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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6

  검진을 다니다 보면 좀 잘나가는 회사의 30대 중반 남자들중에 불쌍한 사람이 좀 있다.  회사에서 한창 일할 나이이고 과로에 시달리다보면 건강이 점점 나빠지고, 집에서는 아이들이 어려 부부간에 대화할 시간도 별로 없고, 힘들어도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그저 혼자서 버티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지난 삼일간 검진한 곳에 유독 그런 이들이 많았는데, 오늘은 어떤 사람이 이십분이상 앉아서 이런저런 하소연을 하면서 진찰실을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부친과 그쪽 친척들이 모두 뇌졸증이 있었고, 본인은 고지혈증, 고혈압, 과도한 흡연, 그리고 직무스트레스와 관련된 비특이적 증상 다수, 게다가 과로(아침 8시부터 다음날 새벽 두 시까지 일하기)에 장시간 출퇴근까지. 골고루 거의 모든 심혈관질환의 위험요인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최근에 발생한 협심증 증상까지 있었다.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성격도 참으로 고지식하고 걱정이 많은 스타일인데, 오죽하면 처음 만나는 의사붙들고 끝도 없는 하소연을 할까 싶었다. 

  출근해서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뒷골이 땡기고 현기증이 난다는데,  일을 줄이기 위한 선택을 할 용기는 없고, 답답한 상황이다.  부인에게 자신의 건강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았는가 물어보았더니, 지나가는 말로 한 번 했는데 귀담아 듣는 것 같지는 않다 했다.  부인하고 의논해서 집도 이사하고 건강관리를 최우선 과제로 놓고 당분간 진짜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하면서,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없는 사회가 되려면 요원하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사람은 B 형 간염 보균자에 간경화까지 있는 젊은 남자인데, 역시 하루에 4-5시간밖에 못 잘정도로 일을 많이 하고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자식들 키우려면 오래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자기개발을 위해서 뭘 배우기까지 한단다.  아이고, 젊은 나이에 간경화라니, 잠 못자가면서 자기개발할 때가 아니지 않은가.  몇년전 대한간학회는 과로가 간질환에 미치는 영향을 공식적으로 부인하는 보고서를 냈다. 하지만 그 연구결과를 잘 들여다보면, 과로가 간질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근거는 없었다.  과로의 건강영향에 대해서 뇌심혈관질환외에 다른 부분에 대한 연구는 매우 드물다.  그 주제에 대해 춘계 학회 토론자였던 어떤 변호사는 누가 그런 것 좀 연구해달라고 했는데, 그게 돈도 꽤 들고 연구대상에 대한 접근도 쉽지 않아 누가 그걸 하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과로때문에 고생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다가  사업장을 다니면서 과로에 의한 뇌심혈관질환을 종종 접하는 뻐꾸기로서는 나라도 좀 연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내가 과로로 쓰러질까 무서워 엄두를 못 낸다.  이번주처럼 젊은 남자들이 잠 못자고 일하면서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 뭐 좋은 수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올 겨울방학때는 이 주제에 대한 좋은 보건교육자료라도 만들어 봐야 겠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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