될때에, 조상을 탓하고, 환경을 탓하다 보면,
어느 덧 자신은 자신스스로 안되는 사람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어려움 당하는 자신이 부모를 탓하고,
주변에 있는 사람을 탓 해본들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성공하는사람들은 늘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인생의 문제들을
자신에게서 찾아보고, 그것을해결 하려고 노력하여,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게 된 것이다.

사람이 온전한 상태에서 인생자신이 지혜롭게 살아가는 길은 없을 까?
그것은 자신을 책망하는 것에 대해서나 혹은 남에게 책임을 돌리는데에서,
자유로와지며,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다하며, 사는 것이 아닐까?
사람이 신에 대해 불평을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불만을 품고 있을때에, 자신에 대해서도 불만족스럽게 살아가게 된다.

내탓이요라는 말이 유행처럼, 어느 종교단체에서 사용한 적이 있다.
내 탓이요라고 여기는 자세는 자신에게서 부터
문제의 해결을 찾으려는 지혜로운 삶의 태도일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안에서 문제의 원인을 서로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에 대해, 그 나타난 문제의 책임이나,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로 돌리는 것이
휠씬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가기가 쉽다.

거울이 없는 세상을 살아가다면,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
각기 자기가 상상하는대로 자신의 모습을 가꾸고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은 그 사람의 참모습을 볼수 있지만,
자신만은 자신의 모습을 볼수 없는 것이다.
아침마다 일어나, 거울앞에 다가가 얼굴을 씻고,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때에, 바로 너구나, 하고 자신을 살펴볼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 순간에 자신을바라볼때에, 자신의 외모만 보지 말고,
자신의 내면까지 바라보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고치고자 한다면,
지나온 삶의 과거보다 점점 나아지는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가꾸어 갈수 있을 것이다.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자신을 알려고 노력하면, 자신의 모습을 알게 된다.
생겨난문제의 해결을 찾아가는 것은 먼저 문제를 자신에게서 찾으려고 하면,
그 문제의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갈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온전하게 사는 것은 남에게 탓하는 문제에 대해서,
자신이 그 문제를 해결했거나,
그런 남에게 탓하는 의식으로부터 초월하고 살면 가능하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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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된 조국을 바라보며

사람은 태어나서 앞을 향하여 마냥 달음질하는 삶을 살아간다.
뒤를 돌이키고 싶지만, 과거로 돌아갈수 없다.
다만 우리가 과거를 추억으로만 기억할수 있다.
지나온 나날들은 우리의 기억속에만 남아있다.
과거의 축적된 삶의 유산들이 역사로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앞으로 잘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과거로 부터 교훈을 배울 필요가 있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똑같은 실수나, 잘못을 반복하고 있다면,
우리는 과거의 교훈을 무시하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 한국의 현재의 상태가
구한말의 열강들의 틈바구니에 있는 듯하다는 것을 시사분석가나, 역사가들이 이야기를 한다.
북한을 중심으로 펼쳐있는 여러국가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한국의 장래가 달려있다.
현시점에서 과거의 역사에서 배울 필요가 있는 것은
과거에 나타난 현상들이 현재에도 비슷한 현상으로 재현되기에 그렇다.
그것이 걱정스럽다.

구한말에 열강의 각축의 외교무대에 대비하여 국력을 신장하고, 외교력을 높여,
우리의 생존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면,
남의 나라의 영향이나 지배에서 벗어날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를 못한 것이 구한말의 조선의 우리나라였다.
앞으로 우리는 확실한 미래로 생각해볼수 있는 것은
반드시 남한과 북한이 하나로 엮어지는 날이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것을 대비해야 할 것이다.
그 준비는 정부만 국회만이 아니라,
온 국민이 거기에 대비를 해야 하는데,
남북의 문화의 차이, 생활수준의 차이,
국력의 차이등을 극복하기 위한 준비를 기울여 할 것이다.

과거의 분단된 서독과 동독이 통합된 독일로 연결될때에
그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통일비용도 만만치 않았으며, 동서독의 문화적차이,
생활수준의 차이등을 극복하느라 여러해의 힘든 일들을 거치면서,
그들은 서서히 통일된 독일의 모습을 이루어왔다.
그런데 동서독의 여러차이중에서 가장 중요한 차이의 영향력이 극복은
서로의 국민들의 의식의 차이였을 것이다.
만일 남북한이 통일이 된다면,
결코 남한 사람들이 먼나라쳐다보듯이 북한 사람들을 대할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도 우리의 형제요 핏줄을 나눈 동포인것은 부인할수 없다.

반미니,친북이니, 친미니, 반북이니 하는이념의 차이는 작금의 시대에
서로 자기진영의 이기적인 동기에서 나온 개념들에 빠지지 말고
민족의 거시적인 안목에서 남북한 의 상태를 바라볼 것이다.
진정 한민족의 구성원으로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의식은
역사를 통해 지내온 민족의 얼을 생각하여, 둘이 하나로 연결되는 과정에,
민족의 역사로 부터 교훈을 받을 뿐 아니라,
같은 과거의 역사와 유산을 공유하는 동족으로 함께
새역사를 다시 만들어 간다는 의식이 필요할 것이다.
아직도 우리 국민들의 의식속에 그런 반쪽의식과 같은 치우친 의식에 머물러 있다면,
신이 과거에 우리 민족이 타민족에 의해 억압을 받을 때에,
해방의 복을 주신 것을 감당하지 못하여
당시 좌우로 갈리고, 각기 제각기 진영을 생각하다가,
전체가 왜곡되고 제한되어가는 민족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될 것이다.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민족의 일원으로서
우리민족의 장래를 염려하여, 우리의 의식을 새롭게하며,
통일된 조국의 장래를 맞이하기를 기대하며,
또한 우리에게 통일의 시간이 갑자기 다가올는지,
아니면 서서히 다가올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사실은 그때가 우리앞에 다가올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과거에 민족의 억압된 상태를 풀어주신 신에게 다시한번,
이민족에게 자비를 베푸사,
통일된 조국을 혼란없이, 그리고 서로 고통없이 맞이할 수 있도록
신의 도움을 간구하고 싶다.

과거에 우리세대는 통일을 염원하는 통일의 노래를 그렇게 불렀어도,
그것이 현실로 다가올 것인가의 막연한 기대만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작금의 변화나 여러가지 사태는 이제 우리로 하여금 그것이 막연한 현실이 아니라,
실현된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서로의 국한된 이념논쟁이나, 불필요한 편견에 빠져,
서로의 힘과 세력을 낭비하여 국력을 손실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신이여 이민족에게 신의 복으로 통일된 민족의 국가로
태어날수 있는 국민역량이 되도록 민족 한사람,
한사람에게 바른 의식과 바른 가치관의 복을 내려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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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식에 대한 생각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라는 말을 한다.
이말은 무슨 직업이든 직업을 가진 당사자에게는 가치있는 일이며,
다른 사람과는 차별화할수 있는 자신만의 고유한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이 하는일이 무슨 직업에 종사하는 일이든, 그일이 자신에게 맞는 일이라면,
그것은 자신에게는 중요한 일이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그일에 열심을 낼 것이다.
사람은 일을 하면서 자신을 완성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자기완성의 한 단계나, 과정으로서의 직업은
자신에게 유익이 되며,자신을 행복하게 할 것이다.

무숙자에게도 자신의 직업이라 할수 있는 일이있다.
미국 노스엔젤래스 도시에서, 많은 노숙자를만난 적이 있다.
한번은 친구들과 함께 차를 타고 가는데,
흑인 노숙자가 차유리를 닦으려고, 다가와, 열심히 차의 앞유리를 닦으면서,
우리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짧은 봉사지만, 자신이 한 일에 댓가를 기대하는 것이다.
한국에도, 아이엠에푸시대이후에 사회적으로 집단적으로,
직업을 잃은 많은 노숙자들이 생겨났다.
노숙자로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노숙자로서의
노하우를 갖추는 직업의식이 필요한 것이다.

세상에 많은 직업이 있다.
천하거나, 귀하거나, 할 것없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있으며,
그일이 자신의 생존과 결부되어 직업을 유지하고 살게된다.
직업에 대한 의식은 크게 두가지태도로 생각해 볼수 있다.
그하나는 천직이라는 직업의식과,
그리고 또 하나는 잠시 그저 돈을 벌기 위해 몸을 담고,
그 직장의 일을 일시적으로 종사한다고 생각하는 철새 직업의식이 있다.
그렇지만 직장인들은 자신의 어느 직업에 종사하든,
자신의 의식에 따라, 그 자신의 직장에 종사하는 태도에 영향을 주고,
그 태도는 자신의 직업의 모든 부분에서, 업무의 결과의 차이로 나타난다.

경력으로서의 직업의식은 자신이 그일을 하므로서,
전문적인 지식이나,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다.
어느 한가지 일에 오랫동안 종사하다보면, 그일에 익숙해지며,
그일에 대한 여러가지 일에 대해, 노하우를 터득하는 일 일것이다.
자신이 종사하는 직장에 대한 애착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숙련이나,
일의 습득이나 직업을 통한 자기 발전을 꾀할수 있다.
그런데, 직업에 종사하면서, 계속적인 갈등이나,
자기직업에 대한 회의감이 들때에는
그 직업에 몸담고 있는 기간이 자신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므로 직장생활이 시작단계인 경우에는 다른직업을 찾아가는 것도 좋을 듯하며,
중간단계의 기간에서는 쉽게 직장을 옮기지 못할 것이므로,
나름대로 그 직장에 적응하여, 오히려 발전의 기회로 삼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노력은 승진에 대한 도전이나, 준비를 하는 일일 것이다.
마무리 단계에 있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직업을 놓고서,
다시 한번을 자신이 해야 할일을 찾아가는 기간이 필요하다.
직업을 떠나, 자신만이 할수 있고, 평소에 직장이 있어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며,
또 자신이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할 일을 찾는 것이 필요 할 것이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직업을 너무 구분하여,
노동을 하는 것이나.기술적인 도공이나, 기능공을 천시하여,
사회적으로 낮은 계급에 속한 사람으로 여기고, 천시하였다.
그러나 요즘은 기술직이나, 전문기술인들이 대우받는 사회에 살고 있다.
무엇이든 그분야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숙련을 갖고서 일을 하는 경우에
전문인으로서 인정을 받는 것이다.
요즘은 무슨 직업이든, 자신이 종사하는 분야에서
계속적인 자기발전의 노력을 통한 전문적인 숙련과
자신만의 할수 있는 업무의 세계의 영역을 세워 나가,
그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어가는 사람이 대우받을 것이다.

조기 은퇴하는 말은 우리모두에게는 듣고 싶지않은 말일수 있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은퇴를 하면,
자신의 인생은 일과는 상관없는 그저 소비하는 인생으로만 여기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 태도의 사람이 은퇴하는 순간부터 사람이 갑자기 늙어지다든지,
그리고 삶의 의미와 의욕을 잃어버려, 할 일없고 쓸모없는 인생이라고 여기게 되어,
자신을 불행한 사람을 여기게 다.
그러므로 직업을 떠나, 자신이 평생하고자 하는 일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삶의 지혜일 것이다.
운동(육체적, 정신적, 영적)을 계속하다든지, 사회봉사를 한다든지,

아니면 종교적인 활동에 몰입하다든지,
자신이 직업의 세계를 떠나, 자신만이 하는 고유한 자신의 일을 세워놓고,
그일을 하면, 은퇴와 상관없이, 남은 인생의 날들을 보람있게 보낼것이다.

직업의 세계만의 영역을 초월하여,
사람은 인생이라는 직장에서 신으로부터 받은 소명을 따라,
세상에서 자신이 할 일을 찾아,
그 일을 하며, 자신의 일생을 보낸다.
자신이 그저 이세상에 태어난 것이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고유한 일이 있고,
그일을 하지 않으면 안될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사명이 있다.
이런 사명의식을갖고 사는사람과 그런 의식이 없이 사람과는
살아가는 삶이 서로 질적으로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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