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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현상학 A. 의식 II. 지각; 혹은 사물과 착각 (번역 재개) -가재걸음: (§ 6) 분석 및 번역

정신현상학 번역에서 특히 어려운 점은 똑같은 단어인데 상이한 의미를 부여받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에 있지 않나 한다. ‚Flügel’(‚날개’; ‚피아노’)과 같은 동음동형이의어라면 사전을 찾아보면 되는데 정신현상학에서는핵심적인 단어(개념)들이 맥락에 따라서 상이한 의미를 갖게 되기 때문에 이해와 번역이 어려운 것 같다.

 

헤겔의 언어사용은 „한 단어의 의미는 [그것이 속해 있는 언어 안에서] 어떻게 사용되는가에 있다.“(철학적 탐구 43)고 말한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이론과 유사성이 있는 것 같다.

 

헤겔의 언어이론은 개별적인 단어가 홀로 뚝 떨어진 체로- 헤겔 용어를 사용하자면 für sich -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전체와의 관계 안에서 구별된 것으로서야  비로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보는 것이 아닐까 한다.

 

역자는 지각 장의 §6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기를 지각으로 인식하는 의식이 현실적으로 취하는 태도를 다루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단락을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펴보기로 한다.


 

1. 첫째 문장

„So ist nun das Ding der Wahrnehmung beschaffen; und das Bewußtsein ist als Wahrnehmendes bestimmt, insofern dies Ding sein Gegenstand ist;“

 

이 문장에서beschaffen의 의미가 어렵다. ‚beschaffen’은 ‚Beschaffenheit’에 기대어 보통 ‚성질’로 번역되는데, 그러면 ‚Eigenschaft’(성질)와 구별이 잘 안 된다.

 

우선 ‚beschaffen’이 문법적으로 어떻게 사용되는지 보자. 상태수동태에서의 과거분사로 사용된 것 같다. 그렇다면 ‚beschaffen’의 의미추적은 동사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동사로서의 ‚beschaffen’은 ‚필요한 뭔가를 곁에 갖다놓다’란 의미다. 여긴 ‚[적절하게 잘] 배치하다’(aufstellen)란 의미도 스며있다 (예: Bist du richtig aufgestellt, um dieses Problem zu bewältigen?/넌 이 문제를 해결하기에 적합하게 [준비한] 상태냐?) „Wie steht es mir deiner Gesundheit?“하면 „[네] 건강상태가 [지금] 어때“정도인데, 이것은 „Wie ist es mit deiner Gesundheit beschaffen?“란표현과 같은 의미다.

 

‚beschaffen’과 ‚aufstellen’, ‚stehen’간의 이런 관계는 라틴어 ‚consistere’(sich aufstellen)와의 가족유사성으로도 연결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Beschaffenheit’가 영어로는 ‚properties’(Eigentuemlichkeit= Eigenschaft=성질)로 번역되는가 하면 또한 ‚consistency’로 번역되기도 한다.

 

‚consistere’는 ‚움직이다 어떤 상태에서 멈추다’라는 기본의미에 ‚[특정한] 적을 대항하여 진을 짜다’란 의미도 있다. 축구에서 어떤 특정한 적수를 대항하여 공격수, 수비진 등 선수들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팀을 짜는 것(‚eine Mannschaft aufstellen’)과 같은 의미다.

 

‚beschaffen’을 이렇게 ‚aufstellen’, ‚consistency’, 그리고 ‚consistere’에 기대어 번역하면 어떤 특정한 대립관계에서의 ‚[구성]요소들의 배치 상태’가 가장 적합한 번역이 될 것 같다. 그래서 한 축구팀은 A1, A2, ... A11이란 11개의 구성요소간의 관계, 헤겔적으로 말하자면 그 11개의 Momente들이 한 시스템이 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예나 시기 논리에서 헤겔은 사물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사물은 „그 Momente의 시스템“(„das System seiner Momente“)으로서 „이들은(=Momente) 서로와의 관계 안에서만 그 무엇이 된다. 그리고 사물은 바로 이런 관계다.“(„diese sind nur was sie sind, im Verhältnisse zu einander, und das Ding selbst ist diß Verhaeltniß.“(Jenaer Systementwuerfe II, 20, 3-6)

 

번역:


„지각에서의 사물이란 결국 이렇게 짜여 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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