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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앙일보가 대북제재에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다. 신속한 보도와 함께 다층.다면적인 사설을 싣는다.
그 관심의 근간엔 '한국' 자본의 향로에 대한 걱정이 있다.
"한반도 번영의 새로운 축은 북방에 있다"(중앙일보, 김병연)란 입장의 연장선에서
“북한이 핵 개발에 죽기살기로 매달렸고 또 실질적 핵보유국이 됐음을 인정해야 할 단계에 왔다면 핵문제 해결과
평화협정을 맞바꾸자는 북한의 요구를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는 있겠다. 중국이 버티는 한 북한 괴멸은 현실성
없는 분노의 시나리오다“(중앙일보, 송호근 '우수와 경칩 사이”)란 의견이 가능하지 않는가 한다.
2.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를 앞둔 뉴욕타임스의 기사에서 가치법칙의 관철을 본다.
월스리트저널의 "확실한 쥐어짜기"(„decisive squeeze“)에 뉴욕타임스는 "아시아의 회의"를 거론하면서
북한이 빠져 나갈 수 있는 '구멍' 둘을 제시한다. 둘 다 제재 대상이 아니다. 하나는 북한 노동력 해외 파견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 자본의 북한내 임가공 강화다.
3.
한국 정부의 '급변침'대북정책은 북.중 관계의 단절을 목적한다. 그러나 가치법칙은 관철된다. 결과 북.중 관계는
더욱 긴밀해 질 수 있다.
한국의 개성공단 포기와 중국의 '개성공단' 확장이 대조를 이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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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북한학과 남성욱 교수가 중앙일보 특별기고 “충돌 직적의 '치킨게임' 해법 없나?“(http://news.joins.com/article/19640283?cloc=joongang|home|newslist1)에서 남한의 대북정책의 기본 범주로 “애매한 사회과학적 개념”대신 “편리”를 제시했다.독일 '(신)동방정책'의 핵심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접근을 통한 변화'란 빌리 브란트의 신동방정책의 근본은 편리였다. 동서독 분단에는 동.서베를린이 있었다.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 사실이 신동방정책에서 어떤 무게를 가졌는지, 흔들리는 국제 정치의 파도에서 어떤 복원력을 발휘했는지에 대한 이해는 좀 부족하지 않나 싶다.
동독 정권의 베를린 장벽 설치에 가장 열을 낸 사람은 빌리 브란트 였다. 당시 동독 정권 1인자 울브리히트를 소련의 “Kettenhund“(사슬에 매인 개)로 칭하고 동독을 “집단수용소”로 만들려고 한다고 항의했다. 그리고 동분서주했다. 베를린의 시민들의 자유 왕래를 위해서. 베를린 시민들의 '편리'를 위해서. 그리고 “장벽은 절대 안돼, 사라져야 해!”(„Die Mauer muss weg!“) 했다.
빌리 브란트의 대동독 인식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시민의 편리를 위한 “장벽은 절대 안돼, 사라져야 해!“는 1989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일관된 신념이었다. 끝까지 "장벽 딱다구리"(Mauerspecht)였다.
동서베를린 통행증이 문제였고, 서베를린과 서독을 잇는 육로가 문제였고 등등.
한반도 분단에는 '베를린'이 없다. '편리'에 입각한 대북정책의 실체가 없다는 말이다. 80년대에 한국의 '민주.민족'운동 계열 인사들이 자주 서독을 방문했다. 그때 이런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우린 베를린은 없지만 판문점이 있다.“ 서독의 대동독정책에서 '베를린'이 갖는 위상을 완전히 망각한 발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Bonmot이었다. 서독의 신동방정책을 재담 수준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반도와 동.서독의 상황이 상당히 다르다.
신뢰프로세스도 마찬가지다.
우크라이나 분쟁에서 독일이 강력하게 러시아에 항의한다. 메르켈은 푸틴의 눈에 가시다. 어떻게 해서든 메르켈의 입지를 흔들어보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독일 반난민 정당 AfD와 제휴, 난민에 의한 러시아 소녀 성폭행설 선동으로 독일 거주 러시아인 선동, 메르켈 비판자 제호퍼 바이에른 총리와 회담 등) 그런대 독일의 우크라이나 '개입'을 두고 절대 „옛날에 그러더니 또“하지 않는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은 유럽, 특히 동유럽의 '하인'나치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러시아는 이걸 꼬집지 않는다. 갖은 수단을 다 쓰면서도. 이건 독일의 과거청산이 국제관계에서 완결되었다는 의미다. 유럽 신뢰프로세스의 절대 조건이 충족된 것이다.
동북아시아는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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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에 입각한 대북정책의 실체 부재 상황에서 개성공단 폐쇄는 비극. (존 메릴, 경향 인터부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2281517031&code=910303)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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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보다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자료를 링크해주셔서 감사합니다.'주체' 조선인민공화국의 '종속적 발전' 가능성이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었습니다.
현재 좌파 '통일론' 부재 혹은 과거 다양한 형식의 '민족해방론'에 대한 회의 혹은 그게 과연 재장전될 수 있을까, 있다면 어떻게 재장전 될 수 있을까 질문하는 가운데 저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때를 맞추지 못한 민족”(„verspätete Nation“, 플레쓰너) 독일은 문제가 많았습니다. 한반도 상황에도 적용할 구석이 좀 있을 것 같습니다. 다양한 '민족해방론'과 그 실천을 제때에 했나? 실체적인 식민지/강점기 상황에서 반봉건/반식민 민족해방전선이 구성.실천되지 않고 좀 엉뚱한 때에 그러지 않았나? 등등의 질문 또는 회의입니다. 위안부 '소녀상' 지키기에도 같은 생각을 조심스럽게 적용해 봅니다. 지켜야 했을 때 지키지 못한 트라우마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게 아닌지. 위안부의 트라우마는 말하면서 제때에 하지 못한 주변 사람들의 트라우마는 말하지 않는 게 아닌지. 이런 회의 내지는 질문입니다.
“변화를 아래에서 느끼는 체감”에 답이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나마 생각해 봅니다. 여기에 “때를 맞추는/잡는 실천과 이론이 있을 거라고 또 한번 막연하게 생각하고요. 우선 눈뜨고 봐야겠죠.
“아래에서 느끼는 체감”에 한마디 더 하자면, 체감 당사자의 그 느낌은 매우 다양하게 표출된다는 것. 얼마 전 산책 길에서 짝지가 느닷없이 해군대 군가 “청룡은 간다”를 부르더라고요. 처음엔 인상을 찌푸리다가 님과 똑같은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 가는 군인들의 체감을 질문했어요. 군인 해외 파병와 노동자 해외 파견이 겹쳤다고 할까? <평화시장>의 임가공 노동자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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