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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의 비결2- 직장편

   어제 늦게 잤더니 아침에 일어나기가 정말 싫었다. 검진팀 버스 먼저 출발하라 문자 보내고 30분 더 자고 택시를 탔다. 검진장소에 도착하니 사업장의 보건관리자인 간호사와 산업위생사가 접수를 도와주고 있었다. 산업위생사는 요즘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시대요. 하고 반갑다 한다. 반도체 산업 백혈병 환자 발생 건과 관련해서 두 개의 시사프로그램과 인터뷰를 한 번씩 했고, 한 프로그램 당 이십초 정도씩 두 번 정도 화면에 나온 뒤로 사람들이 아는 얼굴 나와서 반갑더라 하는 말을 자주 들었다. 대부분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못 들었고 얼굴보고, 어, 어, 아는 사람이네, 하는데 금방 사라지더라고들 했다.

-> 인기의 비결 하나, 가끔 텔레비전 출연 같은 것을 해서 사람들의 무료한 일상에 이야기꺼리를 만들어 준다?
 
   검진시작 전에 출장검진팀장이 와서 작년이랑 달라진 유해인자에 대해서 간단하게 브리핑을 해 준다. 작업환경 측정 결과서를 읽어보니 생산 3팀에서 IPA가 노출기준의 30%가량 검출된 곳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노출기준의 5% 이내로 화학물질과 관련된 작업환경은 양호한 편이다. 한가지, 인쇄공정에서 사용하는 물질이 톨루엔과 크실렌이 대부분의 성분으로 이 부분에 주의해서 검진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2시간정도를 서서 일하는 사람이 많은 곳이라 다리 저림, 통증, 부종, 근육경련(쥐가 나는 것) 등의 증상이 흔했고, 작년에 연구목적으로 도플러검사기를 가지고 증상호소자에 대해서 검사를 한 기록을 토대로 적절한 예방 및 치료대책을 설명했다. 제자리 걸음 걷기를 자주 하고, 쉬는 시간엔 다리 스트레칭을 하고, 정맥 고혈압 방지를 위한 압박스타킹이 도움이 되고, 야간근육경련이 심하면 비타민 E를 꾸준히 복용하고.... 등등. 물론 서서 일하는 작업에 대한 대안은 하루 4시간 이상 서서 일하지 않도록 하는 것, 즉 의자를 지급하는 것이 근본적인 것인데, 쉽지 않다.
     그 다음으로 흔한 것은 경도의 고혈압. 대부분 젊은 연령대인데도 혈압이 좀 높은 사람이 많은 이유는 장시간 노동, 불량방지를 위해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작업특성으로 인한 스트레스 등이 파악이 되었고, 관리자들의 경우는 직원관리를 하면서 겪는 심적인 부담, 영업직은 거래처 상대하면서 열 받는 상황 등등에 대해서 말하더라. 혈압이 많이 높은 사람들은 길게 붙들고 직무스트레스 관리방안에 대해서 토론을 했다.
     비쩍 마른 중년 여성. 입이 자주 헐고 피곤하다고 한다. 자식들과 남편들 먹을 것은 끔찍하게 챙기고, 정작 본인은 잘 안 먹고 쉬지도 못하죠? 하고 물어보니 웃으면서 별 수가 있나요? 하 길래, 몸에 좋은 것도 챙겨먹고 쉴 때는 쉬어야 낫는 증상이니 자신을 아끼는 법에 대해서 잘 생각해보시라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나서 사람들이 웃으면서 고맙다고 하면서 일어설 때 기분이 좋아진다. 검진하면서 가끔씩 수검자들이 음료수 사다 주면서 고생한다고 고맙다고 하는 것을 보면 내가 인기가 좀 있기는 한 것 같다.
--> 인기의 비결, 둘, 검진 때 수검자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필요한 이야기를 한다.
 
  중간에 출장검진팀장이 오더니 뒷목에 물파스를 살짝 발라주고 간다. 나중에 물어보니 피곤할 때 직원들이 쓰는 방법인데 오늘 수검자가 많아서 피곤할까봐 한 번 시도해보았다고 한다. 이 양반은 내가 검진하는 날은 간식거리를 꼭 챙겨준다. 나 안 챙겨도 된다고 하지 말라고 해도, 그냥 집에 있는 것 가지고 온 거니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말고 먹으란다. 실제로 검진하다가 피곤할 때 초콜렛 하나 먹으면 좀 낫다. 그런데 어제 물어보니 과장이나 전공의가 할 때는 안 준단다. 이유가 뭐냐? 이상하게 내가 검진하는 날은 수검자도 많고 피곤한 날이라 그렇다며 웃으면서 간다.
-> 인기의 비결, 셋, 약간 측은한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오전 중 89명을 만났다. 생산일정 때문에 늘 발을 동동 구르는 사업장 간호사가 러닝타임을 준수했다고 좋아 한다. 몇 년 전에 여기서 검진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져서 간호사가 상사한테 야단맞고 작업자들은 덕분에 잔업을 해야 했다고 욕 많이 먹어서 배 불렀던 아픈 기억이 있은 뒤로 이 회사 검진은 되도록 내가 나간다. 우리 과 다른 의사들은 말이 매우 느리기 때문에 시간을 잘 못 맞추는 것도 하나의 이유이다. 일 년에 하루 검진하는 시간을 아까와 하는 사업주/관리자의 마음은 밉지만 세게 밀어 붙인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라 생각해서 하는 타협이다. 작업장 유해인자가 많거나 심하지 않고, 작업자 들이 대체로 젊어서 기본 사항만 확인하고 통과하는 사람이 많아서 가능한 타협이기도 하다.
-> 인기의 비결, 넷, 타협을 잘 한다.
 
   점심은 들어와서 전공의들이랑 먹었다. 오전 원내 검진하면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이것 저것 물어보는데, 옛날 같으면 궁금한 것은 스스로 찾아보고 공부해야 남는다 했겠지만, 몇 명의 전공의를 겪어본 뒤론 질문이라도 하는 놈은 관심이 있는 것이라 기특하다 생각하고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   직원들이나 전공의들한테 많이 가르쳐 주어서 고맙다는 말도 종종 듣는다. 어떤 사람은 우리 과가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발전해온 것은 내가 정기적으로 직원교육프로그램을 마련했기 때문이라고 면전에서 이야기해서 좀 민망한 적도 있었다(그 양반도 좀 취한 상태였다).
--> 인기의 비결, 다섯, 전공의와 직원들은 잘 가르쳐주는 교수를 좋아한다.
 
  처음 이 병원에 와서 보건관리 대행팀을 할 때는 직원들과 잘 지냈고 재미있었는데, 그 팀은 그 분야의 경험과 지식이 많은 사람들이 독립적으로 일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두 달에 한 번 조용히 밥 먹으면서 업무 이야기를 도란도란 하면서 삼 년 정도 잘 지냈다. 그 때 그 팀 사람들은 내가 밥을 잘 사주어서 좋다고 했고, 다른 팀(검진팀)에선 차별한다고 섭섭해 했다.
--> 인기의 비결, 여섯, 밥을 자주 산다.
 
   그 뒤에 검진팀을 맡으면서는 정말 힘들었다. 검진팀은 일단 사람수만 삼십명에 달하고 직종도 다양하고 비정규직도 많아서 팀 화합이 잘 되지 않는 문제점이 있는데다가, 일이 워낙 많고 노동집약적이다 보니,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 자체를 힘들어 했다. 내가 검진을 맡으면서 부쩍 늘어난 특수검진 이차 검사 오더를 지금까지 안 해 본 일이고 시간이 없어서 감당하기 어려우니 철회해달라고 찾아오는 일이 빈번했다. 수검자용 챠트를 만들기로 했을 때 너무 힘드니 없었던 일로 해달라고 여럿이 네 번이나 찾아왔었다. 그 때마다 검진은 수검자에게 도움이 되라고 하는 것이지 검진팀이 편하자고 하는 게 아니지 않냐? 때로는 쌀쌀맞게 이야기 하고 때로는 설득도 하고, 어렵게 어렵게 갔다. 오죽하면 몬트리올에 연수를 가서 검진팀이랑 옥신각신 하는 꿈을 꾸었겠는가?
세월이 흘러 흘러 서로에 대한 이해가 늘고, 수검자들이 고맙다고 하는 말을 자주 듣게 되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좋아졌고, 인기도 상승세를 타게 되었다. ㅎ
--> 인기의 비결, 일곱, 오랜 세월 지나는 동안 정이 든다.
 
   자화자찬은 나의 고질병이다. 중증이 아니고, 사회적 기능에 지장이 없으면 괜찮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때로 지치고 힘들 때 내가 잘한 일들을 떠올리면 힘이 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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