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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서론 번역초안을 마치면서 1

우선 임석진 교수님께 큰절한다. 정신현상학을 이해하는데 엄청나게 좋은 것을 하나 훔쳐와서 그렇다. 도둑놈한테 도둑질 잘하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절을 받으면 어떤 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절은 해야 할 것 같다.

 

음악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성이 아닌가 한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이해하는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임석진 교수의 개정번역본을 읽으면서 정신현상학의 조성에 귀가 확 뚫리게 되었다. 거침없이 훔쳐왔다. 조성에 귀가 뚫리니 읽어 내려가는데 또한 거침이 없다.

 

웹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녀보니 정신현상학 번역에 대하여, 그리고 번역하는 일 자체에 대하여 이상한 생각들이 있다. 그 중 가장 어처구니 없는 생각은 <도움이 되지 않는 한글 번역본>을 운운하면서 일본 번역본의 도움을 받아 원서를 읽어 내려가겠다는 의지다. 대단한 의지다. 말하자면 <절대적인> 원서를 일본 번역본을 <매체로> 하여 우리말로 <고스란히> 가져오겠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에 깔려있는 기본정서는 <직역>이다. 악보를 읽을 줄 알면 다 피아노 연주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혹시나 하고 가서 보니 독어에 대한 이해가 천박하기 그지없다. 정신현상학을 읽어 내려가면서 <>자가 붙은 모든 것이 어떤 호통을 받는지 귀가 뚫렸으면 한다.

 

이것이 정신현상학을 이해하는데 두 번째 어려움인 것 같다. 처음에는 귀가 뚫리지 않아서 헤맸는데, 이제 귀가 뚫리니 헤겔의 곤장이 나를 때리는 곤장소리다. 그냥 맞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는가? 이리저리 피해보지만 잘도 때린다. 어쩌면 그렇게 내 안에 있는 끈적끈적하고, 우쭐거리고,덜 되고이런 생각들을 하나하나 들춰내는지 귀신 같다. 정신현상학에 들어가는 정문에는 라고 간판이 걸려있다. 내가 하는 짓이 심판대에 올라와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이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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