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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현상학 A. 의식 II. 지각; 혹은 사물과 착각 (번역 재개) -(§ 15) - 가재걸음 5

[범주론에 대한 추가 토론과 가치형태분석은 뒤로 하고 다시 번역으로 되돌아 가 보자.]

 

“Diese Bestimmtheit, welche den wesentlichen Charakter des Dings ausmacht und es von allen andern unterscheidet, ist nun so bestimmt, daß das Ding dadurch im Gegensatze mit andern ist, aber sich darin für sich erhalten soll.”

 

‘diese Bestimmtheit’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존재론적인] pros ti와 같은 것으로 읽을 수 있겠다. 처음에 ‘(피)규정성’으로 번역했는데, ‘관계적인 규정성’혹은 ‘관계에서[만] 드러나는 성질’ 정도로 번역될 수 있겠다.

 

이런 ‘관계에서[만] 드러나는 성질’이 사물의 ‘wesentlicher Charakter’를 이룬다고 하는데, 여기서 ‘wesentlich’란 말이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잡히지 않는다. 본질적인? 여기서 ‘본질’이란 게 뭘 의미하지?

 

아리스토텔레스가 뭐라고 하는지 물어보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범주론> 7장에서 pros ti를 존재론적으로 제한하여 정의하기 전에 pros ti의 성질을 살펴본다. 네 가지로 구분되는데, [한 쌍을 이루는 관계자들 간의] 반대 항으로서의 대립(enantiotēs), [극과 극간에 연속성으로 이어지는] 단계성(to mãllon/더 많음-to hētton/더 적음), [한 쌍을 이루는 관계자들의] 가역성, 그리고 [한 쌍을 이루는 관계자들의] 동근원성을 토론한다. 근데 가역성이 ‘wesentlicher Charakter’이란 표현에서 ‘본질적’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철수는 노예다. 왜? 철수가 노예가 되는 것은 그가 노예라는 고유의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아니다. 필연적으로 주인의 노예다. 주인이 사라지면 노예가 있을 수 없고, 역으로 노예가 사라지면 주인이 있을 수 없다. 관계자는 [개념적으로!] [한 쌍을 이루는] 다른 관계자를 마주하고 있다. 주인과 노예는 주․노의 사회적 관계의 파기와 함께 필연적으로 사라지는 관계자들이다.

 

철수는 [어떤] 사람의 노예다. 이건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다. [어떤] 사람과의 관계는 관계자(pros ti)의 ‘본질’이 아니다. 노예가 사라진다고 해서 사람이 사라지는 게 아니고, [어떤] 사람이 사라진다고 해서 노예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이런 우연적인(비본질적인) 관계에서는 앞에서와 같은 가역성이 성립되지 않는다.

 

이런 가역성은 pros ti의 존재론적 정의에서 이미 엿볼 수 있다.

 

“esti ta pros ti hois to einai tauton esti tōi pros ti pōs echein.”

 

정의대상(definiendum, 즉 pros ti)이 정의하는 항(definiens)에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정의의 법칙을 어긴 정의다.

 

<범주론> 주석자 안드로니코스는 이런 ‘오류’를 지적하고 위의 정의에서 두 번째 pros ti를 pros heteron으로 대치하는 걸 제안한다. (참조: Richard Sorabji(간행인), Aristotle Transformed, The Ancient Commentators and Their Influence, New York 1990, 72쪽, 주석 95)

 

근데 아리스토텔레스가 그걸 몰랐을까? 알았다면, 왜 그런 ‘오류’를 범하면서까지 재귀적인(recursive) 정의를 했을까?

 

(노예 -> 주인) -> (주인 -> 노예)  

 

이 관계가 기호논리학적으로 매끈하게 설명될 수 있을까? 아니면 ‘역사’로 내려가야 하나? 

 

암튼, 번역으로 되돌아 가 보자.

 

“Diese Bestimmtheit, welche den wesentlichen Charakter des Dings ausmacht und es von allen andern unterscheidet, ist nun so bestimmt, daß das Ding dadurch im Gegensatze mit andern ist, aber sich darin für sich erhalten soll.”

 

이 문장의 첫 부분은 우선 다음과 같이 번역될 수 있을 것 같다.

 

 “사물의 필연적인(개념적인) 관(계)성을 이루고 사물을 다른 것들로부터 구별하는 관계에서[만] 드러나는 성질은 이렇게 규정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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