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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편1:1-8
1. 복있는 사람은 악한 자들의 말을 듣지 않고 죄인들을 본받지 않으며
하나님을 조롱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않고
2.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하며 그 율법을 밤낮으로 묵상하는 자이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과실을 맺고
그 잎이 마르지 않는 것처럼 하는 일마다 다 잘될 것이다.
4.그러나 악인들은 그렇지 않으니 그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뿐이다.
5.그러므로 악인들이 심판날에 무사하지 못하고 죄인들이 의로운 자들 가운데 서지 못할 것이다.
6. 의로운 사람의 길은 여호와께서 지키시나 악인의 길은 파멸에 이를 것이다.
소문만복래라는 말은 사람이 웃음으로 사는 경우에
그곳에 복스러운 일들이 일어난다고 믿는 것이다.
인생의 복은 대개 자신의 보는 인생의 관점에 따라 달리 생각해볼수 있지만,
대개 형통하는 삶은 복받은 삶이고, 반대로,
자신의 인생이 역경이나, 고통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인생의 가시밭길에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복은 물질적인 것보다는 영적인 것에 더 가치있고 유용하다.
복은 수단보다는 목적에 치중하면 얻어질수 있다.
복은 의에서 오는 것이지 악에서 오지 않는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이가 의로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악을 행하는 자에게 화가 임한다.
그리고 의를 행하는 자에게 복이 임한다.
하늘나라는 축복의 나라이며, 지옥은 저주의 나라이다.
인생들이 지금 살고 있는 지상은 사는 과정을 통해서,
장차 영원한 댓가를 받을 것을 바라보며,
인생이 저주와 축복을 함께 경험하는 곳이다.
흔히 행복한 사람은 자신에게 만족하는 사람.
자기안에서 자신의 조화를 이루는 사람이며.
반면에, 곤고한 사람이란 자신안에 갈등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불만과 불안, 불평속에 살고 있다.
이렇듯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간다.
그 정체성이란 두가지로 대표적으로 생각하며 사는 데
하나는 자신이 복받은 사람으로 여기고 사는 것이며,
또 하나는 복은 커녕, 자신이 저주받았다고 여기는 채로 살아가는 자이다.
그 정체성이란 언제든지 자신안에서 개선하며 살수 있다.
그러나 그 정체성은 인생전반에 있어서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인생이 누리는 복은 악에서 오지 않고, 의에서 온다.
그 복은 의의 생활철학에서 온다.
즉 복있는 사람은 올바른 생활철학을 갖고 살고, 그의 삶이 올바르게 되니,
그는 자신의 의로운 길에서 인생의 복들(장수, 형통, 자족,덕행,영향력) 을 받게 된다.
사람의 생활철학은 사람이 쓰는 언어에 대한 자신의 개념설정에서 온다.
무슨 말을 듣는가에 따라, 그의 사고방식이나, 생활습성에 영향을 준다.
자신의 생활태도에 영향을 주는 타인의 말을 잘들어야 한다.
옳은 조언을 찾아가는 것은 지혜자의 일이다.
악한 친구의 꾀임에 빠지거나, 악한 자의 유혹에 이끌리면, 패가망신하기가 일수 이다.
자신이나 남에게 죄를 짓는 자들은 항상 그 마음속에 악에 대한 유혹이 있으며,
죄를 범할 것을 생각한다. 범죄인들은 자신들의 범죄에 대해 뉘우침이 없으면,
계속해서 가중되는 죄를 범한다.
가중범죄에 대해 더 가혹한 형벌이 있다.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을 가리켜,
성경은 그를 어리석은 인생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의 존재를 비웃는 일을 통해
인생들은 점점 악해져 가는 것이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자신의 주변의 삶에 악의 조장이나, 죄악의 흔적이나,
어둠세력들(타락한 영들)의 영향들이 나타나
자신을 더럽게 만들어 가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모욕하는 일이며,
자신이 그의 엄정한 심판을 자초하는 일이다.
자신의 인생이 복이 있으려면,
먼저 죄와 악을 행하는 태도나 환경에서 벗어나는 일이 우선이다.
고로 의의 하나님으로부터 인생의 복이 온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야야 할 것이다.
그는 만물을 창조하고 난후에, 인간들을 이땅에 살게 하여,
그의 혜택안에 살도록 하였다.
그는 지금도 세상을 유지하게 하며,
그 세상속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신다.
하늘을 무시하고 역천하는 사람치고 망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왜냐하면 하늘은 인간이 마땅히 살아야할 가르침을 전하고 있고
그것을 얻으면 그에 댓가를 인생들이 받기 때문이다.
고로 주님의 가르침의 말씀은 사람들에게 인생의 복을 가져온다.
왜냐하면, 그의 말씀은 진리이며 생명이며, 소망이 된다.
그래서 그 말씀을 받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복을 낳으며,
그 말씀들이 자신에게 복있는 생활철학을 살게 한다.
하나님의 법은 사람을 유익하게 위해 주어진 것이다.
사람이 그 법을 따르면 살길이 열린다.
생명을 얻게하며,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를 가르치고 있다.
사람에게 주신 그의 법은 그의 사랑에서 나온 것이다.
그 법을 통해 인생들에게 하나님의 길을 보여준다.
사람이 그 법을 지키면, 자신의 생명과 안전이 보장이 된다.
하나님의 법인 그의 말씀에는 하나님자신의 정체감이나, 임재하심이 있다.
그의 말씀을 신언으로 들려지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그 말씀을 받은 사람에게 있으며,
그 말씀이 자신의 마음속에 신언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안에 현상하시는 그분의 영을 통한 숨결과 손길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단계에 이르기 위해, 그저 말씀을 읽거나, 듣거나, 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말씀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분의 말씀을 품는 것이란 마치 닭이 달걀을 품고
생명의 소중한 탄생을 기다리듯 자신의 마음속에 그 말씀의 임하심을 기다리는 것이다.
즉 자신의 마음속에 말씀의 육체화(성육신화: 말씀의 실현화)를 묵상의과정을 통해
그것을 기대하 며 그 실현을 이루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이들은 그 법을 늘 생각하며, 그 법안에서 사는 법을 배운다.
그 법을 항상 마음에 새기며, 자신의 삶의 철학으로 삼으며 살때에, 인생이 살아야 길이 보인다.
그 가르침의 진리들을 품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모든 일에 올바른 선택과 지혜로운 결정을 하며 살게 된다.
하나님의 법을 묵상하고, 그것을 따라 사는 이들은 자신들의 하는 일에
확신을 가지며, 자기가 심은 일들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 일을 하는 목적이나, 동기나,과정을
주님이 주시는 말씀안에서 형성하기 때문이다.
열매를 거두려면, 뿌려진 씨가 좋고, 그것을 뿌린 밭이 좋은 밭이고,
그것을 잘 가꾸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씨앗과 같은 자신을 잘 가꾸어 준다.
무슨일을 해도 건강한 씨처럼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어지면,
그것은 어느 곳에 뿌리를 내리든지, 든든한 사람이 되며,
그리고 자신이 심겨진 환경들을 바꾸는 능력을
말씀의 지혜와 능력을 통해 공급받는다.
그리고 때를 따라 적당한 시기에 자신과 자신이 하는 일을
가꾸고 돌보는 노력을 하면,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일의 결과인 열매가 나타난다.
인생은 무엇을 심든지 심은대로 거둔다는 이치안에서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삶의 열매를 가져온다.
똑같은 나무를 심어도, 열매의 많고 적음은 농사짓는 모든 일의 결과이다.
인생은 이땅에 심겨진 씨이며,나무처럼, 자신을 통해 열매를 거두어 들인다.
그 열매를 거두게 하는 것은 전혀 사람농사를 행하시는 농부의 손에 달려있다.
그 농부는 모든 인생농사에서 유능한 사역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농부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농사가 풍작이 되기도 하고 흉작이 되기도 한다.
인생농사를 짓는 하나님의 존재를 거부하고,
그의 손길을 무시하고 사는 것이 악이다.
그의 길은 인생들이 의의 길에서 발견할수 있다.
인생의 삶안에서 옳음을 좇아가고, 바름을 위해 살려고 하면, 그를 만날수 있다.
하나님이 없다고 우기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서 그의 존재를 거부하고,
그의 가르침과 제시하는 길을 무시한다.
고로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악한 일만 거두게 되는 것은
죄악도 뿌린대로 거두어 지는 것이 인생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악을 행하며,
악인은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허비하며, 주변을 어지럽게 한다.
충실한 알곡이 거두어지고, 열매를 거두는 일이 이루어질때에,
바람에 나는 겨는 자신이 있는 곳에서 모든 것을 어지럽게 할 뿐이며,
수고한 만큼 댓가를 가져올수 없는 공허와 요란함과 낭비만이 있을 뿐이다.
이땅에서 선을 이루기는 쉽지 않으나, 악을 행하기는 쉬운 길이다.
악인이 뿌린 어둔 일로 인하여 세상은 점점 어려운 세상이 되어간다.
그러나 그런 세상을 통해, 사람들은 악인과 선인의 삶의 차이를 판단하고,
자신이 가야할 길을 배운다.
악을 조장하는 인생들은 결국 자신이 저지른 일들의 댓가를 받으며,
자신이 뿌린 악의 열매를 자신이 거두게 되어,
그 사람들에게 그들을 붙들어 매는 구속과 거기에 따르는 형벌의 심판이 있을 뿐이다.
악인이 아무리 선한 척, 백노가 노니는 곳에가 있는 까마귀처럼
아무리 선한 포장으로 자신을 뒤집어 썼어도,
결국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게 된다.
고로 자신이 까마귀에서 백노로 신분변화
(자기갱신, 자기회개, 자기변화)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인생의 열매는 옮고 의로운 길에서 얻을수 있다.
의인의 길은 바른 길이며, 인생이 마땅히 가야할 길이다.
의의 기준은 무엇인가? 무엇이 바른 길인가?
인생에서 바른 것은 인간다운이의 모습을 가지는 것이 아닌가?
인간이 하나님이 될수는 없다.
이 말은 결코 자신스스로는 인생의 문제에 대해 해결받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사람은 절대자 하나님앞에서 그를 통해 이땅에 태어났으며,
자신의 가는 인생의 길을 통해, 인생문제를 해결받아야 할 존재이다.
죄인의 길은 죄를 짓는 법범자의 삶의 모습에서 나타난다.
무엇이 죄인가? 죄의 기준은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 악을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바른 길을 제시하고, 그길을 따르는 것을 기대한다.
그런데, 그 길을 저버리고 살아갈때에, 죄의 길에 들어서기 쉬운 것이다.
의인의 삶은 하나님이 인정하시지만,
악인의 길은 심판에 이르게 하신다.
하나님은 바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돌보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시간을 두고, 인생들이 행한 일에 보응을 하신다.
이세상에서 받지 못한 인생들은 시간을 넘어가는 영원을 향해,
그들에게 합당한 댓가와 보상을 얻게 하신다.
때로는 의인이 허무하게 인생을 마감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일은 시간속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들에게
이해할수 없는 삶의 모순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나님은 인생에 대한 평가(심판)와 보응을
결코 이 시간적인 선상에 있는 세상에만 국한해 놓지 않으셨다.
오히려 시간을 넘어가는 영원한 세계에 더 중점을 두고
인생들을 다스리며, 훈련하며, 인도하신다.
악인은 당대에 자신의 생이 끝난다는 생각을 갖고 살기 때문에
죄와 악을 쉽게 행한다.
그러나 그 자신이 저지른 결과가 앞으로 자신이 겪어야 할 영원한 장래에
보응받는 형벌을 생각하면,
감히 그 죄와 악을 안고 그대로 살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예레미야10:23
“여호와여 내가 알기에는 사람이 자신의 운명을 다스릴수가 없고
삶의 방향을 마음대로 조정 할수 도 없습니다.”
사람은 각자가 자신의 운을 가지고 태어나는가?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 결정에 상관없이 태어나며,
그곳에 있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안에서 정해진 인종이나
환경안에서 사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고로 사람은 자신이 부모를 선택할 수 없고,
자신의 삶의 시작도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것처럼, 자신의 운명이란 자신에게 주어진 그 정해진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의 운이란 사람의 정해진 길을 살아가는 인생의 한계나 테두리를 생각해본다.
그것은 마치 전세계의 바다와 육지를 갈라놓는 해변의 경계선처럼,
바다의 물결이 해변에 휘몰아쳐도 어떤 정해진 경계에 물이
더이상 그 경계를 넘지 않는 것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경계내에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자신이 러시아에서 태어나지 않고,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며, 백인으로 태어나지 않고,
자신이 황인으로 태어났으면 그는 아시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대로 살아간다는 생각에는 그저 숙명을 좇아가는 경우처럼,
자신에게 정해진 운명을 살아갈 때에,
부정적인 입장에서 자신의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없이
그저 자신에게 정해진 삶을 살아가다면,
맹목적으로 자신의 삶을 순응하듯이 살지만,
자신의 개선이나 발전을 위한 의지나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자신도 알수 없는 운에 맡기고 사는 경우이다.
윤회설에서 말하는 인생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업보로 생각하고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자신에게 더 나은 새로운 미래의 삶을 위해 현재에 당하는 힘든 일들을 극복하고,
선행을 힘쓰고 살아가면 언제가는 다시 태어날때에,
보다 좋은 인생이나, 영물로 살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돌고도는 윤회적인 인생철학에 자신의 인생을 맡기는 데는 자신이
살아가는 인생의 삶의 기회가 유일하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천운을 가지고 태어났다.
어느 인생에게는 하늘의 정해진 뜻이 있다라는 말로 이해된다.
역사에 나타난 유명한 인물들은 그들의 삶이 하늘이 정해준 이치나,
삶의 길로, 그들이 당대에 필요한 일들을 하였다는 것을 말한다.
그들은 하늘이 정해준 이치를 따라 살면서
자신안에 있는 적극적인 동기부여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성경에는 어떤 사람을 악인으로 규정하였는데,
그는 인간세상에 악을 행하고, 그 악을 행하는 댓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을 통해 자유와 해방을 주실때에,
이집트의 왕인 바로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에 도전하여 거역하고,
이스라엘을 노예로 잡아두려고 했으나,
그는 오히려 자신의 고집과 오만으로 인하여 심판을 받으므로써,
하나님의 역사나, 섭리를 나타내는 도구로 활용이 되었다.
예수그리스도를 돈에 팔아버리기로 선택한 유다는
태어나서는 안될 사람으로 애석하게 여긴다.
성경은 그의 태어남을 후회하듯 언급하고 있다.
그렇지만, 유다가 없이는 예수님이 팔리지 않았으며,
십자가의 죽으심도 생기지 않을 것이며, 만인구원의 길을 열지 못했을 것인가?
그러나 그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 하였던 인생이지 아닌가?
그것처럼 인간의 운명은 인생의 갈림길에서 자신이 선택한 일로
자신이 행한 일의 결과를 겪어야하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예레미야는 태어날때부터 모태에서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유다민족의 예언자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삶을 고난중에 감당하였다.
그의 인생은 이미 태어나기전에 하나님에 의해 선별되고,
자신이 해야할, 자신의 사명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에 의해 선택되어진 인생은 그에게 정해진 인생의 운명의 한계안에서
자신의 삶의 분명한 목적과 목표를 알고
자신의 삶의 한계안에서 자신의 사명을 이루는 삶을 살아간다.
유다나라는 왕으로부터 시작해서 온국민이
하나님앞에 그를 버리는 잘못과 우상숭배의 죄를 지으므로,
멸망으로 치닫는 결정된 미래를 따라 나라가 온통, 주님의 심판에 놓여 있었다.
아무리 자신들이 노력하여 정해진 멸망해가는 코스를 바꾸어 보려고 시도하지만,
자신들과 조상들의 범죄한 우상숭배와 도덕윤리의 타락은
결국 유다나라를 침입하는 이웃 강대국들에 의해 멸망해 갔었다.
인간이 하나님이 결정된 미래를 살아가는 것과
인간이 운명처럼 변개할수 없는 것의 삶의 코스를 살아가는 것이란 다르다.
하나님이 정한 테두리안에서 자신의 최대한의 노력이나 발전적인 시도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래야 숙명론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수동적으로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지는 태도에서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자신의 운명을 다스릴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결정이나, 선택에 의한 미래의 결과를 알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를 결정하고 어느 일을 선택했을때에,
그 선택이나 결정이 자신의 미래를 모르고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인간의 딜레마가 있다.
자신이 결정하는 결혼도, 자신이 선택하는 직업도,
자신이 만나는 만남도 결과를 알수 없는 미래에 던져지게 되는 것이
인간의 한계상황이다.
그리고 또한 사람이 자신의 운명에 대해 생각할때에,
자신의 삶의 방향을 자신이 생각대로 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 자신이 계획한대로 내일 그것이 다 이루지 못하며,
자신이 정한 삶이 방향이 아닌
삶의 변수(사건사고나 불행이나 불운을 통해 겪는 일들)가 주변에 많이 놓여있다.
선택과 결정은 자신이 하더라도 그 삶의 전체 흐름은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이다.
선거때마다 유권자들이 어느 후보를 택하지만,
이외의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간의 운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고로 사람이 자신의 운명의 미래에 대해, 알 수 없음을 한탄하지 말고,
자신이 정한 인생의 방향을 끝까지 지속하기위해서라도,
자신의 인생의 길을 정하고,
자신의 미래를 알고 있는 하나님에게로 나아오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다.
새해에는 모두가 복많이 받으세요 라고 서로 인사를 한다.
인간생활에 복이 있어야 함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복을 추구하는 인간은 누구나
그 복안에서 만사형통을 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복에 대한 생각이 중요하다.
복을 추구하는 나의 생각에 따라 내가 행복하게 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된다.
우연히 주어지는 복을 기대하며,
많은 사람들이 로또에 일확천금의 기대를 걸고, 행운을 기다린다.
물질과 번영이 주어지는 복을 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물질을 많이 갖고 있는 부자들을 보면,
소유한 만큼 행복이 주어지지는 않는데,
도리어 그들은 가진 것 만큼 행복하지 못하고,
거기에서 오는 반대급보로 불만족이고, 불행한 인생을 보낸다.
못되게 살면서도 잘된다고 생각하는 것,
양심대로 살지 않으면서 형통하게 된다는 것은
일시적인 안녕을 주고, 출세와 영달로 자신을 포장하며, 살게한다.
그것을 얻었을때에, 남을 무시하기 십상이고,
자기 잘난척 하며 살게 된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헛된 욕망에 도취되어
인생의 좋은 가치들을 저버리고 살게 해버린다.
사람이 소유에서 오는 복을 구하고 살아가기만 한다면,
끊임없이 그것에 목매어 살아야 한다.
소유에서 오는 외형적인 복은 사람에게
그것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것라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가져본 사람, 높아본 사람들이 그것에 안주하다보다가,
어느 날 자신의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을 느낄때에는
그것보다는 높은 가치와 삶의 의미를 주는 내면의 행복을 구하게 된다.
잠시 생각하면, 외형적인 복을 구하는 그런것들은 결국 인생에 있어서,
그런 것들을 구하는 자신에게 대해, 자신이 배반 당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치가 변질되어 자신을 행복으로 이끌어 주질 못하고
도리어 자신에게 주어진 그 행운들이 자신에게 해악을 끼친다.
인생의 참가치를 알게하고 깨닫게 하는 진리를 가지고 있다면,
공자의 말처럼 아침에 일어나, 하루 종일 수고하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때에
자신의 생활을 두고 만족해 할수가 있다.
진리는 인간이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확실한 지식을 가졌을때에 우리는 그것을 진리라고 한다.
변함이 없이 인간에게 영원한 가치를 주기 때문이다.
이 진리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그래서 사람들은 종교를 갖고, 철학으로 그 진리에 이르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정작 그 진리는 인간에게 감추어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 진리가 인간자신에게 가리워 있다.
그 진리는 다만 인간을 지은 조물주에게 물어보는 길밖에 없다.
그 신이 우리에게 이렇게 살면 행복하게 될 것이다. 라고 선언하신다.
그 내용인즉 사람이 매일의 인생의 삶을 살아갈때에
신이 우리에게 주신 그 진리의 내용들을 깊이 생각하며, 연구하며,
그 내용대로 살아가면 인간이 행복하게 되는 참된 길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밤낮으로 신이 우리에게 하신 내용들을 생각해보면 인생의 길이 보인다.
앞날이 보이지 않고 답답해 할때에,
어디에 내가 지금 머물어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기 때문에,
불안하지 않고, 방황하는 인생에서 하고자 바 대로의 바른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하늘을 거스리고, 신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살게 되면,
처음에는 잘되는 것 같은데,
나중에 보면 헛되게 자신이 지난 시간들을 보냈다고 후회하게 된다.
우리 주변에 신을 무시하고 사는 사람들이 마구 휘젓으며 잘 살가는 것 같으나,
잠시 지나고 나면 마치 바람에 불려
흩날려 버려지는 쭉정이 같은 인생으로 기억에 남게 된다.
인생의 삶의 현장은 마치 인생이라는 경주의 일정한 기간을 통해
사람이 어떠한가 하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인생의 경주를 많은 이들이 지나가며,
어떤 이들은 악하게 살다가 가며,
어떤이들은 비관하면서 인생을 마치며,
어떤 이들은 바르게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한 인생을 살아가게 한다.
그런데 그 인생들이 바른지 그른지를 어느 시점에 가서는 판단을 받게 된다.
그것이 인생이 한 날 살다가 없어지는 인생이 아니고,
자신이 어떻게 살아온지를 판단받게 되는 그 순간에
자신의 전부가 결정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대한 해답을 말해주는 내용들이 나에게 주어진다면,
나는 그것을 매일 순간마다 깊이 생각하며,
또 생각하며 살아가노라.
그러면 그것이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후회하지 않는 진리를 따라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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