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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아힘 가우크 독일연방대통령 취임사

어제(2012.3.23) 요아힘 가우크의 독일연방대통령 취임식이 있었다. 그간 좀 씹었는데 취임사 전문을 소개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일 것 같다.

 

아래 쪼개서 번역해 올린다.

 

번역 주석은 달지 않았다.

 

원문은 쥐드도이체짜이뚱에 게재된 것을 사용했다.
 

독일연방하원 의장님, 제가 존경해 마지않는 귀빈 여러분, 친애하고 존경하는  너나할것 없는 내외 시민 여러분1! 먼저 의장님께 이 자리를 견줄 수 없게 지도해 주시고 정치가 기쁨을 만들 수 있다는 모범을 우리나라 안으로 빛나게 해 주신데 대하여 더없이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의장님, 귀하는 저 뿐만 아니라 분명 연방대통령 불프에게도 심금을 울리고 잊혀지지 않는 반향을 남겼습니다. 감사합니다.


친애하는 동반자시민 여러분, [수 많은 이야기가 오가는] 지금, 이 나라가, 언젠가 우리 아이들과 그 후손들이 우리나라라고 할 이 나라가 진정 어떤 모습이어야 합니까? 이 나라에서 개별화가 계속될 것인가요?  빈곤과 부의 가위가 더 벌어질 것인가요? 세계화가 우리를 삼켜버릴 것인가요? 사회 주변으로 떨어지면 사람들이 패자라고 느끼게 될 것인가요?  인종적 혹은 종교적 소수가, 의도된 아니면 한탄의 대상이 되는 격리에서, 반문화를 만들까요? 유럽에 뿌리하는2 이상이 존립할까요? 근동에 새로운 전쟁의 기운이 도는가요?


독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악을 행하는 광신주의가 온순한 사람들을 계속 위협하고 주눅들게 하고 죽일 수 있을까요? 매일, 매체를 접하는 매 순간이 새로운  두려움과 걱정들을 가득히 가져다 줍니다. 그럼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도피길 모색에 안달하고,  미래를 불신하고, 현재를 무서워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게 도대체 무슨 삶인가, 무슨 자유인가하면서 자신을 둘러보고 따짐니다. 그럼 저의 평생주제인 자유는 그들에게 아무런 미래를 제시하지 못하고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는, 단지 안위를 앗아가는 것이 될 뿐입니다.


저는 이런 반응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런 반응을 부추킬 의사는 없습니다. 저도 불안을, 제게 허용된, 한 사람의 오랜 삶 속에서3 경험하고 이런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불안은 용기와 함께 자신감을 축소시킵니다. 종종 결정적으로 축소시켜 우리가 둘 다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진전되면 심지어 비겁을 미덕으로, 도피를 정치적 공간에서 취할 수 있는 정당한 몸가짐으로  삼게 되기까지 합니다. 저는 이런 반응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걸 넘어서 저의 기억을 저와 우리를 가르치고 움직이게 하는 힘과 힘의 원천으로 사용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저는 또한 부디 바라건데, 나찌 독재의 이루 말할 수 없는 범죄를 뒤로 하고  전쟁의 참상이 지난 후에,  우리나라에서 이룩된 것에 대한 살아있는 기억을 소원합니다. 독일의 서편에서는 이렇게 이룩된 것이 처음엔 경제기적이라고 이름되었습니다. 독일은 다시 서게 되었습니다. 고향에서 쫒겨난 사람들에게, 아니 폭격으로 집이 산산조각나 몸 둘 곳이 없는 사람들에게 주거공간이 주어졌습니다. 궁핍으로 이어지는 수년 후에 일반시민이 불어나는 복지에 참여하였습니다. 물론, 모든이가 똑 같은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에게는 자동차, 냉장고, 그리고 새로운 번영에 새롭게 빛나는 이 모든 것들이 전후 첫 십년의 기적이 아닙니다. 저는 제가 살고 있는 이 나라는 무엇보다 먼저 민주주의 기적의 나라라고 느낍니다.


전후 당시 연합군이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전후 독일에서는 보복주의가 다수의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전혀 없었습니다.  물론, 나찌 사상의 여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독일] 건설에 현실적으로 참여하는 세력이 되지 못했습니다.  연합군이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견고한 민주주의 질서가 생겨났습니다. 독일-서편은 자유로운 서구세계의 한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과거사를 파헤치는 일은 부족한 상태에 머물렀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는듯 감추고, 나찌레짐의 희생자와 함께하는 마음가짐의 결여가 당시의 시대정신에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68세대에 이르러 비로소 끈끈하게 바뀌었습니다.


당시 제가 속한 세대는 우리 부모 세대가 교만, 살인, 그리고 전쟁으로 우리들의 이웃들을 [독일] 안에서 뿐만 아니라 [독일] 밖에서 범한, 독일 역사의 바닥이 안보이는 새까만 구렁텅이와 마주하면서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 역사를] 새롭게, 달리, 그리고 더 깊게 우리 안에 담을4 수 있게 된 것은 이 세대, 즉 68세대의 공로였으며 또 그들의 공로로 남을 것입니다. 그것은 힘겹게 몸부림하여 달성한 행운입니다. 68세대의 분노와 저항을 동반하기도 했던 모든 그릇된 길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찌 잘못에 대한] 역사적인 책임을 [독일] 공동체 의식에 바로 세웠습니다.


이런 사실에 근거하고 가치를 지향하는 과거되새겨정립하기는5 1989년 이후의 동독에 있었던 우리들에게만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또한 전체주의적인 혹은 폭군적인 멍에를 걷어차 버렸지만 과거의 짐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는 많은 사회들이 모범적이라고 느낀 것이었습니다. 유럽으로 향하는 서독인들의 결의찬 찬성은 독일 전후역사의 또다른 값비싼 자산 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하게 남아있어야 할 기억자산 입니다.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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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원문: "Mitbürgerinnen und Mitbürger aus dem In- und Ausland". Mitbürger의 mit가 번역하기 어렵다. 주지하다시피 inclusion 담론에서 나온 표현이다. 독일의 경우 이주노동자들이 독일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현상이 된후 등장한 표현이다. 가우크의 표현에 더 인상 깊은 것은 전 세계인민을 Mitbürger로 하는 경향이다. 한국 노무현 대통령 조차 취임식에서 국민여러분 했던 것과 비교하면 의식수준의 차이가 너무 뚜렸하다. 암튼, mit를 너나할것 없이 다 똑 같은, 내국인이건 외국인이건 차이가 없는이란 의미로 번역해 보았다. 텍스트로 돌아가기
  2. 원문: "die europäische Idee". 정관사 die가 종을 말하고 있다. 유럽 종적 이념이라고 번역하려다 유럽에 뿌리한으로 고쳤다.텍스트로 돌아가기
  3. 원문: "einem langen Leben". 부정관사에 하나, 한사람이란 의미와 함께 그 하나를 절대화시키지 않는 겸손이 엿보여서 이렇게 좀 장황하게 번역했다.텍스트로 돌아가기
  4. 원문: "erinnern". 기억하다를 한자를 풀듯이 풀어 번역했다. 텍스트로 돌아가기
  5. 원문: "Aufarbeitung der Vergangenheit". 보통 과거청산으로 번역되는데, 역자는 청산이란 말에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aufarbeiten이 aufräumen과 같은 청산이 아니기도 하고. 못다한 일을 다시 한다는 원래 의미를 살려 번역했다.텍스트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