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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

  아침에 첫 번째 사업장 방문을 마치고 글을 쓰려고 블로그를 열었다가 크자님의 [차이와 차별]을 읽고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후다닥 쓰는 글 . 뻐꾸기님의 [건강형평성학회 참가기] 에 관련된 글이기도 하다. 덧글을 달까 하다가 이런 건 여러 사람이 함께 이야기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거창하게 트랙백을 걸었습니다.



크자님이 말씀하시기를.....

 

"사실 난 차이보다는 차별에 더 관심을 갖고 있는데, 아직도 논의는, 연구는 차이를 설명하기에도 역부족인 단계에 있는 듯 하다. 차이를,, 나아가서는 차별을 드러내기 위해 어떻게 '성인지적 관점'을 키워갈 수 있을까를 듣고 싶었는데 '여성의 건강'도 중요하다는 동어반복을 되풀이해서 들었다."

 

 여성 건강에 대한 국내외 연구들을 읽어보고 여성 노동자들과 현장에서 만나면서 제가 정리한 연구의 우선순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차별을 드러내기 위한 성인지적 관점'은 독자적인 성 특이적인 연구방법론에 의해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연구주제에 녹아들어가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씁니다.

 

1. '여성이 더 많이 아픈가, 그것이 사실인가? 왜 그런가?'에 관한 연구

- overreporting이 시대의 문화적 조건, 여성의 생리적 현상을 질병으로 규정하는 경향, 여성의 연령, 질병의 종류에 따라 다르게 보고되는 문제라는 것이 한국사회에서도 그러한지 검증할 필요가 있음.

- 여성의 증상 호소를 개인의 성향의 문제로 돌리고 무시하고 치료가 지연되는 문제를 극복하도록 촉구(가장 극명한 예는 허혈성 심질환 진단과정).

 

2. 여성의 보이지 않은 유해인자를 드러내는 것

- 여성 건강의 핵심은 노동과 건강문제임

- 여성의 일은 남성의 일보다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생각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 이런 의미에서 근골격계질환, 직무스트레스, 이중부담과 같은 문제들이 집중해서 조명되어야 함

 

3. 아이를 낳는 존재로서가 아닌 그 여성의 건강에 대한 관심

- 특히 생식독성 연구의 주된 건강결과가 피임, 월경과 같이 장기간 반복되는 여성의 경험이 아니라 임신, 출산, 출생아에 대한 것으로 국한되는 데 대한 문제제기가 필요함

 

4. 여성과 남성의 '아주 작은 차이'를 설명하고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없음을 주장하는 것.

- 소위 생물학적 차이의 실제는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확대해석 되어왔는가를 규명하고 더이상 차별의 근거로 사용될 수 없도록 하는 것.

- 소방수, 경찰, 비행기조종사등 비전통적 여성 노동에 관한 연구가 필요.

 

5. 차별에 관한 연구

- 아직까지 역학적 연구방법론은 차별에 관한 연구에는 많은 제한점이 있으며 한국사회의 현실에서 더더욱 측정하기 어려운 면이 있음. 예를 들면 우리나라 여성들은 차별을 차별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많기 때문에 낸시 크리거가 했던 방식대로 차별에 대한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질문을 하고 그 주관적인 의견을 묻는 경우 대부분 차별받은 적이 없다고 응답함.

- 차별 측정 도구 개발을 위한 시도가 필요함

 

  그런데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1세계에서도 연구비를 구하기 어려운 주제들이기 때문에 연구비가 나올만한 주제에 끼워넣어서 진행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저 역시 다른 과제를 하면서 젠더를 염두에 두고 자료수집을 한다든가, 연구대상을 건강진단 수검자로 하여 비용을 절약한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건 누군가 끈질기게 주장하고 요구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만 1세계 연구자들도 못 해내는 것임을 감안하면 여기에 너무 매달릴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저는 되도 않는 사람들 만나서 연구비 얻어보려는 노력을 하느니 월급 명세서에 연구지원비라고 찍힌 금액의 범위안에서 해결하자는 쪽으로 생각을 굳혔습니다.(이건 전교조 선생님들이 각종 수당을 그대로 학생들한테 쓰는 것을 보고 깨달은 것입니다). 다른 연구비를 받으면 그걸 하느라 시간을 써야 하기 때문에 막상 젠더 연구를 할 시간은 없더군요. 

 

 또 현재 젠더에 관심을 갖는 연구자들은 생업이 요구하는 연구주제들을 감당하기도 벅찬 상황에서 소위 말하는 삼중부담을 지면서 가고 있죠. 이걸 돌파하기 위해서는 젠더 연구자들의 네트워크가 활성화되고 십시일반형식으로 꾸준히 연구가 진행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누군가 오버를 좀 해야 가능한 상황이죠^^ 

 

 한가지 더, 이런 연구들은 여성/노동자 운동단체와 연대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노동건강연대의 경비보조원 산재 실태조사, 노건연과 서울여성노조의 학교급식조리원 건강문제 실태조사처럼요,  하나 하나의 연구결과들이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함께 싸우는 과정에서 우리 편이 늘어나고 꿈꾸는 것이 현실이 될 수 있겠지요. 

 

 "아직 형평성연구의 초창기인 단계에 더 많은 연구자들을 가이드할 수 있도록 문제의식과 연구방법을 보여줄 수 있는 연제발표가 없었다. 심지어 알만한 연구자들이 참석조차 하지 않다니..."

 

 자유연제발표에 대해서는 저 역시 의아했습니다. 저는 '알만한 연구자'들의 형평성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형평성 연구로 이어지지 못할 정도로, 혹은 형평성 연구를 했더라도 자유연제시간에 발표할만큼의 시간이 없을 정도로 급박한(?) 정세,  건강형평성이 자라나는 보건학도들에게 아직도 관심의 대상이 아닌 현실..... 이런게 원인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아주아주 느슨한 공부/친목모임인 저희 여성노동건강세미나팀이 함량이 부족한 연구를 성의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발표하는 것이 올바른지에 대해서 고민을 하면서도 무리하게 참가한 것은 부족한 내용이라도 함께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추운 회의실에서  주최측 일부, 발표자와 발표자 친구들만 남아서 진행했던 자유연제시간이 저에게도 좀 섭섭했고 응급으로라도 발표하려고 밤을 지새운 친구들한테 왠지 미안하긴 했지만 이게 우리가 처한 현실인걸요.  

 

  숙제가 많을 때는 하나라도 먼저 하는 게 짐을 더는 방법이지요. 하지만 '나 아니면 안된다, 누군가 하겠지'하는 마음 말고 '협력해서 선을 이루는' 즐거운 과정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산재통계 함께 분석하자고 하셨는데 몸 사리고 동문서답한 것. 반성합니다,헤헤. 서로에게 좋은 경험이고 우리 사회에도 유익한 결과물을 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연락주시와요^^

 

 다시 외근시간이 돌아와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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