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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단에서 <unmittelbar>가 뭘 의미하는지 보다 정확하게 살펴보자. <unmittelbar>가 이 문단에서 네 번 사용된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같은 선상에서 사용되므로 세 가지로 사용된다고 할 수 있다. 처음엔 <zuerst>란 의미로, 다음엔 <seiend>란 의미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aufnehmend>란 의미로 사용된다. 이 세 가지 낱말들이 모두 <의식>이 주인공이 되는 <정신현상학>이라는 드라마의 1막 1장에 등장하는 <지>를 설명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1막 1장에 의식이 <지>로 등장한다. 의식은 본질적으로 <무엇에 대한 의식/Bewusstsein von etwas>이므로 <나는 무엇을 안다/Wissen von etwas>라는 행위로 나타난다는 말일까? 아무튼 <정신현상학> 드라마에 의식이 취하는 첫 모습은 <지>다. 헤겔은 이 <지>를 <직접지>라고 하고 위의 세 가지 낱말로 설명한다. <나는 무엇을 안다>라는 <지>의 구조를 살펴보면 세 가지 축이[Momente] 구별된다. 지의 주체와 객체, 그리고 이 둘 간의 관계다. <zuerst>는 <맨 처음>이라는 의미로 시간적인 의미이지만 <지>에 위의 세 가지 축이 스며있다는 맥락에서 보면 지의 주체를 설명하고, <seiend>는 지의 대상을, 그리고 <aufnehmend>는 지의 주체와 객체 간의 관계를 설명한다고 할 수 있다. <zuerst>란 의미의 영어 <first>와 독어 <Fürst/영주>의 어원은 같은데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고, 헤겔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떠한 매개에 의하지 않고 [홀로 직접]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seiend>도 역시 아무런 매개에 의하지 않는 <그저 있다>라는 의미다. <aufnehmend>도 이런 주체와 객체간 아무것도 끼어 들 수 없는 그런 관계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보면 이 문단에서 이야기되는 <unmittelbar>는 <직접적인 것이 직접적인 것을 직접적으로 안다>라는 말을 하고 있다. 뭔가 완전히 옹그려져 아무런 구별이 없는 상태다. 꿈꾸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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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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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이란 정신(Geist)가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학문이죠. 그런데 여기서 정신이 무엇이냐. 헤겔은 무의식의 존재를 몰랐잖아요. 무의식적으로 역사가 이루어지는걸 이성의 간지라고 했잖아요. aufnehmen은 돈을 받다 할 때 받다라는 뜻인데 그냥 주는대로, 있는 그대로 받는거잖아요. 그러니까 대상을 있는 그대로, 혹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는것 아닐까요.부가 정보
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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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정신현상학을 읽지 않았으니 그냥 들은 얘기를 할 수밖에 없는데, 헤겔은 관념적인 사람이 아니라 현실의 운동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다만 당시의 관념적인 언어로 글을 썼다는게 문제인데 좀 쉬운 번역 없을까요.부가 정보
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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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 어려워서 정신현상학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면에는 독어를 하는 사람들은 정신현상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라는 것이 전제되어 있는데, 원문이 더 어렵네요.... Ludwig Sieb이, 교수니까 일반사람보다 이해력이 좀 뛰어난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정신현상학을 읽으려면 생의 일부분을 투자해야 한다고 합디다. 어렵네요.부가 정보
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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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언어 자체가 관념적일 수밖에 없을까?부가 정보
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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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수도 있겠지만 국내에 번역된 임석진씨의 번역은 상당히 잘하시긴 했는데 그 분이 불교신자여서그런지 약간 종교적으로 해석한 부분이 없지않아 있다고 하더군요.부가 정보
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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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라고 해도 은, 는 등은 보족적인 의미일 뿐이고, 기본은 주어와 술어로 이루어져있는데 술어는 주어를 규정하거나 설명하죠. 나는 남자다, 나는 훌륭하다. 그런데 단어는 일단 보거나 들으면 머리속에 하나의 표상이 떠오르죠. 사과 하면 사과의 표상이. 그런데 지 이랬을때와 앎 이랬을때 표상이 빨리 떠오르는 것은 어느쪽일까요. 저는 후자라고 생각해요. 독서가 빨리 이루어진다는거죠. 전 그래서 쉬운 번역을 선호하지만 번역을 할 때는 단어를 정확히 옮겨야하기 때문에 쉬운 번역이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말로 고칠 수 없을때는 과감하게 그 단어 그대로 쓰고 주에 설명을 해주는게 더 좋다고 생각해요.부가 정보
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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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플라톤의 폴리테이아를 <국가론>으로 번역하는 행위, 키케로의 De Re Publica를 <국가론>으로 번역하는 행위를 범죄행위라고 생각해요. 폴리테이아는 폴리스의 정치체제에 관한 글이고, 레푸블리카는 공화정, 키케로가 공화주의자였기 때문에, 이라는 제목을 붙인건데 국가론이라고 하면 마치 폴리스가 국가인것처럼, 국가기구가 없어도 왕만 있으면 국가라는 생각, 키케로도 로마가 국가기구를 발전시키기 직전에 그리스의 순환정치체제에 대해 논한 것인데 마치 국가에 대해 논한것처럼 인식시키는 행위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건 번역의 문제만이 아니라 정치에 대한 사고 자체에 문제를 일으킬 수가 있다는거죠.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